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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민중문화이야기

샌프란시스코 구장의 멕시칸 데이를 축하하면서, 식이 넘치는 세상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by 마음대로다 2013. 5. 6.

프란시스코 구장의 멕시칸 데이를 축하하면서, 식이 넘치는 세상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공룡계의 세상에서 사람들이 미국 프로야구를 이야기하지 않고 지내기가 어렵다는 사실에 우리는 충격을 받는다. 그와 같은 나의 말이 사람들에게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캔맥주. 캔맥주. 캔맥주. 캔맥주. 그것은 에일리언 시리즈에서도 드러난다. 뭐 극악한 것을 먹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는, 용의자 x, 미국 프로야구를 저승길의 동반자로 삼았다. 그는 우리보다도 먼저, 미국 문명의 허구를 간파하였고, 인문학적 윤형철조망에 휩싸이지만 않으면 미국처럼 살기 좋은 곳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의 dmz. 캔맥주를 마시고, 매 회마다 마시고, 방이 다섯 개 짜리인데, 하나는 모두 맥주와 안주로 채웠다. 야구선수들은 민중의 알튀세르 자생적인 지식인인지, 아니면 노동운동의 잉여적 프로젝션인지 알지 못한다. 전장에서 죽고, 백학이 되어 돌아온 사람들인지 모른다. 우리는, 그렇게 연대한다. 연대는 영화이다. 무비. 날 무 자에다, 날 비. 우리가 한옥의 처마를 찍고, 그것이 혼다의 날개 문양과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사실을 알아가면서, 우리는 어둠속에 갇혀, 땅을 먹는지, 땅콩을 먹는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생존의 아쏘더싸인 에이스오브베이스의 노래를 타는 것이다. 블로그에 한옥 사진을 찍는 사람들. 그리고 처마 사진을 기가막히게 찍는 사람들을 오프더로드 기록해두어서, 그 사람이 혼다를 방문할 때마다, 좀더 좋은 서비스, 좀더 아는 척, 알게 모르게 할인율을 높이는, 그와 같은 비온드 아쏘더싸인 에이스오브베이스의 세상이 나은 것이다. 한옥 사진을 찍는 사람이, 처마 사진을 귀신처럼 찍는 사람이, 오토바이도 좋아하고, 혼다 오토바이까정 있는데, 가정법, 혹은 까치산, 스스로 아무런 관계나 집착이 없다면, 주변 사람들은 얼마나 슬플 애 애가를 부르겠는가? 여자는 거의 모든 것을 부빌 수 있었다. 식칼이 없다면, 여자 사람은 땅콩만을 먹고자 할 수 있다. 그러나 한옥의 처마는 너무나 아름다운데, 내가 그 사실을 어떻게 아는지, 방송통신 연예가중계를 통해서, 나는 저것이라면 여자들이 부빌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여자에게 가혹한 것인가? 아니면 의사처럼 원소에 관한 한 삶의 그리스 엘레아학파 철학자 같은가? 미국의 전파는 슬픔의 금문교이다. 시카고 뿐 아니라 샌프란시스코도 학자의 신생 독립국이 될 수 있었다. 그것은 티벳의 분리 독립과 별개의 것이다. 보스톤 티파티로부터 촉발된 인문학의 독립선언문은, 계층 갈등 인종 간의 갈등적 통합의 방식으로, 기독교 국가의 살아 있는 모범이 될 수 있을 걸로도 생각되었다. 한 동안의 힛바이피치드볼일 때는 그런 생각이 반미주의자들까지도 갖고 있었다. 레이디호크 같은 것. 그리고 오토바이 무슨 호크 시리즈가 나왔을 때는. 그러나 아니겠지 만들었던 블랙호크다운을 시발로 해서, 에이도스는 그만 얇은 뿌리를 드러내고 만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에 무슨 대학이 있다. 에딘버러. 그것은 영국에 있지 않은가? 핏제랄드. 그것은 소설가가 아닌가? 스튜어트. 그것은 스튜던트 어트? 우리가 엘에이에 무슨 대학이 있는지 모르는 것처럼, 샌프란시스코에 제법 명문 대학이 있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보자. 무엇이 대학을 명문으로 만드는가? 무조건 피를 빠는 강의 하구적 그래비티? 여자들의 빽이 되어주는 국가의 군사력? 보잉칠사칠? 학생들이 담력 시험을 위해서 보는 공포 영화? 데스티니? 그런 말들의 짬뽕? 그것보다는 학자가 공부를 해서, 논문으로 보이지 않는 대상과 회랑들을 만들어, 생각의 연속과 상기를 가져오는 확률과 개별 경험들의 상대적 가치 인정이 점차로 상대적인 것의 상대적인 것으로서의 일반성과 절대성을 획득할 때일 것이다. 지금처럼 건축의 공법이 넉넉하지 않았을 때, 노동자들은 모두 천사들과 같았다. 그리고 그들 노동자들이 하나님의 디자인과 함께 일하면서, 학생들이 그리로 들어찬 것이다.

 

 

 

 

땅콩을 먹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괜히 착한 것 같은 사번 타자. m&A 불특정........

 

 

 

공부를 못하게 막았을까? 범주는 경제 범주나 되고, 미국내의 소수민족을 어쩧게 저쩧게 늘상 민주주의 운동의 날개 정도로 하고, 자기들이 확실하게 부빌 수 없으니 한옥의 날개가 아닌가 착각하는 인식론적 물리학. 공부를 못하게 막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말벗이 없었을 것이고, 야구가 무엇의 속성이었는지, 반대급부가 없는 이상, 앞으로도 영원한 미궁이 될 것이다. 좋은 영화는 반대급부가 생길 확률이 있다. 학교 강의실 내에서 교수와 학생이 야구하는 일은 없으니까. 그것만으로 소나타형식을 필름 찍는 일은 없으니까. 왕의 정신은 극도로 몬로해지고, 아무튼 인류의 정신은 슬픈 피라미드의 양심을 회수하고 있는 셈인 것이다. "슬픈 일이 무엇인가? 호라. 너희를 보라." 좋은 영화가 반대급부를 가능성 만들다가, 부수는 일도 있지 않겠는가? 그것은 마치 공기를 먹는 것처럼, 마음과 지식, 그리고 행동의 단편적 쉐도우. 미국 영화는 그것의 비정상적인 태생으로부터 이것도 또한 영원히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류현진 선수가 질 것 같으니까 보다가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