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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샾

좋은 NA

by 마음대로다 2020. 6. 2.

 

 

 

 

 

 

좋은 NA

 

 

 

 

서울대 대학원 입학을 준비하다가, 일본 만화를 본다는 것은, 일제에 굴복한다는 것을 뜻한다. 페니스. 혹은 윔블던. 모두가 좋은 기억들이면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그러나 그 중 하나, 아주 안 좋은 기억이 있으면, 우리는 자투라는 사탄이 가져간다는 원리에 따라, 이내 사탄에게 굴복당하게 되는 것이다. 자투리가 없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가? 하차투리안, 차두리가 없는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 그렇게 독서 모임만 하기로 하다가, 여성 회원 한 명 있다고, 술도 마시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것이 당연하다고 해서, 당연하다고 여기지 말자. 새벽에 일어나, 괴조가 우는, 내부의 감각, 그것을 달래는 생수 한 잔. 내가 좋아하는 시 중에, 새벽을 가로지르는 자동차 소리 비슷한 것이 있는데, 완성도는 없대도, 내 초기작이 대게 그래서, 마음에 흡족한 것이, 그것은 분명 여성 회원을 향한 나의 자동차라는 것을 뜻하고 있기 때문이다. 포토샵의 내용만 해도 그렇다. 그들은 그렇게 덤덤하게 헤어졌다. 우리는 원래 덤덤하다. 그리고 남자는, 집에 도착해, 복층 집, 좋은 기분으로 샤워하고, 젊은 사람들 음악 듣고, 커피 마시고, 두 잔 마시고, 잠을 자는데, 여성 회원들은 보다 좋은 집에 도착해,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남자가 어째서 자기에게, 오토바이가 없다 말한 것일까? 그것을 궁금하게 여기는 것이다. 모든 자투라는 사탄의 것이 된다는 원리에 따라, 여자들은 어쩔 수 없이, 단테의 신곡에도 빠지는 것이다.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불확정성의 원리를 보여주는 것은, 일종의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늘 사랑의 리퀘스천 마크를 보여주어서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다. 남자가 선명하면, 여자들도 선명할 수 있다. 약간의 차이는 있어도. 남자가 늘 애매모호하니, 일종의 문예학적 입장처럼, 여자들도 비슷하게 구는 것이다. 황제가 열심히 일하는 곳에서, 어떤 외교관이, 자기 나라가 아주 힘들다고 하니,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만들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은 원래, 영국을 싫어한다. 그것은 함안 오디오 전기, 그러니까 포네틱한 문제인 것이다. 공부를 할 때, 비사감처럼, 따박따박하면, 공부를 다 한 다음에, 졸업하여, 사람들에게 공부를 내비치는 위치에서, 따박따박한 모습을 보이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고통스럽지 않겠는가? 미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나의 브금, 앙드레 가뇽의 음악을 들으면, 따박따박, 따다박다바박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그것은 나의 말들이 그렇게 안 따박거린다는 것일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비리그의 아카데미는 어떻게 되는가? 내가 그곳에서, 영어로 공부하기로 했던, 헤겔의 미학은 어떻게 되는가? 나는 안 따박거릴 자신이 있었는가? 얼마나 미국 청년들은, 아름다운 미국 청년들은, 공부가 하고 싶었는가? 일본이 진주만 공습처럼, 숱한 만화책들을 도시에 투하하면, 사람들은 아름다운 영혼 공부하는 시간이 그만큼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일본 만화책도 공부이다. 그러나, 멀리에서, 작은 차이도 엄청난 결과로써 실감할 수 있는 위치에서, 일본 만화책은, 다만 공포와 서스펜스, 그들에게도 익숙한 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안성기와 장미희가 미국에 왔을 때, 호사가들은 좋아했었다. 아무런 내용도 없이, 낙타가 따로 울지 않을 때도 좋아했었다. 그리고 그 즈음으로 해서 미국은, 사적인 영역에 대한, 담담한 탐구가 매우 잘 이뤄지고 있었다. 한국 사람들은 그렇게 사적인 영역을 좋아하고, 그것이 문재인 먼저다 하는 다음에, 액션도 있고, 메디칼 드라마도 있고, 이런저런 드라마도 있는 것이다. 사적인 영역에 대한 것만 있는 것도, 마치 대한민국처럼, 부지기수이다. 미국 사람들은 두려워했다. 그들에게는, 버려진 집들이, 미국 남부 플로리다만큼 많았기 때문이다. 속도가 없으면, 형이상학은 사탄의 영역이기 때문에, 금방 스웜프, 잡아먹히기 때문이다. 속도를 내어 달려도, 캔디 케인처럼, 톡식처럼, 금방 따라잡히게 된다. 그러니 사적인 영역에 대한 탐구가, 빅뱅 이전, 그러니까 프렌즈에서, 전부 고갈되었다고 해도 될 것이다. 처음에는 미국만이 세계의 전부였고, 미국만이 본토의 외침을 당하지 않는 선진국이 되었었다. 우리는 숱한 외침을 당하였고, 한 번, 신라방, 남들을 침범하지 않았는데도, 도리어 아무런 상처도 없는 집단인 것처럼 세계 사람들에게는, 일본 사람들에게는 비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영어를 못하기로 유명하다. 그러나 일본 사람들을 경험하고 나면, 한국 사람들은, 미국 사람들에게는, 미국 사람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죽어도 못할 것 같은 외국어도, 미국식 영어도, 거기서 아예 살기 시작하면, 금세 할 수 있는 것이 되는 것이다. 물론 다 그런 것이 아니지만, 물론 다 안 그런 것도 아닌 것이다. 그 뚫리지 않을 것 같던 구멍에서, 나온 하나님의 생기가, 외국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보였겠는가? 한국 사람들은 다들, 태권도도 잘하고, 영어도 로봇처럼 잘하고, 젊은 사람들은, 그리고 아이비리그는 기본적으로, 시카고 대학은, 기본적으로 가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겠는가? 다 그런 것은 아닌 것이다. 그런 분별은 미국 사람들도 갖고 있다. 그러나 넷플릭스로 대변되는, 사이클, 그러니까 폭력물을 보다가, 음란물을 보고, 그래도 주인공은 착한 액션물을 보다가, 지식과 감정의 두 가지 축에서, 감정은 없어도 지식은 있으니, 미국 전체에 걸쳐, 과장된 지식물이 횡횡하게 되는 것이다. 지식물에 물리고 나면, 감정물이 등장하는데, 항상 보고 나면 후회하게 된다. 작품은 독재이다. 독재의 피지배적 경험은 상처를 남긴다. 세계의 독재정권은 얼마나 많았는가? 피노체트. 미국 사람들은 하루하루, 그 좋은 실험적이고, 인간적인, 그리고 전후의 기독교적 의지로 가득했던 영화의 높이에서 내려와, 정말 하루하루 도무지 알 수도 없는 독재정권의 영화를 보면서, 죽을 날짜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와 같은 자유에 있지 않다. 얼굴에다 알아 볼 수 없는 화장을 하고, 선사시대 같은, 호주의 우주인 부족 같은, 학교까지 다녀온 딸이 어느 날은 땀을 흘리고, 어느 날은 얌전한 것이다. 그러다가, 다른 연쇄 죽음처럼, 침대 위에서 죽어 있는 것이다. 그것을 부모님이 발견하여, 슬픔을 가누지를 못하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영화는 바이러스 같은 힘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는 자유로 이뤄진 것이지만, 사탄은 기가 막히게 그것을 통신망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영화만이 아니다. 천재적인 파티쉐나, 꼴라쥬에 의하면, 기독교와 아카데미를 넘나들고, 테드 창, 그리고 대통령의 트윗에서도, 그와 같은 사탄의 전기는 흐르는 것이다. 소년과 소녀가, 나찌즘처럼, 사탄을 선언하다가, 그것이 장난만이 아니고, 실제의 공포 영화를 현실에서 보고 나면, 얼마나 자기는 회복불능의 존재인가? 더 이상의 말을 해주는 멘토가 없는, 메뚜기, 세상에 던져지겠는가? 사람들의 죽음에 의해, 라디오는 망가졌고, 사탄의 혼합만이 공중파에서 제시되는데, 그나마 한국의 영화나 음악이, 처음에는 같은 사탄의 혼합으로 다가오다가, 팔월의 크리스마스 마지막 장면에서, 심은하가 한석규를 죽이고 좋아하던 모습처럼, 하지만 나찌즘으로, 사탄을 선언하다가, 자기를 회복시킬 수 있을 만큼의 본체를 발견하였던 것이다. 사람들은 불만을 가졌다. 아무런 제시 잭슨, 그러니까 영화를 감당할 만한 작가나, 평론가가 없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그중에서도 예술 청년들이, 그렇게 마리화나 같은, 마피아 같은, 작품을 그려내기에 열을 올리지, 그나마 아놀드 하우저 같은 예술 역사 평론가가 뭔지를 모르는 것이다. 그런 것이 과연 인간 존재인가 싶은 것이다. 얼마나 슬픈가? 한국은 뚱뚱한 녀석들이, 다만 행복한 돼지처럼 굴다가, 전국 방방곡곡의 부처님 놀이를 하다가, 미국의 비만 인구에 대한 아첨으로 흐르고자 할 때에, 그런 것도 정말 고통스럽다, 실제 미국인들은, 비만 음식을 먹고, 비만 인구가 되는 것이다. 미국 사람들이 그나마 숨을 쉬었다는 것은, 한국인들을 발견하여서 그랬을 수 있다. 그것의 좋은 그림자. 좋은 나와 같은. 그러나 숨을 쉴 수 없다는 것은, 그들이 결국은 사탄의 목적으로 피신하는 존재라는 것을, 성급히, 혹은 결정적으로 파악하여서 그런 것일 수 있는 것이다. 그 유명한 넷플릭스에서 한국 드라마도 함께 한다는데, 러블리 러블리 하는 기대로 보다가, 젊은 쌍것들이 나오니, 양가감정의 젊은 사탄들은 배반감이 얼마나 컸을 것인가? 그리고 영국 따박따박 드라마를 또 어떻게 재연, 재본한다니......

 

 

 

 

백인들도, 흑인들도, 거리에 나와 불을 지르고 싶었을 것이다......

 

 

 

 

 

 

미국은 우리나라와 얼마나 가까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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