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옥의 중국 인구론을 두고 생각하면서
신학대학을 나와서 곳간지기를 하는 것이 상책이나, 두뇌가 살아 육체를 떠나 움직여서, 단지 혼자만 지내도 단단하여 학생 때처럼 공부를 계속할 수 있는 경우, 맞딱뜨려지는 것은 꽤 많다.
젊고 큰 고기들이 무엇보다 먼저 해찰한다. 그들은 부자 청년이고, 낙타 바늘 구멍을 좋아하고, 우리들은 도끼자국이라고 알고 있지만, 서양의 표현이 약간 더 잘 맞는다고 하겠다. 그래서 그들에게 인구는 알지 못할 부의 연대로서의 자기 자신과 도끼자국 뿐이다. 그것은 콘페션. 나도 그렇다. 아니나 다를까.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사람들이 학교 다니고 팬타곤 영화 보는 것과 진배 없다. 인구는 존재론과 같다. 누가 무엇을 위해서 투표하겠는가? 투표하기 전과 후가 사람들의 상스러움이 똑같다면, 우리는 뭘 했는지 모르고, 막대한 선거자금, 선거운동원들이 왜 어째서 육하원칙에 따라서 있어야 하는지 모르는 것이다. 그들은 미국 청년이 뜨면, 보디체크를 감행한다. 모든 이니셜은 알파벳과 같아서, 아무런 마오주석이 생기지 않는다.
김용옥이 언젠가 중국의 인구를 거론한 적이 있었다. 참 나이브하고, 젊은 나이브가 아니라, 나이든 나이브. 숱한 사막 중에 나이브 사막 같은. 중국이 제일 인구가 많다고 했다.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있어도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이차세계대전에 따르면, 성경을 알고, 고전, 클래식을 알아야 인구로 쳐주는 것이 아니라, 투표권 자체가 인구이며, 투표권이 없어도 나이브 사막 같은 보호의 대상이 된다면, 그것의 원리는 대체 무엇인가고 말이다.
서사를 이해하는 힘. 다니엘의 믿음을 상징과 신화로서 해석할 수 있는 학교 교육.
담배 중독자가 아니더라도, 갑자기 흡연구역이 사라진 연유를, 해괴한 설명문과 함께, 따지고자 사무실에 들어갔는데, 지금 없는 담당자를 가리켜 티쳐라고 부르는 상호주의. 그리고 내가 재밌는 비엔나 쏘세지들을 많이 내뱉자, 자기는 설교를 듣는 것이 질색이라고,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겠으니 그만 이야기하자고. 그런 단호주의. 어떻게 담당 선생님인가? 민원이 많이 들어오고,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미관을 해친다고 하는 진정과 그들 손을 들어주는 것이 내게는 오히려 정신병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일정한 고지 기간도 없이, 갑자기 삼십육계조 반박문을 적는 사람이 나와바리에 벌써 천재성을 보이는 학생 깡패지, 무슨 선생이냐고 했다. 우리는 우리들을 가리켜 선생이라고, 좌커니 권커니 한다. 그들에게도 말을 들을 수 있는 것이, 사회에서 보다 악행하는 사람과 같은 일인일투표권 밖에 없는 것이 미약한 자기 셀프 신호가 될 것이다. 아니면 한번도 그런 생각은 안해봤는지 모르겠다.
개눈이 박혀 있고, 그것이 엿보인다. 내가 담배를 일요일 아침에 자주 피웠기 때문이다.
사람의 보이지 않는 조선 투표권은 지식에 있겠는가? 아니면 눈의 감시감찰을 피해, 일정정도 서로 맷집을 키워주는 원탁의 기사들에 있겠는가?
후자인 경우, 지식은 보이지도 않는다. 꼭 살아봐야 그 사실을 알겠다면, 이미 늦은 것이다.
1. 인구는 점점 사라지고, 인구가 지금처럼 팽창한 이유는, 지금까지 지식이 훌륭해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러하며, 그들이 중국의 양대강이 되어 하류에 이르도록, 선한 방향의 기사들이 될 확률이 없었기 때문이다.
1. 티비에서 선비처럼 굴다가, 내 있는 곳에서 적반하장이 되면,
떨어지는 인구가 한 백 명 정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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