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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민중문화이야기

정남규의 옷에 관한 분석

by 마음대로다 2021. 6. 17.

정남규의 옷에 관한 분석

 

 

 

 

 

 

 

 

 

내가 언젠가 말한 것처럼, 인공위성을 이용한, 고등한 단위의 집단적인 연쇄 살인은 검거가 어렵다. 연쇄 살인은 발발이 되고, 잡지는 못하게 되면, 당연히 경찰들은 스스로를 위해, 그리고 사회를 위해, 제비를 뽑게 되고, 얼굴이 볼 때마다 달라지는, 우리가 볼 수 있는 사이코패스들은, 그런 경찰들일 확률이 높다. 그리고 경찰들이 그렇게 도덕적 순위가 높지 않다. 경찰서 분위기를 좋게 하고, 그럴 가능성을, 매우 겸손한 처지에서 서로 감시하고, 항상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지 않으면, 주자에 관한 정도의 프레스를 갖다 대면, 당연히 그 대상 정도의 김밥은 터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봉책이나, 제비는 안 뽑는 것이 좋은가? 나는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잡았다고, 대충 둘러대는 것도 나쁘지 않는 방법이다 말하는 사람이 있고, 우리가 공기로 숨을 쉬는 것처럼, 그런 공기도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것은 분명한 것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그 정도의 김밥은 터지게 되어 있다는 사실은, 또한 내 쪽에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변진섭의 그대 내게 돌아오려 하나요 하는 노래가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찢어놓는다. 정남규의 일기는, 압력이 도래했고, 연기지만 살인의 공기가, 검거의 공기가 산포되는 시점에서, 어떻게든 브레이크를 가해보려는 시도처럼 보인다. 그리고 제비와, 계약이 있었대도, 바로 그와 같은 것을 알아주는 이가 없고, 스스로도 경찰이었기 때문에, 그와 같은 존재의 근원에서 죽음을 택한 것 같다. 위장 결혼도 마음이 통하면, 실제 결혼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을 것처럼, 정남규의 일기는, 필사적으로 인문 교양으로, 사람들이 쉽게 생각하지만, 평소에 단 한 번도 입에 담을 수 없는 경지의 것으로, 마치 미사일처럼 솟아오르는 모습을 하고 있다. 내가 오랫동안 글을 쓰는 것이, 그와 같은 압력의 산물일 것이라는, 그런 오래된 정원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야 경찰들이, 그런 낌새나, 가능성만으로도, 엘러지, 슬픔이 소요되고, 위장되며, 옅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연쇄 살인이 있었고, 제비로 간택되었지만, 마침내 그와 같은 단순 주자가 된 것인 것이다.

 

경찰 내부자들은, 매우 놀랐을 것이다. 연기가, 공기가, 심리적으로 분명히 경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어느 정도 영화 등으로 인해 구조화되어 있었고, 개인 내부적인 불특정 다수로 인해, 경계가 무너져 있었던 것이다. 가장 그와 같은 주자의 자석 상태에서, 엔극과 에스극, 고통스러운 것이, 경찰이었으니까, 경찰을 따돌릴 수 있는 방법들이 아니겠는가? 그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영어 공부를 아주 열심히 해서, 외국 다큐멘터리 같은 것을 국내 다큐멘터리 같은 것 같이 편안히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이다. 뱀만 나오는 동물 다큐, 외국 범죄자들이나 쫓는 외국 다큐, 그런 수준이 낮은 것도, 단지 외국어를 쓴다는 이유로, 고급화되고, 명품화되는 것이다. 그래서 주자의 단계에서는, 도덕은, 레토릭을 만나, 단번에 타락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잠을 자지 않을 수 없고, 잠을 자는 동안에, 연기가 마치, 실제의 호러무비처럼 확장되는 것을 느끼게도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범죄, 그런 것에 관심이 많은 것도, 한쪽에는 불구경 심리처럼 타자적 존재의 재미가 있는 것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자기 안의 그와 같은 가능성을 철저히 단속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후자의 차원에서는, 범죄에 관한, 구조적인, 피라미드 사랑적인 접근이 근본적으로 차단되어 있다. 수준이 매우 낮고, 외국 말 같은 프로파일러, 무슨 오일러의 공식 같은 것을 주저리주저리 외우는 것 같다. 동네 아저씨들 같고, 인공위성을 자기들이 해볼 수 있다 자신하는 천박한 집단들 같다.

 

정남규에 관해서, 주자는 바빠서 관심이 없었고, 사람들이 그와 같은 피라미드 사랑적인 누군가의 말을, 정말 누군가 아무나 말해주었다면, 정남규 형사는 그 쓸쓸한 책임공방 마지막에서 자살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니 그와 같은 아무런 높이가 없는 정신 상태, 무적 상태로의 회귀라는, 변진섭의 그 노래가 그렇게 철학적이고, 통속적이며, 조금은 희롱적이고, 노래의 한계를 노래하는 것 같은 것이다.

 

노조가, 원래 사장단이어서, 간부가, 악성 노조로 있다가도, 국가적인, 국제적인 위기가 닥쳐서, 하나가 되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생산적 단계와 계급 말고, 순수 도덕적 측면에서는, 경찰과 법제도, 문학과 방송, 언론과 종교에서는, 상호적인 이중성의 입지가 그렇게 높지 않는 것이다.

 

우리들의 지면이 그렇게, 연쇄 살인의 처녀지만 같다. 그런 것을 쓰면 사람들이, 약한 사람들이 몰려들고, 구경하고, 누군가에게는 사탄을 공격하는 최종최후의 문학 같지만, 전문가의 눈에는 도리어 사탄을 찬양하는 수준으로 그치는 작품이나 쓰기에, 우리들의 실질 도덕성은 적당한 것이다.

 

누구도 연쇄 살인과 공포의 소설을 연쇄 살인적으로 보지 않고, 읽지 않는다 할 것이다. 정남규나 유영철, 그런 것들도, 적극적으로 소설을 썼으면 썼지, 읽지는 않았지 않은가? 누구는 인공위성의 도움을 받고, 기가 막히게 주자를 괴롭히는 심리전을 펼치는데, 정남규는 고작 운동화 바닥이나 제거하는

 

어쩌면 꼬꼬무 출연진들의 순수한 혓바닥 같은.....

 

사람들이 과로사를 하는 것은, 시켜서 마지못해서 하는 것이지,

 

개성이 매우 강해서, 그리고 목표와 인격을 자아실현하기 위해서 날마다 노력하다가 그러는 것은 아닌 것이다.

 

 

*

 

 

무허가 수술을 하는 것도, 몸은 여자로 변했으나, 지식은 머리에 멀쩡해서, 그리고 환자가 정말 급하게 목숨이 위태로워서, 연쇄적으로는 자기도 돈이 필요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겠는가?

 

때로는 어려운 수술의 성공 같은 것도 티비 뉴스에 나왔으면 좋겠다 싶다.......

 

그것이 김밥이 터지듯, 미국의 메디칼 드라마로 승격되는 것은, 뉴스가 원래 이념을 갖지 못해서인 것일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는 그렇지 않았으나, 어떤 것이 연쇄만 했다 하면, 기자들의 목소리가.......

 

기자들이 사건 현장에서 사람들을 구하지 않는다 것은 매우 유명한 이야기이다. 그렇게 시마 과장이 되고, 제비 뽑는 김국장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