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의 단조
내가 소찬휘를 좋아하지만, 좋아하는지 미처 몰랐지만, 몇몇 지나치게 유명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너무 자주 본 것이 있어서, 그렇게 되었겠지만, 좋아하지도 않지만, 싫어할 수도 없는, 일종의 대승적인 입장, 믿음과 이성, 그러나 자세히 보면 좋아할 만한 구석이 있는 것이다. 우리가 명절 연휴 기간에 서둘러 집에 다녀오고, 지방, 학교 기숙사에서 음악을 듣고, 명절 티비 프로그램을 보고, 관념과 정신의 허송세월을 보내는지 자의식이 깊어갈 때, 항상 잘 알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얼굴이 익숙하지 않을 수 없는 여학생도 비슷하게 왔다갔다 하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마음이 그렇게 슬프다. 나의 신학생은. 입장은. 작은 방에 세 사람이 살았는데, 그런 일주일 정도는 늘 언제나, 나 혼자만 생활을 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식당 운영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있다가, 운영을 시작하면, 그 밥하는 냄새에 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 핑계로 학교 앞에 있는, 기라성과 같은 부대찌개 식당에를 갔고, 하루는 닭곰탕을, 하루는 부대찌개 소짜를 먹었다. 하루는 제육볶음을 먹었고, 아침은 가볍게 비스켓과 음료수를, 저녁에는 오후에 사들고 간 빵과 음료수를 먹었다. 나의 머리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예수. 너무나 아름다운 가시면류관 같은 것이 있었을까? 우리가 논리를 가리켜, 실크라고 할지, 큐피드의 화살이라고 할지, 동양학적인 항목이라고 부를지, 아니면 가시라고 부를지 자유인 것이다. 사도바울이 비슷한 말을 하기도 했다. 어째서 좌절하지 않고, 어째서 그와 같은 스페이스가 좋고, 칸트는 관념이 아니라고 했는데, 시간이 좋고, 미래에 대한 환락한, 그러나 진실한 삶을 살 것이다고, 항상 다짐하고, 사탄들을 물리치고 했었는지. 내가 봉준호 감독을 싫어하지만, 종말론에 이르러서는, 부산행보다도 반도가 더욱 고삐 당겨진 것은, 책이 재밌다고, 철학책이 재밌다고, 철학로를 오르고, 언덕에 드러나 있는 아주 작은 지름길, 도서관에 가서, 커피를 마시면서, 읽었다는 것은, 분명, 한 사람에게만 싹이 터서, 다른 이의 씨는, 욕이 되었지만, 나에게서는 시가 되고, 아름다운 문학이 되고, 학이 되고, 눈이 밝아지고, 다른 문학과의 교류가 되고 했기 때문인 것이다. 너는 문학가가 되고, 너는 그냥, 졸업하고, 취직해라 정해준 이가 없었던 것이다. 그와 같은, 관념이 아닌, 칸트의 공간과 시간에서는. 그게 뭔지를 모르겠기 때문에, 더 크리틱 오브 퓨어 리즌이 되는 것이다. 도서관의 느낌은 있고, 거기를 오가는 것이긴 하나, 다른 이들에게는 여건이 안되고, 가까운 곳에 집이 있고, 여자 친구가 있고, 여자 친구는 남학생의 배에서 늘 언제나 곱창을 꺼내먹기 때문에, 학교에 남아 있을 수 없고, 서둘러 와서 공부를 할 수 없으며, 취직 공부가 아니면, 저승사자가 그의 그나마 일상의 자유를 앗아가는 것이다. 나는 그냥 더 크리틱 오브 퓨어 리즌인 것이다. 읽은 사람이 별로 없고, 그것을 왜 읽어야 하는지, 의지도 아니고, 표상도 아닌. 왜라는 질문에, 누구도 답을 할 수 없는. 내가 독일 사람도 아니고, 독일 사람이 칸트를 읽는 것도 아닌. 게오르규 루카치의 선험적 고향 상실성 같은 것. 여자 친구가 우선인 것이 아니라, 나의 공부에 관심이 있고, 그런 나의 모습을 사랑하고, 강소라 같은, 자기의 온몸을 던질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그렇게 나는 남몰래 흐르는 눈물처럼 기도하였는지 모른다. 나는 그냥, 신령한 지식의 청지기 같은 것이었을까? 그리고 책을 읽을 때, 재미는 있기는 했던 것일까? 비판적으로 읽지 않으면, 재미가 있었고, 정말 비판적으로 읽으면, 손에서, 위에서, 멀어져 있었다. 그리고 작은 기억을, 광주에서도 읽었고, 그것을, 그 느낌을, 다만 오래 갖고 있는 것이었다. 소찬휘를 보면, 그와 같은 언덕감이 있다. 택트를 얼리면, 겨울에 안 타면, 언택트이고, 덕을 얼리면 언덕인지 모르겠으나, 그와 같은 죽을 것 같은 비정상적 비현실적 비인간적 시간 속에서, 젊었을 때의, 조금, 약간 나이 들었을 때의, 지금은 영 아니지만, 정말 젊어서 조금 날씬했을 때의 소찬휘를 보면, 잘 줄 것 같았던 것이다.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과 변천이, 지젤, 대학교 때에 서로가 서로에게 잘 주었다고 해서, 떨어지지 않고, 졸업 시즌에, 조금 지나, 결혼까지 하는 것일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너무 화성의 벌판 같은 곳에서 산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 같은 것이다. 여기서는 진짜 화성. 공기가 있다고 없다고. 물이 있다고 없다고 하는. 그래서 만일 기가 막히게, 하늘이 허락한 사랑처럼, 잘 주는 사람을 서로 잘 만났다고 했을 때, 일부러 결혼까지는 안 하는 것을 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남자이고, 그것이 남자인 것이다. 남자의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그와 같은 대상이, 서로가 서로에게, 대학인 것이고, 모세가 이스라엘 사람들과 광야 생활을 하다가, 가나안에는 그들과 들어가지 않는 것의 이치인 것이다. 어쩌면 그와 같은 나의 원한이, 뒤늦게 소찬휘를 만들었는지 모른다. 나와 함께 학교를 다녔다면, 너무 조용하고, 내성적이고, 다만 나보다 나이가 하나나 둘 많고, 이름은 옥금이고, 나의 비상한 말에, 재치의 불꽃을 튀길 수 없는. 남자에게 대상이 아니라, 대상에의 죄의식을 가질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현실이고, 소찬휘의 무대 모습은 일종의 이상인 것이다. 그랬던 것인지, 그렇게 노래가 좋고, 막힌 곳에서도 기쁨이 진행하는 힘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사람과 결혼해야 하는가? 대학 생활은 가난하게, 소찬휘와 같은 사람과, 뽕을 뽑고, 졸업해서는, 유학 가서, 이지아와 같은 여자를 만나, 귀국해서 결혼까지 해야 하는 것인가? 만일 그랬다고 한다면, 나는 놀랐을 것이다. 공부를 열심히 하고,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는 이유가, 글이 재밌고, 책이 재밌고, 흥분이 되고, 책이 사람을 감싸고, 빠뜨리고, 이차돈의 순교 같고, 우유가 치솟고, 사람들이 스타벅스 데이 같은 날에, 저마다의 용기를 가지고 와서, 그것을 담고, 먹고, 마시고, 치즈를 만들고, 그렇다 하는 것을 누가 믿겠는가? 소설은 음란 소설 같은 것이 있어서 그렇다는 것을 아는데, 누가, 어떤 사람이, 철학책이 그렇다는 것을 알겠는가? 다만, 같은 철학적 관심이 있는 여자와, 젊음과 사랑의 경쟁으로 그랬다는 것으로나 짐작하지 않겠는가? 그것의 표상이, 그것의 진실을 가리지 않는 정도로만, 그것의 진실이, 다만 학생 생활의 표상이 덮지 않는 것으로만, 심지어는 둘 서로에게도 관계가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대상과, 그것에의 본연적인 능력, 그리고 자의식, 사랑에의 축지법, 문학적인 개론, 그것에의 자신감, 자기 몸에서 피어나는 자연적인 담배 냄새 같은 것을 모르면, 남자래도, 여자에게 잘 줄 수는 없는 것이다. 여자는 가족 중에 어려서 사별한 사람이 있었고, 그와 같은 공간이, 시간이, 제법 성숙한 것이었다. 그래서 잘 주었는데, 그렇게 보면, 서로가 서로에게 이지아였던 것이다. 나중에 이지아를 만나, 이지와와 결혼했다면, 나는 귀신하고 결혼한 것일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내게 물질을 이지아하지 못했지만, 나는 사람들에게 정신을 이지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있었고, 경험과, 진실감 같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서희가 강동육주를 얻을 수 있었던 것도, 늘 언제나, 무장들은 자기가 경험하고, 공부한 것을, 잘 말할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인 것이다. 미국 문명도, 나에게 있어서, 사탄에의 적발, 엑시스 오브 이벌, 불쌍한 대국, 선과 악의 멈춰있는 중립국가, 세계 누군가가 선을 행하면, 자기는 악을 행하는 착한 바보 국가, 그렇게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내가 한참, 추석을 지내고, 또는 겨울 방학 전에, 눈을 만나고, 그럴 때에는, 때로는 소찬휘 같을 수 있었고, 청바지 입고, 허리띠 반짝이는, 가볍게 춤추고, 파워풀하게 노래하는, 노래가 좋은, 여성만 특별하게, 문학과 성적인 것만 특별하게 해방하는, 그런 이상 국가가 지금의 미국은 분명 될 수 있었다. 그와 같은 준비에, 이미, 충분히, 너무 많이 그래왔던, 그래서 그와 같은 국가로 나의 확진 판정을 받을 수 있었다......
꿈에서 깨어나,
나는 중국을 여행하는 깊은 열차에 오를 수 있다. 자주 언급하는 대상이다. 그래서 그것의 첫 영화 경험적인 힘을 가질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영화를 보면서는, 두 번이 힘이 없을 수 있으나, 여행에 오르는 모습이나, 기차만큼은, 그것의 전경과 나의 발걸음이, 그것의 의미가 도무지 질리지가 않는 것이다.
미국은 그와 같은 러브스토리가 없었는가?
전화를 우연히 서로 하게 되었는데, 성적인 이야기를, 바로 앞에 놓인 나의 짐처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와 같은 찬란한.....
그래도 언제 한번 만나자고 하는 것이다.
타락하지 않는, 추락하지 않는 전진. 얼마나 가슴이 아프고, 목이 메이는지 모른다.
누군가 철학자가 있는가? 모든 영화의 궁극적인, 성룡의 마지막 액션 실패 모음집의 실제 의미요 가리킴 같은.....
오래전에 있었다는 것은, 그리고 비트겐슈타인 것 같은 것은, 우리의 이와 같은 죽음과 같은 전진에서는 가시관과 같은 것이다.....
*
계속 눈이 오고,
계속 밤인.....
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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