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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이야기

슬픔 절정

by 마음대로다 2020. 8. 23.

 

 

 

피라미드의 홍콩 반환과 슬픔 절정

 

 

 

 

 

 

 

 

 

우리는 트로트 프로그램이 나가수처럼 뭔가 적어도 해줄 줄 알았다. 그것은 내 생각이 아니고, 사람들의 실험정신이 그랬을 것이라는 내 추측이다. 그렇다고 그렇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같다 하는 것보다, 이렇게 내가 직접 그런 생각을 한 것이다 하는 표현이 낫지 않은가? 우리는 모든 문장에서 힘을 얻고, 모든 문장에서, 표현에서 힘을 잃는다. 내가 박완서를 싫어하는 이유는, 공중의 풍선은 좋으나, 그 표현들에서 남자들이 힘을 잃지 않을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로트 프로그램은 우리에게 홍수만을 남기고 사라지고 말았다. 내가 나가수에서 자극을 받고, 부산 여행까지 다녀온 것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그럴 수 있는 것이다. 누군가 죽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의 관계는 오직 나 같은 사람에게서나 발설되는 것일 뿐, 사람들에게는 탑 시크릿, 그러니까 속옷 같은 것인 것이다. 우리는 모두 그와 같은 범주 속에서, 이민 속에서, 내가 좋아했던 사회 선생님 이름이 이민자였고, 내가 조금 좋아했던 탤런트 이름이 이민영, 그런 이민 속에서 살아간다. 그것이 조금, 벌판, 벌교, 황무지와 같은 황산벌, 우금치 전투에서, 순간에서 영원으로 살아갈 것 같기 때문이었다. 내 가난한 나라는, 사탄처럼, 생명의 지속 밖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다. 조금 눈에 힘을 얻어, 분별하면, 그렇지 않은 나라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겠지만, 그래도 그것의 처음 케이크 느낌, 처음 느낌 그대로를 말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가 시원한 냉방에 들어와서, 웃고, 시원하다고 신앙 고백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에 복합적인 근거가 있어서인가? 아니면 내가 단순해서인가? 사람들이 영화를 보면, 그렇게 이민을 결정하였었다. 하루키의 소설만 읽어도, 특별한 정치적 발언이 없는 일본으로 이민을 결정하였었다. 케이조쿠나, 트릭 시리즈만 볼 때에는, 얼마든지 그럴 수 있었다. 그 옛날 할리우드 영화를 볼 때에는, 늘 그렇게 미국으로 이민을 결정하였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주자학의 시대가 아닌가? 부끄럽지만 나의 시대인 것이다. 삼손이. 나의 이름은 삼손인가? 에서인가? 에서는 모퉁이 돌이지만, 그것이 그렇게 브엘세바, 사람들에게 주춧돌이 되고 그렇다. 삼성의 다른 이름은 삼손일 것이다. 중소 규모의 스탠드 회사 이름 중에 삼정이라고 있다. 사람들은 삼손에서 눈이 흐려진다. 예술가는 삼손이다. 사람들의 마음은 솜사탕 같다. 삼손이 사탄과 싸우다 보면, 사람들이 그 옆에서 사탕을 얻기도 하고, 솜사탕을 얻기도 하지만, 전광훈과 같은 솜사탄에 빠지기도 하는 것이다. 너구리가 솜사탕을 얻어서, 씻어 먹으려고 개울물에 담그는데, 금방 사라지는 필름이 있다. 사람들은 그때 조금 두렵거나 놀라곤 했다. 그와 같은 심리적 반응의 내용은 말하지 않기로 하자. 솜사탄은 사탄이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사탄은 실체가 아니고, 오래가지 않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년이 넘도록 사람들을 사로잡는 것이다. 사람들이 근대에 이르러 솜사탕을 개발하고, 아이들과 함께 기쁨을 누리는데, 사탄의 파견자는 도시의 언저리에서, 자기들의 실체가 발각이 되는 것 같아 얼마나 놀랬겠는가? 솜사탕 자전거 근처에도 가지 않았을 것이다. 사탄은 이와 같은 나의 필법이나, 화법, 마법, 표현의 기술에나 그들의 마각을 드러낸다. 잠수함 중에 도산 안창호 호가 있다고 하는데. 호호 아저씨나, 아줌마가 되는 것이다. 도산 안창호의 문장에는 그와 같은 기미가 있었다. 백범 김구는, 바로 솜사탄의 언저리에 있다. 그의 안중근에 관한 표현은 그렇게 슬프고, 훗날의 안두희 같고 그렇다. 누구도, 지금의 어떤 로봇도, 백범 일지 같은 말을 할 수가 없다. 그는 우리나라를 독립시키는 사명을 갖고 태어난 것 같으나, 표현의 대상과, 표현의 시간 속에서, 자기 자신을, 그리고 주변 모든 것을 로봇이나, 미래 도시, 날아다니는 비행기처럼 만드는 것 같았다. 어쩌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집단 무의식의 산물이라는 고백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고백하고, 비슷한 문건을 말하고, 했다면 서로 경중을 나눠가면서, 좋아하고, 염상섭의 삼대처럼 읽었겠으나, 우리 필순이, 우리 필순이 하면서, 도저히 나와 같은 인간은 그와 같은 인공기를 읽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구약의 어느 예언서도, 복음서 다음에 창작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름이 갑자기 생각나지 않는다. 그의 글에는,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이 담겨져 있다. 복음서가 하늘에서 떨어졌다. 사람들은 책을 읽지 못하기 때문에, 누군가 공동으로 읽고자 하고, 교회처럼 공간을 구하고, 사람들도 이해할 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면 좋겠으나, 낯설고, 인명과 지명이 맞지 않고, 요한이라는 이름 자체가 이스라엘에는 없고, 그들의 과거 역사와도 다른 것이다. 그래서 살아남았다면, 그래도, 그것은 문장이 진출하는, 진심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승리와 같고, 그것은 이해와 같으며, 사랑과 같고, 눈이 밝아지는 것과 같고, 보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관계가 중요하며, 그것으로 다시 보면, 자기들에 관한 이야기가 맞는 것이 되는 사태였을 것이다. 그런데 산헤드린 같은 사람들이 읽기에, 복음서를 함께 읽고는, 구약의 어떤 제사장 권력자들, 제사장이 정확히 서기관과, 세리들, 관료들, 외국의 백부장들, 그것들과 어떤 차이점도 가지지 못해서, 좋은 자리에 앉아서, 무슨 말을 하면, 그만한 권한이 있는 노마드 수준이었기 때문에, 자기들이 예수를 박해하고, 죽이기를 결심한 것을 두고, 그렇게 두렵고, 떨리고, 도리어 사람들이 자기들을 죽이지나 않을까 걱정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 시간이 조금 지나, 마음이 선선해지는 새벽에 이르러서는, 금방 에스더처럼, 선인을 만나 죽게 된다 하면, 그를 죽이지 않고, 자기가 죽어야 한다면, 죽을 것이다 결심하였다고 한다. 그와 같은 기도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그러니 우리는 스토리에서, 반드시 의식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번제나 화목제의 세리모니 의식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콘셔스니스의 의식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도 사탄의 그림자는 남는다. 결국에는, 창작품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다. 당연한, 과학적인 추측이다.

 

 

우리가 트론이라는 미국 영화를 볼 때, 전부의 내용을 기억할 것이 아니라, 그것의 몇 개의 요소, 요소수, 그리고 의식을 놓고 볼 때, 우리가 먼저 슬픔에 휩싸이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예일이나 할버드 대학에 들어갈 수가 없어서가 아닌가? 우리 인간에게는, 그와 같은 높이와 가능성은 있는 것이다. 바라보고, 적어도 향기는 맡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삼성을 놓고는, 트리비얼하다든지, 트라이플링이라고 하지는 않아야 하는 것이다. 만만한 나무나 벤다든지, 아이빌리브 아이캔플라이 하는 것처럼, 중언부언하는 시간에 빠지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책을 읽을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공기처럼 숨을 쉬는 단어나, 언어를, 그렇게 책처럼 만들면 되지 않겠는가 할 것이다. 트라이엄프라는 좋은 단어도 있지만, 윌럼 대포우 하는 것처럼, 그것은 도리어 자기들 패배의 각인일 수 있는 것이다. 처음도 지고, 나중도 지며, 세 번째 질 때는 원래 사소한 것이다고 하는 것이다. 네 번째 질 때는, 정신이 나가는 것이다. 니가 졌다고. 내가 졌다고. 네가 졌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원래 모든 예술은 질투에서 나오고, 군대에서 상당 부분 단련되며, 경쟁심이 그렇게 훗날에는 마을의 화해와 풍요를 가져온다고, 그러나 사탄에게 조종을 당하면, 그것을 카비넌트, 약속받지 못하는 것이다.

 

 

외국 사람들이 자기들 아카데미에 있다가, 이타카, 아테네, 짤쯔부르크, 벌린, 더블린에 있다가, 동양의 시안에도 있고, 대만은 너무 덥고, 홍콩 마카오도 너무 밀크티, 덥고, 교토는 좋고, 오사카는 그렇고, 공부하는 사람이 없고, 그러다가 여수에 한번 발을 디뎌보는 것이다. 거기도 그냥 평범하고, 바다 보이는 언덕 같고. 여수 웅천. 그리고 마산, 부산, 경주. 그렇게 다 한 번씩 있어 보는 것이다. 서울은 그렇게 강이 넓지 않은가? 사람들은 이것이 강인지, 혹은 바다인지 몰랐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고속으로 자동차를 옆으로 타고 가서 그렇지, 옛날처럼 천천히 걷고, 걷다가 쉬고, 물에 들어가서 바라보다 보면, 햇빛이 들고, 공동경비구역, 하나의 영원 같았을 것이다. 그리고 평안 감사도 싫다 하면, 마다했을 것이다. 금강산도, 관동 팔경도, 거기서부터는 다만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세계적인 정신은 특별함 부러움이나 소외됨, 좋은 대학에 들어가지 못함에 대한, 한국식 정서의 고유한 한 같은 것이 없었을 것이다. 옛날부터, 고려와 조선이 하나로 있어서, 사람들은 웃음의 포인트를 찾지 못했을 것이나, 삼손이 스핑크스의 유명한 퀴즈처럼, 막대기로 길을 걷는 노년을 뜻하는지, 아니면 정력이 풍부한 젊은 사람을 뜻하는지, 자기들끼리 외국어로 묻고, 웃고, 묻고 따지지도 않고 했을 것이다. 우리는 그처럼 블레셋에게서 오랫동안 방문을 받고, 동시에 무시를 받고, 잘해주면 또한 그만한 인사를 받아야 하는데, 오히려 조롱을 받았던 이력이 있었던 것이다. 사탄은 사람들의 생각과 언어, 습관과 태도, 생활과 기억의 모든 쌓이는 벽돌처럼 만들어지는 것이다. 갑자기 활화산처럼, 나는 사탄, 하고 피어오르는 것도 있지만, 그러다가 사라진다면 오히려 우리에게는 땡큐이지 않겠는가? 사탄은 실체가 없으나, 그래서 실체를 가지려고 우리보다 노력하고, 하루하루, 데이바이 데이, 어느 듀엣 가수의 노래처럼 하다 보면, 반드시 실체를 갖게 되는 것이다. 우리도 걷다 보면 실체가 없다. 쉴 때에도 실체가 없다. 하는 일도 막연해진다. 호모 사피엔스. 인간은 태초부터 모호한 것인 것이다. 사탄은 지식에 대한 호기심이 많으나, 전 세계 사람들을 방문해서는, 저녁에는 그들에게 절을 받았을 것이다. 높은 산, 신기한 돌, 천 년 전부터 있어온 알 수 없는 석불이나 조각상으로는, 저녁에 운명의 문으로 여겨서, 함께 죽고자 종용하였을 것이다. 물론, 그들은 살아남는 기상천외한 작전. 오직 한국만은 진짜 지식이 많았던 것이다. 남자가 체력이 좋은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으니, 삼손도 지나치게 재치가 많았던 것이다. 그냥 헬스 클럽 다니고, 밭일을 많이 해서 그렇다고 해야 하는데, 호응을 해주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머리카락에서 나온다고, 거짓말을 했으나, 저녁에 물 한 잔 마셨는데, 머리카락이 잘려 있고, 힘도 빠져 있는 것이다. 재밌는 것은, 다다음 날에는, 지식도, 힘도 원상회복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로 인해서,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들 사람들에게 자기를 주제로 삼아 무슨 말을 하는지를, 연자 맷돌을 돌리듯이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이다. 얼마나 슬픈가? 사람들은? 물론 국민성이 훌륭하여서, 다른 민무늬 사람들처럼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나, 그래도, 그들이 사탄 최강자들이었으니 만큼, 안 당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여름이 덮고, 사람들의 후덕한 인격이 한 번 불만을 가지지 않다가, 한 번 불만을 토하니, 정말 신경만 날카로워지고, 더 워, 해볼 만한 대상이나 인격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는 가을이 되었다.

 

 

마치 삼손이 천고마비처럼 거대해져서, 게르만의 신화처럼, 기후와 온도, 습도, 햇빛의 바퀴를 굴려서, 사람들의 마음에, 지식과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충만케 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산의 거대한 바위를 향해, 자기들끼리만 모여 죽었으나, 다시 사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표현이, 피식피식 웃으면서 말을 거는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고, 야구장이나 축구장, 경기장의 기둥을 삼손이 무너뜨렸다 했던 것이다.....

 

 

그와 같은 역사적 증거는 마땅히 찾을 수가 없다.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할 수가 없다. 그러나 비단, 고인돌, 우리들 개인에 한정해서는 항상 분명한 것이다. 지금은 사탄이 실세인 것이고, 그것이 아닌 것은, 한국어는, 원인이자 증거는, 우리들의 은밀한 경험이자 마음 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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