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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은 황제인가?

by 마음대로다 2021. 9. 19.

 

 

 

 

사마천은 황제인가?

 

 

 

 

 

 

 

 

 

우리가 이렇게 깊은 서검은구록의 단계에까지 이르러서야, 발견할 수 있는 것을 두고, 뒤늦은 발견이다, 혹은 소용없는 발견이다, 불난 집에 우장춘이다 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가 사마천을 우습게 여기지 않았는가? 웃음이란 무엇인가? 루씨엥 골드만은 무엇이고, 어떤 서양 작가의 소설 제목 농담이란 무엇인가? 나의 이와 같은 표현은, 기법은, 기가 차지 않을 수 없다. 정말 농담 같고, 쿤데라의 농담은 아름다운 농담, 지적인, 현학적인 농담이라면, 나의 농담은 가시가 있고, 뼈가 있고, 그것들로 사람들을 다시 살려낼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우리는 동양으로 죽는다. 그것은 사탄과 함께 살고 있는 서양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마석을 우습게 여기지 않았는가? 혹은 마산을,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우습게 여기지 않았는가? 스쳐 지나가는 유닐버스가 얼마나 많은가? 우리가 고대 노예처럼 지내지 않는 것은, 그와 같은 스쳐 지날 권을 지급받아서인 것이다. 국민 재난권 같은 것을 사람들에게 잘 나누어 주어서인 것이다. 대신에 스쳐지날 권을 많이 쓰다 보면, 우리들의 정신도 그처럼 남은 것이 없게 되는 것이다. 고대는 노예들과 같아서, 사마천의 사기가, 그것의 고고학적 증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들의 사기는, 저자가 불분명한, 나중에 문열 김부식이 저자의 이름이 되었던, 그것은 많은 것을 기억하는 것 같지 않다. 적당히 인용도 잘하는 것 같고, 서로 들어맞으면, 그날 저녁에는 주지 스님을 모셔다가, 고기반찬에다, 술도 할 것 같다. 그러나 역사적 인물 사마천의 사기는, 그렇지 않아서, 그 모든 사람들의 이름이, 다 불쌍한 발들 같아서, 일일이, 일일이, 정말 일일이, 닦아주고, 신발을 신기고 하는 것 같은 것이다. 신기라고 있지 않은가? 사람 이름을 말하는지, 아니면 신기하다는 신기인지, 아니면 지명을 말하는지, 말하면서도 기억을 상실하고 말았다. 우리들의 왕권은 사마천의 우주를 알지 못하고, 우리들의 스쳐지날권을 모두 소진하고 난 뒤에서야, 사마천의 왕권을 알아보는 것일 수 있다.

 

사마천의 사기는 읽을 수 없는 것이다.

 

거기까지 살아있는 관심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오직, 중국 사람들에게만, 의무가 되고, 사랑이 되며, 유학이 되고, 애착이 되는 것이다. 애증이 되고, 좋아하고, 사랑하고, 또 좋아하고, 잊었다가 다시 좋아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중국 사람들의 문장은 예로부터, 예수의 높이가 아니면 가혹하리만치, 수준이 떨어지는 것이 운명처럼 되어 있어서, 사마천의 사기는, 떨어졌다 싶으면 솟아나고, 솟아났다 싶으면, 떨어지는 것으로 보이는지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시간이 되어주고, 안정과 후원이 되어주며, 때로는 발견과 새로운 사기의 근원이 되어주는 것이다.

 

모든 대상은 나의 죽음을 보고 있다.

 

 

 

지눌은 우리들처럼 이상한 이름의 시간에, 다시 태어나는 이름 같다. 우리는 죽음에 짓눌리고, 시간에, 재미 없는 시간에, 그리고 모든 드라마 영화 그리고 액션 영화의 사탄의 연결에, 그 사실에 짓눌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철학을 다시 하는 것 같고, 모든 스토리들의 진위 여부를 따져 묻는 것에서, 그 모든 철학 시험을 다시 치르는 것 같다. 우리가 학교 수업에서는, 철학적, 과학적 진위 여부를 묻고, 사실과 진리의 차이 같은 것을 겨우 가르다가, 티비만 봤다 하면, 모든 것을 망각한 채, 무조건 빠져드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어느 누가 검은 태양, 아프리칸 썬을 두고, 사마천의 사기라고 말하는가? 우기는가? 어느 축구부에 주장이 세 명이 있는데, 그 모든 주장들이 주장하는가? 주장만 주장하고, 다른 선수들은 그냥 사랑의 선수들인가? 우리들의 사기가, 우리들의 모든 지식과 지혜, 그것들의 경전이 사기라고 말하는 것이면, 우리는 늘, 몇 개의 것은 그렇지 않고, 반드시 그렇지 않으며, 사기라고 주장하는 것은 과장된, 선수, 혹은 주장이라고 여겼지 않은가? 아닌가? 그런 계단은 나만의 계단이고, 사랑이었는가? 나만의 독백이었는가? 우리가 검은 태양, 아프리칸 썬을 두고, 사마천의 사기라고 주장하는 것은, 가볍게 말을 하고, 시작하며, 생각하는 것은, 대상을 두고, 나머지 모든 사탄의 가능성을 배설물로 여기기 때문인 것이다. 우리들의 그와 같은 극단적인 자유는, 오직 진리를 향한 맹렬한 투쟁인 것이다. 누구도 그와 같은 극단적인 공간, 혹은 우주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한 마디도, 그 흔한 대나무의 한 마디도 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티비만 있고, 티비는, 사탄의 지배에 있다고 여겼으나, 아직까지 주자는 티비를 즐겨보고, 그렇다면 티비와 주자는 친하다는 것이 아닌가? 항상 매도하고, 공격하고, 모함하고, 이번 킹콩과 고질라 영화에서처럼, 그랬다고 여겼지 않은가? 그 사실만, 그와 같은 존재론적, 정치적 사실만 기억하고,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 출근도 하고, 출근 도장 찍고, 학교에도 갔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데, 멀리서 보면, 그와 같은 대치는 분명치 않고, 우리가 만화책을 몇 권 보고 잊었다가, 다시 만화방에 가서 읽는다고 할 때, 봤던 것인지, 잘 모르고 시작하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주인에게 그 내면적인 사실을 고백한다고 해서, 경제적인 사정을 어떻게 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들의 기억은, 감각에 약하고, 어떤 대사처럼, 사탄의 영역처럼, 기억은 그렇고 그런 것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를 포기하고, 티비의 편에 섰던 사람들이, 한국에서 먼저 긴장하였고, 늘 영화나, 영화, 드라마 같은 것으로, 늘 오바했던 것들이, 대통령만 오바마, 벼락에 맞은 것처럼 놀랐던 것이다. 아이들은 춤을 추고, 이편저편, 위아래, 위위 아래, 설정되는 것을 무한하게 거부하는, 슬픈 좌표를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종묘적인 소생일 수도 있고, 지금까지도 내전인 것의 증명일 수도 있다. 우리는 한류라고, 한전이라고, 그런 것을 좋아하였던 것이다. 아직까지도 원시이고, 아직까지도 아프리칸 썬인데도, 우리는 한류가 세계적으로 그런 것으로 좋아하였던 것이다. 스며드는 것을 막을 수는 없어서, 새로운 중세, 새로운 사탄의 지배 아래서도, 가느다란 마음이 지속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고, 그것들을 발견하고, 사람들은 좋아하였던 것이다. 동양의 유학자들은, 신진, 소생, 젊은, 대학교 소재의 사람들은, 오직 고전과, 사마천과, 사기만을 보았다. 사기는 깊은 튱격을 주었고, 그들의 사마천이 한참 뒤처지는 것을 발견하였다. 성경을 읽고 좋아하였으나, 귀에 쏙 들어오기는 하였으나, 쓰는 것은 한번 도덕적 행동을 해본 적이 없어서, 절대 불가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작은 스쿠터를 하나 사서, 중국 전체를 두세 번 여행한 다음에야, 마음이 풀리고, 뚫리고, 자기에게 있는 것으로 여겼던 도덕을 회복하고, 그러니까 원래 있었던 것으로 여기는 만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그 한 사람을 보내고, 자기는 여행하는 시간도 엄밀히 말하면, 원효처럼, 유식처럼, 공부하는 시간이다 여기고는, 나뭇잎이 그늘을 만들어주는 오래된 기숙사, 도서관 건물에서, 공부를 하였을 것이다. 그와 같은 슬픈 하연수들이 얼마나 많은가? 모든 드라마는 사탄의 지배와 입장, 그들의 대변들을 실어 나른다. 어쩔 수가 없다. 드라마를 통해 국권 회복을 노리는 무수한 세계 국가들이 모두 같은 입장인 것이다. 드라마를 통해, 국권을 상실하고, 힘을 잃고, 앞뒤를 상실하고, 예술적인 감각을 상실한 다음에는, 그래도 드라마를 통해 그것들을 회복하려고 노력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치고 박고, 싸우고, 사탄과 똑같은, 시간만 조금 늘리는 것 같은 것으로 밖에, 그들에게 남은 방법이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의 문으로 나아가지만, 학교에는 다시 돌아가지 못하고, 늙어서 재입학하는 시스템을 정비하지 않으면, 정말 큰 일이다 싶은데, 깡패 영화, 잔혹 영화로 항상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것의 의리, 그것의 진리, 그것의 불가피한 입각점이 늘 우리들을 유혹하기 때문이다. 홍콩은 지금 그래서 이미 파멸되었다. 한국을 향한 무수한 항공모함이, 우리들에게서 완전히 파괴되지 못하고, 공중으로 들어 올려져, 스스로 작동하고 회전하였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현상들과 사실들을 발견하여서, 중국이, 그리고 동남아가, 갑자기 분짜하고, 반미하고 하였는지 모른다.

 

사마천의 사기는 무엇인가?

 

조심스러운 말과, 행동, 선한 싸움과 기억으로써, 약육하고 약식하자는 것이 아닌가? 우리들의 신체가 반드시, 약한 부분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보니, 사탄의 지배를 실어 나르는 부분들도 굉장히 많이 갖게 되고, 그것을 과연 중국의 역사라고 해도 될는지 의심스러운 점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겨우 삼국지에서나, 우리들 한반도 역사의 기록이, 그것도 아주 짧은, 가능하였다는 것만 봐도, 그 미약한 존재의 시간이 얼마나 처절하였는지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에게서, 사마천의 사기가, 마치 허난설헌 같은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이다. 어째서 공간은 보이는 것 만큼 자유하고, 내가 지배할 수 없고, 반드시 모이는 곳이 한정되어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사마천은 말을 하였다 할 수 있고,

사마천은 말하지 않았다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들은 어떤 진공관에 반드시 들어가게 되며, 나이가 들어서는 뜻도 별로 없는 노래의 가사나 한정 없이 반복할 수가 있다.

 

 

 

우리에게 왕권이 있을 수가 있고,

 

 

어느 시간에는

사마천이 황제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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