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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야기

클래식 음악은 과학인가?

by 마음대로다 2021. 12. 24.

클래식 음악은 과학인가?

 

 

 

 

 

 

 

 

 

 

우리는 숱한 범인들을 상상할 수 있다. 그들은, 클래식 음악에 마음은 흔들리지만, 서양의 사탄들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뉴욕 같은 것. 시그니처 같은 것. 어떤 적군파 같은 것. 그런 것을 티비에서 어떤 자극적인, 몸에 좋고, 건강에 좋고, 지식에 좋은, 그런 것으로, 수동적으로 보다가, 문제집은 문제집에게로, 그렇게 예수님 비슷한 말씀을 믿으면서 죽을 수 있는 것이다. 열심히 일하고, 때로는 봉사하고, 저승사자가 죽자고 하면, 벌써요? 하면서 천천히 그 길을 따라갈 수 있을 것이다. 그 길이라는 것은, 아름답고, 신토불이, 산토리니 같아서, 우리가 도리어 집에 가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가 유달산에서, 유달리 아름다운 계단을 하나 발견할 수 있는데, 그 단순하고, 몇 개 없는 계단에, 바위가 있고, 하늘이 있는 것이, 그처럼 아름답고, 이렇게 조금 있다가 시내로 가면 맛있는 것이 넘치는 도시라는 것이 믿기지가 않는 것이다. 유달산은 쉽다면, 불달산은 어려운 것인가? 사람은 먼지와 같아서, 깨끗한 마음은, 실제로 아무렇게나 재산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생리적으로 그냥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어렸을 때, 매우 어렸을 때, 선택하고, 받아들인 것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먼지와 같은 사람이, 사탄에게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당해, 그렇게 쌓아둔 어렸을 때의 재산이 모두 거덜, 거들, 나는 경우에는 어떻게 되는가? 우리는 유달산에 이를 수는 있지만, 불달산에 이른 것들을 보기가 어려운 것은, 그것은 실제로 보이지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도 보기가 어렵고, 저렇게도 보기가 어렵다. 때로는 약한 여자의 육체가, 아이도 없는 상태로, 아이를 바치는 경우에는, 그것을 폭력이라고 말하기도 그렇고, 가정 폭력이라고 말하기도 그렇지 않은가? 고어라고 말하기도 그렇고, 하드 고어라고 말하기도 그런 것이다. 남자가 조금씩 참는 것이 좋은 것이, 그런 하모니 때문이다. 남자에게 여자의 성기가 붙어 있는 것도, 쉽게, 논리적으로, 수학적으로 판단이 된다 하겠다. 여자는 일종의 일급수에 사는 열목어 같은 것들이다. 남자는 싸우기 전까지는 전쟁이 아니나, 여자는 싸우기 전은커녕, 태어날 때부터 전두환인 것들이 많은 것이다. 어떻게 수십명의 여자 목숨으로 사는 것보다, 나처럼 일생을 짜증내면서 사는 한 사람의 남자 목숨이 부러울 수 있겠는가? 

 

클래식 음악이 과학인지 아닌지, 수학인지 아닌지, 하는 것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는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았다. 매우 과학 같고, 매우 문학 같고, 문법 같고 그렇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논리적인 성격을 띠며, 과학적 원리와 상호작용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정말 한반도에 관한한 일언반구도 들어본 적이 없다. 번스타인. 카라얀. 레너드. 어떤 아메리카노. 좋아좋아 했던 것까지.

 

과학은 유달산인가? 불달산인가? 먼저 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금방 등산할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것인가? 이번에 윤석열이 한 말을 듣다 보면, 참 그것들이 대단하다 여겨진다. 그것들은 과학자들 같고, 어떻게 말꼬투리나 붙잡고 내용을 불리는 것 같고, 평생을 그런 사실을 서로에게 쉬쉬하면서 지내는 것 같다. 과학은 과학적 결과가 분명하기 때문에 유달산인 것이다. 금방 오른다. 한 두 시간? 더 가면 더 갈 수 있지만, 높이 가는 것이 아니라, 계속 목포를 보면서 어떻게 눈 앞에 보이는 곳을 더 가는 느낌 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북한산에 갔을 때 매우 놀랐던 것은, 정말 살아있는 산악이고, 무등산처럼 공중 정원의 느낌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산악에게 정신이 빼앗겨, 전문 산악인으로 만드는 느낌이 있었다. 그러면 어떠한가? 마음의 산에 오르는 것은 그만 두지 않겠는가? 윤석열의 걸음을 보면, 그가 어느 비상한 밀교의 탑 안에 있는지를 발견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는 불달산에 오르고자 하였던 것이다. 영국의 개새끼 같은 새끼가, 여기저기서 말이 많고, 만원짜리, 기독교, 그렇게 말이 많았던 것은, 그도 또한 불달산에 아첨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왜냐하면, 광양은 유달산에 가깝기 때문이다. 영남 지방은, 영어를 불달산으로만 오르기 때문이다. 영남 사람들은, 사탄에게 아첨만 하고, 사탄과 싸우는 인상을 별로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들 지역을, 사탄의 유달산으로 만들고자 하는, 그러니까 분명한 결과를 얻고자 하는, 과학적 정신이자, 정치적 포석으로 여길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사탄의 불달산을 주고자 해도, 어떤 항만청 같은 곳에서, 사람들이 관리를 못한다고 여기는, 그런 심리를 또한 조장하는 것이다. 어떤 가수 새끼가, 그림은 원래 그렇게 그리는 것이라고 하고, 패티김은 찬양하면서, 남진을 가볍게 무시하는 것이, 분명한, 유달한, 과학적 승부인 것이다. 얼마나 과거 학생들이 민주주의를 어떻게 했어도, 거의 다수의 민중 운동권 사람들이 희박하고, 정신이, 출판이, 시도 조차 쓰지 않고, 내지 않고, 낮에는 민주 투사이나, 저녁에는 소담한 낭만시를 쓴다 하는 그런 시도 조차 쓰지 않고, 하지 않고 지내는 약점을 붙잡고, 어둑시니처럼 달라붙어서, 오년 동안 사귀었는데, 자기 아버지, 장인 어른의 얼굴을 보고, 남자가 자기를 싫어하는 것 같다는 말을 금방 지어내서는, 어떻게 해보려는 순식간에 이뤄지는 모든 일련의 사태가, 참으로 매트릭스 사탄, 사탄은 따로 사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매트릭스의 결과라는 주장에 호응하는 것이 분명한 것 같은 것이다. 어떻게 이런 나라가 된 것일까?

 

어떻게 이런 인간들이 가능한 것일까?

 

*

 

우리는 이런 일련의 사태들을 사면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니까, 뭔가 캐낼 것이 있는 입체적인 것으로 여기면 곤란한 것이다. 원래, 도덕적으로 지능이 나올 것 같지 않으면, 지능 보존의 법칙에 따라, 대항군이나, 적군, 사탄의 입장으로 그들을 만들어 주는 것이 지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힘이 없어서 사탄에게 일언반구 하지 못하는 것처럼, 사탄에게 언어능력도 없는 것들을 흐지부지하게 만드는 것도 결코 좋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클래식이 과학인가 하는, 우희진의 느낌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은 피타고라스를 말하는 것도 아니다.

 

과학은, 조선이 찢어지게 가난하니까, 발생한, 서양의 중추부사, 그러니까 하야부사 같은 것이다. 만약에, 갈릴레오가 조선에서 발생해서, 우리나라와 서양의 대화관계가, 과학자들 간에 이뤄졌다고 한다면, 서양은 매우 빨리, 피해망상의 거대한 사해 축조물들이 되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자기들이, 이렇게도 하고, 저렇게도 하고, 매우 느린 속도로, 그 숱한 말들을 낭비하면서 지내도, 동양은 위정척사, 시미켄 최익현과 같았던 것이다. 동도동기, 동도서기, 범버꾸범버꾸 그랬던 것이다.

 

원래 주체는, 악동을 중심으로 이뤄지게 되어 있다. 선생들도, 악동들을 더욱 기억하고, 서울대 가는 것들을 매력이 없는 것들로 여기곤 한다.

 

그런 악동들을 데리고, 밤낮없이 비과학적인 실험을 하는 것이다.

 

팔다리가 없는데, 물컵을 집으려고 하고, 와이어를 이용해, 마치 그런 것처럼 어느 수녀원에서 현상이 발생을 하자, 그와 같은 소식은, 굿뉴스가 있고 베드뉴스가 있는 것처럼, 사탄에게는 굿뉴스인 것들이 순식간에, 조선 반도의 신라에까지 도달하게 되었던 것이다. 사기의 내용이라는 것은, 그렇게 삶이 척박하고, 하루하루가 지옥과 같은데, 사람을 죽이지 않고, 피를 마시지 않고, 살 수가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한 사기적인 고발, 참기름이 고소하고, 라면이 다 불어서, 이뤄진 것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한국 드라마를 보고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소비적인 섹스 선망 때문이지 않은가? 그리고 피를 마시지 않고, 사람을 죽이지 않아서일 것이다.

 

팔다리가 없는데, 뭔가 작동을 시키는 염동력이라는 것은, 그러나, 거기서 멈추지 않고, 사탄만이 가질 수 있는, 그들에게는 익숙한 다음 이메지네이션으로 넘어가게 되어 있다.

 

전두환은, 최종적으로, 사탄의 한국말 능력 같은 어감을 준다. 그리고 내가 영어 공부를 철저히 하지 않았다면, 자기들이 점찍어 놓은 사람의 한국말 능력을, 머리가 없는 전두환의, 몇 번 방의 선물이라고 여길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너도나도 전두환을 찬양하고, 좋아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학생들이 오직 육체로만 민주주의 운동을 한 불쌍한 이력이 있어서인 것이다.

 

클래식 음악은 그것에 패션으로 도움을 준다.

 

콰당 꽝 꽝 그렇게 끝이 나면

 

그것이 무슨 뜻인지, 영원히, 우리는 뭐가 뭔지 사탄의 이러한 역사를 모르고서는 잘 알지 못하지 않겠는가?

 

*

 

서양에 인구가 별로 없고

 

산불이 자주 일어나

숲이 골프장이 되는 것도

어쩌면 우리가

그들의 악동을 조장해서 그런 것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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