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케이 나인호를 보고
시절이 어수선한데, 저번 케이 쓰리처럼 은근슬쩍 모델을 발표하였다. 저번 케이 쓰리도 자주 보니까 마음에 드는 구석이 생기는 것 같았다. 이번 케이 나인도 비슷한 효과를 기대하는 것 같다. 사람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없다. 나씽 스페셜. 그래서 텔미 섬딩. 섬딩 스페셜한 것을 좋아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섬딩 쓰인 전면부가, 그렇게 오래되어 죽은 친구 같고, 연락하지 않은 친구 같고, 우물에 빠진 코끼리를 이백 명의 인도 사람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백오십 명이나, 백 명, 그리고 오십 명만 관심을 가져 도와준다면, 힘이 부쳐 결국 죽어가는 모습을 볼 만한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과연, 어떻게 죽음이 있는 것인가, 의제를 상정하고, 고민하고, 안타까워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게임 전용 컴퓨터라는 코드명을 풀지 못하고 있을 때, 게임 전용 노트북이라는 것도, 대환장 파티 같은 것이었다. 게임이라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어렵고, 리그가 있고, 한국 사람들이 쵝오라고 해도, 절대적인 카페에서의 대화, 남자들 간의 무협지 같은 국제 정세, 이런저런 코드명, 안기부, 국정원, 안기부, 유미지의 무드 포 러브의 템포처럼,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라든지, 여자가 무조건 남자를 좋아한다든지, 그것을 남자에게 잘못한 것을 전가한 것이라든지, 항상 여자는 잘못을 해서, 남자가 뭐든지 잘못한 것이 있으면 그것이 그렇게 궁금하고, 추궁하고, 취조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 오래된 민사고 사법부, 농단, 그런 국제법적인, 법률, 이율곡, 율곡 이율곡 하는 템포도 우리는 좋아한다. 그럴 때 우리는 한시도 진정하지 않는 적이 없고, 기쁘지 않은 적이 없으며, 슬프지 않은 적이 없고, 짬짜면처럼, 짬뽕과 짜장을 동시에 먹을 수 있는 그릇 같지 않은 적이 없는 것이다. 세상 모든 직업과 작업장 중에, 카페가 십 위 안에는 꼭 드는 것은, 옛날에는 무슨무슨 다방이었겠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까고 페고, 그런 것을 할 줄 아는 정신이 되어서, 까고, 페북, 우리들의 두뇌가 카페를 다녀온 흔적에서 어느 정도 배가가 되는 것을 다들 양지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사람들이, 특히 도시 사람들이, 자살한 경우에는, 혹은 자살과 진배없는 정신병적 상태에 있는 경우에는, 희한하게도 가까운 친구들끼리 카페에 다녀온 것이 십 년이 넘은 때가 많은 것이다. 나는 그와 같은 조건의 일종의 파계승과 같다 하겠다. 구마라습의 전기가 안습인 것은, 그것의 작품과 전기가 너무 맞아떨어진다는 것이고, 다른 것은 서양 백인이, 아무리 전기가 풍부한 독일 학자 훔볼트라 할지라도, 한자 하나 가져가지 못하는 것처럼, 인도가 불교의 본고장이라고 하는 것이 그렇게 삶의 실재에 걸쳐, 반드시 훗날, 경찰 수사의 문젯거리가 될 것임을 예상한 느낌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도전 사건은 지금도 있는 것 같다. 불교가 워낙에 사랑이 넘치고, 사랑이 넘치지 않고, 그런 것들의 총본산이긴 하나, 그러나 우리가 마음을 고쳐 먹고, 가장 좋은 사랑을 서로 나눌 수는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아무튼 파계승이라는 조건은 두고두고 우리에게 작은 전기가 되는데, 그것의 참된 본질에 중국과 한국 일본 불교 전체가 도정되어 있다는 것이, 깊고 깊은, 정말이지 깊고 깊은 계곡의 숲과 물과 같은 것이다. 나는 서양 여자에게 아무런 장애가 없고, 도리어 적당한 환장 파티의 사랑을 갖고 있으나, 서양인에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경우에는, 서양인이라는 몰골만 봐도 흥분하고, 화가 치밀어 오르고, 싫고 하는 사람이 우리들 중에는 분명 있을 것이다. 카페의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끓어오르는 강처럼, 타오르는 마음처럼, 끓고, 항상 가고 싶고, 사람이 없으면 카공족이 되어서, 카고, 그리고 공족, 어떤 중국의 소수민족 같은, 카페에 가고 싶은 마음이 어째서 나는 들지 않았던 것일까? 처음의 나는, 처음에도 그랬던 것일까? 나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나의 철학이, 처음, 대학 입학의 겨울방학 동안에, 친구들과 당구장에 갔던 시간을 잊지 못한다. 나는 그때, 딱 소리와 함께, 김영랑, 바깥은 추운, 실내는 이런저런 풀들이 매우 칼라풀한, 앙드레 가뇽의 음악을 마음으로부터 들었던 것 같다. 오토바이는 타는 것이지만, 관상용이 있는 것처럼, 그것에 올라타고, 질주하면 도리어 처음에는 이상한 느낌이 드는 것처럼, 당구장도 일종에 그런 시간이 있는 것이다. 나의 추상적 생각의 추이와 과정, 그리고 소정의 결과가, 그것과 일치하기도 하고, 그것에 일치하는, 작은 틀도 갖지 못한 것에 적잖은 슬픔을 갖기도 하고, 그러나 책을 펼쳐 읽으면, 질주하는 추상적인 공간이 있음을 도리어 응원을 받기도 하였었다. 그러니까 대상은 다양하나, 나는 비교적 그것에 비교해서 하나였던 것이다. 대상이 나에게서, 그러나 나를 향해 크게 있는 것처럼, 행복감이 충일할 때가 없다. 당구는 그러나 바보스러운 데가 있었다. 그것은 마치,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하는 소설의 내용과 비슷하였다. 바보 이반이, 비슷한 알레고리를 만나기 시작하면, 금세 단순해지는 것이다. 그림은 그라데이션이 있고, 그것이 일괄적이지 않지만, 붓터치가 있고, 당구장은 일종의 피자 알볼로처럼, 아주 먼 나라에서는 화가일 것 같으나, 지금 당장 우리가 사는 곳에서는, 별로 말도 매우 단순한 사람들이 빙글빙글 도는 곳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것이 일주일 정도는 되었다. 한 달은 되었다.
케이 나인 이번 호의 섬딩감을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다.
나는 친구들을 당구장에 내려놓고, 도서관장을 향해 갔다. 도장깨기를 하러 갔다. 나는 도서관에서, 일본 유명한 한국인처럼, 달려오는 솽소의 뿔을 잡고 넘어뜨렸다. 나는 직녀를 만나기 위해서, 까마귀들의 머리를 밟고, 하루하루를 살았다. 까마귀들의 머리를 밟다 보면, 비도 오고, 눈도 내리고 하였다. 자주 밟지는 않았다. 그러나 책을 기숙사에서도 읽고, 한적하고 아름다운, 앙드레 가뇽의 슬픈 음률 같은 수원행 전철을 타다가, 책을 읽다 보면, 시인 정지용이..... 아무튼, 나는 손의 힘이 엄청났고, 그와 같은 독서법은, 사실 오랫동안 책을 읽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되었으나,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책을 오래 읽어야 했고, 구마라습의 슬픈, 안습, 전기처럼, 여자와의 사랑에 빠져야 했지만, 반드시 인체의 구도를 자각하여야 했던 것이다. 그와 같은 한국어 손의 힘은, 당구장에서 가끔 풀려나오는 친구들과 대화를 하면서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스스로 글을 써서, 친구를 만나도, 만나지 않아도, 하루하루, 죽을 때까지 늘어날 것이지만, 처음에는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때로는 커피를, 때로는 유자차를, 때로는 카페 주인아주머니가 내놓는 모카빵을 식사 대용으로, 그렇게 다섯 시간을 카페에 앉아, 내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철학자가 될지, 신학자가 될지, 아니면 문학가가 될지, 오직 그것만 선택하게 되는, 그것을 먼저 하고, 그다음 것까지 할 수 있는지 하는, 그런 화려한 우리말 퀴즈의 무대에 내가 있는 것 같았다. 친구들은 말을 잘했다. 그들은 대학생들 같았다. 그리고 적당한 논쟁들을 가지고 있었고, 친구들끼리 그와 같은 문제를 갖고, 살아있는 오대수의 낙지 요리 같은 말들을 주고받았었다. 나는 따분한 편이었다. 그것도 여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카페에서, 구마라습, 전기의 안습, 여자와 잘 수도 있었다. 그것은 그러니까 비유이고, 찬사였던 것이다. 옛날에 우리나라 임금은, 아침부터 신하들을 불러놓고, 가볍게 음식을 먹고, 말을 많이 했는데, 당연히 가정교사가 허술한 신하들보다 말을 잘할 수밖에 없었다. 여자가 많고, 궁녀들이 많아서, 아무리 무술 사범까지 있다고 하나, 그래서인지 이상하게 문법이 좋고, 문학적이고, 그림적인 표현이 많았었다. 신하들은 그렇게 위기를 맞았던 것이다. 눈에서 상수리나무의 잎들이 산란하여, 모두 빠져나가자, 비로소 소수림왕의 본체를 보게 되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마음으로, 궁녀보다 못생긴 아내에게 돌아가서, 슬퍼하고, 이유를 모르는 눈물을 흘리고, 보다 잘해주고, 차를 내놓으며, 젊었을 때보다, 보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니까, 새롭게 그렇게 세상에 태어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나, 매관매직하고, 탐관오리 하고, 주색잡기하고, 사냥이나 다니고, 까투리 사냥이나 다니고,
우리나라의 역사이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거기에만 맞추면, 빠져나올 수가 없다......
그러나 젊었을 때, 대학에 합격하고, 친구와 처음으로 당구장에 가고, 대학에 가서 수업하고, 발표하고, 시험 보고, 그러다가 카페에 가서, 낮인데도 카프리 맥주를 마신다고 하면, 세상에 그만한 부귀와 영화가 없는 것이다.
카페에서 시험을 본다. 그것은 일종의 교수 자격 시험 같은 것이고, 구변 시험 같은 것이다. 여자에게 구변 시험을 패스하면, 그 여자와 결혼까지 해야 하는 엄격한 것이다. 우리가 그와 같은 보이지 않는 교회를 무시하면, 사실 우리들의 영혼, 그것의 팔 할을 없는 것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군대 가기 전에는 다리까지 날씬한 줄 알았던 여자 선배 하나가, 졸업하고, 육체가 너무 끓어올라, 성경의 말씀처럼 이제는 결혼해야 하나부다 했을 때, 다시 보자니까 너무 다리가 짧은 것이었다. 머릿속에 짜장면이, 최고급 짜장면이, 정말 먹지는 못하고, 죽는 줄 알았었다. 그래도 좋은 말을 하고, 호응이 좋고, 생각이 깊고, 성경에 하나님은 외모만을 보지 않으신다 하셨으니까, 노력하여, 그 마음을 가지고자 하였으나, 대답도 시큰둥하고, 도무지 경기를 승리로 이끌지 못하는 것이었다. 한왕이 시덥지 않으면, 육왕을 알아보는 눈이 강제되는 법이다. 그런 것 같은, 그런 여자인 것 같은, 실낱 같은 희망을 주고 있었으나, 내가 너무 바쁜 마음에, 나의 모든 것을 노출하여 만나는 자리에서, 도리어 패북하여 들어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었다. 상승장의 주가를 좋아하는 것은 누구나 하는 것이다. 우리가 카페에서 나누는 대화는, 그런 주식 관련 인간들보다 못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은, 즐거운 사람은, 녹음기와 같다. 그리고 사람은 싫지는 않아도, 좋지는 않아도, 조진호, 상대에게 성적인 만족을 줄 수 있는, 그런 영원한 나라의 영혼과 육체 같은 것을 나눌 수는 있는 것이다. 우리가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가능성을 탐하고, 가끔은 만나고 하나, 실상에서는, 믿음의 실상에서는 그렇지 못하는 것은, 우리들 문학의 영원한 리얼리즘 같은 것이다. 그것이 사실이다는 것이다. 그리고 수가성의 여자가 되기까지, 사람들은, 여자들은, 한왕의 질서를 따르기에도 영혼이 몹시 벅찬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까 콩 심은데, 콩 문학이 나오고, 케이비에스 라디오, 팥 심은 데 팥이 나오는 것이다. 그것은 뭔지 모르겠다.
사람에게서 사람이 나오나, 사람들의 눈에서 소수림왕이 모두 벗겨지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나, 때로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 것이다.
우리들의 고구려본기는 그런 면에서 매우 아름다운 구석이 있다......
우리가 유대인들을, 신약성경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취향에, 그런 민족적인 취향에 다소 놀라기도 하지만,
누구는 그와 같은 카페에서, 페북, 성공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남자가 가난한데, 하지만 그와 같은 소수림에다 여자가 온몸을 투자하는 것이다.......
1. 둘의 사랑이 구마라습, 하지만 불국토에서 꽃 피는......
1. 남자의 소수림이 사실 그냥 상수리 나무 잎이 가을에 마른 것에 불과했고, 여자를 배신하는데, 여자는 그 때문에 여왕이 되는.......
1. 왜냐하면 반짝이는 소수림왕의 옷은 사라질 수 없기 때문에.......
확률은 증거를 남기고,
때로는 허다한 철학보다 무서운 것이다.
남의
홈런 아닌
공즉시공.....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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