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은 세상 모든 부를 갖고 있고, 죽지도 않는다.
그런데 어째서 나이가 조금 있다고 죽는 것인가? 사람들은 글을 쓸 수가 없다. 사탄이 거의 모든 것을 통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따로 통제하지 않아도 될 만큼, 공포에 절여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태권 시범단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그와 같은 아프리오리한 조건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태권단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다만, 글을 쓴다면, 태권단이, 그러니까, 태권단이......
그렇다면 어떻게 지금 세상은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고, 하고 있는 것인가? 그것은, 연기라는 버뮤다 삼각지 때문인 것이다. 거기에서는 죽는 이가 없다. 다만 노병은. 그러니까 죽는 이가 없는 것이다. 알프스. 무엇이 명확하고, 무엇이 진정성이 있고, 무엇이 감동적이고, 사탄이 배제된 인간주의인 것인가? 만일 공중파가 사탄에 점령당했다면, 케이블 티비가 사탄에 조금 덜 점령당한 것일 것이다. 그리고 케이블 티비가 사탄에 점령당했다면, 유튜브가 사탄에 덜 점령당한 것일 것이다. 거기서 나는 사탄에 덜 점령당했을 뿐 아니라, 사탄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전쟁을 치를 준비를 하는, 나의 젊은 시절로 돌아갈 수가 있다. 공중파에서는 철학책을 읽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공중파의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만일 조금 옛날부터, 의무적으로, 그런 한 채널을 만들어 읽어주었다면, 우리는 모두 세상 모든 철학책을, 바가바드 기타까지도 읽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중요치 않게 생각했다. 우리는 우리가 제법 똑똑하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철학책을 뭔가를 잘 알아서 읽는 것인가? 그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늘 문제가 있어서, 읽는 것이 아닌가? 기도하는 마음이 무엇인가? 철학하는 마음이 아닌가? 철학은 철학관에 있고, 문학은 문학관에 있으며, 도서는 도서관에 있다. 그중에 철학관이 제일 불쌍하다. 사람들은 점처럼 작아지고, 마침내 점이 되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대 내게 다시 돌아오려 하나요. 내가 그댈 사랑하는지 알 수 없어 헤매이나요. 맨 처음 그대와 같을 수 없겠지만 겨울이 녹아 봄이 되듯이 내게 그냥 오면 되요. 헤어졌던 순간을 긴 밤이라 생각해. 그대 향한 내 마음 이렇게도 서성이는데 왜 망설이고 있나요 뒤돌아보지 말아요.
보통의 노래에는 힘이 있다. 그러니까 파워. 그러니까 전기가 들어온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전기가 들어오는 것과 들어오지 않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전기차만 해도 그렇다. 일단 그것은 말하지 않기로 하자. 우리가 간첩이 되어, 갑자기 코너에 몰렸는데, 마치 항우의 첩첩산중처럼, 이와 같은 노래가 들려오는 것이다. 우리는 이 노래가 무슨 노래인지, 수십 년이 흘러, 드디어 의문을 제기할 수가 있게 된 것이다. 원래는 티비에는 철학책이 없다. 간혹 있는 철학자들은 이상한 녹음기를 튼다. 그것을 자랑한다. 사람이 녹음기 부품처럼 되는 것을, 반기는 반기문 사무총장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노래가 어떤 경찰 집단의 암시인 줄 알았다가, 몇 명이서 문을 열고 나갔는데, 총알받이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노래는 계속 들려왔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눈이 어떻게 되겠는가? 지나가는 소년 소녀들이 있었다. 소녀가 일단 바람을 피웠다. 그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솜사탕을 사 먹었다. 소년에게는 주지 않고, 자기 혼자 다 먹었다. 그랬더니, 맛이 떨어졌다. 그랬다고 소년에게 말을 하니, 소년은 그 모습이 사랑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둘은 그대 내게 다시 그 노래를 합창하여, 중창하여 불렀다. 그리고 그들이 대치하는 곳에서 멀어져 갔다. 생상의 기로에 선 간첩은, 눈물 콧물이 다 나왔다. 그가 젊었을 때를 생각했다. 김일성 종합 대학을 다니고, 어떤 녀학생을 만나서, 마치 남조선 반동처럼, 손도 잡고, 뽀뽀도 했던 것을 기억했다. 일본 그라비아 잡지를 본 것이 들켜서, 2개월 동안 노동교화소에 다녀왔던 것도 떠올랐다. 대체 뭘로 다시 돌아오라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근처에는 병원도 몇 개 있었는데, 창으로 그 모습이 보였다. 한 사람은 병으로 죽어가고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나이가 들었고, 감기에 들려 잠깐 입원했다가, 마지막을 가족과 함께 하고 있었다. 그리고 절차를 모두 마치고, 차를 타고 집에 가는데, 위와 같은 노래가 방송국에서 나왔다. 모든 것은 사랑이었다. 인민과, 남조선, 그리고 북한, 가수, 젤리 퓌쉬, 펜타곤, 그들은 모두, 비티에쓰, 사랑이었다. 그들은 모두, 귀신귀명례 하는 말처럼, 사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어떤 특정한 인물이 집이 있고, 차가 있고, 연구비가 있고, 해외여행 자금이 있고 해서, 헤어졌던 사람을 자기에게 다시 부르는 노래가 아닌 것이다. 우리가 연구소에서 연구하고 있다가, 연구가 없어지면, 그것은 유명한 말이지만, 우리는 사랑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마치 부러진 화살처럼, 그것도 의미는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유명한 표현법인데, 귀신을 소환하기도 한다. 귀신은 일종의 장르로서, 문학과 학생들이 선택할 만한 소재가 아닌 것이다. 그러나 귀신과 절체절명의 미녀가 만나면, 그와 같은 합성의 차원 같은 경우에는, 멀쩡하거나, 겉으로는, 모범적인 학생마저도, 귀신귀명례할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철학이 귀신인지, 귀싱꿍꼬또, 아니면 철학이 그와 같은 문학의 필연적인 수학적 귀결을 막는 방식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무튼, 그와 같은 간첩과의 오랜 대치 끝에, 드디어 우리나라에 간첩이 사라지고, 그러니까 간첩은 댓글을 쓰고, 세상 모든 사특한 조어들을 남발해도, 문학 능력이 없는 남조선 학생들이 그것들과 아무런 차이를 갖지 못했다. 그러니까 활동할 만한 내용이 없는 것이다. 회사에 취직해서, 분열을 조장하고, 노동자 이기주의를 선동해도, 그것이 그렇게 이미 있는 사람들의 생각조차 따라가지 못했다. 그리고 귀신은 북한 사람들도 무서운 것인 것이다. 우리나라로 귀순을 했다가, 노래를 다시 듣다 보면, 그래서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이다. 사람의 능력은 있는 것이 아니라, 없는 것이어서, 반드시, 마치 부서진 화살처럼, 성난 조류에 휩쓸리게 되어 있다. 그것은 영화적인 기법이기도 하다. 한쪽에서는 나이가 들어 총알받이가 되고, 한쪽에서는 그것을 젊은 아이들이 춤을 추는 것이다.
마치 백조의 호수 같은......
노래가 사탄의 집정관 같고, 살아있는 죽음 철학 같고, 죽음을 돌보는 것 같고, 특정한 인격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사랑 전반에 관한 현상을 말하는 것 같아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노래가 유럽으로 전파되었었다......
사람이 노래를 한다는 것은, 사람이 일단 노래는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이 변했다는 것은, 일단 사람이 옛날에는 사탄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사람이 누군가를 향해, 사랑한다 말하는 것은, 예전에는 다만 마음으로만 사랑했지, 법적 구속력이나, 예술적 표현력이 없이, 다만 어린아이처럼 흥분하는 속마음으로만 사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그 말이 서로에게 잊히는 날이 올 것인데, 그것을 양으로도 대비하고, 더욱 사랑함으로써, 음으로도 대비하자는 것인 것이다. 손잡고 뽀뽀까지 하고 나니, 마음이 식어진다는 사람이 분명, 우리들 주위에는, 그런 이상한 사랑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여자들이 그렇게 그런 남자들을 두려워한다. 만나자고, 만나자고, 그렇게 전화상으로 애걸복걸을 하는데, 막상 여자가 나가면, 남자가 시큰둥한 표정을 지을 때가 있는 것이다. 옛날에는 만나면 결혼까지 해야 했다. 그러나 지금 같은 연애 자유 사회에서는, 그와 같은 주식 전광판 같은 것이 남녀 사이에는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만남을 거절하게 되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발라드 시장은 폭풍 성장을 하게 되고, 사랑은 한류가 되고, 수에즈 운하가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를 애매한 주격의 공포 발라드 안으로 통일시켰던 것처럼, 귀순하고, 월북하고, 귀순하고, 월북하고, 가수가 무슨 죈지, 그리고 사람들은 그런 극심한 전광판이 있는지 실감을 못할 것인데, 드디어 세계인들의 관심을 하나로 만들어 버리게 된 것이다. 문학이나 예술 능력이 없는 노동자의 경우에는, 그 아름다운 사랑 노래는, 망자와 헤어지는 노래가 되기도 한다. 우리에게는 판소리 몇 마당 말고는, 그와 같은 섬세한 노래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들 애국가의 가사도 어느 외국 노래의 멜로디에 처음에는 붙어 있었다. 철학은 그것이 비인격적인 속성이 있어서, 슬프기도 한 것이다. 애매한 인격이라는 것은, 비인격성보다 나은 것이다. 우리가 사람이 죽어서 슬픈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비인격성보다 나은 인격성이라는 것이 슬프기도 한 것이다. 죽은 필립공은 우리들의 고행석과 내게는 애매하게 느껴진다. 고행석의 만화에는 성격주의 연극배우 같은 이들이 항상 등장한다. 문예사조는 너무나 거대하고, 사람들의 거대한 아파트 같고, 거대한 학교 같으며, 거대한 무덤 같은 것이다. 산소 같은 것이다. 고행석의 만화에는, 햇빛은 있으나, 문예사조는 없다. 우리들의 소설도 그렇다. 우리들의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발라드도 그렇다. 아파트 촌에서 아이들을 만나다 보면, 착한 학생들도 보이지만, 커서 뭐가 될 것인지 알 수가 없는 성격주의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대 내게 다시 노래가, 번역이 되고, 산소처럼 이해가 되어서, 그와 같은 통일성 아래서, 그가 죽은 것 같기도 하다. 세상 모든 수상한 죽음들이 다 그렇다. 사탄에게만 부가 있고, 사탄은 죽지도 않는다는 사실이 있기에, 다만 나이가 들어 죽는다는 것이지만, 그런 것이겠지만, 내게는 작은 예가 되는 것이다.
만일 한 달 먼저 죽은 것이라고 한다면, 그 한 달이 내게 이체가 되는 것이고, 그것은 상상이지만, 상상의 흔들림조차, 변화의 한 벽돌은 되겠기에, 열 사람만 있다고 해도, 내가 극심한 차사고를 당했을 때는, 어떤 유명한 볼보 모델처럼, 그 안에서 그 이체된 힘이 죽기살기로 자기 힘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그와 같은 것을, 죽음의 운동으로, 사람들이 보다 사탄의 지배처럼 느끼는 것은 곤란한 것이다.
그처럼 알 수 없는 발라드가 다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노래와 함께, 나와 같은 선명한 비평가도 나왔다고, 우리 사는 세상에, 생각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
“교수님. 그렇다면, 모든 문학이, 시의 짧은 순간 안에서, 혹은 역사와 사회의 흐름, 그와 같은 줄거리 안에서, 반드시 인격이 애매하게 되고, 보편화되어야 하는 것인가요? 물론 지금까지는 그와 같은 경계심이 없이 작품을 대해왔지만 말입니다.”
나는 그 학생의 질문을 듣고, 마치 금강경 같은, 큰 기쁨을 느꼈다. 그것은 어떤 코드이며, 그것은 어떤 가사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정 호흡 동안, 그것이 아무리 짧아도, 돌파할 수 없는.....
나는 어떤 사람에게, 영단어 오소리티가 있고, 우리에게 오소리가 있는데, 그것에는 도무지 우리들의 오소리가 먼저 있었다고 할 수가 없다 했다. 웃음을 머금고 있었지만, 그것이 어쩔 수가 없었다. 둘이 따로 있든지, 그나마 오소리티가 먼저 있었다 해야 한다고 했었다. 우리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잘 모르는 오소리가, 영단어 오소리티의 어원이라고 하면,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기 때문이다.
더러븐 것도 그렇다......
그러나 그것을, 마치 쇼팽의 녹턴처럼, 반기문 사무총장하는 사람도 우리들 중에는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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