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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이야기

꽃보다 화성이란 말이 있다.

by 마음대로다 2020. 4. 15.

꽃보다 화성이란 말이 있다.

 

 



 

 

 

 


 

정작 나이가 들어, 직장이 확정되면, 그 사람은 아무래도, 적막한 저녁에, 홀로 잠에서 깨어, 숲세권인 거실의 문을 열고, 공중의 나무들을 바라다 볼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꿈에도 그리는, 유토피아인 것이다. . 책을 읽으면 되지? 책을 많이 사놓으면 되지? 그것은 우리가 순천 드라마 세트장에서, 생각이 트인 친구와 말을 오래도록 나누는 것이, 별 재미 없는 뉴욕 대학에서 사진이나 미학을 공부하는 것보다 나은 이치를 모르는 것이다. 뉴욕 대학에서 우리가 한국 엿을 우연히 구해, 화성의 아노말리들처럼, 맛있게 먹는 것이 그래도 훌륭한 모험인 것 같이, 그냥 직장인이 필사적으로 몇 권 책을, 비싼 술들과 나란히 두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생각보다 빨리, 그러니까 발리, 멈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보다 생각에서 자기가 있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며칠 전의 칠궁 사건처럼, 그렇게 프로그램이 칠궁으로 떨어질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그래서 우리가 생각하기에, 가장 우리의 뇌가, 우리의 내면이, 라면이, 우리의 마음의 빛이 환할 때가, 대학의 거의 모든 학과가 나의 선택의 대상이 되는 때가 아닌가 한다. 그와 같은 절대의 대학이 있다면, 우리는 늘 행복하고, 우리는 늘 항복할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빛나는 고등학생이 우리 주위에 있을 것 같아도, 대한제국은 커녕, 프랑스의 절대 왕정 시기의 황태자와 같은 사람이 있을 것 같아도, 그때부터 벌써, 화성의 아노말리들처럼, 단순해진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어지러이 복잡하다는 것은 가치가 될 수 없다. 가치가 있는데, 그것이 저기에 서 있고, 움직이고, 버스 타고, 수업 시간에 발표하고 하는데, 오늘 며칠이지? 이십육일이요, 삼십이번 읽어봐, 그때 시인이 되어서, 시인이 될 것 같은 사람이, 여학생을 몇 명 울리고, 그와 같은 연개소문, 참 좋은 소문, 내일이면 마의태자가 되어서, 숲으로 사라지고, 굴을 파고, 거기서 라디오를 듣고, 잘 마른 풀에 누워서, 잠을 자다가, 아침에 에녹처럼 세상을 뜰 것 같은, 절대의 자유, 행복, 윤동주처럼 시를 남길 것 같은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이 시를 읽다 보면, 근처에 있는 우리들도 행복하고, 항복했던 것이다. 그가 단순한 아벨을 벗어나, 그래도 사회학과를 지망한다고 하면, 우리는 아무런 지시 대상과 단어의 연결을 알지 못해도, 빛처럼 아름다운 학생의 길을 상상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회학과를 간다 했다가, 금세, 불교학과를 간다해도, 아직은 그때가, 거의 모든 관념이 살아서, 풀잎처럼 살아서, 열매를 기다릴 것 같으니까, 사람들과 싸우지 않고, 배반자의 세상을 우리가 알지 못하고, 아직은 스핑크스의 가장 좋은 얼굴을 우리가 알고 있을 때이니까, 행여 야수가 발견이 되면, 북청사자 놀이처럼, 흥겹게 놀 수가 있었던 것이다. 뭘 먹어도 맛있고, 멀더, 뭘 먹지 못해도 맛이 있었다. 음악이 있어도 좋았고, 음악이 있는 중에, 세상 여자들의 수다보다 아름다운, 성리학적 위계에 따르면, 원래는 훌륭한 누나나, 여인, 연상의, 아니면 작고 귀여운 여학생이어야 하는데, 우리의 문화가, 그들을 그렇게 성숙시키지 못하고, 용감하게 하지 못하니까, 결국은 한국의 큐브 조립 세계 일등처럼, 라디오의 디제이들이 그런 역할을 했던 것이다. 선생과 디제이가 구분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것을 구분할 줄 알았던 학생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라디오가 켜고 싶었다. 우리가 이동식 라디오를, 친구에게서 발견하거나, 나도 마침내 갖게 되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공부할 때는 들을 수 없으니까, 교회에서 집으로 갈 때, 버스에 탔을 때, 그렇게 듣곤 했었다. 여자는 이미 천녀유혼이 되고 말았지만, 누가 여자는 시험에서 빵점을 맞아도 된다 했는가? 누가 여자는 클래식 음악을 듣지 않아도 된다 했는가? 누가 여자는 읽지 못할 철학책일지언정, 그래도 관념의 비행을 시도했던 기억이 평생을 갈 것인데, 그런 책을 구입하지 않아도 된다 했는가? 나는 내 여자친구가 잡지를 사서, 그것을 읽은 내용을 내게 말해주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부모가 처음으로, 아이가 독서와 그것을 상기하는 말을 한다는 것에, 그 첫걸음에 기뻐하는 것이 온당한 일이 아닌가? 하지만 어찌 남자가 부모인가? 내 여자친구는 핌코를 사고자 했었다. 그런 카세트가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티비와 드라마, 그리고 라디오는 우리에게 정작 무엇이었는가? 결국은 생태계 전쟁의, 터미네이터 제네시스, 전쟁의 서막을 알린 것이 아니었는가? 어째서 세상에는 민주주의가 있고, 어째서 세상에는 신학과가 있어서, 사람을 외롭게 하는지 모르는 것이다. 그렇게 내가, 이런저런 작은 영화관에서, 동서양을 구분하지 않고, 야한 영화를 보았던 것이 업적인 것처럼 느껴진다. 사람은 걷거나, 타거나, 미끄러지는 것이 아니라, 붙어있는 것이다. 우리는 마치 전기처럼, 우리의 형태만을 유지한 채, 그 붙어있는 모나드들을 지나는 것이다. 그와 같은 이유 때문에, 내가 한 때 좋아했던 여배우의 영화 한 장면처럼, 모나드들의 원래는 없는 창을 지나게 되는 것이다. 내가 광주에서, 화성으로, 그러니까 한신대학교로 갈 수 있었던 것도, 광주에서 드디어 더 이상 만날 여학생이 없어서 간 것일 수 있는 것이다. 서울은 넓게 느껴졌다. 강원도에서는 그렇게 마음이 강원도 감자 같을 수 없었다. 더 이상 꾸밀 수 없고, 꾸미는 것은 자연정신이나, 군인정신에서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나, 꾸미지 않으면, 멀리 서 있으면, 저게 남잔지, 여잔지, 누가 구분하겠는가? 그렇게 내게는, 전남과, 서울, 경기, 그리고 강원도 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은 영화들을 볼 때마다, 사람이 사랑을 못해서 괴물이 되거나, 귀신이 되는, 매우 슬픈 영화에서 그나마 사람들이 구원이 되는 것 같은 기쁨을 느꼈다. 하지만 부정청탁에 관한 출발은, 그것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 맨 처음이 조금도 삭감이 되지 않고, 화성의 이런저런 유물들처럼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되는 것이다. 남자들은 문학을 업수이 여겼다. 조금 자기들에게 과학적이고 체력적인 능력이 있어서인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다들 그것이 미치지 못하고, 자랑만 늘어놓는 것 같은데, 그것을 지적할 수 있는 다른 남자들이나, 여자들이 있을 수가 없었다. 종두득두. 그러니까 끊임없이 득두를 낳는 것이다. 우리가 따발총을 쏠 때, 전쟁영화에서, 득두두두두 득두두두두 하지 않은가? 성기적으로 회로를 만들고, 납땜까지 완성하면, 기계가 그처럼 불이 들어오거나, 움직이거나 하는 것이다. 여자들이 예술을 잘하거나,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힘이 없는 상태에서도 본질에 설 수 있는 방법이 오직 그 방법 밖에 없어서인 것이다. 예술 대학에 여자들이 많은 것이, 들어오려는 남자들을 쫓아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한국 여자들의 안목이 매우 높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술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 이미 선이해적으로다가 예술적이지 못하면, 기둥을 세우고, 입체를 가꿀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매우 의존적이기 때문에, 신화적으로, 그리고 주체적으로, 바보 온달 옆에서 평강 공주처럼 죽지를 못하는 것이다. 예민하고, 안목이 높으나, 비가 오면, 대학에서 그들까지 씻겨져 나갈 것 같은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권력자가 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계속해서 자흑들을 낳게 되는 것이다. 만일 낳지 못하면, 상종을 세우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이처럼 그나마, 폐쇄되고, 바이러스 하나에도 민족성이 낱낱이 드러나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은 것은, 그 슬픈 소년 소녀들이 많아서인 것이다. 옛날에는 섹스가 조금 어려웠지 싶다. 그렇다고 섹스 지수가 부족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다만 같이 있어도, 사람들이 정도 이상으로 흥분하면, 마음으로 충분히 간음한 정도는 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나중에는, 극장전이나, 봄날은 간다, 가을로에서처럼, 다들 학생들은 아니지만, 우리의 뇌가 섹스에까지 도달한 것 같은 것이다. 우리가 책을 읽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누구인가? 책을 사다만, 사다코, 놓는 사람이 아닌가? 책을 잘 읽으면 또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누구인가? 겨우 읽거나, 아첨하거나, 요약만 할 줄 아는 사람이 아닌가? 우리가 책을 잘 읽고도, 암송하지 못할 때, 가장 먼저 눈 앞에 보이는 사람이 누구인가? 그들은 그렇게, 이상하게도, 잘 암송한다 싶은 사람이 아닌가? 사랑을 해도 그렇다. 티비에서처럼, 집안에서도 반대하고, 자기들끼리도 반대하고, 사랑하는 자기 자신도 내면의 한 구석에서는 반대하는 사람이 아닌가? 그리고 섹스를 그렇게, 램브란트나, 투아렉처럼 잘하고 나면, 머지않아 떠오르는 사람이 누구인가? 겨우 섹스만 하는 존재와 그림자가 아닌가? 그것들은 모두 감추어져 있고, 그것들은 모두 연결이 되어 있다. 우리가 버스를 타고 어디를 가는데, 갑자기 정도 이상으로 숨이 가쁜 때가 있는데, 그것은 그 근처 어디에선가, 성리학적으로 성격이나 계급, 말과 사랑의 능력이 비슷한 누군가 매우 강력한 사랑을 나누고 있어서인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돌아보면, 존재도 거짓이고, 관계도 거짓인 것이다. 우리는 결코 예상대로 살 수 없고, 우리는 결코 선하지 않는 삶을 목적으로 살 수 없다. 존재가 그나마 나은 사람이 있고, 관계에 매우 훌륭한 사람도 있는데, 그렇다 보면 가장 슬픈 경우가 발생하지 않겠는가? 사탄이 그것을 잘 알고 있거나, 사랑에 대해서 잘 알아서, 사람들을 발몽처럼 실망시키고, 상처 주고, 영화를 보고 나와서는 서로 싸우고,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우리가 과거에 화성에 갔다면, 그것은 걸어서 갔겠는가? 지금과 똑같이, 철판을 두드리고, 액체 연료나 고체 연료 같은 것을 개발해서, 어떤 고양이나 로켓 개발을 해서, 갔지 않았겠는가? 그래서 화성에 이르게 되면, 이처럼, 마치 그 소년 하나가 주변의 모든 사람을 죽이고, 폐허로 만들고, 소리 없이 대학생이 되어, 슬픈 음악을 귀에 꼽고, 한신대학교 도서관에 가는 것처럼 상상이 되는 것이다. 광주에도 대학이 많은데, 한신대학교라고 하면, 등급이 두 단계 그래도 오르는 편이다. 하나는 신학대학교라는 것. 다른 하나는 민주화 정신이 매우 높다는 것. 그렇게 인간의 행동에는 모든 것이 신학적인 하이어러키가 있는데, 책을 사놓는 것에서부터, 계단이 또한 오르게 되는 것이다. 가끔은 사람 한 명 없는 열람실에서, 스팀이 새벽에도 들어오는 소리를 들으면서, 다만 엎드려 잠을 청하는 데도, 또 한 계단을 오르게 되는 것이다.....

 

등단이 되어, 시인도 되면 정말 좋은데, 그런 꿈을 꾸면서......

 

 

 

 

화성에는 숱한 아노말리들이 있다.

 

여자들은 대게 그것을 잉그마르 베리히만 효과라고 말하곤 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아는 것이 있고, 많이 있고, 그것으로써 자연적인 그리고 무수한 우연적인 형태들을 본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문장들이나, 목소리까지도, 무서운 것이다. 화성에 난 암석의 구멍처럼 보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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