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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민중문화이야기

나의 나라, 나의 동남아

by 마음대로다 2021. 7. 11.

 

 

나의 나라, 나의 동남아

 

 

 

 

 

 

 

 

 

 

내가 세상 모든 어린 왕자일 때는, 아직 쓰이지 않은 나의 소설이 환영받지 못할 시에는, 태국으로 가고 싶었다. 나의 이와 같은 정결한 김칫국은, 나만의 것이라고 하기에도 그렇고, 그렇다고, 카르타고, 한니발, 일반인들이 자주, 일반인들도 어쩌면, 갖는 것이라고 하기에도 그런 것이다. 티비라는 가상, 자주 보는 사람들끼리의 연극이라는 것이, 어린이에게도 가상, 레토릭으로 보였던 것이다. 그것은 천재일까? 아니면 사기, 삼국사기, 아니면 사기꾼일까? 아니면 진실한 것일까? 그래서 나는 세상 모든 사기꾼의 길을 가면서, 어느 날은 초우 같은 영화도 보고, 어느 날은 사랑방 손님도 보았을 것이다. 어느 날은 미워도 다시 한번도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이와 같은 융합이 매우 중요한데, 미국 영화들을 그렇게 많이 보았던 것이다. 아무리 러브 스토리가, 라붐이나, 블루라군처럼, 시도는 해보았으나, 그와 같은 바하의 선율에는 미치지 못했던 실험 끝에, 마침내, 베이직 인승팅트, 인승, 최인승이라고 있었다, 학교 선배, 그리고 마침내 양들이 침묵으로 고꾸라질 무렵, 그렇게 미래적인 시간이, 블레이드 러너처럼 정해져 있다고 하나, 우리는 초우의 분위기 속에서, 학교에서 돌아와서는, 로미오엔 줄리엣도 보고, 러브 스토리도 보았는 것이다. 지금도 그렇다. 그러니까 시간이, 일종의 태양풍처럼, 왜곡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김정희, 추사 김정희와의 관계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이름이 같은지, 아니면 같은 집안사람인지, 지금까지 아는 바가, 알려진 바가 없다. 일본어로 빠. 가. 하지만 그리 오래되지 않은 나의 글에, 둘의 관계가 여실하게 드러났으니, 사람들은 새로운 세계관에 눈을 뜨게 되었던 것이다. 좋은 글씨가 좋은 글은 아닌 것이다. 추사 김정희에는, 그와 같은 피 말리는, 강원도 정선에서, 카지노 하는, 계속하는, 돈을 추사 김정희로 글을 써서 보태는, 그런 것이 엿보이는 것이다. 그것이 엿보이는 사람이 있고, 학생이, 백번 김구 죽어도 엿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학생이나 선생이. 선생들이 나를 가르치기 힘들어했다. 그래서 대학에서는, 나는 교수들에게 반항하고, 전남대, 버릇없는, 서울대 학생의 계급에 섰던 것이다. 자연스럽게 버릇이 없었는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그러했는지는 기억이 없다. 나는 선생들에게도 좋은 인사이트를 주고자 했고, 실제로 그런 경우가 있었다. 배우는 경우도 당연히 많았고, 행복했던 기억, 추억, 그러나 나 주체의 주자학 때문에, 그와 같은 밀웜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다. 선생이 똑똑하고, 학생이 그것으로 복지를 누리는 시간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항상 의심스럽고, 알려진 것이 아니고, 우리가 잘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여자도 그렇고, 결혼도 그렇다. 라디오 방송도 그렇고, 라디오 방송이 끝끝내 서양 편에 서고, 그들끼리의 절대량의 에피소드들에 부끄러움이 없는 것은, 라디오 방송이 사람들의 의식에 비해, 높다라는 무의식적인 의식 때문인 것이다. 잘난 학생들은, 세상이 그렇게 굳어질 수 있다는 것에 별로 경각심이 없다. 자기가 그렇지 않기 때문에, 그와 같은 염려는 따로 할 시간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현대 모더니즘적 사상가는, 어린 왕자는, 젊은 생각자는 지금 지옥을 경험하고 있고, 그와 같은 굳어짐에 대해 눈을 뜨게 되고, 마침내 널리 알려진 것들을 알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어려서 현대 모더니즘적 사상가였고, 나이가 들어, 대학에 입학해서, 현대 모더니즘적 사상에 그래서 환호하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중국과 미국, 그리고 일본은 그것이 여의치 않았다.

 

전선야곡과 같은 불후의 명곡은 그것이 엔카인지, 케이카, 아니면 조선의 트로트인지, 아니면 조국 근대의 가곡인지, 분류하기가 마땅치 않다. 어용 권력의 나팔수의 국책 사업이었는지도 확실치 않다.

 

우리의 현대는 현대를 희롱하는 능력이 있었고, 나의 글이 세상 모든 아이들과, 세상 모든 읽는 이들과, 쉽게 알 수 있고, 보이는 대로 보이는, 자주 봐야 너희들도 예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수준의 것인지, 희롱하는 높낮이의 마구 같은데, 전선야곡은 정말, 그것으로써 조선시대로도 우리는 갈 수 있었다.

 

우리들의 노래는, 전쟁 이후, 군사정권 안에서도, 우리들의 노래는, 그것이 퇴폐인지, 광주풍인지, 아니면 순수한 노래인지, 기생 라합의 노래인지, 에드가 알랜포우, 누군가 그렇게 말을 하면, 누군가 기가 막히게 시골 사투리로 알아듣는 것인지, 학생들이 전쟁처럼 먼 길까지 소풍을 가서, 끼가 있는 아이들을 기필코 왕으로 삼아서, 사울처럼, 나머지 다윗들이 듣고 손뼉 치고 좋아하는 것인지, 디스코도 췄다가, 고고도 췄다가, 어깨춤도 췄다가, 파인땡큐 엔드유, 그랬다가, 우리는 우리들의 변화가 따분하나, 분류와 클래스로 사람들을 속이고, 사칭하고, 죽이기까지 하는, 그런 것을 천성적으로 좋아하는 사탄들에게는, 고통의 나날일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 만 가지 종류의 노래를 부를 수 있으나, 예술이 고통과 클래스, 트집과 생존의 방편 밖에 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이동 출산 거주의 자유가 없는 것이다. 사탄이 수학이 있다고 했는데, 그들에게도 인기는 분명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인기인을 척결하는 것도 그들의 방편이지만, 인기인의 인기를 이용하는 것도 사탄의 나름 전공인 것이다. 비틀즈가 점점 맹목적인 사탄의 예술론에 적합하게 되었으나, 가사와 메시지, 그리고 정신이 저항을 하였고, 레드 제플린이 완전히 사탄처럼 나타났고, 인기가 점점 생기가 계획이 생겼으나, 김신조의 기습처럼, 나중에 산타나가 나타났던 것이다. 산타나와 사탄은 이름이 거의 비슷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탄을 좋아하는지, 누룽지를 좋아하는지, 알 수가 없다. 밥을 맛있게 먹어놓고는, 보리 혼식을 하지 않고, 백호주의처럼 완전 무결한 흰색의 향연을 벌이다가, 반드시 누룽지를 먹고는, 누룽지가 제일 맛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에게는 생각의 대상이 아니고, 천연적이고, 천연덕스러운 삶인 것이다. 박정권 아래서의 경제 발전과 아울러, 노래마저도, 퇴폐적이고, 전선적이고, 희망적이고, 윤형주 같고, 계속 반동적이고, 퇴폐적이고, 사랑으로 천편일률적인 노래들이 나타났던 것이다. 항상 서양의 정신, 예술 문화를 선점한 사탄들에게는, 눈에 차지 않는, 마음에 들지않는, 세계적인 인기로 보기에는 힘이 드는, 다만 독재 정권의 하수인만 같은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의 위력과 참된 힘의 본질, 그것의 출처가, 자기들 사탄을 노리고 있었다는 것을 매우 뒤늦게 알았던 것이다. 자기 힘으로 이차대전을 끝내지 못하고, 자기들 힘으로 육이오도 이기지 못했으면서, 그들의 만의 예술과 문화, 정신 같은 것이, 있을 리가 없고, 노래 같은 것은 계속해서 일본의 엔카, 그리고 케이카의 연속이 아니겠는가? 가요 무대를 듣다 보면, 하나 같이 같은 노래만 같은 것이다. 그러나 예술은 다만 범주적인 전문으로서의 예술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 전체가 예술이고, 경제 활동 전체가 예술이며, 전쟁은 반드시 도움을 받아야 승리한다는 것을, 그동안 맘 편했던 사탄이 깨달은 것은, 우리가 어느덧 안정적인 쿠푸왕의 피라미드 궤도에 오른 다음의 일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학생으로서 공부하고 있었고, 그래서 우리들의 문제를 진단하고 있었으며, 그것을 할 수 있었으며, 그것이 작품이나 저서로 나타나지 않았을 뿐, 여러 사람이서 분산하고 함께 진행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의 육십 년대가 지금과 거의 같고, 도시의 풍경 마저, 그렇게 초우주의 시대를 살았던 것처럼, 우리들도 우리들의 정신이, 사소한 역사적 출처를 따질 필요 없이, 어원을 다만 묻고 즐기는 수준의 것이 이미 되었던 것이다. 아슬아슬하고, 다시금 그것이냐, 이것이냐, 정말 있느냐 하면, 사라질 수 있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우리들 눈에는 약해 보였으나, 우리들 친구 동남아 인들에게는, 그것의 모음들이, 모집들이, 점점더 그렇지 않은 것으로 비췄던 것이다. 그와 같은 잔잔한 양명학적 폭동이, 폭풍의 전야가 있었던 것을, 우리가 지금껏 몰랐던 것일 수 있다. 우리가 서양의 정신이 높고, 훌륭하고, 모던하고, 바우하우스하다고 부러워할 수는 있었으나, 그것으로 우리가 폭동을 일으킬 정도는 아니었지 않은가? 전선야곡 같은 야상만 입어도, 갑자기 술을 마시다가, 일어나 누군가 불러도, 우리는 다시금 전선으로 회집 되는 것 같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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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이 모르는 것들이 있다. 그것의 통찰이 우리들의 사탄학이다. 산타나. 그러나 사탄이 그것을 몰랐다고 하는 것은 우리들의 단순함일 것이다. 그러나, 또한, 우리들의 자유가, 반드시 모든 이의 자유가 아니듯이, 사탄에게도, 사탄이니까 더욱, 알아도 소용없는 영역이 있는 것이다.

 

 

사진의 모습처럼, 우리에게는 죽어도 예술이었다. 그것밖에 없었다. 그와 같은 죽음과 예술론은 사탄의 방책이고, 우리들과 겨루는 것들이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항상 학생이 없는 것이다. 그것의 수가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많지 않은 것이다.

 

좋은 영화는 무엇인가?

 

좋은 학생이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사탄이 알아도 소용없는 영역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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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충장로에는, 금남로에는, 이것저것이 많았다. 여행사가 한군데 있었는데, 그곳에 있는 방콕 여행의 설치 미술이 그렇게 아름다웠다.

 

내가 슬픔이 넘칠 때는, 훌륭한 학생이라 아무 이유 없이 그럴 때는, 그렇게 아름다운 사원이 있는, 동양의 방콕에 가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