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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민중문화이야기

슬픈 지류: 구름과 나 論

by 마음대로다 2021. 4. 5.

 

 

슬픈 지류: 구름과 나 論

 

 

 

 

 

 

 

블랙 테트라가 해변 가요제에서 '구름과 나'라는 노래로 수상을 한 것이 78년이다. 나는 이 노래를 들을 때, 더 오래된 것으로 착각했었다. 왜냐하면 비슷한 분위기와 변주의 것이 서양에는 많았기 때문이다. 내가 산딸기, 산중림, 이글스, 송골매, 그러니까 송골매의 노래를 듣고 좋아했던 것은, 블랙 테트라보다 많이 대중화되고, 안정되고, 정중동, 그러니까 정중동한 느낌을 주어서일 것이다. 내가 앙드레 가뇽을 좋아하고, 폴 모리아를 조금 멀리하는 것도 비슷한 이치이다. 그런데, 몇 년 겨우 앞서 있었던 것이다. 그 비슷한 히취, 키취의 느낌을 주는 것으로 일본의 어떤 연주 단체가 있을 것이다. 배경 화음으로 빙글빙글 돌리는 주법을, 비슷하게 따라하는 것이 많이 비슷하다 여겨진다. 78년 블랙 테트라가 그 노래로 수상을 한 다음에, 79년에 박정희 대통령이 총에 맞고 죽는다. 히릿. 그런 말이 그런 말은 아닐 것인데 말이다.

 

우리가 블랙을 무조건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잘 아는 것도 아니다. 신라면 블랙. 캄보디아. 블랙 핑크. 미얀마. 하지만 블랙 테트라가, 그 이름도 수상하지만, 구름과 나가 우리에게 주는 것은 평론의 어려움일 것이다. 수많은 노래가 있지만, 유명한 평론가와 그의 작품이 없는 것은, 평론이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뭐라고 스티커 붙이는 것은 일반인들도 할 수 있다. 그리고 광고 전단. 그런 회사에서 일해도, 삼 년이면 할 수 있는 것들이다. 결국은 블랙 테트라. 우리에게 평론가가 없어서, 결국 송골매가 죽어버렸다 해도, 우리들의 짧은 가요사의 한 축은 그려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논리가 이렇게 된다. 블랙 테트라가 박정희 대통령을 죽인 것이 아니다. 여기서는 독재자 박정희가 아니다. 상징적인 권력으로서의, 어떤 한국 존재를 뜻한다. 잔칫집 구석에서도 뭘 얻어먹다가, 사람들이 서로 싸우고, 상을 엎고, 그러면 얻어먹지도 못하는 혼돈 상태. 그것은 우리에게, 아무리 남의 집 혼돈이요, 상처일지라도, 슬픔을 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평론이 없다는 것이다. 송골매가 박정희인가? 얼마나 이런 띄엄띄엄 있는 현상학이 오래 된 것인가? 얼마나 많은 시간이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고 자라고 행복하게 살다가 죽었는가? 그 사람들이 그냥 채워짐 같은 것인가? 우리에게 말을 할 수 있는 용기나 능력, 어떤 분위기가 생긴 것은, 어떤 민희 시리즈 때문일 것이다. 우리에게 블랙 테트라가 채워진 것이다. 그것은 사탄의 것이 아니다. 모든 블랙은, 화이트는, 사탄의 지시체가 있다. 그리고 경솔하면, 고민하는 자기가 그리로 이끄는 동력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사탄으로 앙드레 가뇽한다. 사탄으로 가지 않는다. 그것은 웅장한 것이고, 옆으로 잠깐 가고자 하나, 장횡거, 끝없이 가는 것과 같다. 사탄이 담 넘어에서 우리를 따라오다가, 먼저 죽을 수도 있다.

 

나는 그때 여섯 살이었고, 구창모의 목소리를 조금 무겁게 볼륨 조절하면, 정말 나의 목소리와 비슷하다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독재 정권 컴퓨터적으로 생각하면, 비평도 사라지고, 모든 것이 사라진다.

 

어째서 독재 정권 아래서는 아무런 철학자가 나오지 못한 것일까? 철학은 블랙 테트라처럼, 어떤 조바꿈 같은 것인가? 조현병 조현병 그러는데, 그것은 어쩌면 조바꿈과 같은, 그런 말의 문법을 가진 사람이 쉽게 나올 것 같은데, 정신병자만 무수하게 나오고, 아무 것도 나오지 않는다는 말인 것인가? 그리고 그 둘은 실제로 거리가 있는데, 함께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사탄의 흔적 말고는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사람들이 박정권을 보면서, 눈에서 흰자위가 거짐 사라질 때였다. 단군 이래 그런 시절이 없었다. 요즘 유행하는 걸그룹의 노래를 들으면서, 아이들이 문해력이 거의 사라진 것도 비슷한 선반일 것이다. 그래서 블랙 테트라는 선동하는 느낌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처음, 그 생각, 눈에 흰자위가 사라진 것 같은, 그런 생각의 동질성과 같은 매질이 없다면, 그냥 순수한 청년의 사랑 가능한 이야기 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어째서 철학자가 나오지 않는 것인가? 어째서 김대중이나, 김영삼 정도로, 에너지가 소모되는 것인가? 박정희가 카리스마는 있으나, 연설력은 조금, 그와 같은 민중 토론력이 없었을 수도 있다. 어째서 카리스마와 연설력 조금은, 과정과 발전의 신뢰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인가? 어째서 민중 토론력은 사탄을 쫓아내는 능력이 있는 것인가? 있다고 여겨지는 것인가? 그리고 아무런 말이나 주고받는 것으로, 민중 토론력을 소모하는 사람들을 어째서 사람들은 잘 지적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러니까 박정희는 사실 죽지 않고 있는 것이다. 김어준 같은 이가, 얼마든지 미얀마에 가서는 독재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사탄은 그와 같은 블랙, 신라면, 블랙 핑크, 히릿, 그런 데에서나 맹렬하게 회전하는 그림자이기 때문이다.

 

비평이 그렇게 어렵다. 쓸데없는 데에서 관심을 거두고, 우리를 보면 그런 생각이 절로 든다. 대충 이렇게 소설을 시작하면, 사람들은 자기의 감상에서 주자학적 블랙이 그만 빠져있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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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고민이 많았다. 이름도 대충 비슷했다. 사람들은 그래서 그녀를 고민녀 고민녀 그렇게 불렀다. 혹은 고민이 많은 아낙이라고, 고민댁 고민댁 그렇게 불렀다. 읽던 책을 놓고, 머리를 긁적이다가, 홍차를 찾았다. 홍차가 없어서, 부엌 선반 여기저기를 찾았다. 홍차를 마시고, 비스킷을 조금 먹는 사이, 영식이 찾아왔다. 영식은 가볍게 인사하고, 그녀의 발목을 만졌다. 그녀의 발목이 다친 것이 아니었다. 영식이 가끔 그럴 때마다, 그녀는 고민이 아주 많았졌다....

 

 

 

우리가 이런 글을 읽는다는 것은, 정말 아무런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파리나, 리조트, 리조또에 가서 당하는 느낌이라는 것은, 저녁의 슬픔 같은 것이다. 가슴이 너무 벅차, 그래도 현지 시장을 돌아다니고자 하는 것이다. 시장을 돌아다니면, 그나마 생명의 시계가 다시 활력을 얻고, 시작되는 느낌을 갖기 때문이다. 블랙 테트라는 거기서 만족할 수 있을 것인가? 사람들은 철학하지 않았다. 그러나, 비슷한 상품은 귀신처럼 알아서, 화음을 빙글빙글 돌리면서, 적당히 한국적인 것을 넣어서, 조선 국사학 연구소 같은 것, 밥 말리, 말아먹을 줄 알았다. 사람들은 원 스탭으로 살아간다. 그것은 조금만 관심이 있는 학생이라면, 반드시 읽을 수 있는, 그 비좁은 곳에서도 살아남는 초고대의 격언 같은 것이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 아무런 비평이 없는 주장이다. 지금까지도. 그리고 흐르는 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 정확한 영어 문장이 없다. 왜냐하면, 헤라클레이토스는 한국어 문법을 갖고, 그 말을 하였기 때문에, 영어로 번역하면, 원 스탭, 투 스탭, 그런 말이나 하게 된다. 우리들은 가난하고, 우리들은 미천하고, 미천왕,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우리는 소수하고, 소수림왕, 얼마나 끔찍한지, 시골 할아버지가 천 년 이천 년, 소를 끌고, 밭을 쟁기질하는데, 그것을 두고 광개토대왕이라고, 거기서 거의 모든 것이 생겼다 사라지는 것이다. 블랙 테트라는 억울할 수 있다. 박정희가 죽은 것일 수 있고, 김대중, 김영삼이 죽은 것일 수 있다. 우리는 계속해서 피박 당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송골매까지 죽고 말았다. 그렇다면 무엇이 영원한 것인가? 우리는 사탄에게서 조롱당하지 않을 수 있는가? 사탄의 영향이 있는 것이면, 사탄을 물리치는 기쁨이 반드시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블랙 테트라가 그랬다. 블랙 테트라를 처음 들을 때는, 기가 막힌 선동 정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런 후발이 없었다. 그래서 박정희가 죽은 것일 수 있다. 우연히 하얀 고향으로 가자 했는데, 이문열이 소설을 쓰고, 군인들이 들고 나선 것일 수 있다. 그만큼, 나는 송골매보다 오래된 노래처럼 여겼던 것을, 사람들은 좋아하였던 것이다. 사람들은 블랙 테트라, 첫술에 배부르고자 하였다. 나는 지금까지도, 샤라포바나, 김연아, 그런 달리는 말의 종류인 줄 알았다.

 

문장은 반드시 자기 할 말 다하고, 시인을 도시에서 쫓아내지 않고, 히릿 하는 추임새까지 넣은 채로 끝날 수 있다. 그것이 산문시의 위력인 것이다.

 

우리는 산문시의 위력까지 나아갈 수 없다.

 

보통의 인간들은, 블랙 테트라만 해도, 그냥 하얀 고향으로 가자고 했는데, 서로 총질을 하고, 유신을 무너뜨리고,

 

그렇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