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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야기

인간이라는 두 글자

by 마음대로다 2021. 1. 9.

인간이라는 두 글자

 

 

 

 

 

 

 

 

 

그렇게 시작하는 트로트가 있으면 좋겠으나, 사랑이라는 두 글자, 이별이라는 두 글자는 가능하여도, 인간이라는 두 글자는, 타타타,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 우리는 슬픔의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질병이다. 슬픔은. 일부러 슬프고 싶어서 슬픈 것들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사회적 존재가 될 수 없다. 대신에 육체파 배우는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정부는 어떻게 되는가? 팜므 파탈. 그래서 사회적 존재의 팜므 파탈은 사탄이 되는 것인가 자문하게 되는 것이다. 한치의 어긋남이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나의 말들이 그렇고, 나의 글들이 그렇다. 그러나 실상은 어긋남이 많고, 다만 차이가 있다면, 그런 사회적 존재의 팜므 파탈은 사탄인가 하는 문장을 선명하게 써낼 수 있다는 것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말들이 많다. 그래서 실망을 한다. 사람들은 영화도 많다. 그래서 실망을 한다. 말들이 많은 것보다는 덜 실망하는 편이다. 그래서 서울 극장들을 보면, 언어적 측면에서, 프랑스 구조주의적 아이들이 그들의 빠른 성장을 배회하는 모습처럼 보이는 것이다. 남자가 섹스로 아이들을 낳았다는 것은, 오직 그 집 자식들이나 아는 것이다. 여자를 말하지 않는 것은, 그와 같은 말은 고통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전기 혹은 후기 구조주의적인 아이들은 배회하고, 극장을 찾아, 예뻐도 다시 한번, 미워도 다시 한번하는 것이다. 내가 한치의 어긋남이 없는 말이 되어, 사람들이 애써 읽고자 하나, 막상, 막삼, 구입하여 읽고 있으면 실망만 하는 시간 속에서 떠오르는 몇몇 사람, 옛날에는 박노해의 글도 그렇게 잘 팔렸다. 그의 글은 노동이기보다는, 문장력이었다. 그의 얼굴은, 노동이기보다는, 말의 재간꾼이라는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 도리어, 서울 사람과 같은 느낌이 있었다. 차를 밀어주고, 버스를 밀어주고, 옆에서 누군가 그와 같은 책이 발간되었다고 하면, 발견, 우리는 그것을 받아가지고, 집에서, 맥주를 까고, 안주를 꺼내고, 음악과 함께 읽어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맨 처음 듣고자 하는, 보고자 하는 말들은, 글들은, 인간이라는 두 글자, 사실 만나기가 그렇게 힘이 드는 것이다. 힘을 들였지만, 힘만 들인다고 해서 나오는 것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새벽기차라는 경험을 하였다. 우리는 매운 닭도리탕이라는 경험을 하였다. 여름에는 시원한 수박이라는 경험을 가졌다. 그러나, 그만한 책이나, 말이나, 생각이나, 생각의 생각을,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은 갖기 힘든 것이다. 서울에 폭설이 내린 것은, 그러나 반대의 증거가 될 것이다. 무슨 말이냐면, 사람들은 말도, 영화도 없이, 프랑스 구조주의자들의 아이들이 되어 배회하는 곳에, 네 개의 영화가 동시에 떴다는 것이다. 하나는 경이로운 소문. 다른 하나는 낮과 밤. 다른 하나는 철인왕후. 그리고 마지막의 것이 스윗트 홈이다. 우리가 이 모든 것들을 향유할 수 있는 것은, 실은 성리학적 불만을 가지고 나서, 우리가 서양 영화나 문화, 음악에 대해, 우리들의 것에 대한 성리학적 불만을 가지고 나서, 영화를 생산해냈듯이, 우리는 성경이나, 서양 음악, 그리고 몇몇 선택적인 국문학과 나의 글을 향해서, 성리학적 불만을 갖게 되었고, 그와 같은 생산이 이뤄져서인 것이고, 드디어 우리가 그와 같은 하늘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서울에 눈이 많이 내렸고, 사람들은 발걸음을 동동굴렸던 것이다. 우리가 섹스로써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니면, 섹스도 섹스이나, 거의가 영화나, 문학, 그리고 좋은 생각이나, 드라마 덕분에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판단은, 간파는, 손흥민의, 어쩌면 세계적으로도 매우 슬픈 것이다. 내가 주자라고는 하나, 내가 그들 모두의 것을 할 수가 없고, 때로는 격려하는 말도 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대신에, 어째서 그 재미없는 드라마를 보아야 하는지, 경건한 국문학생들의 항변을 처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어느 평론가가, 우리는 매트릭스의 세상에 살고 있다 대답한 것 같았다. 그러니까 나는 무시하지 못하는 것이다. 생각이 분명 있는 것이고, 마치 바바리안 사피엔스처럼, 누군가 런닝구 무스메를 입고 있는데, 그렇게 영문으로, 검은 글씨로 써 있는 것이다. 또 알아듣는 아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며칠을 일하면서, 그보다는 답을 잘해야 할 것이고, 사람들이 이미 눈 녹은 물을 말리면서, 책을 그 안에서 엿보면서, 책이란 것이 그렇게 눈물의 시간이기 때문에, 우리는 백의의 민족, 화이트 크리스마스, 화이트면 크리스마스하는 연상의 민족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공갈빵을 먹은 것처럼, 섹스리스의 슬픈 상태로 사라지는 것을 막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중국 만화를 원작으로 했다는 철인왕후가 가장 재밌는 것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가장 나은 것이 가장 재밌는 것인가? 손나은. 그리고 재미동포. 삼국사기를 지금까지 드러낸 문학이나, 드라마, 영화가 없는데, 그나마 철인왕후가, 그것도 야사로서의 삼천궁녀를 드러낸 것이, 중국 만화를 원작으로 했다는 것이, 신비로운 천문학적인 숫자가 되어, 마음에 드는 것이다. 순간순간 인천 여자를 보는 것 같았고, 마산, 서귀포, 내가 아는 도시 이름이 한정되어 있어서, 상해 중경, 기타 큐슈 여자를 보는 것 같았다.

 

경찰이 국가적 강요에 의해서, 문학가가 되면, 드디어 발견하게 되는 것이, 자기들이 범죄자들의 부모 아래서, 범죄자들의 친구와 함께, 범죄자들이 가져다주는 것으로 밥을 먹고 살았다는 사실이다. 항상 더럽고, 항상 사납고, 항상 얼굴이 삐쭉하고, 항상 초조하고, 항상 도망치려하고, 마치 친구처럼. 오래 보면 정이 든다는 것처럼. 나이 들고, 문학가가 되기 위해 읽을 수 있는 책이라는 것은 만화책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는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자기는 못하겠다고 하고, 경찰서로 돌려보내달라고 하니까, 한 무리의 사람들이 와서, 정말 죽지 않을 만큼, 얼굴만 제외하고, 구타를 하는 것이다. 이유를 몰라서, 그냥 시절을 보낸 뒤에, 다시 같은 말을 하니까, 정말 같은 구타가 이뤄지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소설 한 줄이라도, 김밥, 무조건 쓰는 것 밖에 방법, 방탈출이 없지 않겠는가? 문학은 사회적 존재, 그러니까 친구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경찰질서, 사명감, 복무신조, 사회정화운동, 그런 재미 없는 글을 써도, 비슷한 정도로 맞았다. 진실하게 쓰고, 훌륭한 작품감이 있을 때만이, 상을 줬는데, 드디어 안정하게 되어, 우리들 무방비도시에다가 출판하게 된 시나, 소설, 드라마 시나리오가, 경이로운 소문일 수 있는 것이다. 그 안에는 선과 악의 무한한 현실적인 공존재가 묘사되어 있다. 그 때문에, 어려서 책을 읽지 않고, 뒤늦게 책을 읽는 사람들의 어린 뇌 상태를 엿볼 수가 있는 것이다. 마치 화석 발굴을 하는 것처럼. 우리들의 고전들은, 실은, 어려서 책을 읽고, 어려서 연애를 하고, 나중에 시련을 겪어도, 아름다운, 그런 정상 이상의 정신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어려서 학교 공부를 하였다고는 하나, 사교육의 진행이나, 부러움, 젤러씨, 그것들의 실체와 주소지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어떠한 정신 상태로 사는지는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 경천동지들은, 슬프고, 아프고, 그것들에 무감각하고, 기억이 없고, 봉급한 하늘을 살고, 남의 뇌를 살고, 섹스로 아이들을 낳으나, 좋은 뇌는 알아보는 콘셔스니스가 있고, 아이들에게는 학교 교육과, 연기로서의 좋은 뇌를, 그들 머리에 심어주는 부모가 되었던 것이다. 사탄은 모든 틈을 파고드는 먼지와 때와 같아서, 드디어 예수님을 원망하는 십자가에는 있는 것이다. 그것이 좋은 말인지, 아니면 슬픈 것인지, 아니면 높이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멀쩡한 눈을 갖고 있다가, 남의 뇌가 힘이 빠지고, 사탄의 의지가 정신을 덮으면, 눈이 괴물의 것으로 변하는 것이 그렇게 인상적이었다. 그것이 그렇게 가슴 아팠다.

 

문학하는 사람을 경찰을 시키고, 어떠한 목적에 따라, 임무를 달성하게 하는 것도 매우 신비로운 결과들을 우리에게 가져온다. 그리고 드디어 소설을 쓰게 하면, 아무래도, 옛날처럼, 인용의 권위라든지, 형용사가 용사라는 집에서, 일종의 오바로크 효가, 빠져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처음이 낫다는 이유로, 훌륭하여서, 사탄에게 뇌가 지배를 받는, 그와 같은 뇌의 층위는 경험하지 않는다. 대신에, 문약하고, 그 맨 처음의 기저가 지울 수 없는 것으로 자리하는 것이다. 생각하고, 자성하고, 국가적 근본에 대한 명상으로 치고 나가지 못하고, 그와 같은 문약성이 드러난다 싶으면, 모순적으로 다시, 눈빛만 겨우 사탄을 면한 것들이 묘사되곤 한다. 예수님의 옆에서, 십자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수님을 위하는 마음씨는, 그 모든 세계 공통된 것들이, 먼지처럼 사라진다 해도, 남는 것인 것이다. 그래도 손은, 가시와 같고, 나무 방망이와 같고, 쇠못과 같은 것이다. 다만 표시만이 아니라, 그것은 진정으로, 양심적인 것을 뜻한다.

 

그리고 경이로운 인간 영혼의 높이는, 마치 남미의 아름다운 피라미드들과 같아서, 이 두 경찰들 모두가, 양심을 택할 때가 될 것이다.

 

마태복음은 경이롭고, 희한하고, 문경이라는 마지막 순서처럼, 오직 문학적인 것이다. 그것을 우리가 순수문학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우리는, 내가 하는 말들을 듣고, 경험하고, 기억하고 하면서, 어째서 그것들로 흥분하여서, 서점에 갔다가, 책을 샀다가, 집에서 읽고자 하면, 죄의 잘잘못을 따지는 법정을 통과하여서, 남는 것이 없는지, 실감하게 되는 것이다. 분명, 어딘가에는, 있고, 보고, 배우고, 읽고, 쓸 수 있는 것인 것이다. 그러나 교회에 가면, 지나치게 예민하고, 과도하게, 예민하면, 스윗트홈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다시 유교나 불교에 간다는 것은, 사도 바울의 말씀처럼, 다시 초동교사의 가르침을 받는 것과 같은 것이 되는 것이다. 만일 우리에게 사탄이 없다면, 마음껏 유교나 불교에 갈 수 있을 것이다. 이미지즘 같은 것. 파사현정 같은 것.

 

 

사도세자 같은 것......

 

 

 

이번 새해 벽두에, 그와 같은 삼천궁녀가 내렸나 싶다.....

 

국왕에게 반말하고

그런데도 사랑받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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