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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민중문화이야기

무엇이 서양인으로서 결정적인가?

by 마음대로다 2021. 6. 12.

무엇이 서양인으로서 결정적인가?

 

 

 

 

 

 

 

 

 

우리는 동양인으로서, 필요한 공부를 별로 안 하다 보면, 트로트나 부르고, 이와 같은 정신현상학에 이르지 못한다. 허구한 날, 성학집요나 쳐보고, 동의보감이나 드라마 보고, 영감, 그렇게 읍소하는 것에나 익숙하고, 그렇다고 보면, 우리 사이에 이미 침입해 있는 식인종들을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그것은 식물종과 같다. 동물종과 같다. 동물은 그나마, 파블로프, 종소리에 식인종하기도 하지만, 또한 종소리에 회개하고, 사람과 함께 선한 싸움을 싸우다가 죽을 수도 있다. 우리가 로드킬 동물들을 가끔 보는 것은, 그 슬픈 것이, 그와 같은 식인종의 동음 또한 유사의미어로서의 식인종, 동물종의 역학 관계를, 발견하게끔 한다. 그렇다면 식인종과 식물종은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

 

백화점에서 주차안내원이 구십도 인사를 하는 것은 식물종과 같다. 안내원이 특별히 동물적인 생각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안내상은 지 친구의 지갑이 그렇게 두툼했다고 기억하는 안내상의..... 애니웨이. 그리고 안내 받은 사람도, 같이 구십도, 팔십도, 인사를 하면, 차라리 그와 같은 동방예의지국이 좋은 것이다. 나는 그것이 또한 좋다고 생각한다. 문제가 무엇인가? 그것은, 안내하는 직원에게 인사하는 사람이 열에 제로 사람도 되지 않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우리에게 식물종이, 일종의 동의보감이나, 식물지리지, 또한 안용복의 어떤 동국통감처럼, 제시된 것을 우리가 알아보지 못하는 것일 것이다. 식물종은 반드시 식인종으로 나아간다.

 

우리의 식물종은 그러나, 백화점에서 나와서도, 친절하고, 세상에 식물이 많은 것은, 내가 식물을 먹은 것은, 한 두 가지가 아니어서, 특별할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서양은, 동방예의지국이, 동방정교회처럼, 러시아에도, 효도르처럼 있다고 해서, 서양도 그런 알 수 없는 식물종의 단계를, 스스로의 훌륭한 체홉과, 아나스타샤, 이것은 잘 모르지만, 그런 것으로 잘 패스하고, 극복하고 한 것으로 생각할 수가 없는 것이다. 사람은 똑같고, 그것의 컬티지는, 법원 같고, 똑같고, 성문법도, 불문법도, 성문종합영어도 똑같은 것이 아닌가? 우리가 문법 위주로 공부하지만, 영어를, 그것이 영국에서 다를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영화가 우리를 갈라놓고 있다.

 

갈라파고스.......

 

식인종의 기원........

 

 

우리가 학생 운동으로 기승일 때, 그곳에 식물종 속해 있던 사람이, 그나마 꿈에 그리던 시간은 무엇인가? 드라마를 쳐 보는 것이고, 발리에서 여럿이서 생긴 일 같은 것, 때로는 그렇게 움직였던 이념적인 흐름으로 축적된 것을, 아내와 함께, 소설 써보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것이 우리들의 꿈이었다. 우리들의 더 공부. 그것을 우행사, 그런 것을 해보는 것이었다. 항상 우리들에게는 한신대학교가 있었다. 한신대학교 수유리 대학원이 있었다. 그렇게 건강 운동을 한답시고, 저녁에 그 작은 운동장을 도는데, 내 눈에는, 서울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들의 흰개미가, 어느 전철역에서, 혹은 어느 빌딩에서, 영화 샤인처럼, 딱 하고 끊기는 때가 있기 때문이다. 흰개미는, 삼단 논법. 사람은 죽는다. 너도 사람이다. 너도 죽는다 하는 그런 기가 막힌. 그러나, 내가 언젠가 말한 것처럼. 그것이 신존재 증명의 기초적인 흐름이 된다고 했고. 거기에는 플러스된 것들이 있어서, 실로기즘이라고 하기가 그렇다고 했다. 그러나, 귀신처럼 맞아떨어지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사탄의 존재 증명이라고 했다. 신은 존재하기가 어렵다. 어려워도, 행복해야 하고, 어렵고 힘들어도, 희망을 잃지 않아야 한다. 살기 힘들어도 아름다워야 하고, 싫어도 좋은 말씨를 써야 한다. 그것이 신존재 증명인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신존재 증명은, 원천적인 죽음이 실로기즘과 하나가 되어서, 금세 사탄의 존재 증명이 되는데, 죽음이 있다면, 다시 사는 삶이 있는 것이고, 다시 살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그렇게 사탄은 존재한다.....

 

.......

 

 

우리의 서울은, 크고, 비참하고, 지성이 과연 거기까지 가서, 만남의 광장에서 만나는 것인가 궁금하게 된다.

 

처음에는, 수유리 대학원처럼, 오래된 학교처럼만 보였다. 숱한 학생들의 슬픔과, 죽음의 삼단논법을 지낸 다음에는, 무시무시하게 변하고 말았다.

 

 

행복이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사탄이 있다는 것이다. 돈이 있다 보면, 그것을 다이렉트로 느낄 수 있다. 아무런 관념이 없고, 돈만 있기 때문이다. 자식도 얼굴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다. 그리고 황순원의 소나기가 있다는 것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채석장 저 건너에 좀비가 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것이 너무 빠르다. 너무 이르다. 너무 조급하고, 너무 무분별하다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 모든 소원 수리를, 함소원, 김소원, 이소원, 소원짜 붙은 사람들 이름을 모두 거명하면서, 받아줄 수가 있다. 행복하면, 행동해야 하고, 행복하면, 공부해야 하며, 행복하면 여행해야 한다. 행복해서, 두뇌가 붙기 시작하면, 그 민둥한 언덕 너머에서 반드시 좀비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것은 어둠이라는 행복 사이에서, 좀비가 태양처럼 나타나는 것과 같다. 우리는 그와 같은 가설만 갖고 있었다. 머리가 모두 빠진, 대머리 총각, 그런 노래가 그렇게 정겨운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만 갖고 있었는데, 정말 그와 같은 태양이 나타났고, 사람들이 죽어갔던 것이다.......

 

군인들이 전투에서 지칠 때, 가장 힘든 것이, 가장 염원하는 것이, 공부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공부가 전투 같다는 것을, 대학 다닐 때, 이미 경험하였기 때문이다. 그때,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잠이 들었고, 공부하고 나오는 친구들 옆으로, 잠이 들었고, 그가 깨우는데도 잠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다 하얗게 옷이 변하는, 예수님의 영화나 보면서, 거기가 좋다고, 장막 비슷한 에이형 텐트, 기념물을 하나 사자고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시험을 치를 때, 교수님이 에프를 주고, 에프십육, 에프이십육, 그리고 점수를 제로를 주고, 백점 만점에 제로를 주고, 그랬던 것이, 잠시 수류탄에 정신을 잃었다가, 일어나면서, 기억이 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떠한가? 다시 학교에 가고 싶지 않겠는가? 그것은, 그와 같은 전투는, 밴드오브라덜스,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학생 시위도 그랬다. 분명한 명분이 있어서, 날마다 끌려나가, 노우, 그렇게 우리들끼리 말하지 못하고, 노우진, 시위하고 그랬던 것이다. 그리고 졸업하여 취직했던 것이다. 뭘 공부했던 기억이 없는 것이다. 신입생이 물어보면, 모르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사회에서도, 해당 학과에 대해 누군가 그 지식을 묻는다면, 모르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것은 너무 많은 시위에, 서울 시위에, 끌려나가, 지식이 한강의 모래 같아졌기 때문인 것이다. 그것은 모래종으로서, 혹은 한동안 이름이 있었던, 담배 이름 레종으로서, 그나마 식물종과, 생기와, 동물종들의 비행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직업은 우리를 미이라처럼 붙들어 놓고, 휘감고, 누에고치처럼, 그나마 전고와 전장, 폭과, 범퍼, 그런 것들을 만들어준다.

 

옛말에 우리는 우리를 본다는 말이 있다. 티비문학관도 있지만, 티비문학관의 아들 신현균이 문학과 신학 철학 영문학 등을 너무 잘하자, 티비 제작자들도 계속적인 흥미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부터, 마리오네트 같았고, 우리가 백화점에서 서로 구십도 인사하는 것이, 이상적으로 보면 인간종 같지만, 대충 보면 기이하듯이, 그렇게 우리 사회는 이념과 실재 좀비들이 서로 붙어서 이동하는 것인 것이다.

 

 

사람이 공부를 하고자 하는 뒤늦은 염원이 좀비 영화를 탄생시킨 것일 수 있다. 왜냐하면, 대충 사랑 이야기도, 찾아보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사랑 이야기로, 섹스하고, 상처 받고, 기억하고, 그러다가 뒤늦게 대학을 가서 공부하는 스토리보다, 사랑 이야기하다가, 스토커가 되고, 돈도 안 되는 여직원 만지다가 고발당하는 것이, 라깡의 말처럼, 사탄의 욕망에 움직이는 우리들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처음부터 까고 시작하는 것이.......

 

 

사람들이 공포 영화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 공포 영화에는 너무 많은 기술과, 지식과, 그렇게 고강력으로 압착된 미국의 하나 뿐인 러브 스토리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역사는, 전쟁 아니면 공포 영화인 것이다.......

 

시인도

목사도

 

 

모래종 아래에서는

그저 호로 월즈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