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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민중문화이야기

글을 잘 쓰고 꿈이 많은 주자에게 지원은 하지 않고, 추성부도,자지나 관심이 있는 것들의 레파토리를 정리하며.......

by 마음대로다 2021. 5. 3.

글을 잘 쓰고 꿈이 많은 주자에게 지원은 하지 않고, 추성부도,

자지나 관심이 있는 것들의 레파토리를 정리하며.......

 

 

 

 

 

 

 

 

일단은 여자들이 자지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그와 같은 공갈단, 침척단, 단매단 같은 것이 생기는 것이다. 그들은 창작의 자유가 있고, 주자에게 자지가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려서, 우리 사는 세상의 어떤 것을 좀 더 진척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어느 시간이 지난 뒤에, 작은 갈등 뒤에, 적당한 지원을 해주는 것이 소나타 형식이고, 참 말도 타는 형식이 될 것이다. 그것은 연애 같고, 그것은 연예 같다. 하지만 숱한 드라마들을 보면서, 남자가 여자가 되고, 형식적인, 혹은 실질적인, 그리고 여자가 다시금 여자의 성기를 거세함으로써 남자가 되는, 우리가 그렇게 등식을 계산하기 때문에, 안 순환의 구름과 질서를 보면서, 그것들이 그렇게만 놔두거나 지켜볼 수는 없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나의 현상학적인, 엄밀한 학문으로서의, 어떤 것, 그런 것의 힘으로써 반드시 정리할 만한 것이다. 우리가 좋은 책상에, 좋은 서랍에, 뭔가를 정리한다고 할 때, 멋진 투수처럼, 앞에 고양이가 알짱거려도, 집어넣고, 먼저 내용물을 확인하고, 집어넣고 하지 않는가? 물론 고양이가 홈런을 칠 때도 있다. 연상이 안 되지만, 연상호, 우리는 그와 같은 에더라이즈드 어쩌고 하는 가상공간이 문학적이고 즐거운 것이다. 확고하게 정리하고, 어딘가에서 들리는 스트라잌 아웃 하는 소리를 좋아한다. 정리는 그와 같은 힘이 있다.

 

게놈 그를......

 

미친

 

 

그것들이 사타구니들처럼 자지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그 자체가 당연한 자지인 것이다. 우리가 자지를 갖고, 보지를 갖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사탄은 바로 그런 남의 자지를 갖는 것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뇌가 없어서, 누구는 심장이 없다고 노래를 했지만, 실은 뇌가 없어서, 그것들에게 부하뇌동하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의 부하로 들어간다는 것. 어떤 회사는 뇌가 발전기를 돌릴 수도 있지만, 어떤 회사는 늘 언제나 뇌가 혹사를 당하는 것이다. 전보다 뇌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전두엽을 누군가 꺼내 먹어서인 것이다. 영화는 이루어진다. 혹은 백선엽. 그만하자. 이와 같은 불특정 다수의 리리컬 발라드. 티비는 그랬다가, 그만하자 하는 것과 같다. 그래도 누군가는 그 틈을 이용해서 발전하는 것 같은. 좋은 소식 같은 것. 굿뉴스 바이블 같은 것. 그러니, 사탄이 남의 자지를 주장하는 것처럼 주자가 고통스러운 것은 없는데, 사람들은 한가로이 부하뇌동하고, 그렇다고 보면 다만 작은 갈등과 연애 사건과, 나중에 소정의 지원을 해주기 위한 절차라고 보기에는, 그것들의 드라마가 전통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몇 가지의 이유를, 다시 말하지만, 스트라잌, 정리할 수 있는 것이다. 두서없는 내용이지만, 첫 번째는, 주자가 좋아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가장 큰 걱정은 그와 같은 학대적인 기분을, 만해 한용운처럼, 그러니까 주자가 마침내 좋아할 것 같아서가 아닌가? 하지만 전두엽이 없는 것 같은 기분은 지울 수가 없고, 네탄야후나, 필리핀 유명한 권투 선수로 있었을 때가, 가장 고통 중에서도 행복했던, 순수의 존재의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주자는 고통스럽고, 그 사람들의 말할 수 없는 내용을, 이처럼 세상에 표현하게 되는 것이다. 주자가 싫어하면, 그것들은 일 미터도 움직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주자가 문학을 좋아하고, 예술을 사랑하며, 문예사조에 일가견이 있다는 것을 알아, 그와 같은 자유로에 자기들이 있다 자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태도를 돌변해서, 참 싫은 것들이다 하면, 귀신들이 자기들 눈 속에서 백내장처럼 일어나, 그것들을 구타하고, 구타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들을 사주하는, 본격적인 체제나 집단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것들이 드라마처럼 사방팔방으로 알리면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티브이 없는 세상에서도 잘 사는 것처럼, 그와 같은 우주를 이동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차원의 틈이 생기고, 차원의 정리와, 삼투압 현상이 생기며, 차원의 밀집과 거기에 맞는 사건이 생기게 되는 법이다. 그와 같은 차원과 마을, 삶은, 아주 단순하게는 자유 섹스가 없다. 자위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고, 말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연습을 많이 하고, 연애를 하는 법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눈앞에 나타나면, 그동안의 연습 때문에 흥분하는 것인지, 앞으로의 사랑 때문에 그런 것인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그만큼 연습은 중요하고, 연습은 실전 같은 것이다. 사람들은 연습 안에서 살고, 감각은 사라지더라도, 사랑은 남는다. 우리가 한국이나 일본 드라마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마치 백 편의 드라마를 본 것 같은 것은, 연습을 잘하였기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온화하고, 넉넉하며, 사랑과 이념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삼투압 되어 빠져나오게 되면, 심장이 급격하게 뛰게 되는데, 그것은 자기가 아니더라도 살인을 남들이 잘 연습하였기 때문인 것이다. 그리고 항상, 먹을 것 걱정은 하지 않는다는 시공간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운이 없게도, 그것들과 우리는 사실, 같은 유튜브, 드라마, 미국 영화, 제작과 시청의 세상에서 사는 것인 것이다. 그래서 해 아래 아무런 할 일이 없고, 남의 자지에 관심이 많은 것들의 접근이 차단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독특한 기아와 생식이 시작되는데, 그것 때문에, 그와 같은 도저한 흐름을 막을 만한, 좋은 음식을 먹여서,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게끔 만드는 것이 어렵게 되는 것이다. 남의 자지에만 초자아,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연인도 아니면서, 거기서부터는 묘한, 꾸렁꾸렁한, 그러나 그런 것들에게도 희망이 있어서, 세상이 하나의 일심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너무 섹스만 밝히는 문화에 대항해서, 일종의 대항마처럼, 한국 거류민단 같은 문학이나, 센스, 섹스는 아닌, 윤치호, 박기남, 어느 유명한 화가의 그림 같은 것, 그런 세상이 눈앞에 활짝 펼쳐지는 것이다. 그리고는 저녁에는 별로 기억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간의 정상적인 기능과 크기를 차단하기 때문에, 그것에 따라 활동적인 기억량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우스개 소리는 아니나, 사람의 성기가 얼마나 많은 기억을 갖고 있는 지를 알면, 사람들은 그와 같은 진품명품 가격표, 그것의 요란한 소리와 엄청난 숫자를 보고, 순간 뒤로 쓰러질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정부와, 드라마와, 한미 연합 같은 미국 영화의 어떤 꾸준한 조건이 아니고서는, 항상 그것들은 남의 자지에 관심을 갖다가, 자기가 누구인지, 거기서 무엇을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관심을 갖다가, 관심이 꺼지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자기 머리가 비었으니, 스스로 노력하여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남의 머리를 가져다가 자기에게 심고자 노력하는, 일종의 수주대토의 세계관인 것이다. 비유이기 때문에, 자기 머리를 자기가 조개종처럼 밀거나 자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머리는 있는 것이기는 하나, 청년기를 지나, 어엿한 장년이 되어도, 토끼 머리를 갖게 되는 것이다. 배고프고, 기억이 없고. 소설 하나를 읽으면, 전집으로 나아가거나, 한 번의 문예사조에 투자를 하지 못하고, 그 한 소설에 갇히고 마는 것이다. 좋은 소설이 필요하고, 남녀의 육감적인 사랑도 필요한 것은, 마치 필수 영양소처럼, 그와 같은 사람들이 일종의 삼투압 연속 연상처럼, 어느새 그들 첩자와 비슷하게 자기도 되어 있는 사람들이 일본에도 많고, 우리에게도 많기 때문이다.

 

주자에게 지원을 할 것처럼 계속해서 굴면서, 우리가 샐러드를 먹으면서, 뭔가 연한 고기를 씹은 것처럼 아주 작고, 보이지도 않는, 그만큼의 소두의 뇌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 사이에서도 엘리트가 나올 수가 있다. 그렇다면, 스탄 개츠, 그러니까 사타구니들은 그에게 최종적인 지원을 해줄 만하지 않는가? 그것이 군대가 아니어도, 그것은 섹스가 아니어도, 정당한 센스가 아닌가?

 

사탄은 항상 남의 자지에 관심을 가지기 때문에, 마침내 육식도 행하게 되고, 육식을 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비밀로 부쳐줄 수 있는 만만한 것들이 항상 필요한 것이다. 주자의 자지보다도, 그와 같은 금강산보다도, 일종의 항상의 한계, 생각의 부재, 상상의 구속 같은, 우리 옛날의 입에 풀칠하는 기쁨처럼, 이런 확장된 사탄의 무리에게는, 단순한 풀무 현상 같은 배고픔이 우선인 것이다.

 

마지막 파견단, 침투단을 만들었는데, 사탄이 그들을 접견하고는, 저녁에 따로 불러 몇 개씩 따먹는 것이다. 그것이 그들에게는 신경숙의 깊은 충격이고, 하늘이 바뀌어, 적이 눈앞에 생생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주자 옆에서 주자를 괴롭히는 것들은, 지능이 약하고, 기억이 없고, 이런 경험이 너무 많이 반복되다 보니, 스스로의 고추나, 전복을 따다가, 북한 인민들에게 공중에서 살포하고, 비처럼, 나눠주는 단계의 사람들인 것이다. 그러니까 엄격히 말하면, 추성부도의 나무들처럼, 이미 인간이 아닌 것이다.

 

두 단계에 걸쳐, 주자에게 관심이 많은 사회조직을 우리가 물리칠 수 있는 것인데? 하나는 일종의 핵심 관계의 비밀처럼, 그들의 기억이 사라진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팔다리가 하나도 없는 채로, 어디로 떠나지도 못하고, 자기 방에서 울고 지내게 된다는 것이다. 우연일지 모르겠으나, 그것은 마치 무진기행이나, 김지하의 오적과 내용이 매우 비슷하다 하겠다......

 

나도 나의 자지가 그들을 그렇게 비참하게 만드는 것으로는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숱한 글을 써오면서, 자지 이야기만 한 것은 별로 없지 않나 싶다. 어딘가에서 지금도 인간 실험이 이뤄지고, 그들에게서 처음에는 자지가 바깥으로 나오고, 나중에는 보지가 나오는 것이 많아서, 오직 그것 때문에 그들이 내게 만용을 부리는 것은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 정도면 핵심 사탄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일반인들도 뭔가 부유하고, 가난해도 비상하여서 보다 사탄 같으면, 그와 같은 퀀텀 자지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