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를 보면
나는 내가, 세계 최고의, 최고봉, 만화가 이름, 이재학, 만화가 이름, 박봉성, 만화가 이름, 이현세, 고행석, 만화가 이름, 내가 그런 사람들의 소망, 그 소망 그대로 세계 최고의 철학자를 뚜레주르하고, 빵집 이름, 자연스레 세계 최고의 신학자가 된 것이, 신약학자가 된 것이 자랑스럽다. 우리가 잘생긴 남녀를 볼 때 가슴 아픈 이유는, 생긴 것들끼리 어울린다는 미적 판단에서가 아닐까? 우리가 홍콩 여자 배우들을 좋아한 이유는, 장만옥, 종초홍, 그리고 누군가, 우리들 배우가 비슷하게 생겨서였을 것이다. 응원의 최종 항구가, 혹은 버스 정류장이 어디인지는 알 수가 없다. 공각기동대에서도, 범인을 잡고 난 다음에, 나체의 여자 경찰이, 다른 강력한 체격의 남자 경찰과 말한 것을 보면,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알 수 있다. 영화의 가인과 같은 저주의 계보가 액션 활극일 것인데, 무협이나 총격을 곁들이니, 더더욱 범인을 체포할 수가 없었다. 경찰이 체포하면, 내가 체포한 것인가? 자문하게 될 것이고, 성룡이 체포하면, 체포한 것이 아니다 할 것이다. 그것은 무한한 것을 우리에게 남겼고, 마침내 사라지고 말았다. 우리가 장치를 입고, 집이나 나무, 건물들을 뛰어다닌다고 하였지만, 우리가 영화를 볼 때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얼마나 홍콩 사람들이 한국을 응원하였는지 모른다. 그들의 혐중은, 애증의 한 계보였을 것이다. 너무나 불쌍한,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대륙과 민족, 범주의 노예들을 향해서, 그들은 자기들의 족보가, 대만을 가로질러, 행여 한국에 있지 않았을까 했던 것이다. 홍길동이 잘못을 많이 했다. 그것은 가볍게 읽히고, 영원히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한국 문학의 특징은, 끊임없이 연결된다는 사실에 있다. 억지 연결이나, 사탄의 지배가 아니라, 친구에의 기억 같은 것이 말이다. 점심으로 계란볶음밥을, 그 집 어머니가 해주어서 먹고 왔는데, 홍콩을 보면 그 집이, 사람은 바뀌어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홍콩의 기적이, 다만 우연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도 오랫동안 기능을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홍콩이 야구를 못하고, 홍콩이 축구를 못하는 것을 보면, 우리가 대학 입학시험에 짓눌려, 야구도 못하고, 축구도 못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되는데, 우리는 그래서 친구의 나라가 너무나 많은 것이다. 몽고. 몽고도, 한국 축구나 야구를 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중국 사람들도, 낮에는 중국 축구를 보지만, 저녁에는 한국 야구를 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드라마가 아니지 않은가? 홍길동전처럼, 한번 보면 빠져나오지 못하게 된다. 그들은 현재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얼굴을 변검하고는, 현균씨와 만나는 것처럼 연상이 되는 것이다. 비가 개고, 다시금 현대식 달동네의 삼층 사층 건물이, 비건, 다른 울창한 작은 숲들 사이에서 비칠 경우에는, 이번에는 커피나, 맛있는 돈가스를 먹을 수 있는 것이다. 대만이 그렇게 덥다는 사실을 보고 받을 때, 나는 너무나 슬펐다. 홍콩 영화들을 너무 시원한 극장에서 보았던 것인가 싶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책을 포기한다. 책을 포기하는 것은, 어시스트와 같은 것이다. 다른 책을 보는 것이다. 책을 포기하는 것은, 미세한 표기의 흐름에 키가 작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를 포기하는 것이다. 영화를 포기하는 것은, 집에서조차 책을 읽고, 하루 종일 노동하다가, 저녁에 친구와 풋살을 한다는 것과 같은데, 영화를 포기하는 것은 저녁에도 번역일을 하는 등 집에서 투잡을 하는 것과 같은 고통이고, 행복하지 않음 같은 것이다. 그러나 모든 책과 영화는, 항상 대체 작물 같은 것으로서, 의식의 건강함과 생산성을 도모하는 경향이 있다. 당연히 책을 포기하고, 자기에게 더 맞는 책을 고르며, 마침내 고전이라고 분류가 됬던 책들에 소림사 십팔나한 입문해보는 것이다. 나의 남방 불교 친구는, 그렇게 운하가 흐르는 억지 시원함 사이로, 책의 미세한 세포를 단 한 시간이라도 연장하는 사람이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 교과서만 보기에도 벅찬 때에, 누군가 톨스토이의 부활을 읽었다면, 그의 존재성에 나름 눈이 멀지 않았는가? 어째서 그와 같은 감각적 반응이 생겼는지는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괜한 것인가? 자랑의 기가 막힌 한 종류인가? 고전은 기호적으로, 그리고 흑백 사진적인 것일지라도, 분명 가시적인 것으로, 가본 적이 없는 석탑의 단 수를 세게 하기 때문에, 독서 능력에 관한 부러움의 실체를 우리 목에 걸게 하였던 것이다. 좋은 대학이 아니라, 좋은 고등학교에서부터 먼저, 민족 사관, 학교 수업이 끝나고 난 뒤에, 좋은 책의 토론 모임을 갖는다고 하면, 우리는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볼 때마다, 해가 지는 것을 볼 때마다 부러워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더운 여름 날. 근대의 알 수 없는 시간의 시작 속에서. 홍콩의 청년은 우리나라를 보았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역사가, 그렇게 관계적이 되었다는 것은 적잖은 충격이다. 우리가 일본 여자를 좋아했던 것도 비슷한 것이다. 그들은 먼저 머리 모양과 화장법과 패션들을 선도했었다. 우리나라 패션은 원인이 파리에도 있었고, 일본에도 있었다. 일본에서 뭔가가 유행하면, 잡지를 보던 사람들이, 몇 년 지나지 않아 그것을 따라 했던 것이다.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그런 현상이 있었다. 그러니 홍콩이나 다른 남방 불교 사람들보다, 한국을 낮추어 보는 경향이 뜻하지 않게, 생각하면 의외로, 일본 사람들에게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식의 초점에 이르러서는, 다만 그들에게는 노벨 과학상 밖에 존재의 셀 수 있는 대상이 없다는 자의식이 있었다. 그리고 분명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그토록 우리나라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잘난 사람들끼리 교제한다는, 지금 생각하면 조금도 우리 자신에게조차 예상치 못한 모습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영화는 그렇게 발전하지 못한다. 발전하지 못한 상태가 지금과 같은 것이다. 홍콩 영화는 공자 사상을 발전시키지 못했다. 공자의 의식은 아침과 같고, 맑은 정신과 같으며, 남몰래 다녀온 중국 여행과 같다. 그런데, 근대와 현대, 물질 문명의 초고층 빌딩 사이로, 사람들은 눈이 그만 눌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의 잠수에 필사적인 숨구멍을 뚫으려고 했던 것이 아마도, 너무나도 절박한 홍콩 누아르가 아니었나 싶다. 영화인들이 더러운 수법을 쓸 때가 있는데, 그것이 반드시 주례와 관련을 맺는다. 그것이 항상 의외이다. 대신에 녹턴은 기약할 수 없다. 그 비참한 모습을 보고, 관객의 소년이 눈물의 잉크를 모아야 하는 것이지만, 그와 같은 왕씨 성의 학생이 되기에는, 재미로는 보지 않으나, 스타일과 관련해서, 대게가 양씨 성의 경찰이 될 때가 많았다. 사람들은 유이가 생각보다 예쁘다고 그렇게들 민다. 민나. 일본어. 그러나 그것은 현재일 뿐, 예쁜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다. 그렇다면 책을 버려야 하는 것인가? 어떻게 드라마 대본보다 못한 책들도 많고, 그것보다는 반드시 좋은 것들도 많은데, 무엇을 기준으로 책을 버려야 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예쁜 여자 배우와, 영화는 버려야 하는 것인가? 그렇게 하지는 말자고, 시황제가 벌써부터 군인들의 인형을 거기에 만들어 놓지 않았는가? 그것은 우리들의 생각의 형식이고, 몹쓸 습관인 것이지, 빛과 실체의 운동은 될 수 없는 것이다. 더더욱 사회적인 것은 될 수 없는 것이다. 히브리서는 오직 그와 같은 사람에게나 눈물샘을 열어놓고 있다. 히브리서는 그러니까, 우리에게 세상 모든 책들의 계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책들이 하찮거나, 방향이 어둡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히브리서까지 올라오게 된 시간 만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누가 문예비평을 아름답게 하고 싶지 않아서 안하겠는가? 우리나라 방 씨 성의 어느 평론가의 책을 읽으면, 그렇게 정성스럽다. 중심이 없고, 관념이 부들하며, 아무런 목적이 없는 서울 유미주의자 같은 것들도 많지만, 그래도 농활을 가서, 벼베기라도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분명 글에서도 많은 것이다. 대신에 사탄의 형식을 모르고, 그것의 비탄과, 처참의 흐름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누가 고독하게 살고 싶겠는가? 단순하게 말해서, 누가 총각으로 썩어지내고 싶겠는가? 고독하지 않고, 연애도 사랑하면서, 그리고 가족도 일구고 살고 싶은 마음에 어느 정도 공중과 타협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가족주의적인 사람을 우리가 사탄이라고 부르는가? 그것은 아니지 않는가? 누군가 쉐도우 정치라고 하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말의 결계마저도, 내게서나 처음으로 그 레이저 빛이 사람들에게 비치는 것이다. 누가 글을, 선명하며, 사람들을 재미나게 선동하고, 읽고 나면 운동한 것 같고, 다만 읽는 것만으로도 국가가 발전한 것 같고, 목택동이 이름만 걸어놓은 문화혁명을 참으로 한 것 같은, 그런 글을 쓰고 싶지 않겠는가? 자유하면 분방하는 것 같고, 자유하면 방임하는 것 같고, 자유하면 괜히 선정적인 되는 것 같고, 현재를 언급하면 공부해온 과거가 시험에서 탈락할 것 같으니까 언급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이집트의 벽화가, 분명 그런 불분명한 시간에 대한 슬픈 비판을 담은 것 같기는 했다. 그러나, 그것을 자기 가슴에 새기고는, 각성하고, 그렇지 않은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사람은 세상에 별로 없는 것이다. 이집트 사람도 아니고. 처음으로 홍콩 사람들이, 남방 불교의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의 바쁜 현재를 보고서, 그것의 기미를 알아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일본 사람들도. 그들의 현대 철학의 발전이 없었던 것은, 자기들의 부가 공허해지고, 한국과의 거리가 갈수록 줄어들어서 그랬던 것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철학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어린시절에 발표를 하고, 내가 여행을 하고, 내가 친구와 대화를 하면, 그것의 나중 대학교에서의, 동일 좌표의 미래적 표현들은 사라지고 말았던 것이다. 사람들이 사탄의 편에 많이 서게 된 것도, 지나치게 동일한 것들을 피하다 보니까, 너무 늦게, 이제야 발견하게 된, 멜기새댁의 반차와 같은 현상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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