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성리학적 육체에 관하여
성리학이란 불교에 대척점을 두고 있다. 불교는 불연기 무루종자에 관한 지식이 있어서, 그것이 여하한 경험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이기에, 거의 고백적인 성격을 가진다. 그러니까 내부고발자의 느낌이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성리학일지라도, 얼마나 불교의 힘이 가공할 만한 것인지, 조선 오백 년 성리학의 역사를 보면 알 수가 있다. 나이가 들면, 젊은 것들을 찾고, 남자로 있으면, 여자가 항상 어떤 피해피밀 같고, 남자가 현대 철학을 하고 있으면, 그렇게 여자로 변신해서 사극들을 주구장창 찍는 것이다. 이런 말도 하다 보면 지치게 되어 있고, 글도 따라 힘을 잃고 끝날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고발은, 어떠한 사람의 손가락에서도, 키보드에서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월미도의 빙빙 도는 놀이기구처럼, 생각으로는 가능하지만, 분명 뭔가도 보지만, 사랑도 하고, 술을 마시고, 관심이 그렇게 의심과 탐구의 면에서 같다고 하면 찌찌뽕을 하고, 더운 여름날 얇은 속옷을 입었는데, 남자가 찌찌뽕을 하면, 여자가 놀라지 않겠는가? 옛말에 감각은 하늘이라고 했다. 옛날에는 손목만 잡아도 결혼을 했다 하는데, 그것은 나중에 바람을 피웠다는 것을 모르쇠 하기 위함이 아닐 것이다. 별다른 도시의 풍경도 없는 시골에서, 남자에게 손목이 잡힌 여자에게 즐거울 것이 따로 없을 것임을, 사회 전반, 공중의 생각이, 그 사실을 잘 알아서일 것이다. 성리학은 그렇게 사이비 불교와 싸우면서, 스스로의 어린 유교와 싸우면서, 유식 불교와 싸우면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남의 힘 같다. 나의 힘이라고 하기에는, 나도 아는 것이 없고, 존만한 오월을 맞이해서, 너무 힘들다 싶다. 여자들이 어떤 식으로든지 힘을 얻기 바라는 마음이, 또 하나의 마지막 성리학자의 허락이고 소망이다. 나는 항상 해리포터 소설들을 갖고, 사람들이 인터넷에다 뭐라고 씨부려싸는 것이 신기하다 했었다. 가난했다가 소설을 써서 부자가 되었다는 말을, 내가 그렇게 가난할 때 얼마나 공중파에서 파멜라 엔더슨처럼 말했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보면, 메트릭스 시리즈가 좋은 것인가? 그렇다면 김용옥 시리즈가 좋은 것인가? 장이모우 감독의 더 월은 보는 기쁨이 한정이 없었다. 그것은 중국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확실한 지식과 경험을 갖고, 붉은 수수밭에서 일을 했던 경력의 사람이, 일종의 월리엄 데포우처럼, 이런저런 쓸데없는 국제성 안에서도, 본질적인 힘을 보존하는 방법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일종의 산문적인 산문적인 글쓰기에나 일가견이 있지, 급발진 같은 것, 사람들이 남의 얼굴에 자기 코를 묻고, 이도저도 아닌 이어도에 살다가 나오는 문학 경험을, 그와 같은 작품을 만들 수 없는 사람으로 나를 인식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그렇다고 말을 해주니까 가능한 것이지, 순간적으로 악한 기둥을 찔러대는 사탄과 싸울 수 있는 힘을 그들은 근본적으로 가지지 못하는 것이다. 일종의 허균도 그랬었다. 허균도 소설을 쓸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다만 성리학자이고, 학자이며, 관리이고, 허난설헌의 동생이지, 작품과 같은 심각한 차원의 희롱은 해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신하들이 저녁 늦게 경연을 하다가, 서양 소설을 읽고, 그와 같은 번뇌와 낙담을 감추지 않자, 용자필맹이라고, 임금이 결단하면 신하가 따른다고, 내가 반드시 써보리라 했을 것이다. 전쟁은 작품과 관련이 있다는 구조주의적인 인사이트의 절정에, 다행히 그들 모두 올라섰던 것이다. 그래서 한글 소설을 써서 읽히니, 허균을 찢어 죽여야 한다고, 동해안 오징어보다 맛있다고 했을 것이다. 그러니 모든 작품에는 원인과 주제 그리고 생각과 작가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작품을 읽고 기쁨을 느끼는 것은, 가난했던 여자 작가가 작품을 써서 부자가 되었다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런 말을 미친 것처럼, 정말 미친 것처럼 반복하는 간호사 메쓰가 얼마나 싫었는지 모른다. 모든 작품에는 원인과 주제, 그리고 생각과 작가가 있는 것이다. 그녀의 작품에는, 나의 고통이 반영이 되어 있었고, 증오, 일종의 아랍 전투조직 나프탈렌, 하찮은 시리즈 같은 것이 있었다. 생각해보니 미국 무슨 시리즈 프렌즈도 나의 고통과 함께 달렸던 것 같다. 이것들은 정말 미친 것들 같았다. 어떠한 정보력도 없고, 사태의 개선이나, 문제의 치질 같은 것을, 그냥 자기들 친숙하고 익숙한 세트에 프렌즈 하는 것 같았다. 인간이란 미장이들이 벽에 프렌즈 하는 것 말고는, 마지막 형태주의가 도무지 없는 것이다. 그것이 무슨 뜻인지, 어떻게 아는가? 누가 아는가? 알아서 도대체 산을 가는가? 아니면 언덕을 가는가? 예수님의 언덕이 세상 모든 산보다 높은 것은, 테오티후아칸의 모습과 거의 일치하는데, 사람들이 항상 제로 상태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영어를 공부할 때, 우리가 항상 제로 콜라가 되는 것은, 그나마 탄산이 있으면 나으나, 그것마저도 뚜껑이 열린 상태가 되는 것은, 기초적인 회화를 배우는 단어와 문장들이 항상, 우리들의 언어장애와 비정신 상태와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어눌하고, 바보 같고, 뭘 달라는 말도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인데, 서양 여자가 지금의 키보드, 진품명품의 다라라락탁탁 하는, 택시비 요금 미터기 소리 같은, 느낌 같은, 달리는 말의 모습 같은, 그렇게 세상 유창하게 말을 하면, 당연히 기초적인 장수들은 목숨을 잃고 마는 것이다. 우리가 공무원들에게 목숨을 잃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것이 기초질서이기 때문이다. 같은 패턴으로 우리가 인식하는 것이다. 그래서 서양은 일종의 언덕 작전을 펼치는 것이다. 언덕이란, 점점 더 누군가에게는 고지가 되는 것이다. 군대에서 고생했다는 말은 좋은 것이 아니지만, 갈수록 군인들이 피지컬이 나약해져서 나오는 것은 불가피한 것일 것이다. 대신에 대학에 들어가서, 스스로의 철학 능력이, 송골매적인 국문학적 출구가 차단되고, 겨우 보고서나 쓰면서 세상에 면피하는 것은 일상이 되어 버렸다. 어떠한 선생도 선생 같지 않은 어린이 고어 장르의 소설을 갖고, 어린아이들이 읽겠다고, 진을 치고, 어른들이 재밌다고 나불대고, 그렇게 싱가폴, 홍콩, 샹하이, 천진, 미얀마, 뉴질랜드, 오클랜드, 요하네스버그, 카트만두, 우리나라 오삼불고기들이 그랬던 것이다. 한번 고어 장르를 쓰고, 그런 면에서 떠오른 사람이 하루키인데, 댄스댄스댄스 같은, 올웨이스의 숲 같은, 거기서 나오코가 주인공의 성기를 빨아주는 고어 장르에서, 나중의 소설들이 현격하게 수준이 상승되는 것은, 그리고 올웨이스의 숲에서부터 이미, 좋은 세포와 단층, 표현과 빛깔들을 갖추고 있었던 것은, 처음이 아무래도 비늘이 많은 용과 같으나, 보편적인 인간이란 늘 전라남도 보성과도 같이, 아름다운 것이라는 증거 같은 것일 것이다. 사람들은 지능의 언덕 현상으로 갈수록 짓눌리고, 넷플릭스와 같은 총체에 이르러서는, 경험과 지식의 보쌈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일본이 그렇게, 슬픔의 극치에 이르러서, 양가적이다. 해리포터의 독자들이 나중에, 어떠한 원인을 갖고, 주제를 갖고, 생각은 없는 채로, 사탄의 마리오네트 작가가 되겠는가? 과연 해리포터가 그와 같은 것의 모든 죄악이 되겠는가? 악의 근원이 되겠는가? 내 대학 때 교수님 이름 중에 박근원이라고 있었다. 나는 별로 친하지 않았다. 이렇게 분석의 틀을 가져다가, 섬세하게 선을 긋고, 표를 정하면, 해리포터가 다만 재미주의의 소설이 아니라, 학교 생활에서 당했던 공포적인 것의 고발처럼도 느껴진다. 그러니까 건전한 감각의 사람들에게는, 처음부터 꺼림칙했고, 사람들에게 보지 말 것을 권할 만한 것이었다.
이 존만한 세상에
작가도 없고, 평론가도 없다.
사탄이 또 하나의 기둥을 뉴스와 방송에 심으면, 이상한 내용들로 소설을 쓰는 여류 소설가들의 세상이 그 옆으로 회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사탄과 문장이라는 것은, 별다른 사회성이 없이, 낭만성이나 상상성 안에서는, 영원한 대출이 가능하다. 처음에는 사도의 설교를 듣기 위해, 소피스트의 말과 가르침을 배우지만, 나중에는, 마치 정해진 인생 혹은 남생처럼, 소의 피가 아닌 것 같은 것에서 허우적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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