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음악은 공부에 도움이 굉장히 된다. 다만
우리는 지금 문명의 황혼에 이르러, 학문, 거기에 걸맞는 사유를 행할 수 있어야 한다. 고구려 태조 유리왕은 유리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것은 러시아적 어감의 유리와도 스키티안 관련이 되어있다. 조선시대 때에 서울에서 먼 곳으로 귀향을 보낼 때, 바깥 출입도 엄격히 금하는 것을 위리안치라고 한다. 그것은 유리안치라고도 불렀다. 그것을 한자로 적기가 어렵고, 처음 받아 적는 사람이 귀향살이의 집이 눈에 잘 띠는 언덕 같은 곳에 있어서, 위리안치라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와 같은 기록의 난봉황이 문제가 아니라, 맨처음 그것의 이름을 정확하게 알고 있고, 혹은 위리안치를 유리안치라고 잘못 해석하여 들은 사람에게 유리가 과연 있었는지 하는 것이다. 유리공예라고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어느 잘 보이는 언덕 위에서 공방을 짓고, 공예작업을 하는 것을 유리공예라고 하겠다. 그것은 아니지 않는가? 유리를 알고 있었던 것이고, 그것이 다른 작업상의 우선순위에서 관심이 밀려난 것이 될 것이다. 아니면, 흔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우리가 잘 모르는 물건을 갖고, 그것의 이름이 이것인지 저것인지 헷갈리지는 않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사도행전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라는 인명을 접할 때마다 놀란다. 이것은 이름이 너무나, 김영랑스러운 것이다. 전남 강진에는 김영랑 생가가 있다. 김영랑은 오메 단풍들것네 하는 시로 유명하다. 그것을 두고 오메가 단풍들것네 원래는 그랬다고 누가 그러겠는가? 오메가는 유명한 시계회사 이름이다. 물론 알파벳 가장 마지막 단어를 회사의 이름에 차용한 것은 사실이다. 유명 육상경기에서 선수들의 기록을 알리는 전광판으로 보다 알려져 있다. 김영랑이 자기의 생존 년대도 헷갈린 채, 어느 피말리는 육감의 여자를 기다리다가, 자기 집 앞의 단풍나무의 잎이 빨갛게 드는 것을 보고는, 자기 오메가 손목시계를 들어 올려보고는, 그러니까 손을 들어서, 단풍나무와 매치를 시켜보고는, 그렇게 시적인 말을 위리안치시켰다고 하자. 유리는 시계와 짝을 이룬다. 시침을 떼는 것은, 매사냥에서 매에게 달린 것이 시치미가 아니라, 우리가 약속을 어기거나, 다른 데에 가 있는 사람의 모습이 꼭 시침이 그리 향해서 그리 간 것이라는 시치미를 떼는 것처럼 보여서 그런 것이다. 시계에서 시침이 없으면 어떠한가? 불편하지 않은가? 의미를 상실하기도 하고. 존재의 이유. 약속을 어긴다는 것은, 상대방 손목시계의 시침을 떼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남녀가 서로 싸우다가, 남자도 여자에게 시치미 떼지마 버럭 소리를 지른다면, 우리는 잘못했다 미안하다 하고는 시침을 조심히 붙여주어야 하는 것이다.
음악과 영화는 시침과 같다. 시침시침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영화가 시침이고, 음악이 분침일 수 있다. 초침까지 있어야 아름답지만, 초침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가 자라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특히 선출자들이 문학 공부를 한다는 것은, 김영랑의 오메가 시계를 차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어제 꿈에 이런 것이 있었다. 나는 바닷가에서 부자인지 아닌지 모르게 지내는 청년이었다. 공부를 해서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을 정리해서 무엇을 할 것인지, 그런 것이 없이 다만 품위가 유지되고 있었고, 어떤 장교처럼, 품위유지비, 먼지 모르게 사투리 어미 같은, 은비까비, 삼대의 덕기처럼 학교에 복학하는 시간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어떤 여자를 알게 되었고, 여자의 집에 놀러를 갔다. 늦게 다시 집에 오기도 뭐하고, 가벼이 놀러간 동성지간의 친구처럼 사람들이 나를 대해서 여기서 자면 되겠다, 집이 굉장히 크고, 모던해서, 여자 한 사람의 얼굴만 마음에 남달라 보일 뿐, 호텔에 들어가서 이런저런 안내를 받는 기분과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너무 늦지도 않았다. 그래서 둘은 시내로 데이트를 하러가기로 했고, 나가는 도중에 그녀의 아버지를 만났다. 그녀의 아버지도 나를 도둑놈으로 보지 않고, 손님 중에 한 사람으로 참을 수 있는 가벼운 사람으로 여겼고, 어떤 소설가는 모든 것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다 했지만, 나도 동성지간에 놀러온 친구처럼 그렇게 행동을 했다. 나는 여자의 집이 처음에 부자 같았다. 시내에 있고, 집은 호텔로도, 식당으로도 응용이 가능했다. 그런데 거기에서 잠까지 자는 모양이었다. 공간의 이념이 약간 거대한 원룸 같았다. 재미는 있었지만, 전투식량 같은 느낌으로 탈바꿈이 되었다. 여자의 힐러리어스는, 형용사형, 그러나 변함이 없었다. 문제는 나의 머리 속의 매개가 아니겠는가? 여자가 그래서 신기해보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이 모든 것이 시침을 가리킨다. 시간이 금세 흐른 것이다. 여자는 문학도 하고, 음악도, 한국 고전무용도 공부한 여자였다. 그것이 얼굴이나 옷차림새에 그냥 보였다. 얼른, 하야끄, 나가자고 그랬다. 나도 나가고 싶었다. 그리고 여자에게는 내 집에 놀러가자는 말이 나올 것 같았다. 집으로만 따지면 내 사는 곳이, 바닷가의 풍광이며, 개인이 거주하기에는 부산 바닷가에 있는 무슨무슨 회의장처럼 굉장히 넓은, 보기에 따라서는 창고 같기도 하고, 책이며, 오디오며, 음반이며 할 것 없이 굉장히 많고, 창이 아주 넓고, 소나무 숲이 있고, 시간제약 없이, 무한정하게 풍금 목소리처럼 느껴지는 곳이 어쩔 수 없이 비교하자면 여자의 집보다 잘사는 것 같았다. 그곳은 또한 응용이 없고, 나만 살기 때문이다. 가족은 비슷하게 큰 건물로 떨어져 살았다. 나는 특별한 목적이 없이 공부하는 사람이었다. 그것이 여자의 테리토리와, 엄격하게는 그녀의 것이 아니지만, 여자에게 덕을 볼 수 있는 가능성과 연합군이 되고 있었다. 국공합작이어도 좋다. 너무 늦은 저녁이 아니었기 때문에, 서둘러 나가려고 했는데, 사다리를 계속 내려와야 했다. 갑자기 생겼다. 그리고, 그 수많은 침대에 사람들이 모두 누워있었다. 나는 시침이 이동했다. 그들을 깨우지 않기 위해서 무진 노력을 했고, 잠에서 깨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단정했고, 아픈 사람들의 병동 같지는 않았다. 어떻게 보면 다들 예술가 같았다. 차림새도 좋고, 그렇게 자는 것이, 함께 지내는 것이 재밌고 편안한. 그들에게는 잠자리에 드는 시각이기 때문에, 침대에 누워있는 것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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