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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의 몰락

by 마음대로다 2020. 8. 3.

 

 

 

국사의 몰락

 

 

 

 

 

 

 

 

우리는 함께 드라마를 보다가, 문득, 국사가 몰락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여자들에게는 들은 것이 없다고 말했는데, 어쩌면 수업 시간 전에, 책을 읽지 못한 대학원 입학, 나도 같은, 동료에게, 줄거리를 설명해주던 여자아이의 목소리를 십분 넘게 내가 듣고 있었던 것 같다. 말하면서 나를 보았고, 나는 계속 이야기를 듣는다면서, 못생긴 가수 버전의 여학생 얼굴을 보고 있었다. 원래 남녀 사이에서, 단군 이래로, 창세기 아담과 하와 이래로, 물끄러미 사람을, 서로를 장시간, 쳐다보는 경우는 없는 일인 것이다. 그때 이후로, 나는 여자의 얼굴에서, 논리를 찾아본 적이 없다. 어떤 사건, 즉흥적인, 자기 집 이야기, 그리고 숱한 불특정 타자와 미필적 고의는 쳐다보았던 것 같다. 그러나, 길을 걸으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또한 좋은 길을 만들어주는 것에 내가, 레코드판의 바늘처럼, 돌았던 적이 없었다. 그것은 국사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홍경래의 난. 그것이 아니라, 남으로 창을 내겠소, 그것도 아니라, 한용운의 나는 복종이 좋아요 하는 시를 보면, 국사학의 이야기들도 모두 그렇게 돌보는 마음으로다가 보았던 것 같다. 드라마도 그렇다. 모두가 다

 

.....

 

 

우리가 드라마를 보는 것은, 그와 같은 최면 요법 같은 것인 것이다.

 

국사학자 아무개는 젊은 소장 학자로서, 중령, 대령 등을 거치고, 막 소장을 달았다. 그의 글에는, 단순한 관점을 넘어, 다만 새롭게 비추는, 그런 것이 아니라, 사람이 어째서 종교에 심취하는가 하는 진부한 공식에, 오체투지와 같은, 매우 솔직한, 매우 진지하고 현상학적인 마음가짐을 갖고 있었다. 그러니까 학생들이나, 선생들, 학자들 특유의 힐러리어스 한 어투나 태도가 있지 않았다. 다만 여자를 못사귀니까, 여자가 여신이 된다거나, 십 년 넘게, 저녁에 티비를 보는데, 자기를 편안하게 해 준다고 해서, 누군가를 유느님이라고 부른다거나, 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종교는 편을 가르고, 그것이 한국 종교를 가지게 되면, 당연히 일본을 적대시하게 된다고 그는 그의 국사의 몰락에 전제하였다. 역사적 사실로써, 우리가 일제와 전쟁하였고, 투쟁하였다는 것이 아니라, 마땅한 종교적 이념이나, 지배, 그런 것이 두껍지 않다 보니, 토속적인 역사적 사실이나 이런저런 박물관적 보고가, 형무소, 그것의 냄새를 뒤늦게 풍긴다고 하였다. 그와 같은 입장은, 서언은, 매우 충격적인 반향을 불러왔고, 사실적 투쟁자들에게도 불만을 샀었다. 그러나 그는 게의치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이불도 게지 않았다. 물론 홍석천도 만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사라지고 말았다. 제거가 된 것은 아니었다. 에스엔에스, 그러니까 소설 네트워크 에스에 자기가 지금 어디 여행 중이라는 사실을 꾸준히 올렸던 것이다. 중국 서북부 어딘가에서, 미모의 여자와 여행을 했는데, 추운 데도 여자는 레깅스를 입고 있었다. 두꺼운 나비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그렇게 함께 찍은 사진이 마지막이었다.

 

 

*

 

 

우리는 소설이나, 드라마, 어떤 잔인한 추적 소설 드라마가 무엇을 담는지 알 수가 없다. 때로는 우리가, 덥지 않는 에어컨 시대를 맞이해서, 그렇다고 그와 같은 좋은 냉기로써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니까, 게임, 머리는 돌아가되, 마땅한 대상을 찾지 못해서, 추리 드라마에, 수사 추적 드라마에 열광하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은 에어컨 네트워크는, 금방금방, 사람들의 정신적, 마음적 주소를 전하고, 고전적인 아름다움은 부족하나, 이야기의 돼지고기 머리 고기, 편육과 같은 의식은 나름 갖추고 있는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국사가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와 같은 소중한 비판의 채널을 마련해주기 위해서, 일본인 친구들이 코스프레와 같은 장르를 지속적으로 전해주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마땅한 새 옷이 없어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한복을 입은 때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런 언어 장애가 없는 것이다. 그들은 버스를 타기가 어려웠고, 그렇게 여행을 다녀오면, 저녁에 죽어도 좋았었다. 지금은 우리가, 꼬마 아이들도 영어를 곧잘 한다. 그리고 저녁에는, 넷플릭스에서 공포 미국 드라마도 자주 본다. 드라마가, 바둑돌을 그렇게 둔 것일 수 있는 것이다. 너무 내가 깊게, 그것을 해석한 것일 수도 있고, 그와 같은 비학문적 연구에는, 에어컨이 불필요하다 단언한 것처럼도 보인다. 그러나 아무런 피아노 소리에도 자주 함께 진동하는 나의 글들이, 지금껏, 그것이 기계적인 원인에서이건, 아니면 진정한 예술적인 차원에서이건, 칼 세이건, 코스모스, 작가의 보편적 형이상학에 늘 그처럼 깊은 영향을 주고, 상처를 주고 했던 것 같다. 예술가는 원래 다른 예술가들에게 관심이 많다. 그러나 국사까지, 국사학까지 관심을 갖기라는 것이 사실상 어려울 때가 많은 것이다. 국사는 항상 조잡하고, 학교와 잠깐 연합하며, 영원히 타오르는 불에 던져지는, 약간은 종교적인 검불만 같다.....

 

 

드라마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했는데, 스토리가 아니라, 마치 작가의 한계와 같이, 그것이 하나의 인생으로는 불가능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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