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킨개킨: 나의 일본
미국에서 아시아 혐오, 그런 일이 벌어진다고 할 때마다, 나는 통제가 얼마나 어렵고, 성선설이 얼마나 마지막 같은 지를 깨닫는다. 사탄이 그나마 일본을 메이지 유신 시켰을 때나, 우리는 박정희 유신처럼, 작품적 의지가 있는 것을 깨닫는다. 하나는 참깨이고, 하나는 들깨이다. 우리는 들개에게 잡혀 먹힐 수 있다. 열려라 참깨 했던 것은, 열려라 들깨 하면, 술이 들 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통제할 수 있고, 어떻게 진시황 통제를 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세계 모든 역사는 참깨로 거듭나겠는가? 들기름도 맛있고, 참기름도 맛있지만. 미국에서 아시아 혐오, 그리고 후진국 된 일본, 미얀마 사태 같은 것을 보도하지 않으면 될 일이 아니겠는가? 보도. 보도. 보도. 아름다운 이 거리 라는 조용필 노래도 있었다. 우리는 그때, 참 좋은 서울에 있었다. 포도를 먹을 때, 우리는 누군가, 저녁에, 진짜 흑백의 작은 세상 안에서, 누군가 보도 대상을 받는 줄 알았다. 우리는 흑백의 소박한 스테이지가 참 스테이지고, 컬러가 만연한 곳은, 다만 통제가 어려운, 끝이 없는 세상인 줄 알았다. 책도 흑백이 있었고, 아이들의 때를 벗을 때면, 아이들도 그것이, 흑백의 지문을, 장문을, 잘 읽어낼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도 그렇다. 화려한 것은, 유럽의 것이나, 조율이나 비율이 좋지, 우리의 것은 촌스러운 것이 많았다. 화려한 것을 두고, 촌스럽다 표현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자연스러웠던 것이다. 미국 사람들이 호미를 좋아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촌스러운 담요를 좋아하는 것이 조금 그렇지 않은가? 우리들에게 비평가가 없고, 문화비평가가 없고, 아무런 문화 비평학과 훌륭한 교수가 없다. 기가 막힌 교수가 한 명 있어서, 그는 오직 강의와 논문, 출판으로만 말하기 때문에, 누구도 그가 여자를 밝히는 것을, 근대 철학을 하는 것을, 뭐라 하지 않는 것이다. 학교에까지, 화려한 가면을 여자가 쓰고 가면, 그리고 다시 나가면, 때로는 강의실 구석에서 학생처럼 공부하고, 구경하면, 그 여자가 같은 여자인 줄로 여겨주는 것이다. 키가 다르고, 피부색도 가끔 다르면, 우리는 과연 우리들의 좌표가 늘 이와 같은 해안선에서, 물결이 넘나들었는지, 자문단을 구성해서 자문하게 되는 것이다. 고문단을 구성해서, 누군가를 고문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는 좌고우면 하지 않는다. 우리는 한결같다. 그러나, 우리는 층이 다르고, 우리는 차원이 다르다. 우리가 케이 팔만 나와도, 마치 케이 투 정상처럼,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가고, 세계 언론들이 떠들썩한 이유를, 때로는 알기도 하고, 모르기도 하는 것이다. 그것은 비본질적인 것이다. 착좌감 같은 본질적인 것이 아니다. 드라이빙 같은, 어떤 서스펜션, 그런 엔진, 그런 본질적인 것이 아니다. 자동차만 비까번쩍하고, 사람이 만나서도, 정말 로봇의 의태어 같은 말만 하고, 드디어 에이아이보다도 재미없는 대화를 하기 시작하면, 미국 사람 전부가, 서로를 믿지 않고, 사회주의를 더 이상 어떤 가능성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을 것이다. 시황제의 천하통일은 그렇다면, 에이아이 같은 것이었을까? 사람이, 여리고 신약성경에서처럼, 산적을 만나지 않는 이유는, 사화랍시고, 그 귀한 애꾸눈 선비들을 고문해서 죽이기도 하는데, 산적은 그들 중 몇몇은 창자를 뽑고, 그들 중 대다수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좀비 실험이 암암리에 있다고들 알아서, 그와 같은 실험실로 보내지고, 그나마 부활을 거듭하여서, 한 일곱이나 여덟 번의 레서렉션, 그러나 더 이상 반응이 없이 죽는 것을, 불교적 구전으로지만 전부를 잘 알아서, 너무나 상세하고, 모든 것이 유리처럼 되어 있다고 하는데, 중국의 유리창처럼, 그 말을 재밌게 들은 사람들이, 아침에는 일어나, 사람들이 지금 같은 통제에 있진 않았어도, 알아서 산적은 되지 말자 다짐을 하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기아 케이 팔이 세계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슬픔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다. 자고 일어나면, 매력적이 되어 있고, 자고 일어나면, 미국 사람들의 집의 크기와 경제력으로 따지면, 한 대쯤 구입할 수 있는 대상이 되어 있는 것이다. 옛날에는 성능과 에이에스가 해안선이 되었었다. 그러나 지금은 오직 나의 횡경막이나, 들숨날숨, 옷을 고르는 순간 같은 해안선만 있는 것이다. 미국 사람들은 통제를 할 수가 없다. 미국을 통제할 수 있는 나라는, 프랑스, 멕시코, 캐나다? 몬트리올? 오타와? 벤쿠버? 퀘벡? 미국을 통제할 수 있는 나라는 중국, 일본을 통제할 수 있는 나라는 한국, 전라도, 경상도, 세종시, 중국까지 갈 수 없는, 충청도에서도 통제가 되는, 미국을 통제할 수 있는 나라는 영국, 덴마크, 독일, 프랑스. 터키까지도 그런 것이다. 아랍 에미나이트. 사탄의 힘은 너무나 거대하다. 사탄은 통제할 수 있다. 우리가 슬픔을 가눌 수 없을 때, 옛말에 오호통제라 하는 것이 비슷한 것이다. 북한 사람들이 한국 드마라를 보고, 한국 사탕을 보고, 자동차는 역시 달리는 모습이 제맛이지 하면서, 달리는 케이 팔이나, 스타리아를, 유튜브로 보는 것처럼, 우리가, 자기 만의 방에서, 머리가 사탕처럼, 토픅, 서둘러 먹고 싶은 마음에, 얼마나 머리를 깨는지 모르는 일인 것이다. 이미 유체가 이탈이 되어 있다고 하는 것이 나은 것이다. 다만 경제만을 갖고도 그런 것인데, 아무리 하찮은 사탕일지라도, 그것의 대화라는 것은, 다만 저 깊은 다이아몬드 탄광의 원소들처럼, 온통 옆에, 사탄소들만 찡겨져 있는 사람들과는 다른 것이다. 미국 드라마와 영화들을 보면, 시지프스의 메인 소재, 카이저 소재, 조제, 업로드와 다운로드로 죽은 사람들의 숫자가 사실 배제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물속에서 십 분을 넘게 숨을 참을 수 있다면, 눈 앞에서 먼저 죽어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기독교인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기독교인들은 상상력이 너무 단순하기 때문이다. 유교인과 불교인들이 기독교인들을 가리켜 이단이라고 하지 못한다. 마음이 넓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단순하고, 자기가 자기를 가리켜 원단이나 일단이라고 하지 않고, 다만 유교나 카톨릭 불교나 동방정교회 이슬람을 가리켜 이단이라고 하는 것이다. 지금은 그와 같은 분위기가 달라졌다. 드라마 시지프스는, 주자가 가끔 신경질을 부리고, 짜증을 내고 하는 권역 바깥으로, 실제로 사탕이나 수박처럼, 머리가 깨지는 사람들의 숫자를 우리에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옛날에는, 나의 인터넷 집필 초창기에는, 나의 글들이, 면죄부의 성격이 있을 걸로, 실제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기독교적인 원단이나, 일단을 드러내는 것으로 다들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까지도 면죄부적인 성격이 있는 걸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와 같은 회사에는 끊임없이 신입사원들이 생겨서, 걸맞은 회사의 일들을 꾸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세상은 평평하게 이뤄져 있고, 원단처럼 아름답고, 문학으로 가득 차 있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고, 리얼 월드는, 파견자의 재생으로만, 모든 사회적 사건과 경제적 활동이 연결되는 것을, 그 사실을, 그런 회사의 사원들은, 연장자들과 똑같이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원단으로부터 태어나서, 원단으로 다시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지 않겠는가? 한 번도 유교에 빠지지 않는 자. 시황제의 고전에서 벗어난, 포르자에 있어 본 적이 없는 자. 순자는 포르자인가? 아닌가? 순자는 포르자 칠백오십인가? 한 번도 의미를 모른 채, 불교례를 행한 적이 없는 자.
어느 일본의 슬픈 칼럼은, 실은 일본이 지금까지 통제에 불응하고, 따르지 않고, 통제할 만한 텍스트가 없었다고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알리고 있는 것이다. 다만 원인이 불문명한 이차적 경제적 부흥의 기치 아래서, 사람들은 다만 포르자로만 살아도, 충분할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런 시대였던 것이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러나 그런 고백은, 사실 일본에서는 흔한 것이어서, 왜냐하면, 포르자라는 것은 벗어날 수 없는 구조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서, 그 뜻을 알고, 그것을 타는 사람은 없을 것이지만, 아무튼 그와 같은 자기에 대한 날선 고백이라는 것조차, 반복적인 시간인 것이다. 우리가 유재석을 보자. 보지 말자. 옆에 있는 허각이나, 상풀, 강풀, 무예보통보지, 우리가 그와 같은 시간을 보고, 그러는 것이 통제에 따르는 것인가 과연 자문한 적이 있었던가? 그것은 철학 같은 것이다. 그러니까, 그와 같은 시간에, 과연 합당한 철학 같은 것이 있었던가? 묻고 답하고, 한 적이 있었던가? 우리가 한 적이 없다면, 한 적이 없다는 삼단논법에 따라, 필라델피아의 엘리게이터와 똑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와 같은 필라델피아의 엘리게이터는 슬픈 것이다. 사람이 통제가 좋은가? 아니면, 통제에 따르지 않는 사람이 좋은가? 아니면 통제에 따르는 필라델피아 엘리게이터가 좋은가? 우리가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높이가 아니면, 쿠푸왕의 피라미드처럼, 다만 왕족의 스캔들이나 잔뜩 나열하다 보면, 반드시, 우리들의 뇌척수가 일본 사람들의 필라델피아의 엘리게이터가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젊어서 기독교인들이다 보면, 비슷한 성화들을 많이 보았다. 십계나, 프랑코 제퍼렐리의 예수 같은 것을 보았다. 그리고 아라비안의 로렌스 같은 것이, 왠지 비슷하게 끼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실제로, 그것의 의지와, 인터내셔널리티는, 서로 아무런 장애가 없이, 훌륭하였다. 그러나 불교는, 젊어서 불교인으로서, 볼 만한 드라마가 별로 없었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 승아제 같은 것은, 한신대 같지, 사실 우리로서는 뭐가 뭔지 잘 모르는 것이다.
만일 원단이 아니면, 조선 시대의 이런저런 무덤은, 잡풀이 우거진 거대한 뱀들이 하나씩, 혹은 두 개씩, 있는 것만 같다. 우리가 반드시 문을 통과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아폴로가 문에 갔다왔다 한 것이 무엇이고,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우리에게 있는 문은, 한국어 문이고, 아폴로가 한 번 갔다 온 것은, 한국어 문인 것인가? 시지프스는 한국 말이 같지 않지 않은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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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빌딩들은 파충류의 기원을 갖고 있지만, 한국이나 중국의 빌딩들은 무파충류의 것인가?
우리가 고대에, 매우 한동안, 파충류로 지냈다는 발견은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뼈가 거대한 공룡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소인이나, 거인의 발견을, 사실 잘하고 있지 못하는 것은, 등신대의 파충류나, 물에서도 숨을 쉴 수 있는 어족에 대한 열정보다, 그것이 못하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거인족을 하나 발굴하고, 채굴하고 하였다면, 이런저런 세계적인 조약이나 밀약에 따라, 건물이나 편의점에서, 옆에서, 갑자기 수입한 적이 없는 아나콘다가 나타나고, 물에 빠진 지 열 시간이 지나서, 사람들이 다시 저수지에서 걸어 나오기도 하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에게서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은, 이와 같은 무파충류적인 속성이 있어서인 것이다. 광화문 이순신 장군상도 그렇다. 우리 눈에는 잘생긴 장군상으로만 보이지만, 외국인들의 눈에는, 존맛, 그러니까, 고질라나, 킹콩처럼, 거대한 파충류처럼만 보이는 것이다. 우리가 케이 팔, 그러니까 일부러 그렇게 하는 것은, 의미가 아주 없진 않다. 서양이 지금처럼, 하루가 바쁘다면서, 원단이나 일단에서 빠져나와, 아주 잠깐 일본식 이단에 미치다가, 자기들끼리의 공단에서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은, 잠자고 있던 파충류당이, 아주 가끔 유에프오와 교류하면서, 우리들의 정치에는 그런 당이 없으나, 일본의 관방성 같은, 중국의 씨씨티비 같은, 그것들이 명목적인 사탄인지 하는 논쟁이 있었다면 좋았겠으나, 명목적인 사탄의 수학적 함수, 그리고 논리적 인과들을, 구조적으로 연출하다가 우리가, 그러니까 그 내용들을 사람들에게 업로드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서양의 확률지에서는, 매우 놀라운 확률로써 실제의 사탄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과거사이기 때문에, 도저히 청산이 안 되는 것이다.
우리가 목욕탕에 들어가,
자기도 잘 모르는 옛날 할아버지의 흉내를 내도 그렇다.......
그래서 유재석이 옛날 필름을 찍을 때는
파충류가 많이 든다고 했던 것이다.......
그 존만한 우연한 말의 천문학적인 숫자가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토끼가 서양에만 가면
눈알이 빠질 것 같은 형상을 하다가
한국이나, 일본에만 가도
토실토실한 것으로 변하는 것도 그렇다.....
*
원래는
옛날 사진을 갖고
일본이 자기들의 도시의 부흥을 위해서
파충류 파견단을 보낼 계획이었다.
그렇지 않았던 것은
그나마, 동경 같은
좋은 귀가 있어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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