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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이야기

과학과 인문학은 어떤 비밀이 있는가?

by 마음대로다 2021. 4. 21.

과학과 인문학은 어떤 비밀이 있는가?

코드명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4번 2악장

 

 

 

 

 

 

 

 

 

 

 

내가 학교를 다닐 때, 사회복지학과가 있었다. 나는 그와 같은 선택과 집중할 때, 집중과 집중의 상태에서 살았다. 사회복지학과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과는 상관이 없대도. 신학과는 복되었고, 대신에 그것의 비밀과 원리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었다. 목사 출신 코스모 폴리탄들 중에 유독 싸가지 없는 것들이 많이 나오는 것이, 여기서 출신이라 함은 변신을 뜻하는 것인데, 어떤 낯선 지정과 공동의 씨츄에이션에서의 힘 같은 것, 내가 글쓴이고, 자기들이 한번 살아있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고 해도, 그들의 원인이 없는 무식함은 때로는 사탄에게서도 힘을 받는 것 같은 것이다. 그것은 분명 목사가 갖는 박정희 정권적인 속성 때문인 것이다. 우리가 연예인을 좋아하는 것은, 정자가 갖는 난자의 성격 때문인 것이다. 그것을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한국말과 연관을 시키는 사람들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우리로서는 그런 것들을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그것에는 정말 피곤하고, 어떻게 하기 힘든 진실까지도 있어서, 가슴이 많이 아픈 것이 사실이다.

 

내 아주 어렸을 때는, 어떤 집에 같은 마당을 갖고, 저마다 방 하나씩, 둘씩, 공동으로 살았고, 내 이웃집이 하나 있었는데, 그 큰 집에 형제들만 몇몇이서 살았었다. 주인집만 방이 세 갠가 있었는데, 그 집에 놓여진 것을 갖고 노는 것을 좋아했었다. 나보다 두 세 살이 많으면, 그만큼 만화책이나, 장난감을 많이 갖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낯선 이웃집에 놀러 갈 일이 있으면, 별로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것이 신기했던 것인지, 어째서 집에 갈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냐고 그 집 사람들이 그러는 것이었다. 그만 가라고, 가라고, 하는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무거워진 발을 끌고는, 방 하나에 어린 나를 제외하고 네 식구가 사는 집으로 돌아왔었다. 좁은 골목에서는, 항상 오징어라는, 흙바닥에 선을 그어놓고, 술래와 재빠른 이동을 경쟁하는 놀이를 하였는데, 어느 때는 너무 격하게 해서, 어떤 아이는 머리를 벽에 찧기도 했다. 머리를 깎으러, 동네 이발소에 가면, 외팔이라든지 하는 만화들이 있었고, 그것을 몇 권 보다 보면, 내 머리를 깎을 차례가 왔다.

 

주체가 그 즈음으로 생겼고, 그 비슷하게 박정희 대통령이 총에 맞고 죽었다.

 

나는 내 집이 그렇게 가난하고, 협소하고 해도, 아이들보다 공부를 잘한다는 느낌을, 발견을, 사실을, 지나치게 겸손하거나, 서복하거나, 생각하지 않거나 하지 않았다. 그것은 집이 열 채짜리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나보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그와 같은 경상북도 경주가 그렇게 나는 좋았다. 나는 과도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적당하였고, 그들도 나에게 적당하였다. 나의 그와 같은 공부에, 나의 기독교도 자리하고 있었다. 어떤 현대 교의학자는 기독교의 삼대 원소, 혹은 요소가, 경전, 사도, 그리고 교회라고 했는데, 그 말을 들을 때, 나는 조금 이상하였던 것이다. 그 말이 맞다는 것에 놀라웠고, 처음 그것의 숫자를 보았고, 신학교와 신학생을 빼는 것에 아주 잠깐 이상한 물체를 보는 것 같았다. 조금은 서복한 느낌이 있었다. 항상 서울대 같은 것들이 있었다. 항상 연세대나 고려대 같은 것들이 있었다. 광주에서는 전남대는 너무 많았다. 전남대는 고등학생들도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니까 실질적인 활동이나 영혼, 기쁨이나, 마당 같은 것은, 고등학생들에까지도 열려 있었던 것이다. 새삼 어딘가에 돈 내고 들어가는 것이, 우리들의 눈에는, 내 눈에는, 다만 어떤 정성처럼만 보였다. 나는 별 어려움이 없이 한신대에 들어갔고, 수많은 학생들이 학교 강의실 빼곡하게 입학시험을 보는 것에, 시험을 치르는 중에 놀라기도 했었다. 어째서 대학에까지 가서 학력고사를 봤는지는, 아직도 알 수가 없다. 내 친구는 약간 구창모를 닮았는데, 그와 같은 지층에서는, 공부가 어려운 법인 것이다. 잘 놀고, 의리가 있고, 일을 잘할 것 같고, 잘 웃고, 그런 것은 시험지에 나와 있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에 그런 것을 중심으로 놓는다면, 시험까지 치를 수 있는, 자세와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 대단한 것일 것이다. 그러니 책만 읽을 때는, 송골매까지도 무시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아무도 책을 읽지 않으니, 송골매도, 블랙테트라도, 변진섭도, 리아도 그댄 행복에 살 텐데, 매우 막중해진 것인 것이다. 원래는 서울대를 목표로 했으나, 계속 성적이 나오지 않아, 그러니 나는 아무런 장애도 없이, 마치 일부러 그런 것처럼, 한신대에 입학할 수 있었다.

 

믿음이 깊은 아이들이, 학문적인 공부를 하다 보면, 그렇게 멋지고, 멋쟁이, 훌륭해지고 그렇다. 그것의 합성을 어떠한 그림물감으로도 표현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그것이 자기가 의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적어도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탄과 천사가 싸우는 햇빛 아래서는, 오래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도 그 즈음으로 우리는, 서복학과 학생들이 지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한신대는 한신대 같은 이들이 지망하기 때문에, 당연히 그 학생들이 이런저런 학과에서 청강을 하다 보면 두각을 나타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일반 대학의 철학과 학생이나, 국문학과 학생이, 비문학과 수업에 가서, 유난히 발표를 잘하는 것을 경험하다 보면, 알 수 있는 것들이다. 신학과 학생들도, 학교에서 급하게 배운, 변유나 사유의 문장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말들이 많았다. 문제는 그것의 간극이나, 그것의 틈, 일종의 빈 틈이나 변(辯) 틈 같은 것인데, 당연히 성경의 서복을 갖고 있어서 그런 것이었다. 그래서 일반학과 학생들이 신학과 학생들이 수업을 신청하거나, 청강하는 것을 내심 좋아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여학생들은 무엇인가? 신학과 학생을 만나는 것을 최고로 하지 않는가? 그것은 그 남편이, 어떤 건물을 갖고 있거나, 교회일지라도, 사람들을 데리고 있거나, 교인들일지라도, 하는 것이 아니어도 그랬던 것이다. 그것은 단지 존재의 강함과 약함의 하모니가, 단지 강과 약의 관계에서가 아니라, 진리의 인도라고 하는, 공동의 관심을 갖고 있어서인 것이다. 그것을 대학 다닐 때, 유독, 하늘을 많이 보고, 구름을 많이 보고, 양산리, 소나무 숲에 숨어있던 진달래 꽃을 많이 보다 보면, 경기도 수도권 예쁘고 가난한 여학생들은, 어쩔 수 없이, 정말이지 서복하게, 당연히 갖게 되는 것들이었던 것이다.

 

학문적 교양은 모든 도시인들이 가져야 할 필수적인 덕성이다. 그러나 학문적 의식은 일종의 살바도르 달리, 내란의 분위기인 것이다. 다 학문을 하고 있는데, 학문적 의식의 보이지 않는 것을 주장하는 것은, 다른 이들에게는 불쾌함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학문적 의식이 필요하지가 않았다. 다만 교의학적 공부가 제시될 뿐이었다. 학문적 의식은, 일반 학문, 그리고 비기독교적 역사, 근대, 그리고 과학까지 아울러서, 그것들끼리의 경쟁이 학문적 의식이었던 것이다. 우리나라도 학문적 의식에 뒤처지지 않았다. 정확히 누가 학문자인지는 아직까지 알려진 바가 없다. 서울대 김형렬 교수, 연세대 박종홍 교수, 고려대 이민자 교수, 포항공대 계은숙 교수가 유명하였다. 우리는 꾸준히 한겨례 신문에도 투고하고 하였다. 그것을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열독하였는지 모른다. 사람들은 인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가 있다 하는 것이 그렇게 맞는 말인 것이다. 우리는 자라나온 곳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영웅적으로 여행한 곳이 있는 것이다. 자라나온 곳은 모두가 있기 때문이다. 영웅적으로 여행한 곳이, 도리어 자라나온 곳의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에서도 아름답지만, 어떤 믿음으로는, 야곱이 그렇게 훌륭한 것이, 그가 그의 아버지와 형제의 증거가 되었기 때문이다. 나름으로는 사회의식과, 학문적 의식, 그리고 비기독교 의식을 갖고, 수많은 글들을 한겨레 신문에 게시하였지만,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그것들의 톱니바퀴는 서로 연결되지 않았다. 마침내 성기가 출현하기까지, 우리들의 논리들도 자아정합적이거나, 만족적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분명 새로움이었고, 사회성의 새로운 형태의 자기 만족성이었던 것이다. 누누이 말하지만, 나의 말은, 나의 말장난까지도, 고급스러운, 움직임의 톱니바퀴를 갖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더 세컨 무브먼트가 흐르는 즈음으로는, 유일하게 한신대의 뽀뽀 동산을 지나는, 환자복을 입은 예수님에게서만, 학문적 의식이 개진되었던 것이다. 그것이 내비쳤던 것이다. 대게의 학문은, 학자는, 그냥 나이 많이 먹은, 양복을 곱게 입은, 아버지가 된다. 오직 기독교에서만, 그것의 경전에서만,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고,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의 아버지가 되었던 것이다. 그와 같은 두터운 사랑으로써, 진정한 학문적 의식이 우리에게 드러났던 것이다. 새로운 경전이, 혹은 교과서가, 대학 교재가, 대학끼리 서로 교재하는 것, 혹은 영어 원서가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냥 있는 것을 쓰는데도, 일반학과 학생들은, 적당한 라이터를 갖고, 한신대 신학과 학생들을 마치 기독교 교육학과 학생들처럼 좋아했던 것이다. 요즘에는 핸드폰에 스키니 스킨 같은 것을 입히기도 한다는데, 그것의 소재를 갖고 있다가 포기한 것이, 라이터를 갖고, 모퉁이의 들뜬 부분을 가라앉히는 모습이 매우 경망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다. 마음은, 그와 같은 경망함을 많이 갖고 있고, 또한 좋은 사랑을 많이 갖고 있다 보면, 그것들이 우리들의 훌륭한 바울서신이 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영화를 보지 않아도, 그것을 예측할 수 있고, 요즘 드라마들이, 나의 좁혀진, 공통의, 그러나 내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주제의 산에서, 하나씩 영화 이름을 정하는 것에, 한없는 영광과 기쁨을 느낀다.

 

서복은 그와 같은 서복학과였던 것이다.

 

학문적 의식이란, 아파 누워있는 사람에게 전해지는 전투 식량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탑기어 같은 쾌락 월드가 없진 않다. 좋은 옷을 입고 나온 여성 게스트들을 내가 좋아하고, 다들 좋아하지만, 그러나 내가 너무 많은 클래시컬한 괴조음들을 지금까지 내비치다보니까, 진리의 진정성 문제 같은 것, 금세 차분해지고, 사람들이 서복해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아무도 학문적 의식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놀이동산에서 잃어버린 것은, 어린아이에 대한 그와 같은 포부였을 것이다. 다만 먹을 것만, 입을 것만 잔뜩 가져다 준다고 해서, 좋은 학원에 많이 보낸다고 해서, 그것이 그대로 합성이 될 것이라고는, 세상 어떤 부모도 믿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직 기독교에만 학문적 의식이 있다. 유교에도 있다고는 하나, 문건이 없고, 불교에도 있다고 하나, 증거가 없다.

 

 

내가 코흘리개 어린아이일 때, 넓은 광주 시내를 환한 버스를 타고 지날 때, 사태 이전의 그와 같은 풍경은, 다시금 너무나 넓고, 환하고, 일종의 김환기 화백의 살아있는 동양화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

 

 

옛날부터 문건 안에서의 국제성라는 것은, 작품이 갖는 등급의 간접적인 제시이기도 하다. 그냥 외국을 싸돌아다니는 여행기라면, 만일 그렇다면, 최고의 작품이 될 것이다 할 것이다. 그것은 의도적인 것이고, 억지스러운 것이다. 문제는 예술적인 것이고,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선험하는 것 같은 느낌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사마천 사기의 서복이 그와 같은 슬픔의 극치가 아닌가 한다.

 

삼국사기에는, 왜구는 기억이 없고, 다만 일본이라는 이름만 나온다. 그리고 삼국유사에서나 왜구들이 나오고, 도리어 일본이 좋게 나온다.

 

 

책이 별로 없이,

 

나사로는 항상 그 말이 우습고, 가버나움은 항상 친구 같고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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