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슬픈 속성
나미의 슬픈 인연이라는 노래가 있다. 그것은 있다. 말과 보리가 자라네. 그것은 누구든지 알지요. 하는 노래가 우리에게 충격을 주었던 것처럼, 약간 깡패 노래 같은. 그것은 밀과 보리가 자라네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슬픈 인연이라는 노래가 우리에게 충격을 주었던 것은, 그것은 정식 발라드 같았기 때문이다. 나미는 덜 자랄 것 같았다. 나미는 그렇게 우리에게서 헤어지기로 되어 있었다. 속성이 마침내 드러나고, 스토리가 사라지며, 구조가 드러나고, 드디어 한 줄 요약이 된다 싶으면, 그 속성은 허다한 죄를 덮는, 눈물의 속성이 되기 때문이다. 나미는 빙글빙글 돌고. 그리고 김흥국처럼. 즐거움의 짧은 사바세계를 지나, 시바견을 지나, 사라지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한 사람의 아내요, 한 사람의 아버지로. 그것은 평범한 세계인 것이다. 그런데, 나미의 슬픈 인연은, 굉장히 슬펐고,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는, 바로 그 나미의 노래인 줄을 우리가 몰랐던 것이다.
우리는 아주 오랜 옛날로 돌아가야 한다. 주자는, 로마서는, 기록되지 않은 사탄의 고고학과 같다. 왜냐하면, 기록하면, 사람들이 그것만 보고, 그것만 읽고, 그것만 알려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인간의 속성이고, 사탄의 속성이다. 사람들이 이전 시간을 좋아하는 것은, 우리가 그 이전 시간에서부터 지금 시간이 나왔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주자가 틈만 나면, 화내고, 자장면 내고, 화내고, 자장면 내고 하는 것을 싫어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때는, 어느 때만큼은, 다 닳아진 다이얼 채널이 잘 맞아서, 기가 막히게 깨끗한 화질을 우리가 티비로 볼 때가 있지 않은가? 도리어 기분이 좋을 때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섹스로 이뤄져 있는지, 화로 이뤄져 있는지 알지 못한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차분하고, 냉정하고, 분석적이고, 말이 없고, 그런 것을 좋아하였다. 왜냐하면, 그것이 권력적 우위에 있었던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짜증내고, 자장면 내고, 매운 짬뽕 내고 하는 것을, 사람들은 중국집처럼, 우리 집이 아닌 것처럼 여겼기 때문이다.
우리가 팔조의 강선으로 이뤄진 자장면을, 누군가의 면치기 소리를 들어가면서, 헤집고 들어가면, 아주 오랜 옛날에는 공룡만 살았더라는 우리나라의 어떤 유명한 구석진 노래처럼, 그런 시대를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사탄만을 생각했고, 그것은 사람들의 속성이었고, 사탄의 속성이었다. 그래서 틀어주는 대로, 대충 권하는데, 재미 삼아 꾸준히, 그런 영화를 보는 것은, 대단히 좋지 않은 것이다. 우리가 불필요하리만치 많은 문화를 쌓은 것은, 아주 단순하게는, 그런 사탄에게 시간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세상에 악행과, 전쟁, 히로뽕 같은 것이 터지는 것은, 발발하는 것은, 다 배운 것들이 결국 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멍청한 사탄이 그런 복잡하고, 세력적이며, 권력적이고, 세계사적인 일들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 것은 어찌 알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양가적이고, 양답적이다. 그렇게 우리가 답안지에 적어도, 정답이 되고, 잔인하고, 하루라도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드라케라토푸스 같은 가시가 신체 어딘가에서 돋는다는 사탄이 전쟁을 일으킨다고 해도, 생각보다 깊은 정답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그와 같은 주관식 답안지를 어딘가에서, 누군가에게서 받아볼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종잇장도, 도무지 누구와도 맞들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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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은 기계를 갖고 사람들을 지배하기 좋아한다. 기계까지 갖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가지고 나면 유지보수가 또한, 그것만 하면 쉬워지듯이, 그것을 갖고, 드디어 동방 원정을 출발하였던 것이다. 사탄의 대표적인 속성이 뭔가? 뭔가 자기들 아리랑 논리를 갖고, 그러니까 때로는 아이들을 내세우고, 때로는 초월을 내세우는, 혹은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몇 가지의 명제가 아닌가? 사실 국내용이 사탄인 것이다. 속성은 그것과 대표적으로 일치하며, 우리가 일식의 시기가 되면, 국왕까지 옷을 갖춰입고, 제의를 올려야 하는 것은 그 때문인 것이다. 우리가, 소설가가, 소설의 내용이 그렇게 좋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그렇다면 과연 국제용인지, 국제용이 될 수 있는지, 그것은 드래곤, 궁금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오랫동안 살아도, 이 단 하나의 우산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들의 마음은 착하고, 좋았으나, 오대수의 말처럼, 그나마 무난한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했으나, 그 하나의 우산에도 벗어나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우리 한국 소설가가 정식 일본 문학을 하지 못하는 이유도 그것일 것이다. 내수용의 굴레가 너무 깊고, 일본 극우파의 연계가 정치 외교 그리고 아이오씨까지 아울러서 너무 광범위해서일 것이다. 작가는 작다는 말을 갖고 있다. 작다는 것은 상대성이기 때문에, 처음으로 존재의 확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작다는 인식 이전에는, 사실 선악도 없고, 높낮이도 없는 것인 것이다. 어린 대학생이 처음 소설을 쓰면, 하늘에서는, 연꽃 같은 눈을 내려, 그것을 축하해준다. 지금은 덜하지만, 옛날에는, 하늘뿐 아니라, 신문방송 할 것 없이, 영화 할 것 없이, 모두 다 그런 모양새였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누군가의 사탄을 물리치는, 화랑, 위드 플라워즈, 단군 조선의 시작을 알리면, 중성자탄 같은 것들도, 눈물을 흘리기 때문이다. 가지 않은 길. 우리들 눈에는 굉장히 먼 길이지만, 자기 딴에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국내용이고, 내수용이고, 하는 것은 아주 나중의 문제이긴 하지만, 우리가 과거에는, 공룡의 화석까지 이를 정도로, 시간이 남아돌았기 때문에, 마침내, 사탄들끼리 서로 부딪혀 비난이 작동하였던 것이다. 그러니, 그 내수가 얼마나 지릴 때까지, 맨틀, 핵까지, 얼마나 오졌겠는가? 그렇게 기계를 보에 숨기고, 수많은 부하와 시종들을 데리고, 동방 원정을 왔던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인류가 사탄을 수학적이고, 지리적이며, 단순 산술적으로 벗어난 유일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친구들을 찾아가고, 친구가 집에 있는지 확인하고, 때로는 암살당했다는, 기록되지 않은 조선상고사를 좋아하지, 동방 원정으로부터 피동적으로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꺼려지는 것이다. 하지만, 꼭 그렇게만 생각할 것은 아닌 것이다. 고유비라는 가수의, 꼭 기억해 라는 노래가, 서양의 메탈 발라드를 흉내 내었다 말하는 것이, 우리들의 독특한 샤우팅 기법이 우연히 화음과 정식을 만났다 하는 것보다 좋을 것이 없지만, 전자라고 해서 우리가 사탄처럼 화를 내고, 전자라고 해서 우리가 기물을 부수고, 미국의 어느 택배 기사처럼, 펌킨 헤드를 미쳐 발견하지 못해, 물건을 쏟고, 그래서 그 근처의 장식들을 모두 다 때려 부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사탄이 우리들의 조상 동남아 사람들에게, 조선을 칠 터이니, 길을 비켜 달라고 했었다. 동남아 사람들에게도, 뱀이라든지, 사탄을 표시하는 구멍 같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수는 산더미와 같았고, 그들의 이념과 실천과 같은 책은 하늘을 덮었었다. 그들의 숫자는, 한반도의 실제 인구수와 맞먹었고, 마치 그대로 하늘에서 상륙만 하면 될 것처럼 보였다. 기세에 눌려, 먹을 것도 바치고, 길도 알려주고 했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뼈다귀 같은 문법은, 사탄에게도 속성이 있음을 우리에게, 히로시마 핵폭탄처럼 알려주는 것이다. 우리가 사탄을 경험해도, 얼른 사탄이 되지 않고, 우리가 공부를 많이 해도, 사탄이 잘 아는 것처럼, 금방 실력이 늘지 않는 것도 그와 같은 문법적 속성 때문인 것이다. 우리가 에어컨을 사면, 공부를 많이 할 것 같지만, 금방 냉방병에 걸리고, 티비나 열심히 보게 되는 것은, 공부가 여하한 조건이 아니고서는 우리들의 속성이 되기 힘들어서인 것이다. 티비도, 탈레반의 속성을 알면서도, 금세 나에게서 거리를 두는 것은, 나에게서 또 원시로의 자장면, 그와 같은 흡입의 면치기, 팔조의 강선을 노출하는 이유는, 그들이 여하한 조건이 아니고서는, 사탄의 지배와 속성에서 벗어나기가 어렵기 때문인 것이다. 그들은 짐승에 가깝고, 조선의 임금도 자기를 가리켜 짐이라고 했다 하지 않은가? 실질적인 사탄의 현상을 경험하고는, 삼일도 되지 않아서, 그와 같은 허용의 연대는 깨졌고, 우리들의 조상 동남아 사람들의 정신이 기민하게 돌아가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인도의 사원처럼, 굉장한 형태들처럼, 기계들을 가진 그들과, 기초적인 기계 몇 개를 가진, 인니, 말련, 비엔남, 깜보, 태국 사람들의 전쟁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조선 사람들은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했었다. 너무 멀리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산성을 재건축하는 등의, 안드로메다까지의 아무런 목적 없는 유화책을 펼쳤을 수도 있다. 일본에서 상당한 규모의 선단이 동남아로 향하였다는 소식만 왕에게 전해질뿐이었다.
사람들은 생각할 수 있다. 일본이나 동남아는, 주체가 아니고, 태고의 주체가 나타나, 조선과 싸우겠다고 하면, 길을 비켜주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하고 말이다. 주체는 모든 속성과 싸우는 것이다. 속성은 서로가 속성인 것이고, 속성은, 사탄의 대지인 것이다. 여러 산들이 괴물들처럼 생기고, 경주의 고릉들이 때로는 기이하고, 첨성대가 여왕처럼 보이는 것은, 속성이 바로 사탄의 대지이기 때문이다. 존나 일본부설 비슷한 것을 주장하는 것도 일리가 있는 것은, 우리가 아무리 우리들을 깨끗하게 한다 해도, 존나, 그런 것은 있을 수가 없고, 속성은 반드시 사탄에게서 침투를 당하기 때문인 것이다. 우리가 자주 싸우면서, 이런 사탄 것, 이런 사탄 같은 년, 그렇게 외치는 이유는, 아무 생각이 없는 것이기도 하고, 실은 대단히 깊은, 그리고 세밀한 생각을 하고 있어서인 것이다.
동남아 사람들은, 며칠 사이에, 주체적인 생각을 하였고, 인간의 목적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었다.
전쟁은 삼 년이나, 오 년 가까이 계속 되었다.
그리고 십 년
정말 어린아이의 손과 같았고,
하지만 하루 일을 하는 것처럼 주어진 운명을 마다하지 않았더니
그들의 경기장을 모두 무너뜨릴 수 있었던 것이다.....
*
훗날 그 사람들이 조선을 방문하여, 상을 달라는 것은 아니나, 꼭 그와 같은 문법 밖에 없는 것처럼 마지못해 말을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때, 우리가 이사야인 것처럼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는 것 같았다.......
*
사람들은 말한다.
동남아에서 오래 살다가, 비슷한 중국에서 살다가,
시끄러운 일본에서 살다가,
시끄러운 외국인 마을에서 살다가
한국에서, 조용하고 인문과 교양이 깊은
마을에서 살다 보면, 정말 교향곡을 따로
들을 필요가 없다고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자신의
위치와 가치를 망각하면
단지 충북 음성 귀족의 신분으로나 살 수 있는 것이다........
음성은 마늘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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