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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야기

이론이란 무엇인가?

by 마음대로다 2021. 1. 5.

 

 

 

사람들은 말한다. 수학을 배워서 무엇하느냐고. 그것은 시류에 편승한, 편(제발)승엽, 눈물의 조각배였을 것이다. 종이배. 그렇게 우리는 우리들의 옛날 프로그램들을 반성하게 된다. 우리는 거기에 해결책이나, 해독제 같은 것이 있을 줄 알았다. 해독제가 있으니까, 티비가 저런 것이겠지 했던 것이다. 그런데, 낮과 밤, 이제는 제이미 박사가 보이지 않는데, 그것은 이지아 때문에도 그렇고, 이미래, 차화연 때문에도 그렇다. 나는 이미지도 좋아했다. 이미지의 문학을 하고 싶으나, 마음이 덮덮한, 그런 말투도 좋아했던 것이다. 그런데 언제 보니까, 일찍 다른 세상에 간 것이었다. 우리는 고작 이 정도의 스리쿠션가지고, 과연 형이상학적 대계,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인가 할 것이다. 드라마는 하강을 하고 있다. 이성은 국가이나, 이성이 주체로 환원되고 나면, 막상 주체에 대한 가치나, 가능성, 진정한 의미조차 사라지게 되는 것을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문학의 한계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학은 그와 같은 한계가, 진정한 이성계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철학을 공부하더라도, 한계에 봉착하게 되고, 대게 대학원에서 전공하는 사람들은, 그와 같은 이성의 죽음과 같은 요단강을 건넌 사람들인 것이다. 주름지고, 이제는 안정하고, 한 손에는 논문과, 다른 한 손에는 가난하게 결혼할 여자가 있는 것이다. 주자는 그와 같은 처용을 견디지를 못하는 것이다. 대학원은 처용가라는 말이 거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성의 한계도 용납을 못하는 것이다. 모든 논문은 납작해 들어가서, 연장하는 것이고, 납작과 확장, 표면과 연결, 납득과 납득이가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도무지 인간의 모습이 아니다. 드라마는 그러나, 초인을 용납하고, 말의 비상한 헌법적 구속력은, 처음의 꾸밈으로는 드러내나, 나중으로는 사라지는 운명을 갖고 있는 것이다. 조금은 과도하게 사라지는 것일 때가 있고, 그것과 동시적으로 드라마 전체의 납득성도 사라지는 경향이 있다. 액션이 남고, 액션 스쿨이 자막에 남고, 결국 사탄을 제거한다고 하나, 이성이 죽은 자리에서, 사탄이 없는 자리, 그것은 사탄을 막는 것이 아닌 것인데, 그것만이 남는 것이다. 어째서 그와 같은 황량한 시퀀스, 라스트, 그와 같은 것으로 우리는 습관이 생긴 것일까? 하나는 섹스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학교 제도와 영화 산업의 연합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이 아직도 달성하지 못한 구상의 극치를 달리기도 전에, 추상에 빠지는 것은, 일본 사람들의 서예가 그랬다는데, 그것은 그들의 마음이 실제로 절망의 깊은 드럼통에 빠져서인 것이다. 시적인 능동성에서가 아니라, 상업적인 피동성에서, 겨우 구상이 유지가 되는 것이다. 추상도, 논리적인 필연성을 나타내는 것이기보다는, 금세 지옥의 입구를 드러내는 것으로 익숙하게 된다. 아직 대학 초년생들에게는, 취재를 떠나서, 남녀가, 거기서 재빨리 발견하는 일은 없는 것이다. 시를 쓰고, 소설을 쓰고, 섹스가 그것들보다 우월할 수 있다는 자각은, 자각몽은 일절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비디오 영화에 온 마음이 빼앗길 무렵인데, 선생님이 국문학 수업을 피땀 흘려가면서, 눈물, 한다고 해도, 드라마의, 영화의, 일본, 헐리웃, 우리 짧은 옛날, 기승전결의 파상공세를 당할 수가 없는 것이다. 섹스가 끝나면, 불쌍하고, 그것이 아니면, 한 번 주인공의 자각몽도 없는 국문학생이면, 일본 학생도 아니면, 정말 바다 냄새, 갈매기 냄새, 철선 냄새만 맡고 돌아올 수 있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영화 제도와 학교 제도의 상관관계 때문이다. 영화가 영화 끝날 때까지, 학교 강의 이상으로 이상의 날개를 가질 수 없는 것은, 그러면 학교가 비대면 수업을 하다가, 결국 사라질 위기에 노출되기 때문인 것이다. 그것은 사탄의 의지일 수도 있고, 콜렉티브 언켠셔스니스일 수도 있다. 유튜브만 하더라도, 미국 사람들이, 청년들이, 숱한 지적인 페이소스를 그나마 치고 나가는 것을 볼 때에, 우리는 연결의 저 끝에서, 먹방만, 먹방만 한정 없이 하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식인종이 살아있고, 사탄이 처음에는 노동하다가, 비학문적인 형이상학만, 입만 살아가지고 어떻게 되는지를 암시한다고 했으나,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씨알도 먹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오리엔테이션을 해서, 자기들끼리 잘 구분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여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럴 일이 없지 않은가? 영원한 오리게네스인 것이다. 

 

모든 것의 원흉이 국문학인 것이다. 

 

소년과 소녀가 문학과를 지망한 것처럼, 국왕의 즉위식 같은 것이 없다. 임진왜란을 거쳐야, 비로소, 장마철을 맞이해야, 세자책봉식 같은 것을 알고, 공부가 지체되는 것처럼, 될 것처럼, 두뇌를 자꾸 자극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인데, 그 척도가 점점 깎여서, 서로의 성기의 그림자가 팽창하게 되는 것이다. 천재는 인간의 만물의 척도를 깎지 않고 할 것이지만, 대게의 남녀는, 사랑 안에서, 반동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는 관점에서, 쓰리디 안경으로다가 상대를 보게 되면, 거의 전부가 그것에 저해되는 말만 하고, 제안을 하고, 정확히 미래적인 가치를 부수는 것으로다가, 주사를 놓거나, 마치 시험은 내일인데, 내일 새벽에 제이미 박사와 출발할 수 있는 공부를 할 것처럼, 그와 같은 잦은 경험은,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의 실상이 되는 것처럼, 마침내 위가 거기에 맞게 팽창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성기의 그림자가 팽창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모든 아름다운 선율은, 성기와, 옷과, 시와, 수업과, 학교의 교정과, 문장의 교정과, 함께 웃고, 시시껄렁한 춤을 추고, 여자가 점점 더 못생겨 보이지만, 자기가 잘하는 것으로, 여자에 맞춰 자기를 다운그레이드 하는 것으로 비행하기 때문이다. 하루하루가 착잡하고, 하루하루가 경찰에 위배되는, 정신에 위배되는, 다만 안주벌드의 세계관, 그리고 심벌이나 되는 것이다. 우리가 국문학을 배우면서도, 발터 벤야민을 연구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옷을 하나도 입지 않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철학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우리는 옷을 입고 있다는 자각몽 안에서 사는 것인지 모른다. 나의 말을 무시하면, 당장에 빌딩이 생기고, 연구소, 학벌, 재벌, 교편, 장편, 문단, 재판정 등이 생긴다. 그러나 나의 이 말을, 드라마를 보고, 연장하는 천사의 날개처럼, 함께 보게 되면, 당장에 가난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국문학은, 신학은, 정준하의 표현처럼, 갈수록 흥미진진해지는 것이다. 그들은 국문학을 하면서도, 그 없는 틈을 이용해서, 미국 에프비아이보다 영어를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약간 선진국형이고, 일류대적인 습관이기는 해도, 하류대나, 삼류대는, 국문학을 하는 사람이면, 아롱디리나, 얄라셩, 우리말 사전 같은 것을 잘해야 한다고, 아직도 철석같이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춤을 한 번 추고, 장고를 몇 번 두드리고, 그 옆에서 군인들이 모포를 털면, 함께 장단을 맞추다가, 먼지 때문에, 군인들에게 대체 옆에서 뭘 하는 것이냐고 따지게 되면, 우리의 스리쿠션은 금세 근사해지는 것이다. 내용은 없고, 다만 누군가는, 한 번 스쳤는지, 맞았는지 하는 것으로 사라진다고 해도.....

 

도정우 같은 이도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며칠 전에, 컨테이너 항구 켄추리 크레인 박스 안에서, 나이 육십은 되어 보이는 형님에게, 나이가 육십 얼마요 했더니만, 뭔 소리를 하는 것이냐고 버럭 화를 내는 것이었다. 취지는 자기가 정상이라는 것이고, 나보다 두 살 정도 많다는 것이었다. 

 

주자 앞에서, 누구든지, 무엇이든지, 하강하게 되어 있다. 주희는 납작하지 않고, 그러나 생각은 논문적인 것이다. 당연하지 않은가? 그리고 사람들은 필연성이 사탄과 관련이 있다는 생각을 일절 하지 않는다. 문학은 그 필연성의 상자를 열여보는 첫 사람과 같다. 그렇게 하얀 밤 마을을 탈출하고 나면, 작가의 오랜 기도에 따른 우연한 분류의 내용처럼, 세 사람 정도가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 설현이 도정우 경정을 좋아하는 것은, 다만 남녀에 대한 사랑보다도, 순전 내일의 학문적 관심 때문에 그럴 수 있다. 그것은 항상 거짓말을 하고, 항상 사탄의 형이상학적 체계만 좋아하고, 사람들에게 약한 약을 파는, 그렇게 여기는, 김약국 집 딸들 중에 하나가 되는 자기 모습을 오늘 초저녁의 꿈에서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대학의 국문학과만 학과이고, 다른 외국어, 물리학, 화학, 생물학, 수의학과는 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인가? 그와 같은 과장에, 극심하고, 고통스러운, 세계 철학사에서도 독보적인 정신의 내가 있는 것이고, 동시에 그들 노아의 방주 짐승들도, 환호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