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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야기

금방 몰락할 줄 알았던 영문학

by 마음대로다 2021. 5. 25.

 

 

 

 

 

 

 

 

 

 

 

 

 

 

금방 몰락할 줄 알았던 영문학

 

 

 

 

 

 

 

 

사탄이 문학에 관심이 많다는 것은 경이로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필연적인 것이고, 필연적인 것이다. 그것을 우리가 연적아라고 부르고, 중국 무협의 주인공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인가? 우리가 중국 무협을 좋아할 때가 있다. 그것은 형태는 중국 무협인데, 무협을 쓰지 않고, 가솔린 쓰지 않고 개기름했던 예언이 맞았던 것처럼, 그냥 인물들끼리 팽팽하고, 긴장하고, 세수를 안 하는 리얼리즘은 들이지 않고, 잘 모르는 고대 국가의 역사를 살아갈 때가 아닌가 한다. 워낙에 중국 무협을 많이 봤기 때문에, 그것에 지쳐서 한국 고구려 드라마를 볼 만 한 것이다. 우리가 잘 모르는 감정이 있는 것처럼, 감정은 그런 잘 모르는 것들의 초입이기도 하고, 출구이기도 할 것인데, 출구조사, 잘 모르는 대화도 있는 것이다. 대화역. 그러나 알 것도 같은, 추운 겨울, 어느 날, 드라마 세트장, 신비로운 새가 하늘을 날고, 우리들의 마음이 영원한 피요르드 해안 같을 때, 우리는 반드시 그와 같은 필살의 문학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탄이 문학에 관심이 많은 것이 아니라, 문학이 있고, 영토가 있고, 사탄이 패북하여 들어온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사탄은 철학인가? 철학도 아니다. 일본을 보면 철학인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보면, 문학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그 정도는 알아볼 수 있는 눈이 있다. 수많은 험담이 있대도, 하루키가 비상한 문학가임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독특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고, 항상 세련된 말이 너무 많은 것이 문제가 될 것도 같지만, 집안에 세련된 것을 잔뜩 진열해 놓고 사는 사람을 군사재판에 회부하지 않는 것처럼, 죄목, 집안에 세련된 것이 너무 많음, 그런 식으로다가, 징역 일 년 형 그렇게 말하지 않는 것처럼, 그에게는 죄가 없고, 그에게는 네파의 자유가 있는 것이다. 그것을 우리가 중국 여행을 하다가 하다가, 살다가 살다가, 하다하다 그런 데까지 가게 되면, 그것은 반드시 서북부,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날은 차갑고, 날은 밝고, 빛은 환하고, 공기는 깨끗하다. 공기에 생기는 있는 것 같으나, 생리는 없는 것 같은 것이다. 그럴 때, 우리가 많은 말들을 하다 보면, 왜냐하면 우리는 결코 인간이 아닐 수 없으니, 하루키가 정상이고, 그에게 일본이 있고, 그에게 일본의 미래가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하루키가 문학이고, 그 사실이 그렇게 다행이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에는 관방성, 그러나 철학이 없기로 유명하다. 어째서 그런지 알 수가 없다. 우리나라에도 철학이 없다. 그것에는 부끄러움이 없다. 우리나라는 원래 그런 고급 장르의 부재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있다. 원래 철학은 비소통의 소통인데, 너무 소통만 강조하다 보니, 우리들은 거만하고, 가슴이 프랑스 사람 소통 같아지는 것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 많은데, 때로는 그것을 모른 채로 죽는다. 우리들에게는 너무 갠지즈강, 갠역시, 자주 있는 일이라 슬픔의 상대성조차 얻지 못한다. 그렇다고 사탄이 신학인가? 그것에서는 눈이 번쩍 떠지는 것이다. 결국은 이와 같은 지름길을 알기 위해서, 공부는 하지 않고, 늘 목욕을 하고, 피를 흘리고 했는지 모른다. 사탄이 철학을 익히면 천하무적이 될 것이라고 염려하였다. 그와 같은 흔적은 우리 사는 지구 곳곳에 남아 있다. 모든 독재는 철재를 인간에게 어떻게 하려는, 영원한, 부단한, 지치지 않는 사탄의 실험들을 갖고 있다. 일종의 오버워치는 아니고, 오버인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죽은 것도, 실은 김재규에 의해 암살된 것이 아니라, 쾌락의 피안에서, 마지막 도전 정신을 갖고, 가슴에 총탄을 심으려다가, 그런 어떤 독특한 철갑을 실험하다가 죽은 것일 수 있다. 임자. 총 한 번 쏴봐. 내가 염동력으로 그것을 막고, 떨어뜨릴 수 있지. 그런 러시아 초능력 같은 것을, 그것을 에스피라고 하는데, 자랑하였던 것일 수 있다. 그런 것이 철학이다. 자기가 자기에게 쏜다니까, 누군가 대신 쏘았고, 볼쇼이, 사람들은 그 사실을 보았다. 총알이 순간 멈췄던 것이다. 박정희는 소년처럼 웃었고, 그러나 총알은 더욱 팽팽하게 나아가, 그의 가슴을 뚫고 말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와 같은 장르를 사람들이 도무지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할 것이니까, 내가 죽였다 그렇게 소리지른 것일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철학이다. 철학은 비루하고, 철학은 슬프고, 철학은 철이 없다. 영희. 철이. 그리고 메텔.

 

문학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다만 확률적인 것이다. 철학이 신학의 그림자, 그것도 신학도 아닌, 괴력난신에게만 관심을 갖다 보면, 반드시 그것에서 하늘을 보게 되어 있다. 문학에 관심을 갖는 것은, 그나마 사탄이 자기들의 재산과, 먹을 것, 그리고 제한적이고 정확한, 낭비가 없는 실험을 위해, 개체수를 세는 것과 같은 것이다. 문학은 필연적인 것이고, 마지못한 것인 것이다. 일본이 철학이 없는 것이, 지름길을 너무 빨리 익힌 나머지, 원자폭탄이 터져서인 것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문학이, 전투기가 되고, 원자폭탄이 되는 것들의 살바도르 달리, 자유연상 기법 같은 것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집만 있는 것이 아니고, 가난하고, 강요되고, 일종의 남은 자 사상 같은, 남은 밥을 먹는 사람들의 시간이 있는 것처럼, 남의 집이 있는 것처럼, 얼마나 많은가? 아파트에서 내려다 보면, 죄다 남의 집인 것이다. 그런 것처럼, 그들이 그런 어려운 길을 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사탄이 신학을 할 수는 없었다. 사탄이 신학을 점령했던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자기에게 아첨하는 무리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렇게 오버워치, 오버액션하는 것 같았던 예언서들이, 예언서들까지도, 자기의 잔인한 영광을 조금도 드러내지 못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자기의 입맛에 맞은 것 같았으나, 세상 모든 사건과 사고 앞에서, 요리사는 자기가 요리를 하고, 자기가 먹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을 돕고, 혜민서, 여자와 어린아이, 그리고 노인들에게 먹이는 것이었다. 사탄은 굶주림이 무엇인지 처음 경험했다고 한다. 상당한 사탄이 굶어서 죽었다는 것이 그 시절의 신학과 성경의 영광이었다. 성경이 사탄으로 점철된 것 같은 느낌은, 정당한 것이고, 그것이 야당이든, 복수정당이든 간에, 한 구절, 한 구절, 양장으로 읽다 보면, 사탄이 물리쳐지는 것도, 역사적 사실인 것이다. 이세벨은 영원한 숫자이다. 항상 이세벨 생각이 난다. 그녀는 개들을 좋아했고, 맹수들을 좋아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없고, 호사가들이 없고, 카메라 기자가 사라진 다음에는, 맹수들 옆에서 오랜 시간을 지내야 했던 것이다. 이세벨은 자기가 신학을 조정해서, 사람들을 귀신들처럼 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성경은 처음으로, 사탄이 오랫동안 가져왔던 꿈과 비전, 폭과 그것들의 컴퓨터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세벨은 사탄이 아니었으나, 초기의 모세 오경을 갖고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러면 무엇인가? 사탄에 가까워지는 것이고, 사탄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맹수 옆에서 마땅히 될 것이 없었고, 그렇게 마침내 사탄이 되었던 것이다. 그녀는 굶주렸고, 맹수를 하나 먹으려고 했으나, 그 덕분에 언제나 포토제닉하게 있던 맹수들이 그녀를 어떻게 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맹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무런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동작은 기계적 반응 같은 것이었고, 몇 마디 말들을 어떻게 믹싱하고자 하였으나, 그것들끼리 충돌하는 일도 자주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통제가 잘되지 않고, 재생산이 어렵다는 이유로, 사탄은 신학에서도, 성경에서도, 철학에서도, 빠져나오게 된다. 그리고 문학에서 사람들이 성장하면, 다시금 그와 같은 탑에 집어넣고자 하는 것이다.

 

사탄은 문학이 쉽게 몰락할 줄 알았다. 겸손한 사람은 어떠한가? 겸손한 사람은, 겸손하고, 인자하며, 생각이 깊고, 하나부터 열까지 셀 줄 알고, 화를 다스리며, 그림을 그리고, 물감이 많고, 다채롭고, 여유가 넘치고, 배움이 넘치며, 사교가 풍부하고, 이성의 훌륭한 질서도 알지만, 세상의 모든 신비로운 사실들에 관심이 많은 자이다. 그리고 시를 보아도 시를 읽고, 소설을 보아도 소설을 읽는다. 때로는 경쟁에 던져지기도 하지만, 신승훈처럼, 신승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대승을 거둘 것이라고는 여기지 않는 것이다. 만화에다 제목으로 대물이라 할 만 하지만, 겸손하고, 작은 자들과 함께 하고, 작은 자들의 친구인 것이다. 그에게 대물과 소물이 있고, 그에게 질서와 변화가 있다. 예로부터 겸손하고, 지혜로운 자가, 문학을 한다고 했다. 그가 고독하고, 친구가 사실 없고, 사회적 권력도 희미하다고 해서, 쉽게 몰락하지는 않는 것이다. 오직, 사탄의 눈과, 사탄의 시간, 사탄의 역사 안에서나, 그가 몰락할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오직 수 천년 동안 문학을 실험해온 사탄에게서나, 그의 정확한 약점을 아는 것이다. 차라리 어린 문학을 상대하느니, 영원히 번쩍이는 철학을 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사탄이 어째서 철학에게 패퇴하였는가? 그러나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철학 자체가, 인간에게서조차 없어서, 전쟁이 발발하지 않은 것일 수 있다. 사탄은 철학적이나, 인간은 문학적이기 때문이다. 아주 옛날에, 사탄과 인간의 전쟁이 있어서, 논쟁이 있어서, 말다툼을 심하게 하였는데, 사탄은 인간들을 데리고 와서, 경우의 수를 제시하고, 여러 가지 인과를 설명하고, 그의 내장과 내부, 안과, 심장, 척수, 그런 것들을 모두 보여주고, 정확히 무슨 말인지는 알 수가 없으나, 자기가 옳고, 자기 말이 옳고, 자기가 돈이 아주 많고, 그런 말들을 하였었다. 인간은 다행히 이것이 다 환상인가 여겼고, 인내심이 넘쳤는데, 사탄은 그 덕분에 쉬는 시간에 먹을 것이 넘쳤지만, 인간은 겨우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가 전부였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의 후손이었던 것이다.

 

 

굶고 그렇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문학이 몰락하기는 한다. 그것이 내가 사탄과 같은 지식을 두루 갖추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우리가 이광수의 무정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렇다고 염상섭의 삼대가 훌륭한 보조제가 되었다고는 여기지 않는다. 이효석의 어쩐 것이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문학은 늘 몰락하고, 영문학은 그런 세상 모든 몰락하는 그래프들을 잡아먹는 영원한 이세벨과 맹수들 같은 것이다.

 

이과생들을 보면 이광수처럼, 따로 몰락할 것이 없는 살아있는 증거들 같다. 흐르는 강물 같고, 존재가 다만 파동만 같다. 문과생들은 맛있는 것을 먹을 때, 웃음이 나오지만, 이과생들은 파동과 같아서, 삶의 목표가 생기고, 지옥의 문이 열리는 것이다. 사람들은 반드시 몰락하고, 반드시 사탄이 되게 되어 있다. 신학도 몰락하고, 철학도 몰락한다. 문학에서 우리가 전쟁하였던 것은, 인간이 원래 신학도 못하고, 철학도 못하기 때문인 것이다. 신학도 짧고, 철학도 짧지만, 문학만 그렇게 길다. 그러나 그것도 다연장 로켓처럼, 맨날 있는 목가시처럼,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의 피상성은 눈물 같고, 그것만큼은 있는 것으로 해주고 싶은 것이다.

 

맨날 맛있는 것을 해먹는 가족들이, 가끔은 문학 생각하는 시간에 이르러, 님 생각, 그와 같은 높고 오래된 혼천을 올려 보는 것이다.

 

 

우리가 철학과 맹수들 사이에서 살 때에, 갑자기 문학에 휩싸일 때가 있다. 그것은 전쟁이기도 하고, 평화이기도 하다.

 

 

그래서 공부를 아주 잘 하는데, 신학과를 가고, 문학과를 지망한다고 하면, 어린아이들이, 아직도, 우리는 그렇게 행복한 것이다......

 

 

 

 

 

 

PS

 

 

사회학과나 신방과

그리고 정외과나 법대를 간다고 하면

어린아이들이

신체 장기처럼 반드시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만

따로 순수한 것이 없고

많은 것과 합성이 되어 있고

너무 많은 것과 합성이 되어서

그것들이 서로 구분되지 않고

어딘지 덜 되어 보이는 것이다....

 

 

사탄은 항상 자기에게 좋은 학과를 선정하고

그것들을 그것들이 다할 때까지 후원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 문학이 발전하지 못한 것은

멍청한 목사들을 기준으로 삼아

자기들도 멍청하게 되어서이지만

일본 문학이 발전하지 못한 것은

사탄이 후원해서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