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한글이란 무엇인가?
불가피한 사탄자들의 평범하고 성실한 삶을 내다보면서, 우리는 마땅한 말들을 찾을 수가 없다. 아버지가 신라인이면, 아들도 신라인이고, 아버지가 백제인이면, 어머니가 백제인이면, 아들도, 공주도, 아르미안의 네 딸들도 백제인인 것이다. 그리고 학교가 신라대학교면, 당연히 학생들은 신라대학교생들인 것이고, 학교가 한신대학교면 당연히 학생들은 백제인들인 것이다. 처음에는, 나이가 어렸을 때는, 백제인들도 나이가 어렸을 때가 있어서, 다만 중앙대나 앙대 사람들이 농구만 해도, 우월해 보였고, 연세대 학생들이 농구만 해도, 월등해보였으며, 가파른 길도 밀리지 않는, 그리고 서울대학생들은 그만 초월적으로 보였었다. 어제 누군가와 이야기 나누면서, 나이가 들어서는, 피곤에 기계인인 것 같고, 젊었을 때는, 생각해보니까 초월자였던 것 같다고 했었다. 그것은 맞는 말이지만, 자세히 보면, 약간 틀린 구석이 있다. 그러나 대체로 맞는 말이다. 우리가 신문지상에서, 대체로 맞는 말들을 찾고 좋아한다. 어떤 동양화와, 그것의 연재 같은 것, 서예나 동양화 그리기 연재 같은 것이 신문에는 있을 수가 있는데, 어느 신문사 사장이 했던 말이긴 하나, 낮에는 대통령이 있고, 그만 중단되고, 밤에는 그와 같은 연속과 대통령이 있는 것이다. 만화나 만평 같은 것도 그렇다. 그것만이 남아 있다는 것은, 지금과 같은 미래적인 사회에서는, 어떤 더 힐 아파트와 같은 시대에서는, 우리들 옛날 노래 가사처럼 마음이 그만 울적해지는 것이다. 현균씨는 그렇지 않지 않은가? 영어 실력도 늘고, 철학적인 능력은 배가가 되고, 밥통, 더더욱 주자의 현현에 가까워져 있지 않는가? 얼마나 목사들이 나를 싫어하겠는가? 키가 백 칠십 정도 되는데, 중들도 얼마나 나를 싫어하겠는가? 그와 같은 허모게노들이 우리들에게는 많은 것이다. 우리들은 김활란, 박마리아, 그런 단순한 도구들의 지배에 사는지도 모른다. 학생 때도 그렇지 않고, 오직 아직 한글만이, 울렁거리면서, 외국어 울렁증은커녕, 돈이 있어서, 외국에 자주 나갔는데, 그 쉬운 외국어도 읽지를 못해서, 자신감이 떨어지고, 바이어들 앞에서, 여자 친구 옆에서, 수레바퀴 아래서, 울렁증을 경험했더니, 한국에 와서도 그렇더라는, 환자들 같은, 우리들의 천국, 그런 외국어 울렁증은커녕, 한글 울렁증이 있던 네 살 다 섯살, 여섯 살, 그것을 가리키는 것일 것이다. 그런 울렁증을 가지고 있을 때, 우리는 활만 봐도, 저 활로 어떻게 사람들을 다 쏴죽일 수 있을 것 같고, 좀비들이 세상 곳곳 케이브며 케이지며 아퐐트먼트에서 터져나오면, 내가 그런 것처럼 상상을 하여서, 자기도 그럴 것이다 하는 것이다. 박마리아도 그렇다. 쫓기다가, 좀비가 자기 다리를 잡으면, 박마리아로 내리칠 것이다 하는 것이다. 다른 말들은 모두 잊고, 다른 시들은 모두 잊으며, 도구는 시와 같고, 시도 그와 같은 중국적인 미세 외교 관계에서는 도구와 같은 것이다. 일종의 대국 같은, 물먹은 소 같은, 계체량 측정 같은, 슬픈 카렌족 같은, 허영이 넘치는 노래 같은, 모든 여자는 기녀 같은, 그런 트릴로지의 한 내용 같은, 그리고 대국은, 이름 그대로, 그런 것들이 모여서 따로 사는 나라가 있다는 것인 것이다. 그래서 눈이 큰 사람만 모아서, 한국으로 사절로 보냈고, 그나마 사지가 멀쩡하고, 불리다가 터지는 경우가 자주 있어서, 성기도 온전히 달린 사람만을 뽑아서, 조선으로, 고려로 보냈던 것이다. 일본도 처음에는 의기양양했으나, 닭의 벼슬 같은 머리를 하고는, 대마도를 지나면 그것이 그렇게 창피했었다고 한다.
*
우리는 피아노 절정의 노래를 들으면서, 과연 김원봉이 한국에서는 어떤 인물일 수 있는가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김좌진을 먼저 알았다. 나는 존경하였고, 나도 언젠가는, 그런 방식으로다가 일본제국군을 섬멸할 것이다 하였다. 김원봉이 우리나라가 해방이 되면, 한국에 와서, 이제는 멋진 어떤 서사시 같은 것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남지나해나, 황해, 동해, 대마도 근역 들이, 호락호락하지 않는 것이다. 김원봉이 한국에 오면, 김상옥이나, 박마리아 같은 이가 되는 것이다. 박마리아가 되지 않으면, 그나마 영화판에서나 얼쩡거리면서, 상하이 피스톨이나 되는 것이다. 그런 것들은, 그런 것들과 연결이 된다. 그것은 운명이다. 김원봉이 김활란이 되었다가, 수많은 돼지 우리들을 거쳐서, 그나마 김대중으로, 한국적 인물의 소나타 형식을 완성한 것이 장하다 여겨지는 것이다. 얼마나 여자들의 세포가 대단한 것인가? 자지가 대단한 것이 아니라, 여자들끼리 모여서, 어디로 빠지는지, 그것이 알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어디로 가는 것이 아니라, 다만 기생하는 트릴로지처럼 무한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선한 전쟁에 대한 회의로 나아가고, 그것들의 대륙을 우습게 여기는 것이다. 우습게 여기지도 않고, 과도하게 슬프게 여기지 않더라도, 어떻게 관리하지를 못하는 것이다. 우리가 차가운 맥주를 좋아하고, 소주도 차가운 것을 좋아하지 않는가? 어쩌면 죽은 이들은, 자기들이 차가운 소주만 되어도 좋아할 것이다. 그러나 너무나 쉽게, 문제의 단초는 잡았으나, 귀국해서는 너무나 쉽게 박마리아가 되는 것이다. 원래 자지가 사라져도, 사람들이, 남자들이 정신이 빠진다는 보고는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그것은 실로 북두신권의 자지인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사탄의 편에 너무나 쉽게 빠진다는 것도, 그렇게 노력하는 것도 어찌 보면 어려운 것이 아니겠는가?
항상 우스운 것은, 어째서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은 이야기하면서, 사탄은 이야기하지 않는지, 그것이 신비하고 알 수 없는 것인 것이다.
그래서 신현균 목사도, 죽지 않고 있다면, 양심상
기독교 목사는 더이상 되지 못하고,
라자냐
불자가 될 것이다.
'일반민중문화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람들은 (0) | 2022.02.25 |
---|---|
우리는 어째서 전쟁의 숫자로 돌아가는 것일까? (0) | 2022.01.07 |
슬픈 이야기, 추 워리어스...... (0) | 2021.12.17 |
우리는 어째서 (0) | 2021.12.15 |
훌륭한 영화 모가디슈 (0) | 2021.1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