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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민중문화이야기

용돈

by 마음대로다 2013. 5. 3.

 

 용돈      

 

 

 

 

 

 

 

 

 

 

 

 

 

 

 

 

 

 

 

 

옛말에 학자는 용돈이라는 게 있다. 나는 그렇게 김지수와 어딘가를 돌아다니고 싶었는지 모른다. 정신분석학에서 죽음본능이라는 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가 관심이 되었던 적이 있다. 따라 떠오르는 것은 실존철학자 하이데거의 죽음으로의 존재이다. 김지수가 실제적 김지수면, 활동 시작 년도가 나의 청소년기와 맞지 않다고 할 것이다. 그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뭐든지 사실을 좋아한다. 거짓은 우리는 왠지 모르게 싫은 것으로 생각하게 되어 있다. 사실과 참이 부딪혀서, 매쏘돌로지컬하게 거짓이 나오는 것이 낫지, 거짓의, 거짓에 의한, 거짓을 위한 데모크라시는 좋지 않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냄새맡는다. 그러나 나는 야한영화 상영하는 극장을 자주 갔다. 그리고 내용은 다국적이었지만, 옹녀와 변강쇠에서 꽂혔고, 임권택의 동학 운동 영화도, 내게는 저기 어딘가에 나의 옹녀가 있을 것이라는 내 식의 가을로가 있었다. 그것은 삼차원. 삼차원 전쟁. 생존인가? 아니면 형이상학적인 것인가? 나의 김지수가 가야금을 타다가, 활을 갑자기 들어서, 내장산에서 '나와 함께 봉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비물질과, 쉐도우 정치 속에서, 어떠한 드라마를 좋아하는지, 더디오에게 받아적게 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발레 교습소를 지날 때, 나의 선험성은 극렬하게 흔들렸다. 여자 친구가 없는 이유를 몰랐다. 주사위 도박을 하는 경우, 종지 안의 주사위가 박살이 나는 장면이 홍콩 영화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밤 깊은 어느 시간에, 옹녀는 대만으로 가서, 거기서 보다 모던하고 선진적이었던 그 시절의 홍콩 배우가 되었을 것이다. 발레 교습소의 침범은, 적나고양에서 드러난다. 홍콩 사람들은 어째서 그렇게 발레 동작 같은 이물질이 들어왔는지, 다만 무협 동작의 아크로바틱한 것의 연속인지, 구분하지 못하고, 누군가는 좋아하고, 누군가는 그저 그런 b급 영화다고 했었다.

 

 

우리는 생각할 수 있다. 그나마, 왕가위 감독이 표현적 발레와 의미적 예술을 잘 표현하였다 하였는데, 그것이 나의 독재에서 기원하는 것이 아닐 확률이 얼마나 되는가?..... 그리고 우리는 거짓의 전제에도 들어갈 필요가 있다. 만일, 어느새 우리의 자연이 되었던, 왕가위 감독 전후의 무협과 발레 심지어는 브레이크 댄스의 중혼 같은 영화의 하늘나라가, 내가 아니었다면 달성되지 않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물질적 지배가 들어찬 지금에 이르러서 보편적인 의미로서의 중국 사람들의 얼굴은 어땠을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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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내게 돈이 많을 때가 있었다. 일이만원. 그때 나는 민화투를 치다가 

丹楓을 든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