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향한 사탄의 상상력
그것은 중국 공산당이라는 이름과 매치가 된다. 중국 공산당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런데 그렇게 매치가 된다. 에이매치. 그러나 그 정도의 메갈리틱 우주는 한 두 개가 아니기 때문에, 의미는 빨리 상쇄된다. 그러나, 여행은 되는 것이다. 우리가 긴 것은 기차, 여행이라고 하지 않는가? 우리가 수학여행에서 가장 놀랐던 것은 무엇인가? 하나는 수학 문제를 풀지 않아서, 기분이 묘하게 좋다는 것, 그리고 남고 숙소 옆에 여고 숙소가 생겨서, 밤낮없이 기분이 이상했다는 것. 그리고 삼일 동안을 여행을 했다는 것이 될 것이다. 여행은 누구나 하고, 하루도 하고, 이틀도 한다. 그리고 시골집은 누구나 가고, 열흘도 가고, 마음만 맞으면 한 달 동안을 있을 수 있다. 마음 맞기가 정지용의 황소처럼, 쉽지가 않다는 것이, 꼬마 도시인의 번뇌가 될 것이다. 그런다 수학여행은 그 모든 조건들을 상쇄시키는 힘이 있다. 그것은 파워를 갖는다. 콜린 파월. 혹은 콘돌리자 라이스. 정상의 미친 것들은, 죽음과 괴물 앞에서, 코로나를 주입하기도 하였을 것이다. 코로나 환자를 찾아가, 키스도 하였을 것이다. 이름은 힘이 있고, 이름은 방향이 있고, 이름은 그와 같은 필 콜린스, 스팅어, 그리고 콜린 파월을 갖고 있다. 수학여행은 무엇보다도, 학생들이 간다. 모여서 간다. 우리가 데모를 할 때, 차를 대절해서, 모여서 가지 않는가? 학생들은 데모하러 가지 않는가? 데모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이런저런 유적지를 여행하는 것이다. 그것은 짜증 나고, 잠자리가 불편하고, 집이 아니기 때문에 불편하긴 하지만, 또한 그런 날이 없고, 세상에 그런 학교 제도가 없는 것이다. 마지막 날이 되면, 우리는 어느새 오염이 되어 있고, 날염이 되어 있고, 신라 사람이 되어 있고, 백제 사람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율리시스의 시선. 앨러니 카트만두 비슷한 이름의 작곡가의 음악 같은 것이었다. 우리는 다보탑에서 빠져나와, 새들처럼, 변진섭, 전선에서 앉아 기쁨을 누리다가, 인간으로 돌아와야 했던 것이다. 인간 세계에는, 공부가 있고, 경쟁이 있고, 경쟁에서 뒤처지면, 같은 인간이지만, 사탄이 자기들의 영토라고, 영역이라고, 사람들이라고, 암암리에 선언하는 가능성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옛날에는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였지만, 자지, 지금은 아무래도, 공부를 어느 정도 잘하고, 백백교에는 빠지지 않아야 참 여자지가 되는 것이다. 댄스를 춘다는 것은, 주자학적으로 보면, 존재의 언어학적 측면으로 보면, 댄스 댄스 댄스, 하루키, 매우 슬픈 소실점인 것이다. 우리는 댄스를 추다가, 소나무가 되고, 소년 소녀 나무가 되고 했을 것이다. 일은 댄스와 같지 않고, 일은 공부만 같고, 일은 운전이 능숙한 사람의 자동차와 같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백신을 맞을 때, 티비를 보고, 혼자 영화관을 찾을 때, 얼마나 추워도 한 번, 만나고 싶은 사람을 찾아가는 것 같은가?
사탄이 이 위대한 인간의 저수지를, 강수지를, 그만 놔뒀을 리가 없다. 그리고 사탄에 접촉하지 않았지만, 하는 행실이, 어떤 성정이, 거의 정확하게 사탄에게 일치한 사람들도 국제법에 따라 있었을 것이다.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더니, 물이 쏟아져 나왔다는 표현이 그것을 가리키는 것이었을 것이다. 사탄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으로의 방향은 있는 것이다. 인간이 위대한가? 인간으로의 방향이 위대한가? 시인이 위대한가? 아니면 시가 위대한가? 때로는 시가 위대하다고, 사람은 오직 작품으로 말한다고, 혀를 자르고, 입을 꿰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훌륭한 성을 짓고, 작품을 쓰고, 노래를 만들고, 왕이 그것을 보고는, 그 사람의 눈을 뽑게 한 것도, 한 사람의 독창적인 사탄력이라기 보다는, 그들 동네의 습속이고, 애프터눈 티 같은 것이며, 거기까지를 시간으로 보는 문화였을 것이다. 왕들은 작품을 가져오는 다리 구실을 많이 했는데, 인간도, 사탄도, 작품이라는 인공 달을 좋아해서, 순수한 인민들의 노동력이라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더러운 정치에서는 최고의 양식이고, 에너지원이기 때문에, 그렇게 열정하고, 매몰되다 보면, 스스로 빠지게 되어 있는 것이다. 철학적이고, 왕이다 보면, 다니엘서의 기록처럼, 제 정신이나, 제 육체의 인간이 불가능한 것이다. 그와 같은 속성과, 무화과 열매 같은 논리를 어떻게 다 적고, 그리고, 분석하고 할 수가 없다. 러셀도 말했지만,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이상한 사람이, 드디어 이 지구에 나타난 것이다. 지금도 그의 문법책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어째서 서양에 있는 것인가? 그것은 형성 문자 같은가? 아니면 가차 문자 같은가? 사람들이 가차 관계에 빠지게 되면, 매우 슬픈 세상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가차 관계에 있더라도, 구라를 그렇게, 아리스토텔레스처럼 할 수만 있다면, 사람들이 본질적인 열정이 아니라, 문법적인 열정을 당연히, 범주적으로 인정하지 않겠는가? 하게 되는 것이다. 공부에 많이 빠지다 보면, 그와 같은 레토릭에, 유혹에 넘어가게도 된다. 그러나 문학과, 철학, 신학과 다른 영역에서의 사람들이, 어디서부터 기본적으로 플라스틱인지는, 자기의 영혼이 너무 고귀해서, 넘어가 확인하는 일은 없는 것이다.
우리가 작품을 열명하고, 질투하고, 선망하고, 중국에게 사대할 것처럼,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에도 사대하고, 러시아, 중국, 베트남, 필리핀, 라오스, 인도, 중국, 멕시코, 볼리비아, 왜냐하면, 우리들의 세계 관계는, 앨러니 카트만두 이름이 비슷한 작곡가의 슬픈 음악처럼, 일대 다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이태리, 캐나다, 라오스, 가나, 중남미, 캔터베리, 그런 것들을 무조건 사대할 것 같았는데, 외국어 대학교는, 일종의 각종 외교관들의 치외 법권 지역으로서, 영문학과 학생이, 불가리아 학과 학생을 죽이고, 러시아 학과로 피신하는 것이다. 한국 경찰이 삐뽀삐뽀 찾아가지만, 외교 특별 구역이기 때문에, 지방 자치 구역이기 때문에, 조사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들이 가지 못한 시간으로서, 우리들의 서울은, 그와 같은 데가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않았고, 어떻게 하다 보니, 미얀마 사건을 매개로 해서, 각종 대학과, 국가, 유럽, 개인들의 예방을 받는 처지에 다다르게 되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다. 다른 생각을 하기에는, 너무 사탄의 오만과, 나의 개성을 따라가기 위한 개성에서 도리어, 툭하고, 괴물이나, 어떤 것들이 던져지고, 때로는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얼마나 총명해야, 겨우 학교 교육만 받았는데, 그런 천재적인 공포 영화를 연출하고, 연기하고, 출판할 수 있겠는가? 그것이 다 스티븐 킹의, 차마 말을 하지 못하겠는가? 그런 것들의 행정력 때문이겠는가? 우리가 사랑 영화를 보고, 항상 그렇게 서로 묻고, 좋아하고, 답하고 하지 않는가? 어디까지가 개인적인 경험을 반영한 것이냐고. 공포 영화에서는 한 마디도 할 수 없는 것들인 것이다. 그래서 마침내, 공포 영화도 말을 하고 싶고, 우리들 극한 직업이나, 엑시트, 그런 기가 막힌 코미디 영화를 찍고, 좋아했던 것처럼, 자기들도 그렇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정상 영화를 좋아하지 않고, 비정상 영화를 좋아하는 것이,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이다. 어떻게 좋은 집에 살면서, 니홍진과 함께, 태국에 가서 살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일까? 나의 아파트에는, 아직도 만나지 못한, 앨러니에 대한 기억과 향기로 가득하다. 떨리고. 늘 시험에 들고, 시험을 보지 않고, 여자가 나보다 시험 성적이 좋은지, 그런 것이 관심이 가고 그런 것이다. 그때에는, 여학생이 나보다 공부를 잘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정말 마른하늘에서 날벼락이 떨어지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나는 가진 것이 별로 없었고, 집안이 내세울 것이 없었고, 재산도 없었는데, 겨우 내가 공부를 잘한다는 것 밖에, 나중에는 지옥과, 사탄과 싸워서, 이길 단 하나의 재산이었지만, 그래서 이름이 이재산, 단재산, 한재산이었지만, 그때는 똑같이 전교 몇 등, 몇십 등 그랬던 것이다. 스트레스를 주면, 오층에서, 사층에서, 떨어질 것처럼도 느껴졌었다. 우리들의 재산이 그렇다. 우리나라의 재산이 그렇다. 지식만이 재산이고, 기름은 차단되어 있지만, 그것이 그렇게 완전히 재산이 없는 것만은 아닌 것이다. 아랍이, 코란 하나만 갖고, 석유조차 없다면, 그들이 축구나 제대로, 정몽준, 할 수 있겠는가? 비실대지 않겠는가? 사랑으로 그리워하다가, 얼굴을 긁고, 그렇게 남은 평생을 얼굴을 가리고 다녔을 것이다.
사람을 여럿 죽이고, 사람을 여럿 먹기까지 한 사탄까지도, 그것은 형이상학이나 의식주와 같은 것이어서, 그것에 덧붙여서 다른 것들은 하는 것이지, 그것까지 안 할 수 있는 사탄은 없는 것이다. 자기가 사탄이긴 하나, 주자, 주된 자기, 메이저 포션 바디와 그램머를 갖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 다음에는, 매우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을 죽이지 않아도, 사람들이 예의가 바르고, 사람을 죽이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이 도와주고, 사람들을 먹지 않아도, 돈만 없을 뿐 먹을 것이 많다는 것을 경험한 다음에는, 그렇지 않아도 되는 삶이라는 것에 대해, 마치 처음처럼, 눈물의 소망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은 사도 바울의 말처럼, 로마서의 저 깊은 형이상학, 그 두꺼운 어둠 속에서 주장한 바와 같이,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 있는 것이다. 회개했다가, 다시 사나워지고, 회개했다가, 다시 사람들을 괴롭히고 하는 것이면 어떻게 하는가? 예수님은 일흔 번씩 일곱 번을 용서하라고 하셨지만, 그것은 너무 많은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우리가 알아서 해야 할 사항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들이 뼛속까지 사탄인지, 아니면 그냥 공부 못하는 자들인지, 공부를 잘못 이해하는, 그와 같은 흐름의 티비 드라마 애호가들인지, 엄밀히 말하면 구분할 수가 없는 것이다. 절정을 넘어가면, 범죄의 양만큼, 그리고 그것에 대한 기억의 양만큼, 기억과 능력이 사라지는 치매가 다가오게 된다. 그것을 영어로 비커밍이라고 한다. 공부를 조금만 더 하다 보면, 우리들의 정신이, 훌륭한 육체에, 좋은 공부로 이뤄지는 것이라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가 있다. 그러나 기억이 사라지고, 능력도 사라지는 중에서는, 사탄이 그와 같은 영화와 지식을 그리워하는 것과 같은 외침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탄이 생각하는 것을, 스스로도 생각하게 되고, 공부해서, 암기하고, 예술에 대해서 배우고, 코끼리가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돌핀이 영단어를 많이 알았던 것처럼, 스스로 집에 가서 그것을 해볼 생각을 하는 것에서 벗어나서, 정말 사탄이 텔레파티를, 그런 어떤 정당 같은 것, 보내는 것을 들어서, 자기가 살인자가 되고, 누군가 살인 소설을 쓰게 하는 것으로나, 마침내 세기말의 종착역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소설의 일부이고, 문학의 한 장르이며, 인간의 현상 중에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다. 그러나, 사탄이 드라마를 소장하고, 언론사를 유지하며, 교육과 종교를 장악하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는 것이다. 거대한 동일률 반복의 법칙에 따라, 어째서 한국 정치인들이나, 학생 운동권들이 나를 돕지 않는 것인가? 어째서 광주 사태의 독일인 기자가, 나를 돕지 않는 것인가? 그것은, 그와 같은 현상이, 민주주의와 피가, 사탄과의 공동경비구역이기 때문에, 거기까지는 입출입이 자유로우나, 내게 오는 것은, 보이지 않는 피라미드의 정상에서, 마침내 사탄에게 사적인 피의 제전을 벌이지 않으면, 허락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일 것이다......
무시하면 될 것 같지만, 워낙에 사탄과 텔레파티를, 그런 정당을 주고받다 보니, 그렇지 못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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