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소설의 세계: 바디소리, 이원규
내가 국문학생들을 볼 때, 나의 배다른 아우들, 혹은 시시껄렁한 화랑의 후예, 그렇게 보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이다해. 우리가 자기 과의 여학생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어째서 국문학과에 키 큰 아이가 있는지, 궁금할 때가 있지 않은가? 전자과의 시험을, 전기과에서도 볼 수 있다는, 내가 잘 모르는 내용이 있는 것처럼, 분명 이웃하는 학과가 있는 것이다. 불문과와 독문과가 축제를 같이한다고 해서, 경찰이 와서 특별하게 조사할 일은 없는 것이다. 경찰을 적으로 만들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플라타너스 나무의 잎이 떨어질 때, 가장 먼저 보이는 벽돌과 창문, 그것의 수채화와 같은 사랑의 대상이 되는 학과가 있는 것이다. 신학과는 그렇게, 슬픈, 음악학과, 그것의 한을, 저 멀리에 있던 나단 장군이, 다만 감성이 성경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서, 성경김, 목욕만 하고 나오는데, 오래가지 못했더라는 이야기는, 그렇게 끊임없이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음악학과가, 답답한, 사나운 말들을 조금씩 풀면서, 그것도 재주인데, 그 안에서도 사랑을 꽃피울 수 있는 것은, 요즘 음악학과가 그렇게 남다른 즐거움으로, 묘하게 부풀어 오른 것은, 어쩌면 신학학과 때문일 것이다. 그것의 실재는 바디소리만 해도 좋다. 그러니까 마침내 극 중 한 인물이 대학을 가고, 문학을 전공하고, 바보선언보다도, 조용한 국문학생 선언 같은, 한국 국문학생 선언 같은 것을 세계 모든 언어로 번역해서 내놓는, 그와 같은 연작으로 나아가서, 장편이 되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지만, 늘 바디소리만 한 것이다. 우리들의 삶이라는 것은. 비유의 힘은, 묘하게 부적당하게, 모든 것에 대입될 수 있다는 것에 있는데, 지금의 비대면 수업이, 누군가의 말처럼, 지식이 있는 고등학생들에게는 큰 문제일 수 없으나, 그것이 아직 없는 초등 중등학생들에게는 지적 능력의 상실을 가져오고 있다는 진단처럼, 우리는 비대면 수업 안에서, 다만 바디소리로 만족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범죄 능력의 증가로 나아가지 않고, 다만 교육 능력의, 지식 능력의 상실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은 만족스러운 일인 것이다. 넷플릭스의 희한한 세계와, 알코올기가 기본인 즐거운 티비 드라마들의 스크럼에 비해서, 비자연적이지만, 결과를 놓고 보면 매우 운명적인, 이와 같은 바디소리는 얼마나 먼가 싶은 것이다. 매우 도식적인, 그리고 명제적인 판단과, 그것의 육체의 호응이 있어야만, 떠도는 배처럼 서핑을 하다가, 바디소리 같은 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옛말에 학교는 작고, 사람은 더 작다 하는 말이 있는 것이다.
사회학과 학생들은 무엇을 배우는지 잘 모른다. 그들이 집단무의식을 공부하고, 군중 속의 고독 같은 것을 공부할 때나, 비상한 옷차림의 남녀 학생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공계, 천문학과 학생들은 칼 세이건 같다. 영문학과 학생들은, 작은 도날드 레이건 같다. 워즈워드와 같은 학생이, 한국 학생인데도, 다만 배움이 깊어서, 학교 정문에서, 전경과 대치하고, 손에 화염병을 들고, 쇼우미더패션, 쇼우미유어패션, 외치는 것 같은 것을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데, 나만 상상할 수 있는데, 나도 잘하지는 않는데, 그것의 인과가 과연 가능하며, 혹은 좌표 최첨단에서는 본질적일 수 있는지 물을 수 있는 것이다. 신학생들이 계단을 내려오다가, 에녹처럼, 천사에게 들어 올려지고, 천사가 되고, 다윗처럼 시온성이 되고, 그렇지 않은 학생들이 무수한 영화들을 가져갈 때, 국문학과 학생들은 TV 프로그램에서 잠깐 답사를 함께 다녔던 정유미처럼, 다른 정유미는 여름방학, 불분명한 조선사, 근현대사에 끌려다니다가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우리가 기쁨을 느끼는 때는, 자기가 젊었을 때 들었던 말을, 늙어서도 듣는 것, 그럴 때인 것이다. 그들도 기쁨이 있다. 지나가는 개미에게, 종이를 말아, 때리지는 않고, 오케이마담, 색종이 작은 것을 말아, 야, 개미야, 그러면, 개미들은 좋아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 모든 것은, 소크라테스도 죽는 삼단 논법이 있기 때문이다. 자연에는 삼단 논법이 있다, 인간에게 그것이 있다, 하는 것은 해묵은 논쟁이다. 자연에 삼단 논법이 있는 것 같다 하는 것이, 이집트의 사람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인간에게 있다는 것을, 저녁에는 인정하며, 아침에는 자연에 있는 것 같다고 주장을 다시 세우게 되는 것이다. 개미는 좋아한다. 젊어서, 고작 그런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조선. 형무소. 광종. 철종. 현종. 박종. 천종. 시종. 단종. 득종. 이종. 그러다가 형무소, 식민지 시절이나, 육이오, 그렇게 돌아다니면, 개미들은 가까이서 들어본 것 같다고 좋아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허울은, 하울은, 허물은, 모래의 성은, 장밋빛 무늬는, 우리의 것이고, 우리 모두의 것이지만, 분명 걱정이 필요한 약점인 것이다. 우리가 약국이 많은 이유가 무엇인가? 지나가는 사람의 멱살을 잡고 흔들어보라. 정유미가, 다른 정유미는 여름방학, 좋은 드라마를 찍고, 사뭇 첨단적인 것을 찍고, 그렇게 동원참치가 되어 사탄과 조선의 허울 지대를 돌아다니는 것은. 그것이 만물의 척도가 되어, 기존의 티비 프로그램들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다만 우리들이 즐겼던 드라마가, 그래서 도리어 최진영, 훌륭한 진영이었고, 나만의 진영이라고 말하는 것은 부끄럽고, 적당하지 않다, 나도 하늘에서 보면 개미와 같다, 무정치적이고, 무사회적이며, 무역사적이었던 것들이 매우 훌륭한 프로그램들이었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드라마, 소설 바디소리가 출항하는 것이, 그와 같은 좌표의 역변이 바로 거기에 있을 때, 우리들의 헤르메뉴틱스는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 헤르메뉴틱스를 배울 때, 사람들은 나를 광명의 천사, 수원의 정종, 위대한 광덕의 빛이라고 불렀다. 해석학은 기존의 신학교에서도 배우는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이, 철학적이지 않고, 신학적이다. 우리가 신학교에서 내려오면서, 천사가 되어, 어쩔 수 없이 누군가의 신랑이 될 때, 그와 같은 존재론적인 흑백은 도무지 사탄이 아니겠기에, 철학과 학생들이 스스로의 자만과 오만, 오만과 편견, 지속가능한 혁명에서 벗어나서, 뭔가를 바라보는 것에는, 분명 존재의 통일성, 유사성,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슬픈 멜로디의 삼투압 현상이 있어서인 것이다. 나는 가장 행복하였다. 최신한 교수가 최신의, 우리들의 느낌의, 리쳐드 클라이더만의 로미오엔 줄리엣 같은 내용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한신대학교는, 화성에 있고, 화성은 바닷가까지 가지고 있다. 그리고 위로 가면 오이도가 있고, 인천이 있고, 강화도가 있다. 사람들은 인정이 많고, 경기도 사투리를 썼다. 그들도 집 짓고 살았고, 개미보다는 분명 사람에 가까웠다. 그들도 티비를 봤고, 그들도 연평도, 북한을 보았던 것이다. 그들에게도, 저 멀리에 걸쳐서는, 국문학과에 입학한 자녀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을 다만 친척집의 회갑연에서 들었다 해도, 우리가 가슴이 뛰는 이유는, 그곳에 분명 피가 많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혈루증 걸린 여인처럼, 누군가는 분명 남은 사람, 닮은 사람이 되겠기에, 시가 만만하게, 짧게 살고 죽어보지 않으련? 유혹하던 소리를, 그런 바디소리를 우리가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목사들의 소리를 듣고, 또 듣고, 해도, 채워지지 않는 것은, 우리들의 태도의 문제일 수 있다. 우리는 그때 전투기를 탔던 것이고, 지금은 겨우 아반떼나, 소나타, 달구지를 타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이 연결되어 있다고 믿고 있다. 우리들은 화성의 돌을 만질 수 없다. 왜냐하면, 연결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큐리오시티. 그러나 언젠가부터, 우리는 대학의 추상적인 구도를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가 제부도의 길목에서, 퀸즈 모텔에서 나오다 보면, 다만 모텔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한신대학교에서 나온 것이다 여기는 이유는, 우리들의 의식이 서로 많이 비슷해서인 것이다. 사람들은 근사한 것을 좋아한다. 근사한 것은, 연결이 자연스럽고, 믿을 만 하고, 그것의 보이지 않는 연결이 아름다워서이다. 우리가 행복한 것은, 유난히 저녁에 사람을 만나, 맛있는 안주에다 술을 마시는데, 행복하고, 얼굴이 밝아지고, 어깨가 가벼워진 것은, 사탄이 멀리 있어서인 것이다. 사탄이 어딘가로 출장을 가서인 것이다. 그것을 가난한 집 가족들이 느끼는 것이면, 얼마나 비극적인 것인가? 사탄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단위 지역당, 그런 느낌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기쁨을 느끼는 것은, 더욱, 천사가 그 근처를 돌아다니고 있어서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런 식의 기쁨이나, 표현, 생각들을 가져본 적이 없다. 오정희의 유년의 뜰이나, 신경숙의 풍금이 있던 자리 같은 것을, 그런 것들을 멀리하면서, 킾더체인지, 바디소리까지 오면, 다만 바디소리만 놓고 보면 빛과 그림자의 우편집중국 같으나, 그와 같은 과정을 만들어 돌아보면, 매우 마음이 홀가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기분은, 학문인가? 빛의 학문인가? 아니면 영원한 불가능한 혁명인가?
작은 배의 엔진 소리와 피아노의 경양 술집은 매우 잘 어울린다.....
우리가 오토바이를 탔을 때, 그리고 탔던 사람이 계속 타는 이유는, 여자들이 반감하지 않고, 도리어 열광하는 이유는,
그것이 그렇게 바디소리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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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 놓고 보면, 김연아와 샤라포바를 학교에서 만나, 차 마시고, 저녁에는 술 마시고 하는 것과 같은데, 그러니 그 없는 세상 공간에, 항상 사탄이 끼어들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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