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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이야기

어떤 한 인간을 상상할 수 있다.

by 마음대로다 2020. 7. 11.

어떤 한 인간을 상상할 수 있다.

 

 

 

 

 

 

 

 

나는 사도바울의 말처럼 날마다 죽지만, 그래도 세상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이 날마다 죽지 않는 것을 보면, 그렇지 않은 나의 형상을 하늘로 쏘아볼 수 있을 것이다. 문단에도 등단하고, 사람들로부터 사랑자라고 인정도 얻고. 방송에서 진행자가 날더러, 나는 사랑자라고 일어서서, 손가락질하면서, 떠들고, 하니까 사람들이 좋아하고. 원래 다른 프로그램을 위해 준비 중이던 꽃가루가, 사람들이 워낙에 웃고, 진동하여서, 마치 삼국유사 시대의 이차돈처럼 하늘에서 꽃비가 쏟아지는 것이다. 그러나 금세 관심은 가라앉고, 사람들은 다만 그것을 기억으로만 갖고 있는 것이다. 기억은, 기역. 니은 디귿 미음 얼마나 다음의 것이 많은가? 사람들이 살아있는 것 같아도, 성경 말씀처럼, 살아있으나 죽은 이유는, 바로 그 맨 처음의 기억이 없어서일 것이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수많은 구해줘 홈즈의 프로그램 중에서, 그 중에 하나의 집에서, 워낙에 많이 방영해서 그중에 무엇일까? 내가 상상하지만, 내가 궁금한 것으로다가, 아무튼 걸어 나오는 것이다. 친구가 저녁에 모임이 있다는 것이다. 서울은 그러하다. 서울은 불쌍하고, 가까운 시장을 마계도니아 돌 수도 있고, 너무 피곤해서, 오직 다니는 길만 블레이드 러너처럼 다닐 수 있다. 세상의 문학은, 성경의 불완전성 때문에, 문학도 또한 불완전한 지디씨 아엠에프 어떤 게놈 프로젝트 같은 것을 갖는다. 데오드란트. 문학을 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다. 아픈 사람이 있으면, 의사가 되어야지, 문학가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어떤 자격을, 하늘이 내려서 갖추고, 그런 사람이 글을 쓴다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맨 처음에, 그 기나긴 줄에서 우리는 빠져나오고 마는 것이다. 내가 이와 같은 세기말의 수필을 쓸 수 있는 자격이 어디에서 유래하는가? 그것은 하늘이고, 그것은 기억이다. 그러니까 그 둘이 합쳐 기역이 되는 것이다. 나는 티비의 세트를, 연예인을, 아름다운 옷을, 얼마든지 언급할 수가 있다. 그것이 글에 지장을 준다고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지장을 주는데, 그것을 보살하는 것인 것이다. 병살 플레이를 한다면서, 일루로 자동 고의사구를 보내는 것이 있지 않은가? 얼마나 지장인가? 그러나, 우리가 병살을 잘하면, 플레이, 그것이 도리어 득이 되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다. 수필에서, 차원을 엄격히 다루지 않으면, 우리들의 난삽한 상상이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리고 그 수필은, 겨울날의 항아리처럼, 물이 얼어 깨질 수 있는 것이다. 추적추적, 추적자처럼 내리는 서울 거리를, 사람들이 사랑자라고 수군거리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가로질러 친구가 모임이 있다고 하는 곳을 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때, 유키 구라모토의 손녀가 지나는 것이다. 그는 아름다운 여자와 결혼했고, 그의 아들은 또한 아름다운 여자와 결혼했다. 그의 손녀가 하필 나의 서울 거리를 걷는 이유를 우리는 알지 못하겠는 것이다. 그러나 서로 눈이 마주친다. 유명인들끼리는 아무래도 만날 확률이 높을 것 같다. 우리가 유명인을 가리켜, 그들이 불명한 지, 아니면 밝고 환한 지, 판단할 근거가 없다. 그리고 유키 구라모토의 손녀가, 차원의 번잡한 조건 때문에, 그의 외고조 할머니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만큼 중요치 않다는 것이다. 오지 인간이 선하고, 능력이 있고, 노력하는 인간인지가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명자가 부모님이면, 자식들은 소용돌이 속을 살아갈 확률이 높다. 소용돌이 속에서, 훌륭한 자식이 이차대전처럼 나올 확률도 없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부모와 자식 관계가, 예술적으로 이어진 사례가, 지나치게 우리 인간의 지구에는 없다 싶다. 지나치게 없어서, 아무래도 코로나 바이러스를 발동시켜서, 의심해볼 만 한 것이다. 세상의 그와 같은 모든 의심을, 우리 코로나 바이러스가 가지고 가는 것 같다. 그와 같은 오케스트랄한, 오스트랄로, 진행을 그려보는 사람은 세상에 몇 명 있지 않을 것이다. 아무래도 의료진은, 너무나 힘든 여정 때문에, 점점 지구와 바위가 되어갈 것 같다. 그런데 이와 같은 기가 막힌 비행기가, 우리들의 코로나 바이러스 정국에 있다는 것을, 어느 누가 의심하고, 발견하고, 놀라워하겠는가? 우리 엔니오도 그렇다. 좋은 음악들을 많이 만들면, 그것은 어쩔 수 없이 사탄의 시녀가 된다. 아무런 판단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그와 같은 음악적 차양 때문에, 사람들의 디스커버리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문학이 음악적으로 진행할 수 있고, 우리는 그것을 역겹다고 생각할 수가 없는 것이다. 좋은 음악을 듣는데, 어째서 역겹다는 것인가? 우리들의 지능 알파가, 우리들이 좋은 음악을 듣는 동시에, 생겼다가, 생긴 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사라져서인가? 좋은 음악이 날개 달린 말이 되면, 그것에 올라탈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러하다. 우리들이 그렇게 좋아했던, 체험 삶의 현장이라는 프로그램에서, 하루 일한 돈을 그렇게 날개 달린 말을 타고, 올라서, 높은 곳의 함에 집어넣듯이, 그러한 것이다. 음악은, 그것의 나무적인 인상으로서의 옹가꾸는, 그렇게 세계 사탄들에게 주소지 폭로의 화살이 되었다. 우리가 음악을 가리켜 음악이라고 부르니, 클래식 음악이 육이오 전쟁과 더불어 우리나라를 침범한 것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북한은, 사탄의 모든 범주에서 벗어난 국가요, 일본처럼 정보를 꾸준히 제공해주는 그나마 뱅크 국가도 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이 모든 함수와 범주, 그것들의 오래된 속성의 간계를 뛰어넘고, 내가 찬란한 문학을 달성하고, 사람들이 기회는 이때다 싶게, 모든 지식들을 사람들에게 푸는 것은, 어쩌면 나도 제어하지 못하는 속도의 결과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스라엘 사람이요, 그것이 아니라, 하도 그런 말을 귀에 박히도록 들어서, 왠지 따라하고 싶은, 오직 한국에서만 자랐으나, 서양 철학을 좋아하지만, 철학적 진행이라는 것이 그들 철학에는 근본적으로 되어 있지 않음을 발견한 유일한 사람일 것이다. 요약을 하면, 우리가 머리가 깨질 것 같은 형식적 발견을 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늘 그렇게, 사람들은 겉멋만 취해 공부를 하니, 어려서부터, 연애로써 시간을 버무리고, 음악적으로 논문의 처음과 끝을 채우고 나면, 그런 피라미드의 계단이 있다는 것을, 시지푸스의 신화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주자를 괴롭히고, 그 괴롭히는 수학적 함수 끝에, 주자가 글을 쓴다고 믿는 새로운 신화는 어떻게 그렇다면 처리할 수 있겠는가? 사람들이 의문을 제시할 수 있다. 그것은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성경은 부단히 그와 같은 마지막에 이른 사람을 위로하고 있다. 해결이 되지 않으면, 생각을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얼마나 자식들이 부모님들을 괴롭히면서, 다이버의 등에 올라탄 문어처럼, 따끈한 필름을 인용하자면 그러하다, 자라고, 사랑이라고 여기고, 그나마 세상을 향해서는 그와 같은 가정을 피난처로 여기는가? 주자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기둥이 하늘까지 닿아있다면, 생명의 기둥도 높이가 못지않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 제시할 수 있는 영화적인 해법은 이것이다. 사람들이 영화를 해법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고, 다만 위로와 감동, 삶의 지혜 같은 것을 지나쳐, 자기 정치적인 측면의 형식을 갖는 것처럼도 보인다. 주자를 가리켜, 고통의 피할 수 없는 공간이라고 여기면, 당연히 주변의 존재자들은 그와 같은 공간에, 비슷한, 자주 가게 되어 있는 것이다. 어째서 그런지는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주자가 고통의 인풋으로, 글의 아웃풋을 담당한다고 하면, 존재자의 지위 또한 그와 같은 조건으로 가득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의 천하대장군의 극치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둘은 우리에게 결혼 관계처럼 서 있지만, 천하대장군은 지하여장군을 만난 적이 없다. 존재자가 지옥으로 안내를 받아, 다이아몬드를 여장군 신체 어딘가에 넣으면, 팔과 손이 인형 뽑기처럼 움직이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 살았지만, 죽어있는. 그와 같은 존재가 있다 없다 하는 것은, 존재론, 해묵은 것이다. 지상여장군이라면 사람들은 둘이 결혼했나부다 하지만, 지하여장군이라고 하니, 그들이 어딨는지를 상상할 수가 없는 것이다. 서양은 합리적 사유가 발달하였고, 그래서 생각이 다른 생각들을 확보하고, 정리하여서, 코로나 바이러스를 발견하여서, 독성과 더욱 독성 같은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별로 독성, 안 독성, 우리가 알지 못하지만 그러나 티비에 등장할 수도 없는 영향력의 바이러스를 우리에게 알려줄 법 한데, 한번 티비를 타고나니, 마징가 제트가 상대했던 헬 박사의 기계수들처럼, 변이가 갈수록 늘고, 뭔가가 빨라지고, 내 영어 실력이 느는 것처럼, 그렇다는 보고만 있는 것이다. 바이러스가 그렇게, 인간의 공고한 정신처럼, 있는 자리에서도 완벽한 교육이 있고, 과도하게 움직이고, 그래서 단단한 것에 죽음의 위협을 받아도, 그것의 정신을 꺾을 수 없는 것이었으면, 성경의 말씀이 다윗 같고,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후손이라고 우리가 고백하는 것처럼, 어째서 지구를 태초에 점령하지 않았을까 싶다. 인간이 정신을 일구고, 도시를 그나마 비슷하게 만들고 나니까, 뒤늦게 바이러스가 점령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들의 정신은 갈 곳이 없다. 우리들의 역사가 우리들의 한국어 정신에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어쩔 수 없이 바보 연기를 해야 했고, 우리들의 삶은,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다만 아름다운 문화로만 여기고, 지하여장군처럼 죽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주변의 존재자들은 나와 같은 천하대장군도 연기하지만, 누군가로부터 매를 맞아, 겨우 팔과 다리를 움직이는, 알 수 없는 고대 문자를 끊임없이 나열하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지하여장군도 연기해야 하는 것이다. 천하대장군을 때리는 방법은 오직 메스미디어 밖에 없다. 그것은 고통스러운 것인데, 주변 사람들도 놀라, 학마을 사람들, 학을 떼게 되는 것이다. 공부를 안하게 되었다는 뜻인 것 같다.

 

 

서양이 그렇게 교육이 저렴했었다. 미국은 비싸기로 악명이 높았지만, 프랑스와 독일은 하늘 아래 인간 제도의 본이 되었었다. 그리고 서양의 의료 기술은, 허준처럼, 그렇게 효과가 있었고, 사람들에게 아스피린 같은 것이 되었었다. 진통 효과도 있고, 두통이 사라지는. 어린아이가 어른들과 다니다 보면, 체력이 감당할 수 없어서, 자주 온몸에 열이 끓게 되는데, 나도 그렇지만, 전후의 아이들이 아스피린 같은 것을 먹고 다시금 무생물로 돌아가지 않을 것 같은 안도현의 한숨을 쉬곤 하였었다. 비행기를 타고 미국을 가고, 독일을 가고, 바이엘 사를 가야지만, 내가 그들을 다녀왔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언젠가부터 미국이 의료제도가 좋지 않기로 악명이 높았었다. 그것은 우리나라가, 중국이, 경제력이 매우 강력해지고, 학문적이고, 문화적인, 영화적인 능력도 매우 강력해진 것과 동시동작적이었던 것 같다. 바이러스가 다만 바이러스에 불과하고, 악성인 것은 전염력이 약한 대신에, 치사율이 높은 것 밖에 없던 시절이 아닌가 한다. 하루 종일, 일 년 열두 달, 사람들을 치료도 하고, 그 사람을 불러 다시금 재발시키고, 어처구니가 없는, 레 피타 티브 컴펄젼, 하도 그렇게 들들 볶으니, 더하는 것으로서의 다음 숫자가 아니라, 제곱근의 다음 숫자를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좀비는 그와 같은, 그들 문명에 대해 자신이 없고, 재래식 전쟁으로는, 서로가 연락을 주고받기가 어려운 경우에는, 말이 통하지 않아서 서로 죽고 죽일 수 있다는 경험들의, 존 로크, 뚜렷한 엑스 파일 속에서, 그리고 어렵고 난해한 말들이 가득한 라팔 전투기로는, 차라리 그들끼리는 한국어를 쓰는 것이 낫겠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주장의 실제 가능성 속에서는, 전쟁의 섹스화, 전쟁의 좀비화, 영화, 재밌는, 청소년, 전쟁의 코로나 바이러스화가 낫겠다는 어록이 분명 어딘가에는 있을 것인 것이다. 우리가 이미 확보했을 수도 있고, 천재와 같은 그들 심리전 장교들은, 일주일 동안을 웃고, 일주일 동안을, 한류가 색계 최고라는 뜻하지 않는 우월감을 가졌을 것이다. 좋은 영화를 만들면, 한국 청소년들이나 배가 부르고, 좋은 음악을 만들면, 한국 청소년들이나 그것으로 공부도 하고, 쉬고, 대학 논문도 쓰면서 즐기는 것이다. 어쩌면 보이지 않는 내면의 톱니바퀴가 맞아서, 그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일 년을, 십 년을, 그렇게 몇십 년을 전염력도 높고, 독성도 강한, 에이즈는 섹스를 해야 하니까, 그런 것이 없어도, 그것의 문법이 지금과 그렇게 정확히 들어맞는데, 이제는 접촉이 없어도 전염이 되는, 바이러스를 개발해야 했던 것이다. 한국 학생들이 셰익스피어를 잘 알고, 한국 학생들이 독일 철학의 논문을 쓸 줄 알고, 그것을 마무리 짓는다고 하는데, 미국은 먹고살 길이, 지식과 경제의 형이상학적 구조에서는, 도모지, 그런 형벌이 있었다고 한다, 메디칼 드라마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드라마 안에서나, 아무렇게나 이상한 말을 해도 알아듣는 것처럼 연기를 하지, 실생활에서는 얼마나 또박또박 서로 말하겠는가? 단문이나, 단어를 갖고 말하겠는가?

 

 

서양은 사탄의 식민지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일본이 문명국가이고, 조선이 식민지의 운명을 지닌 국가라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식민지, 식민지 하다가, 무슨 노래 가사처럼, 결국 그 모든 불필요한 무게를 뒤집어 쓴 나라가 일본이 아닌가? 질투하고, 따라 하고, 원천 기술이 없고, 따라 하고, 경제적인 관심에 솔직하지 못하고, 관료적이며, 수구디아인, 딸을 팔고, 아들을 팔고, 아들 딸을 팔아서 공장을 만들고, 머리카락을 팔고, 그렇게 셀 수 없는. 서양의 깨끗한 코로나 바이러스에 눈이 머는. 다시 말하자면, 그리고 아주 단순하게 말하면, 일본은 인간 존재의 체계 속에서, 소설 제목 같은, 일도 못하는 단계에 집착하고, 그에 대한 지식을 확보하려고 했으나, 그것이 그 즉시 사람들 모두에게 바이러스적인 영향력을 가진다는 것을 간과했던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라고 전 세계 언론에서 명명하면, 방사능에 고통스러운 지역도 있고 해서, 적어도 일본 바이러스 정도는 될 것이라고 여겼지만.......

 

 

 

사람들은 입이 막혀 있다.

 

 

뭘 먹으려고 할 때에나, 징그럽게 입이 찢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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