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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민중문화이야기

우리는 어째서

by 마음대로다 2021. 12. 15.

 

 

 

우리는 어째서 말할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말할 권리라는 것은 무엇일까? 한국말일까? 칸트의 정언명령처럼, 한 말이니까 말인 것인가? 그것은 한 말 같다. 쌀이 한 말이고, 그 섬에 가면, 쌀이 한 섬이고, 누군가는 거짓말이 한 말이고 그렇다. 우리는 우리 모두에게 말할 권리가 있으면 좋겠는 것이다. 그것은 권리 장전 같은 것이다. 우리가 정전을 당하면, 기쁘기도 한 것은,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때 그런 것이다.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도 없는데, 정전을 당하면, 정전협정 같은 것이다. 그것은 그 어떤 사람들에게는 초미의 관심이겠지만, 몇 번의 관계를 거쳐야 한다면, 아무래도 관심 밖의 일이 되기 쉽다. 몇 번의 정전 끝에, 사람들은 말할 권리나, 능력을 잃기 쉽다. 그것은 반드시 쓰리꾼이 있어서가 아니다. 늘 농담만 하는 친구가 있어서가 아니다. 진담이라고는, 눈씻고 찾아보지 못해서가 아니다. 진담이 아니고, 그렇다고 농담이 아닌, 그런 티비 프로그램들을 보다 보면, 아무것도 되지 못해서, 영원한 정전 같아서, 차라리 해피니스 드라마적인, 그런 극한의 모순 속에서, 몇 개의 진실 찾기 같은, 템포가 좋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말할 권리는 말할 능력인 것인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말할 능력이라고 한다면, 모든 능력이, 언덕을 갖고 있어서, 그것은 내게도, 남에게도 십자가의 고통이 되기 때문에, 아무리 박지윤이 할 수 있어? 노래를 불러도, 우리가 좋아하지 못했던 것은, 다만 캔을 따지 못했다거나, 먹을 캔이 없었다거나, 그래서는 아니었던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능력이 있었으면 좋겠고, 그것이 아니면 대체 에너지가 있었으면 좋겠고, 모든 것이 불가능하더라도, 음악적으로 그것을 전했으면 좋겠고 그래서인 것이다. 그래서 말할 권리라고 하는 것이고, 우리가 보통 행복추구권이라고 하듯이, 우리에게는 행복을 추구할 만한 능력이 분명 있는 것이다. 행복은 섹스이기 때문에, 국민들은 반드시 좋은 섹스를 추구할 만한 능력이 있고, 권리가 있는 것이다. 권리는 있는데, 능력이 없으면, 그것이 민주주의의 가장 큰 핵심이고 슬픔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능력은 있는데, 권리가 없다는 것은, 반드시 백년 안에, 새로운 국가가 발생할 수 있는 토대, 혹은 느낌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권리와 능력, 혹은 의무들 사이에서, 거의 모든 토대와 느낌, 조건들이 갖춰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권리를 무시하고, 능력을 방관하고, 의무 같은 것을 다른 식의 미담 사례 같은 것으로 끊임없이, 그런 말들로만 갈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은 상상이고, 그것은 이메지네이션, 그것은 상상이다. 우리에게, 과거에, 철학도, 문학도, 사회학도, 고전도, 불경도, 기독교 경전도 하나도 없었을 때가 있었던 것이다. 그때는 어땠을까? 그래도 우리들의 의식은, 분명, 육체 위를 날지 않았을까? 우리가 위그선을 보고는, 조금은 횡경막이 놀라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천 년일 수도 있고, 만 년일 수도 있고, 육만 년일 수도 있다. 백만 년은 아닌 것 같다.

 

우리가 중국의 위대한 웰쓰, 부를 두고 놀라고, 우리가 일본의 위대한, 어떤 떳떳한, 사랑스러운 감각의 제국에 놀라고, 광고는 정말 다정한 것들의 경지에 다다른 것 같은, 그리고 우리가 한국의 헐리우드 영화인 것 같은 것들에 놀라고, 한국의 일본 영화인 것 같은 것에 놀라는 것은, 이것들이 다들 말할 권리와 관련이 있기 때문인 것이다. 미국은 이와 같은 후진들을 두고, 문화적인, 얼마든지 재도약을 할 수 있었다. 원래 뭐든지,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경쟁이 있다 보면, 처음에는 평범한 동네 여자와 결혼할 운명의 인간이, 부가가치가 심해져서, 적어도 걸그룹의 한 멤버와 결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무슨 상관이고, 그것이 무슨 차이일까 싶지만, 우리가 하늘나라를, 단풍이 아름답게 물든, 우리들의 아름다운 산사의 지붕 날개를 올려다 보듯이, 아주 가까운 것으로도 얼마든지 여길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하늘나라를 또한 없다 말하기도 그런 것이다. 그런 하늘나라들을 꾸준히 모으다 보면, 우리가 새로운 호떡의 방식을 알고 있듯이, 그렇게 차곡차곡 쌓다 보면, 얼마든지 진짜 하늘나라를, 우리 말이 우리에게 약속한, 그와 같은 시온성을 오를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럴 때에는, 평범한 동네 여자와도 다시 만나고, 한 번쯤 여행하는, 여행할 수 있는 시간을 화백회의 같은 데에서 얼마든지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아름다운 여행을, 해외여행을 한 여섯 번 이상 정도 다녀오게 되면, 죽음이 두렵지 않고, 마음이 호떡처럼 아주 편안해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사탄은 그렇지 못해서, 그리고 사탄에 가까워진 사람들도, 그렇지 못해서, 새까매졌다가, 갑자기 하얘졌다가, 새까매졌다가, 하얘졌다가 하는 것을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다, 우리는 별로 하늘나라라고 생각되지 않는 것들이, 그들에게는, 상대적인 감각의 절대적인 현상화로 인한, 우리들이 후진국에 있었을 때 당했던, 고통이고 고문들이었지만, 그런 것들로, 그들은 인내조차 없기 때문에, 갈수록 그것의 규모와 확률이 끝없이 확장되는 것이다. 한국 영화들이, 그런 것들에게 지원을 받고, 그래서 연결되어서 제작되는 것들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떠한가? 결국, 그래서 더욱, 그것들의 관계가 어찌 되었던 간에, 나의 이와 같은, 오현란 같은 말할 권리와 어긋나는 현실이 있더라도, 그것들만 항상 있더라도, 우리의 참으로 말할 권리와 같은 그리스도의 도가 더욱 세계에 퍼지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라고 말할 권리를 갖고 싶지 않겠는가? 그들이라고 사탄의 지배에서 해방되기를 바라지 않겠는가? 일본이 감각의 제국이고, 사랑의 제국이라고 해서, 남성다운 아름다움을 갖기를 선망하지 않겠는가? 중국은 또 어떠한가? 베이징 올림픽에, 미국이 참가하지 않으면, 내가 도리어 이상한 원칙에 따라, 한 사람의 좋은 손님으로 가게 되어, 너무 비싸지 않은 호텔에 투숙할 수 있는 것을, 그런 이상한 상상의 늪에 빠지는 것을, 그런 것을 안 바라지 않지 않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것은 진실로 좋고 아름다운 것을 바란다는 것이다.

 

 

 

우리는 말할 권리를 갖기를 소망한다. 왜냐하면, 충분히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면, 언젠가는 사회는 바뀌게 되어 있다......

 

 

가장 먼저 내가 바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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