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에서는 아르보 팰트의 슬픈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기가 영화를 보고 있는지, 아니면 슬픈 영화를 보고 있는지, 아니면
어떤 철학 에세이를 보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우리는, 그리고 나는 한 번도, 면죄부라는 것을
과학적 연구, 의학 연구의 것으로써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것은 석보상절 같은, 포석이었을까?
그것에 관한 타는 궁금증을 가지고, 서점에서 책을 떠들어보았지만,
책이 글쎄, 내용이 하나도 없이, 전부 흰 종이인 것이다.
다른 것들도 다, 그래서 서점 직원을 불러, 이것 출판이 잘못된 것 같은데요 하는데,
직원이 하는 말, 자기들도 그런 줄 알고, 출판사에 내용을 말했더니
원래 책이 그렇다네요. 그래서 흰 종이 안에, 인쇄된 것이 하나라도 있는지 보니까,
무슨 숫자가, 한 중간 어디 쯤에, 페이지를 말하는 것인지
있다는 것이었다. 영화 내용이 너무 골치 아프고,
현실을 고발하는 것 같아서,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자아내는 듯 했다.
원래 책이라는 것은, 스스로가 무화되어서, 갈아먹는 무가 되어서
무책임한 것을 원칙으로 한다 하지만, 그래도, 그것이 최종 낙찰이 될 때까지는
말도 많고, 하소연도 많고, 에피소드들도 많은 것이 아닌가?
그것은 일종의 연금술사 같은 것이다.
그런데도, 사가는 사람이 있었다. 그것을 영어로는 SAGA라고 하는데
어떤 무용담을 뜻하는 것이다.
책을 읽어나가면, 점점 약해진다. 처음의 표지와 같은 활력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책은 표지를 대충 해놓고
내용에서 참 진짜 진짜 승부를 걸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선진국과 같은 하루키의 소설이나 에세이를 갖고
점점 단정해지고 힘이 빠지는 인상을, 느낌을 받는 것을,
자신은 그렇게 달리기를 한다지만, 심심치 않게 우리 사는 공중에다
보고하는 것이었다. 그의 글은 일종의 면죄부 같은, 안정제일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인가......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