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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민중문화이야기

우리는 얼마나 슬픈가?

by 마음대로다 2020. 6. 30.

우리는 얼마나 슬픈가?

 

 

 

 

 

 

 

 

원래 세상은 기사와 이적으로 이뤄져 있고, 그것들을 두려워하는 것이 일착이다. 그러나, 사탄이 원하는 그것을 우리가 따를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슬픔이다. 슬픔이라는 한글을 보면, 피라미드가, 그러니까 작은 자갈들이나 돌들이, 빼곡히, 그러나 차근차근 쌓여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슬픔을 그렇게 해석하는 언어가 없다. 영어를 보면, 손에 뭔가를 쥐거나, 한국말을 차용하여, 의인에게 활을 쏘거나 총을 쏘는 것이 연상된다. 아니면 배급받은 곡식이 너무 작거나. 그러나 우리들의 슬픔을 보면, 창고에 곡식이 가득한데, 오직 제도적인 문제 때문에, 그것이 필요한 사람에게 가지 못하는 것이, 그런 뿌띠, 연상이 되는 것이다. 아니면 창고 가득히 배고픔 걱정 없이 곡식이 가득했다가, 그것이 물에 쓸려 내려간 것처럼 하나도 없는 것이 연상이 된다. 창고는 있는 것이고, 다시 열심히 일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슬픔은, 조금은 시기상조이거나, 작가의 음색이거나 하는 것이다. 그리고 슬픔은, 사람들이 달동네에 오래도록 사는 것이 연상이 된다. 슬픔은, 사람들이 그처럼 모나드 안에서, 참다운 부나, 참다운 지식, 참다운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제한되고, 차단되고, 조작된 사회에서 사는 것이 연상이 된다. 코로나 바이러스만 해도 그렇다. 차단된 곳이 너무나 많고, 우리는 어떠한 형사권도 발동하지 못하고, 겨우 내 글에나 생각이 퍼져나가지, 멈춰 있고, 심지어는 의료기관에 대한 불만을 가질 만큼 정신이상의 상태에 던져져 있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아는 몇 개의 요즘 영어, 유행어, 던젼의 뜻이 아닐까 한다. 기사들을 보면 조작들이 많고, 댓글들을 보면, 싸우는 댓글, 선의 댓글, 천사 댓글들도 많으나, 조작의 댓글, 작전의 댓글, 오래된 사탄의 댓글들도 많은 것이다. 사탄의 댓글들을, 빠짐없이 나와 같은 성경학자가 보다 보면, 정말 이와 같은 굴곡은 오래되고, 필연적이며, 사람의 뼈가 안에 있는 것만큼, 이와 같은 반응과 단순, 그리고 생각의 천연덕은, 티칼, 혹은 팔렝케, 밖에 반드시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것에는 생명의 필연도 있고, 운명의 필연, 문학의 필연도 있다. 우리가 좋은 연필을 갖고, 가장 먼저 행복해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연필을 깎고, 그와 같은 저급하고 나쁜 필연에게서 빨리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아서가 아닌가? 물론 그 즉시 벗어날 수는 없다. 우리가 즉시 색연필을 들고, 무엇을 칠할지 몰라서 방황했던 것을, 그와 같은 짧은 내면을 돌아볼 줄 안다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른들의 채색은, 분명 어린아이들의 것과 차이가 있는 것이다. 우리들도 어른들처럼 바깥으로, 채색으로, 자유로, 뛰쳐나갈 수 있을 것 같지만, 서울 그 큰 땅덩어리에서도, 사람들은 가끔 가고자 하는 곳에 가는 것이다. 오히려, 서울 어느 지역보다, 지금은 해외에 가는 것이 쉬울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의 군소지역을 방문하기 좋아했다는 것이, 인류 역사의 크나큰 업적이 되는 것은, 인간의 그와 같은 필연 때문인 것이다. 일본 사람들도 잊지를 못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탄의 계략과 플랜에는 있지 않았던 것이다. 사람은 두려움이 있고, 두려움이 마음 안에, 머릿속에 자리잡기 시작하면, 그 안으로 쏟아지는 물줄기처럼, 바깥은 평평하게 되어 있으나, 표면이 부드럽고, 안으로 갈수록 경사가 급해져서, 오직 티비만 쳐다보고, 기사나 보고, 날씨나 보고, 미국 바이러스 영화나 보면서, 집에서만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삼 년을 지낼 수 있고, 우리들의 삼년상처럼, 십 년을 지낼 수 있고, 강산도 변하고, 자신의 얼굴도 조금 변하고, 칠 년의 일흔 번, 그러니까 사십구 년, 그 안에서 죽음을 충분히 죽을 수 있는 시간을 살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오토바이를 구해서 돌아다녔다. 그리고 학교에서 얻은 지식이지만, 표면적으로 학교에 있지 않은 상태로, 여행과 학습을 동반하여갔다. 처음에는 논어를 읽었고, 나중에는 삼국사기를 읽었다. 내가 오토바이를 타고, 코앞의 아름다운 경치를 돌아다니면, 그것이 대관령과 같은 심리적 거리가 되는 것이다. 그와 같은 압박에서는, 한 걸음조차 힘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토바이를 타고, 엔진 소리, 작지만, 알찬, 눈에 보이지 않는 지역을, 산을 여러 개 넘고, 평생 가본 적 없는 도로를 여러 개 지나, 그랬다는 것은, 처음에는 콜럼버스, 나중에는 필리핀을 사랑한 마젤란 정도는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들의 업적은, 사실 무시하는 편이다. 동시에 그렇지 않으려고 대단히 노력하는 편이고, 나만의 노력도 있지만, 타자들의 노력들도 있어서, 내가 갈 수 없는 지역까지 들어가기도 하였을 것이다. 지리산으로 내리는 태양이, 저녁의 연무에 크기가 세 배 정도 커 보이던 것이, 그렇게 기억에 남아 있다. 갑자기 필름 속이 되는 것 같고, 무대에 있는 것 같고, 추상적인 어느 도시에서, 친구들과 함께, 멋진 음악으로, 질주하는 느낌이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바빌론 유적이나, 페트라, 그리고 남미의 피라미드는 사탄의 것인지, 아니면 유럽의 유민들이 만든 것인지, 아니면 중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의 콜라보인지, 서양과 우리들의 국공 합작인지, 보다 오래된 태공조의 작품인지, 그러니까 사탄을 옹호하고, 변호하며, 사람들이 많이 죽기까지 영원히 우뚝 서 있는 것인지, 아니면, 사탄과 교제하며, 참고, 거기서 버티며, 사람들의 시선을 오직 선을 향해서만 있게끔 하는 것인지, 더더욱 그것도 아니면, 사탄과 싸우기 위해서 하멜의 무리와 함께, 조선 후기 천주교 기독교인들과 함께, 지어진 것인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마음이 사탄으로 향하면, 사탄에 굴복하는 것이고, 마음이 솔방울로 향하면, 손목시계로 향하면, 화장실에서 여자 친구의 핸드백을 들고 있는 것으로 향하면, 그게 무슨 향함이 되겠으나, 우리는 승리하는 것이고, 행복한 것이고, 영화는 늘 거리를 즐겁게 돌아다니는 남녀의 행복에 미치지 못하니까, 팥빙수도 먹고, 만족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고,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리고 사탄의 부지런한 노력 때문에, 먼저의 것으로, 마음의 영토로, 포섭된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리고 범주의 것으로만 보면, 그 모든 범주의 표를 보고서도, 그것을 통과하지 못한 사람이 얼마나, 이 나라에도 많고, 다른 나라는 생각할 수 없이 많겠는가? 메소포타미아의 유적에 있는 사자만 보고서도, 미국의 경찰은, 사탄에게 충성하고자 하고, 그것을 흑인에게 시연해 보이는 것이다. 나는 전쟁 중에, 장군이 여자를 끌고 다니고, 병사들이 다 있는 데서, 그래도 사랑을 나누는, 짐승 같고, 볼썽사나우나, 때로는 우스운, 그것을 그려낸 것이다 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사탄의 마음의 영토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도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것이다. 사탄의 사람들에게는 동물원이 따로 없고, 맹수와 인간들의 식당 같은 것이다. 사탄들이 세상에 피도 많고, 동물들의 고기들도 많아서, 더 이상 그와 같은 사탄적인 일을 벌이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 신비한 것이다. 사탄들도 그 촌음과 같은 모퉁이가 좋은 것이다. 사람을 먹으면, 그의 영혼과 하나가 된다. 그리고 그렇게 믿고, 따르면, 실제로 그와 같은 원시적인 티비 속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의 소고기를 먹으면, 말짱하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저녁에 자주 깨지 않고, 거울을 봐도, 심심하고, 어린아이 같은 얼굴만 보이는 것이다. 어쩌면, 수학적으로 보면, 안사탄의 영혼이 그에게 들어간 것일 수도 있다. 대신에 그가 일을 택하면, 다른 사탄들은 인정을 해주었다. 사탄에게도 직장이 있고, 무대가 있고, 무기가 있으며, 시스템이 있기 때문이다. 사탄에게도 학교가 있고, 제도가 있고, 과학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것이 모두 빠지고, 벌건 대낮에, 세렝게티 같은 평원에서, 그런 같은 곳에서, 인간 사냥을 하다 보면, 굉장히 아름답지 않고, 멋이 없고, 거룩함 같은 것은 하나도 없이, 그런 것은 진짜 맹수들이, 멍청한 얼굴을 한 숫사자나 암사자들이 잘하는 것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처럼 건물들을 만들고, 대신에 우리들처럼 뷰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틈만 나면 모나드를 만들고, 지식 상호 간에는 어떠한 교류가 없으며, 모든 관계에 하나님이 있듯이, 서양 신의 표상을 빌려, 거기에 사탄을 심기에 여념이 없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티비를 밤낮없이 보고도 생각이 없고, 주변에서 애새끼가 되었다가, 나이 먹은 새끼가 되었다가, 변하는 것을 두고서도 별 관심이 없다 보면, 절대 알 수 없는 반지 같은 것이다. 절대반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멍청한 티비 속의 미소 같은 것은, 실제로 천진난만이요, 우리들의 영토가 틀림없는 사실이나, 우리가 그렇게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그렇지 않은 것도 제한된 것이긴 하지만 아주 뚜렷해지는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아름다움과 선을 위해 노력했는데, 영화를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였는데, 사탄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메소포타미아, 수준이 없다는 증거인 것이다. 사탄은 미감을 떨어뜨리고, 식감을 떨어뜨린다. 그들에게 부유함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고, 즐거움을 나누던 사람들이라는 것은, 서바이벌, 칼랜더를 몇 개 버리는 것처럼 버려지는 것인 것이다. 과거가 없고, 과거의 가난했던 기억이 나의 지금의 행복을 자극하지 못한다. 미래도 없다. 우리도 물론, 그와 같은 절대의 촌각 정신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래도 미래는 있고, 잘하면 오토바이를 살 수도 있고, 연예인을 만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옛날에, 중국에 가서, 글을 쓰고, 공리도 만나고, 양자경도 만날 수도 있었다고, 그렇기 위해서, 중국이 뒤늦게 노력했지만, 사탄의 농간으로 시간이 어긋나고 말았다고, 그렇게 말만 해도 즐거우나, 왠지 정말 그런 것 같아서, 사탄은 그렇지 못하는 것이다. 사탄은 악성 댓글 같고, 티칼 같고, 프랑스 파리 같다. 연필을 사랑을 연필로 쓰세요 준비해서, 색연필을 준비해서, 수만 가지 색상의 것으로 준비해서, 그와 같은 운명에 맞서 싸우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머리에 테크노 풍의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서, 하루 종이, 그와 같은 파리들과 싸우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사탄의 영토에 있는 이들인 것이다. 그들을 사랑하고, 참고 인내하며, 그들이 그와 같은 바깥 뼈에 빠진 원인을 분석하고......

 

 

일본의 드라마가, 미국의 영화가, 그와 같은 프랑스 티칼과 같은 존재들에게는 아직도 가능성의 지역인 것이다. 미국의 영화가, 제한된 성격, 기억력, 선의 표현능력을 가진 이들에게는 영원한 대상이, 그러니까 절대로 도달할 수 없는 산성이긴 해도, 미국의 엘리트들이 대학에서 공부해서, 스스로 사탄의 길을 걸어간 만큼, 둘이 서로 만날 수는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사진들이나 청년들을 보면, 그들은 우리가 서양의 예술을 보고 매혹을 느끼는 것처럼, 존재의 위로를 얻는 것이다. 그들은 아무런 논리가 없고, 김여정 같으며, 드라마 끝에 티칼, 혹은 팔렝케 터뜨리기 좋아하고, 한국에서 다시 코로나 바이러스 활동하기 좋아하기 때문이다. 사탄의 그라운드 같은 것이다. 사탄의 펄벅 대지 같은 것이다......

 

 

문제는 기후이다.

 

 

하지원은 마음은 따뜻할 것이다. 드라마를 만드는 것들도, 드라마귀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할 것이다. 우리들의 역사라는 것은 지저분하고, 책임자가 없으며,

 

 

 

 

 

 

세상 어딘가에 막강한 사탄을 믿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사람이지만, 삼십이 넘어가면 짐승인......

 

수만 겹의 빵 속처럼, 마음만은 따뜻한.....

 

 

 

드라마를 만들 때는 다만 중국을 그린 것이다 했을 것이다....... 

그처럼 처음에는 사람이지만

 

사탄이 사탄이 아니고자 하여도

 

이런 재미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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