히피도 선망이 되는가?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작명에 관한 소고
히피를 누군가 만들었다면, 북한 공작 정치처럼, 꽃술을 흔들면서, 히피가 미 대륙에 깔렸다면, 우리는 부러워할 수 있겠는가? 우리도 옛날에 즐거운 학생 동원으로 나아가, 손을 흔들고, 그랬었다. 수업을 하다가, 갑자기 바깥으로 나가자니까, 마음이 히피해졌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히피는, 무슨 예수님의 공생애도 같았고, 그러나 실망시키지 않는 것은, 그렇게 혼돈과 혼탁, 약물과 마리화나를 좋아했는 것이다. 그러니 속성이 그처럼, 남극과 북극의 적도에서의 조인트 미팅 정도가 되니, 만들었대도, 더 이상 궁금하지 않고, 안 만들었대도 관심이 가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아무 것도 없는 미국에, 그나마 히피라도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히피는 지금도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이, 코로나 바이러스, 갑자기 직업이 없어지고, 티비에서는 좀비나 유사 좀비 영화만 하고, 그러니까 산과 바다로 놀러만 나가고 싶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히피는 부활한다. 누군가의 말처럼, 잉글리쉬는 우리 마음 속에 있다는, 그런 스타워즈스러운 표현, 한솔로, 혹은 듀크, 히피는 끊임없이 소풍을 나가는 미국 사람들에게서 부활을 하는 것이다. 더 탑 오브더 월드라는 것도 그렇다. 무슨 공부를 그렇게 해서, 미국의 안타이 프래그머티즘에서, 혹은 유미주의를 벗어나는 미국 서부의 새로운 문예론에 의해서, 그런 느낌을 갑자기 한속을 느끼듯이 느꼈다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분위기는, 그냥 히피들의 집단적인 의사 결정권에서 느낀 것 같은 것이다. 내가 지금, 모니터를 에이치피 것을 쓰는데, 너무 미제를 쓰는 것이 없어서. 사람들은 나의 필명을 보고, 혹시 히핀가 생각했지 않겠는가? 처음에는 억지스러웠다. 모든 단어는, 사탄의 자식들처럼, 천사의 얼굴 위에 쓰여진 억지 같은 것이다. 아담도 그렇다. 야벳도 그렇다. 보아스도 그렇다. 룻도 그렇고, 롯도 그렇다. 국문학은 없어도, 사람들 이름은 연변에 깔렸듯이, 우리는 물질이 늘 그렇게 살인사건 일보 직전으로만 흐르는 것이다. 때문에 지식의 퇴락에서도, 기호주의가 발동하지만, 퇴락한 상태에서의 구원을 향한 희망에서도 성스러운 기호주의가 발동하게 되는 것이다. 미국 영화는, 아무런 종교적인 오리엔테이션도 없는데, 스스로 알아서 그와 같은 기호주의를 탐험하는 창구가 되었었다. 우리는 그들이, 어딘가에서 공부하고, 수도원 같은 데를 다녀오고 제작한 것인 줄 알지만, 우리도 영화를 만들라고 하면, 당장에 절이 나오는 풍경은 금방 그려낼 수 있는 것이다. 어려서의 경험은, 필사적인 데가 있고, 그것은 필름으로 보관되어, 죽기까지 함께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어려서의 필름은 정확한 것이고, 상대적이지만, 조심히 그리고 과감하게 표현하는데, 아무런 오류가 없었던 것이다. 아무리 미국이 넓어도, 영화인이 되고 나면, 유럽의 여러 지역이 머리에 떠오르게 되어 있다. 히피가 만들어졌다는 것이 그와 동시동작적이다. 우리는 세계사를 사탄을 전제하면, 대한민국 대통령처럼, 이름처럼, 관통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찬령이나, 대속꽉찬령이라고 하면 좋을 것이다. 뭐든지 커지면, 대자가 붙으면, 통이나 속이 빌 것 같은 인상은 있다. 그것이 대통령의 운명이면, 코로나 바이러스,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코로나 바이러스는 신의 한 수인 것이다. 사람들은 우연히 이름이 있기 때문에, 사탄을 의식할 수가 없다. 좋은 이름을 지어준 적도 없고, 애를 낳기 전까지는, 서로에게 편지를, 시를 적어 준 적도 없기 때문에, 좋은 글과 나쁜 글, 인절미와 코로나 바이러스를 구분할 수가 없다. 미국은 이차대전을 승리하고, 매우 사탄은, 행복에 젖어 있었다. 사탄이 그렇게 많이 섹스를 하고, 원래 조심성이 많아서, 그렇게 많이 우연한 죽음을 가장한, 베스트라빈스키, 피의 제전을 즐긴 적이 없다. 권력의 필연성을 가진 엘리트들은, 점점 더 사탄의 만행에, 그릇이 넓어지고 있었다. 우리들에게도 은 술잔의 신화가 있지 않은가? 경찰들은 식당에 가면, 뭘 먹고 나온다. 저녁에는 술도 마신다. 거의 모든 사탄의 공간이, 무슨 학교나 종교적 교회당이기보다는, 식당이기 때문에, 예식장식 식당, 처음에는 경찰복을 입고 가고, 나중에는 자기도 뭘 먹고 나오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도, 구조주의적인 의미에서는, 뜻으로만 보면, 타임머신 같은 것이고, 영어로 네쎄써리, 필요하다는 것인지, 필연적인 것이다. 그런데 딱 하니, 사탄의 돌을 씻는 장소였던, 성지, 한국에서 한국이 승리를 하였던 것이다. 미국이 도와주었다는 것이 우리들의 사탄이다. 하나도 깨끗한 데가 없다. 미국은 도와줄 수 밖에 없었고, 전쟁이 끝날 무렵의 한국군의 모습은, 그들이 갖고 있는 철물 부어 만든 실제 군인상을 능가하는 것이었다. 더 단단하고, 더 베트콩 같고, 더 오지의 군인 같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식당을 다녀온 경찰들이, 처음으로 토하기 시작한 것이다. 권력이 화성에 이르도록, 동물 뼈라든지, 금수저라든지, 흙수저라든지, 숱한 아노말리들, 하나 뿐이면, 경찰들은 직업인들이기 때문에, 지능이 머리 피부에 박힌 머리털의 뿌리보다도 낮다. 그러나 둘이면 곤란해지는 것이다. 그것의 아포리아가 바로, 테오티후아칸이나, 다른 남미 계열의 피라미드에 있다. 거기에는 항상 희생이 된 인간들이 나온다. 유럽의 인골 성당은 원인이 다르다. 사람들을 죽여, 인골들을 만들고, 그것으로서 성당을 지은 것이 아니라, 그런 것 같지만, 사람들이 죽음병으로 많이 죽고, 지하동굴에 던져져 오래도록 썩었는데, 그것을 안타까워한 교회 사람들에 의해 성당 내부에 치장된 것이라고 한다. 그것도 이상한 것이다. 이집트의 피라미드에는 인신공양이나 희생이 발견되지 않는다. 구대륙의 다른 고대 유물도 그와 같은 인간 희생 같은 것은 발견되지 않는다. 그런데 약속이나 한 것처럼, 남미의 고대 유적에서는, 겉으로도 해골이 드러나 있고, 문자에도 드러나 있고, 높고 웅장한 건물에는 항상 그것이 발견될 것 같은 느낌을 우리에게 주는 것이다. 사탄이 커밍아웃을 하겠는가? 겨우 피라미드만 하나 보고. 만일 훌륭한 문화나 철학, 예술이나 종교가 없이, 신대륙을 발견했다면, 금세 커밍아웃을 했을 것이다. 인신공양도 그렇다. 그것도 계단이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늘 반절이 죽었다. 사람의 키가 반절 정도 되었다. 그런데 십일조처럼, 지금의 동서양의 현상이 그러한데, 선발해서 바치면, 구십구가 살고, 백범 구백구십구가 사는 것이다. 그러니 아브라함의 이삭과의 히피 소풍은, 분명 믿음의 조상이라는 이름에 값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 읽기도 어려운 길을 성경이 나아갔겠는가? 그것의 구멍이 안으로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구멍이 생긴 것도, 그와 같은 희생의 레토릭으로 커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결국은 반절이 죽는 것과 같은 것이다. 신대륙을 발견해서, 사탄은 커밍 아웃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바빠서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모든 종교와 제도, 문화와 소풍의 종말에 이르기까지, 아직은 해야 될 일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마크 트웨인의 글을 읽으면, 영어로 읽으면, 표현이나 대사가 너무 거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레토릭이 그러니까, 통과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미래를 약속했다는 것이 또한 나의 주장이다. 사탄도 다 생각이 있고, 마치 인간처럼, 조건을 두루 살필 줄 아는 것이다. 그리고, 원시인들을 많이 수입했다. 주로 잡아먹는 공동체는, 아직 기계가 속절없이 넓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경험을 한 적이 없었다. 한국 군인들이 승리를 하고, 미국 경찰들이 눈을 뜨게 되자, 한 번 뿐인 기회가 날아갈 것 같은 위기 의식을 그들은 느꼈다. 사탄도 위기라는 것이 있다. 늘 절망과, 위기, 공포와 젖어 산다고 해서, 그래서 사람을 먹고 힘을 낸다고 해서, 그들에게 따로 그런 의식이 없는 것이 아닌 것이다. 세상 모든 지역에다, 사탄의 속성을 제안하고, 아직 그것이 사탄의 것으로서 인지가 되지 않는 국가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무기와 경제, 그리고 앞으로의 외교를 지원받는 것이다. 중국에 히피가 많지만, 우리가 히피를 미국의 유산으로, 아메리칸 히리티지로 받아들이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우리는 그와 같은, 코로나 바이러스, 개소풍의 끝을 모르는 것이다. 사탄은 중국 무협 영화처럼, 박정희 같은 독재자일 수도 있고, 김일성, 약소하지만 부분 권력적인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거의 모든 제도와, 교육, 역사의 흐름에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함께 한, 가까운 우리 인식의 저편일 수도 있다. 우리의 단계도 그렇게 발전한다. 우리는 박정희나 김일성과는 잘 싸웠다. 부분 권력에는 찍소리를 못하고, 코로나 바이러스에는 굽신거리고 있다. 틈만 나면 메디컬 협박 같은, 코로나 바이러스들도, 많은 사람들의 죽음이, 아무튼 청년 때의 양심이 있는 것이다. 정말 우리는 얼마나 아름다운 음악 크게 틀어놓고, 소풍 가고 싶어하는가? 모든 인턴이나, 전문의들의 꿈이 아닌가? 자동차라는 것이 무엇인가? 눈으로 보는, 도장 색깔, 김마담, 칵테일 빠 같은 것인가? 사람은 그것으로도, 바이러스처럼, 연장할 수가 있다. 우리들의 확장이, 확장의 재미가, 생명 세포를 닮았는지, 암세포나, 바이러스를 닮았는지, 아무도 모른다. 드라마의 제목으로 많이 달아도, 그것도 인식에 관한 바이러스 세포인 것이다. 경사가 있고, 사람들은 씨마네 천국을 당하고 만다. 생각보다 사탄은 신대륙에서 커밍 아웃이 어려웠다. 그래서 호치민에게, 킬링 필드에게, 자금이나 외교를 약속하고, 전쟁을 통한 사람들의 결단과 교육을 꼬드겼던 것이다. 그것을 마다할 만한, 정신의, 동남아 정치인들이 없다. 그렇게 해서 미국 땅에 탄생한 것이, 불후의 빛깔로서의 히피였던 것이다. 그들에게는 반전 매력이 있었다. 한국 군인들은, 대도무문, 아무런 목적이 없는 전쟁을 치러야 했던 것이다. 라이 따이한 정도도, 피눈물 나는 보석이라고 말하면, 어찌하자는 것인가? 아무튼 미국의 복안은, 세계는 가난한 미국 히피보다도 가난하다는 주장을 펼치는 것이다. 히피들은 주장이 있으나, 결국 직업으로서의 사회성이 떨어질 것이 아닌가? 히피가 거의 모든 인간의 속성임에도 불구하고, 무직과 약물이 대표적인 그들 만의 특징이 될 것이다. 히피는 유럽의 음악과, 대중, 그리고 새롭게 시작한 미국의 대중 음악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들의 교육 제도에는, 그와 같은 코드의 진행이 없었기 때문이다. 늘 그렇게, 가곡과 같은 까르보 나라, 그런 두뇌의 흔들림 같은 것을 발사하는 것이었는데, 아무렇게나 말하고, 아무렇게나 좋아하고, 아무렇게나 구어적인 것들을 영원의 약속처럼 단단하게 하는 것을 경험한 적이 없는 것이었다. 과거의 로망스들이 그런 전통이었다고 하나, 유럽, 그렇다고 한다면, 도리어, 까르보 나라, 두뇌 흔들림의 발성보다도, 음악적 본질에 육박한 것이 아니겠는가? 자생하는 풀들처럼, 히피들은, 콩과 샌드위치, 고기 몇 조각을 먹으면서, 자생할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이 그렇게, 돈 몇 푼 쥐고 출발한 우리들의 소풍 마지막 풍경과 일치를 한다. 그러니, 히피는 없는 것이고, 히피는 모든 것인 것이다. 약물과. 무직과 섹스도, 얼마나 많은가? 약물만 빼고. 사람들은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무직과 섹스로써 죽어간다. 죽은 줄 알았는데, 로미오처럼, 줄리엣처럼, 다시 사는 것이다. 죽고자 하니까, 다시 사는 것 같은 기법이 생기는 것이다. 발라드적인 마지막의 시간을 느낀 적이 없는 사람은, 그와 같은 것으로서의 오브제 쁘띠 아, 다시 사는 정신의 높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가 결혼하지 않은 사람과는 말을 나눌 필요가 없다 하는 것처럼, 책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과는 이야기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죽음이라는 것도, 그들은 약속된 친척에게 간 것인 것이다. 이제는, 세상이 종말이 되고, 구조화되어, 단단해지고, 중국이나 킬링 필드의 히피들이, 한류를 매개 삼아, 샴빌라빔, 호쵸호쵸호쵸키, 귀여운 식인종 같은, 우리에게는 좋으나, 관계적으로는 속이 비게 되는, 그렇게 삼육오일, 육체가 오삼불고기가 되어, 미국으로 히피되는 것이 한국 기자에 의해 조사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자는 문제 의식이 없고, 그저 그것의 느낌과, 카메라 앞에서, 진행자에게 하소연하는 것들만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또 누군가 이렇게 저렇게 내려주는 것에, 우르르 몰려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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