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그림을 보고 좋아하는 것은
그것이 잠깐이고, 동시에 영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물며 영화를 보고는, 어떠한 생각을 하겠는가? 영화를 보고는, 그것이 제법 오래고, 그리고 보다 영원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잠깐인 것을 좋아하고, 당연히 그보다 오래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다만 장수에 관한 탐욕 때문만은 아닌 것이다. 우리가 학교 교육을 싫어하는 것은, 교육은 짧고, 예술 교육은 길어서가 아닌 것이다. 그러니까 고린도전서, 무언가를 보았다는 것이다. 뭐든지 짧은 것이 좋다. 공부를 그만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삶이 짧은 것을 두고는, 아직은 의리가 있는 시기의 나이에서는 알 수 없는 분노가 폭발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짧은 나이의 것을 다만 길게만 한 것에 대해서도, 드디어 같은 질량의 분노를 폭발하게 되는 것이다. 우연히 사람의 삶이 짧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어서이다. 교육도 그렇다. 자기가 공부를 잘해서, 공부를 좋아하고, 공부를 못해서, 공부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구 할이라고 해도, 나머지 일 할은, 그렇지 않은 것을 갖고 있다. 그것은 짧은 생명 공부. 짧은 생명, 그리고 공부에 관한 냄새만 풍기는 것이다. 그것을 우연히 도시 변두리에 사는 집을 가는 길에, 요즘은 그런 풍경이 없지만, 뱀을 보듯이 본 것이다. 그것을 고발하고, 그것을 미워하고, 그것에 큰 목소리로 말할 수 있는 자격은, 고린도전서, 오직 사도 바울처럼, 이것저것을 다 갖춘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공부를 못한 아이가, 갑자기 운동장에 서서, 몇몇 학생들과, 비인간적인 학교 교육을 멈춰라고 말하면, 아주 친한 사람들인 경우에만 안타까움을 얻을 수 있지, 나머지 사람들에게서는, 해프닝으로만 비치는 것이다. 그 사람이 세력이 없고, 그 사람이 자격이 없고, 그 사람이 내일도 공부를 잘할 운명이 아니라고 한다면, 너무 외면을 사서, 사탄까지도 나타나, 그 학생을 조롱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그림을 보고 좋아하는 것은, 몇몇 움직이는 그림을 보고, 커피 잔을 떨어뜨리고, 따라 눈물도 떨어뜨리는 이유는, 그것이 짧은 순간의 진리를, 소수림의 왕 중에 왕을, 보고하고, 나타내기 때문인 것이다. 사랑도 그렇다. 결혼도 그렇다. 공부를 해서, 사랑하고, 결혼하고 하는 것을 멈춘다고 하면, 사람들은 공부가 순수하고, 추상적이며, 참으로 보편적이다 할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사람들은 공부하고, 사랑하고, 결혼하는 것이다. 그러니, 공부가 처음부터 왜곡되었다 단정해도, 사실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닌 것이다. 내가 만일 이와 같은 키보드가 없었다면, 능수능란한 한국어 반어법적 어미의 또한 반어법적 진행을, 생동감 있게, 멋진 재킷이나, 스타킹처럼 할 수 있었겠는가? 우리는 상대의 소수림왕을 알아보고, 결혼까지 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예술과 문화, 문학과 티비 드라마의 선동은, 잘하는 짓이기도 하고, 또한 사탄의 단추, 혹은 마필이기도 하다. 만일 사탄이 스파이를 고용한다면, 그것의 스킬을 갖고 있다면, 당연히 갖고 있을 것이고, 사탄이라는 말도, 먼저는 스파이에게서 비롯된 것일 것인데, 스파이, 스파이, 스파이, 사탄, 그런 식으로, 소수림왕을 알고 있대도, 너무 잠깐인 것이다. 남자가 그렇고, 여자가 그렇고. 수가성의 여인에게, 스파이처럼 예수님이 나타나, 결혼을 몇 번 했지? 알아맞히니, 그 여인이 예수님을 알아보는 것처럼, 사랑과 결혼에, 성혼에 목말라하는 여인에 대한 묘사가, 지금의 세상에도, 어디에 따로 있겠는가? 그렇다면, 그와 같은 스파이에 관한 장려한 문답을 실행하고, 단속하는 법을 또한 강구하고, 해야 할 것인데, 도리어 별 말이 없으신 것이다. 그러니까 그것에 관한 가장 좋은 해석은, 예수님이 노래하는 가수와 결혼하셨다는 것인 것이다. 사람들은 스파이와 같은 관념을 좋아하고, 일반인들의 어두운 눈을 좋아하고, 그들에게 힘이 없는 것을 알고, 보다 거대한 드라마와 이야기에 종속시키는 것을, 조금만 커뮤니티를 가지고 있으면, 좋아한다는 것을, 우리도 알고 사람들도 알고 하는 것인 것이다. 그것은 끝장과 같다. 단장과 중장은, 당연히 아름다운 여인과 결혼하여, 사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짧다. 거기서도 논쟁이 일어나고, 예수님이 최고인가? 아니면 카이사르가 최고인가? 카이사르가 말주변이 없으면, 아가멤논, 그리고 플라톤이 최고인가? 전쟁이 발발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비인간적 교육을, 그와 같은 관념의 진행을 방조하는 것은, 이와 같은 끝장 토론적인 성격이 있기 때문이다. 토픅 시험은 내가 개창했지만, 할 수 있는 능력의 사람이 나 밖에 없어서, 확산되지는 못하고 있다. 대신 토플 시험과 토익 시험이 아직도 있을 것인데, 말하기와 쓰기가 덧붙여진 것은, 그것이 바로 끝장이기 때문인 것이다. 학생들은, 나와 영국이 기아처럼 맞물리는 것을 두고, 분노하고, 교육 정책이 그와 같은 비인간성과 형식을 공공연히 공식화한다는 것에 분노하였었다. 그래서 어떤 학생은 신종플루라는 것이, 신플라톤주의와 연결이 되고, 내가 예수교에서 빠져나와, 플로티누스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것에, 혹은 내가 오랫동안 기독교의 후원을 받고 있지 못해도, 예수님의 제자로서, 다만 기교와 레토릭의 영원적 표상인 밀레토스 학파를 공격하고 있다고 해서, 그러니까 관점에 따르면, 나는 플라톤도 되고, 사도 바울도 되는 것인데, 그래서 그들이 도망치듯이 공격하는 방식으로다가, 독감 바이러스를 퍼뜨린다고도 생각했었다. 토플 시험이, 이것저것 교수와 학생이 묻고 답하는 것으로 시험 지문을 삼는 것이, 그래서 그들에게는 다만 냄새만 맡아도 질식할 것 같은 조건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문학은, 지금도 여성적인 표현과, 대상을 상실한 내부적인 중얼거림과, 과거 이슈화된 것에 관한 맹목적인 추종과, 상품과 기성 권력의 유도에 하나의 막힘이 없는 것을, 세상 자랑으로 알기 때문이다. 신종플루적인 관점에서 보면, 나는 아름답게 노래하는 젊은 트롯 여가수와 결혼한 사람 같았고, 한쪽에서는 젊은 패티김, 그리고 쌍쌍파티를 불렀던, 최진희, 김지선, 이름이 생각나지 않은데, 또한 젊은 가수가 그 옆에 있는 것으로 상상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신종플루적인 관점에서 보면, 토플 시험을 보고 나오면, 권력적인 영어 패스 시험을 보고 나오면, 토하고, 조용하고, 그래서 나긋한, 어딘가에서 교향곡의 이 악장 소리가, 주제가, 흐르는 것 같았던 것이다. 우리는 서로를 응원하였었다. 메르스 때도 그랬다. 너무나 본격적으로 삶과 죽음이 연출이 되자, 우리는 더욱 진실을 갈망하였고, 사탄의 방향과는, 헐리웃 영화의 방향과는 반대의 전개가, 전개되었었다. 우리들 영화의 독감이나, 기생수, 그런 것이 있었을 것인데, 그리고 판도라, 그것과는 반대로, 우리는 병상에 누워있는 사람과 손을 잡고, 기도하고, 나중 만나는 것을 기약하면서, 헤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메르스를, 그 수많은 해석과 단어의 인접성을 놓고도, 사도 바울의 편지로만 해석하였기 때문이다. 신종플루도 그렇다. 그것을, 세상 사람들 중에, 플로티누스를 몇 명이 알아서, 신플라톤주의라고 죽음을 받아들이겠는가? 우리는 고상하였고, 서울이 갖는, 언덕, 그 슬픈 절정을 그렇게 맞이하였던 것이다. 내가 드디어 토픅 시험을 개창하니, 토익이나, 토플, 탭스 시험 보기가 마음이 수월하여졌다. 처음부터 그렇기가 어려운 것은, 사람들도 잘 알 것이다. 그리고 끝장처럼, 말하기와 쓰기를 하게 되면, 더 이상 할 것이 없고, 듣기도, 단문은커녕, 장문의 독해도 매우 쉬워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우리를 위해서, 우리의 목적을 위해서, 그렇게 신종플루가 발발하였던 것일까? 우리는 때로는 너무 착한 사람처럼, 마스크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우리가 갖고 있는 각종 값비싼 기자재 때문인 것이다. 그들은 죄가 없고, 그들은 예민하며, 그들은 거의가 집 한 채 값이기 때문이다.
시지프스가 그래서, 가장 최근의 민희 시리즈 중에서, 사탄의 핵심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가끔은 촉매에 오른 사람들도 있다. 영어 성적이 별로 좋지 못했어도, 우연히 모집 인원이 많아서, 채용이 되고, 영어 성적이 별로 좋지 못했어도, 도리어 현장 영어 능력으로는 못하지 않고, 몇 번의 케이스로써, 자주 기용이 되는 사람도 생기는 것이다. 서울은 사람이 많고, 누가 유능한지, 그 수를 헤아리기가 어렵다. 그래서 사탄이 뉴욕은 미워할 수 없어도, 서울은 두렵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사람이 책을 골랐을 때, 서울 사람들은 돈이 없어도, 구입하는 경우가 많고, 대게가 고전에 대한 집중성을 갖고 있다. 마담 보바리를 읽는다고 해도, 다만 그 번다한 줄거리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프로베르의 문체가, 나의 문장과 비슷하다는 것에 반가움을 느끼는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아저씨가 되었고, 화가가 되었고, 스타벅스 사장이 되었다. 그러나 뉴욕 사람들은, 고전에 집중성이 없고, 화보의 경향이 있고, 다만 연대별 정리 같은 것으로써, 물성의 난독증을 조성하고 이겨내고 하는 것이다. 어째서 조성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만일 사람들이, 취미로나마, 토플 시험을 일 년에 두 번씩 보게 되면, 굉장히 영어 실력이 늘게 되고, 본원적인 한국어와 함께, 오히려 미국 사람들보다 더욱 미국적인 능력을 갖게 될 것이다. 실제로는 수많은 어려움 때문에, 그렇지 않을 확률이 높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보물섬의 지도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우리가 어렸을 때 보물섬 만화 영화를 학교 끝나고 집에서 보았던 사람과, 보지 않았던 사람의 것만큼,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잦은, 차원의 충돌은, 마침내, 심각한 인격을 우리 개개인에게 요구하게 되고, 인격이 매개가 되는 시간과, 인격이 없는 채로, 그와 같은 반복을 겪는 것은, 따로 형언할 길 없는 엄격한 차이를 가질 것이다. 우리 같은 민주주의도, 민족주의도, 권력을 용인하고, 때로는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권력이 갖는, 비논쟁적인 역사성, 혹은 속도감 때문이다. 따라서 인격이 제거가 된 사람들이 권력을 가질 수 없고, 영어와 인격을 가진 한국 사람들이, 당연히 미국의 프레이리에서부터, 목사로서, 새로운 권력자로서 청빙을 받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덜하지만, 옛날에는 암암리에, 한국 목사에 대한 인기가 엄청났었다.....
기아를 한 번 느끼기 시작하면,
우리의 눈물이 미시시피의 강처럼, 흐르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그림을 보고 좋아하는 것은
반드시 누군가 거기에 글을 달아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인 것이다.
아름다운 시를 덧붙여줄 것을 믿기 때문인 것이다.
우리가 우리에게서 지능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여겼던
사군자라는 것이
지금 보면 신학자라는 말과 비슷하게 들린다.
왜냐하면
서양 사람들은
예수님의 어린 제자들 밖에
그의 마지막 존재가 없기 때문이다......
'일반민중문화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관심의 소비 (0) | 2021.05.29 |
---|---|
글을 잘 쓰고 꿈이 많은 주자에게 지원은 하지 않고, 추성부도,자지나 관심이 있는 것들의 레파토리를 정리하며....... (0) | 2021.05.03 |
슬픈 지류: 구름과 나 論 (0) | 2021.04.05 |
핵전쟁 핵전쟁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가 그러는데 그 뜻이 무엇일까? (0) | 2021.04.01 |
한신대와 서울대 (0) | 2021.03.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