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겨진 회의실 같은 헬레이저는 어느 나라의 어떤 문학의 비평 양식이 적당한가?
한창때 우리는 국경이 제법 넓었었다. 잘 모르는 엔엘 계열 학생들은, 접선도 하고, 북한도 갈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었다. 물론 그것은 과격한 것이고, 실제의 민족 사랑과, 북한의 조선 국가는 다르다는 인식이 저변에 깔려 있었다. 그러나 툭하면, 북한을 찬양하고, 그런 문건, 학교에서 점수를 좋게 주지 않고, 나쁘게 주고, 많이 나쁘게 주면, 그리고 취직도 되지 않고, 그러면, 경찰들이 다만 불온서적을 가지고 있었다고, 선데이 서울도 같이 가지고 있었다고, 꿈에서도 쫓아올 것 같으면, 쫓기다가, 대관령까지 쫓기다가, 북한 사람들도 만날 것 같았던 것이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시험에 낙오되어 있었고, 가장 성적이 좋은 아이들이, 독일 철학을 공부하고, 신현균의 신학을 공부하고, 바젤이나, 그래서 튀빙겐을 다녀오고, 가볍게 스탠포드에 다녀온다고 하면, 가장 성적이 좋지 않은 사람의 정신이, 잘 하면 공부도 잘할 것 같았던 학생의 정신이, 우리들의 뻔한 난제, 훌륭한 과제, 미래적인 비전이 강요되는 북한과의 외교, 통일의 한 길에 설 수 있었던 것이고, 그래야만 했던 것이다. 일본과의 친교와, 일본과의 어떤, 파.친.코. 그런 것들은, 굉장히 복잡한 문제이고, 생각보다 저변이 이미 확보된 것들이며, 일본에서는 한국학이 필요하지만, 한국 학생들에게는 따로 일본학을 공부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그들에 대한 관심과 인식은, 아름다운 드라이아이스 같은 것이었다. 중국과의 외교가, 물고를 트자마자, 학생들이 쏟아져 들어가, 성공들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한국에서 부모에게 학대를 받고, 이진으로서, 삼진으로서, 내신 성적 오 등급으로서, 한이 깊어서였을 수 있다. 아무리 성적이 좋지 않아도, 삐딱하지 않고, 아무리 아는 것이 없고, 기억력이 나쁘다 해도,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타이거즈가 승리하는 것에 감사하는 사람들은, 청학동에도 갈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하늘에서 태어나, 쏟아지면서, 이공계 사람들이 날개를 펼쳐, 트램펄린을 펼쳐, 에이스 침대를 펼쳐, 에몬스, 사람들을 잠들게 했는지 모른다. 세계 과학의 역사라는 것은, 우리가 북한을 잠깐 이상 국가로 상상을 했던, 우리 선배 학생들의 아름다운 상상력과, 기초 철학의 부재, 불완전한 학교 공부의, 그러나 에너지 보존 법칙과 같은 철저한 현상에서 완전히 불식, 그러니까 불쉿 되는 것이다. 이공계는 거대한 총알로 되어 있다. 총신으로 되어 있고, 공공칠의 강선으로 되어 있고, 플라톤의 총신으로 되어 있다. 그렇다면 한신은 무엇인가? 진실한 말이 아니면, 사탄의 지배라는 각성이 아니겠는가? 처절한, 철저한 시인이면, 김지하의 오적이거나, 이문열의 시인이면, 도둑과 시인에서, 도둑을 뺀 시인이면, 그렇게 대게를 먹다가 나오는 속엣 비닐 뼈로 칼을 삼아, 보이지 않는 적과 대결을 하는 그런 심정으로 살아가는 사람일 것이다. 우리는 칼이 없으나, 오대수처럼, 젓가락 하나가 더 생긴 것인 것이다. 그것은 살바도르 달리의 상상력으로는, 충분히 거대해지고, 충분히 날카로워진다.
그것의 사각형을 본 적이 있다. 나는 마음이 너무 아팠고, 나의 표현에 정확한 백과사전을 가지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다. 왜냐하면, 다들 법정이 없고, 법정스님으로서, 으르렁대고, 으르렁으르렁대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들의 차가, 기본적으로 으르렁대고, 오토바이는 대놓고 으르렁댄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다만 남이 심각한 관념을 낭비할 때는, 유독 그것이 으르렁대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번에 김정일 생일날, 야밤에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가 없이, 축제 형식으로, 김형식으로, 불꽃놀이도 환하게 거행하였다고 한다. 그렇다고 보면, 사라진 그들의 주장이 그렇게까지 거짓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것은 문장. 그것은 먼지. 그것은 사랑. 그것은 내신 오등급의 외침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헬레이저를 보면, 그것이 과연 사실인지, 아니면 허구인지, 사실과 허구라고 한다면, 그것을 과연 어떠한 관점에서, 맑스주의 비평으로 해야 할지, 아니면 초기 신학적 관점에서 해야 할지, 그런 것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아니면 공포의 어떤 삼류 이단 집단이 실제로 있어서, 문학 비평이 아니라, 경찰적 접근으로서 그것을 해야 하는지 헷갈리고 망설이게 된다. 그것은 헷, 헷, 헷, 헷갈리는 것이다. 우리가 마인 예수, 그런 아름다운 바하 음악을 듣다가, 아직 충분하지 않는 피에이치 디 수준으로서, 도올과 같은 수준의 국회의사당 한강 풍경을 가로지를 것 같으면, 어딘가에서 홍대에서 내려서, 누군가 그렇게 살벌한 미술 작업을 할 것도 같은 것이다. 그것은 누군가가 이미 했었고, 그것은 거짓인데, 사실을 고백하지 못해서, 도리어 거짓의 사실로 확장되는 것처럼 잘 묘사되었었다. 무슨 량현량하, 그런 것, 어떤 기자의 고백이었나 했었다. 우리는 미술작가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미술작가들은, 결국 호러무비에 빠지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성장 어떤 초콜릿 프로그램 같은 것이 아니면, 그러니까 뽀로로가 아니면, 취직이 되지 않으면, 남아서, 불교의 밀교도 넘어서는 간다라 석불이나, 어떤 위안화 같은, 이슬람 사람 인 베이징, 스팅의 노래 같은, 그런 자극적인 본질에 자기 몸을 띄워 비행하여 들어갈 것 같은 것이다. 그들은 고백한다. 고백하고, 점프한다. 그것은 교사가 아니다. 그것은 반면교사이다.
어떻게 인간은 말을 잘하는지.
이공계 에몬스 침대에 떨어져, 살아서, 부모님의 정신이 그나마 훌륭하여서, 아름다운 앰프와 같아서, 잘 모르는 진공관, 불이 들어오고, 아이야, 너의 머리 안쪽에 무슨 불이 들어오는 것 같구나, 하니까, 장난삼아, 진공관을 하나 꼽았더니, 목소리도 좋아지고, 생각도 맑아지고 했어요 하는 것이다. 그런데, 반딧불이었고, 어머니는 놀라 자빠지려다가 힘을 내어 일어났고, 아버지는 아이가 비상한 말의 재주가 있는 것을 알아보았던 것이다. 그들 부모는 사라졌고, 어째서 그러는지 아는 사람이 있으면 제발 누군가 속 시원하게 말해주었으면 조혜련, 좋겠다. 그는 혼자 남아서, 말과 싸워야 했다.
북한은 이상 국가이다. 그러나 다녀오니, 그냥 우리들 옛날 상태 비슷한 것이었다.
그러나 나의 말은 탱자나무 울타리 같았다. 그리고 그 안의 포도원 같았다.
그것을 오직 우리나라에서만, 오십 년대, 육십 년대, 칠칩, 팔칩 년대를 살아온, 이상한 존재의, 살아 움직이는 정신병원 같은 이들이, 그렇게 경이로워하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인기가 있으면 했다. 나는 내가 나중에 돈도 많이 벌고, 차도 좋은 것을 타고, 예쁘고 아름다운 것, 그리고 좋은 집과, 아름다운 여자를 얻었으면 했다. 그러나, 항상 그런 나의 범속한 생활 고백을 상회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나도 모르는 것이었다. 나는 광주고등학교 그 아름다운 은행나무 가로수를 지날 때, 오래된, 그리고 헌책방을 지날 때, 어째서 만화방과 같을 수는 없는지, 읽을 수 없는 책들이 어찌나 많은지, 그것이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울란바토르 같았고, 버지니아 울프 같았다. 나중에는 버지니아 슬림 담배를 즐겨 피웠는데, 그것이 약간 나의 마음 비슷한 것이 있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연기, 이상의 것으로는 더 이상 말하기가 힘이 든다. 모두가 연속하지 않는다. 우리가 많이 걸을 때, 우리는 그것을 가늠할 수가 있다. 여자들이 이상한 남자들을 좋아하는 것을 볼 때, 나는 항상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내 누나들이, 제법 멋진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자세히 보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고, 그렇게 남자가 여자에게, 여자가 남자에게, 부족하거나, 많이 더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나의 예쁜 효가, 나의 구스타프 융의 단어 연상 기법을 통한 정신분석의 한 예를 들었을 때, 그것을 말하게 하고, 그것을 내가 해석하였을 때, 둘이 서로 진리 안에서, 떨어지지 않는 시간 같은 눈물이, 저 하늘에도 슬픔이, 그런 것이 떨어지는 것이었다. 꼬마 아이의 눈에서, 눈물이, 높은 산의 눈에서, 산사태가 일어나서, 쏟아지는 것 같은 것이었다. 나는 그 안에서 깔려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얼마나 많은 비행기를 타고, 얼마나 많은 진짜 교수들을 만나 보아야, 우리가 외국어 공부에 성공하여야, 구스타프 융의 본질적인 자식 같은 교수를 만나볼 수 있겠는가? 나는 세상에서 헬레이저 같은 가능성만을 보았고, 돌려보면 사람이고, 돌려보면 아름다운, 그러나 항상 짜증이 났고, 자장면 냄새가 났고, 여학생의 머리 냄새 같은 것이 났고, 무슨 냄새지? 뒤늦게 그것을 깨닫게 되었고, 잘 모르는, 퍽퍽한 영어회화 책도, 그것들의 행진처럼만 뒤늦게 발견이 되는 것이었다. 나는 한국학자였고, 말의 샘물이 있었으며, 그것을 마시고자 하면 얼마든지, 그 즉시 전화해서, 백산수, 삼다수, 시켜먹을 수가 있었다. 마치 서로 아는 사람처럼 이야기도 할 수 있었다.
꼬마 아이가 눈물을 흘리고,
그러나 안아주지는 못했다.
아이도 감성적인 눈물이 아니라,
지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컴퓨터가 갑자기 오버 런한다고 싶으면, 놀라서 안아주고 하지는 않지 않은가?
그러나
그때 김일성도 죽고
김정일도 죽었는 것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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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디오니수스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우리들의 디오니수스 같은 지식은 거의가 위선적이며, 그래서 위한 것이다. 하지만 얼마나 위한 것이면,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위 디오니수스라고 했겠는가? 베드로가 얼마나 위한 것이었으면, 베드로가 모닥불을 쬐다가,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하면서, 무리에서 달려나갔겠는가? 그는 홀란드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올란도 사람이었을까?
영화는 사실일 수도 있다.
사람들은 무슨 계획을 갖고, 그것을 제작하였다 말하고 싶겠지만, 회의도 하고, 문이 잠긴, 내가 경험하는 지금의 사태처럼.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 우리가 축구를 하다가, 축구 영화를 찍고, 사랑을 하다가 사랑 영화를 찍는 것처럼, 남의 육체 같은 내가 분산이 되었다가, 나중에 그런 영화를 찍은 것일 수 있는 것이다. 얼마나 세상에는 고리가 많은지. 그것을 사용할 때마다, 헬레이저를 연상할 판에, 나중에 자기들이 개런티를 받고자 노력하는 이들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늘 경험을 잘하고, 생각이 발전하고, 위 디오니수스에서, 거짓이 조금씩 빠지는 것을, 나 아닌 사람들도 동시에 목격하였기 때문에,
아무것도 스스로 하지 못하는, 그러나 정신의 지위에 있는 사람이, 항상 불완전한 대상관계를 가능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표현이 다소 매끄럽지 못하지만, 그것이 우리들의 그것에 대한 상상인 것이다.
어떤 충격을 받고, 키가 더 자라거나, 외국어를 갑자기 할 수 있다거나......
그것은 그와 같은 알프스의
시작에 불과하다.
기계가 아름다운 사상이 즐비한 현대에 이르러서, 갑자기 폭증한 것은, 그리고 전쟁으로써, 그것의 헬레이저 같은 오브제를 빨리 딱지 떼고자 했던 것은,
수천년이 넘도록
기름이 참기름이 됐다가
식용유가 됐다가,
경유가 됐다가
그래서일 것이다. 변화의 중간 로봇이, 아직 인간의 기억을 가지고 있어서
휘발유에 고기 볶음밥을 해 먹는......
어떤 야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