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우리 모두가 되고 싶었던 것들의 빙산의 일각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자원이 아닐 수 있다. 사람들이 엘티이폰 영화제를 하는 것을 보면, 친구들이 있고, 엘티이폰만 있으면 영화를 찍는다는 소리가 아닌가? 영화 촬영에는 로케이션이라는 것이 있다. 그러니까 해외에 가면, 해외 로케가 되는 것이고, 지방에 가면, 지방 로케가 되는 것이다. 자기 있는 곳 근처에서 찍는 것은 그냥 찍는 것이다. 다 찍고 괜찮다 싶으면 오케이 하는 것이고. 그리고 협찬이라는 것이 있다. 자기가 갖고 있는 옷을, 스탭들이, 괜찮은 것들을 가져 와서 배우들에게 입히고 하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그러나, 기성 영화 제작에서는 협찬만 받아도 충분하기 때문에, 협찬을 받는 전담팀을 꾸릴 정도이다. 장소 협찬도 있고, 자동차 협찬도 있다. 그리고 영화 엔딩 크레딧에, 협찬사의 이름들이 크고 빼곡하게 정리가 된다. 자동차도 자기 것 가져오고, 장소도 잘사는 스탭의 집이나 별장 등을 그대로 이용하는 것은 매우 좋은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일까? 돈도 아끼고, 협찬을 구하는 일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다. 바로 거기에, 양들의 침묵, 숨은그림찾기 같은 문제가 숨겨져 있다. 미국 영화 ‘양들의 침묵’은 성룡의 ‘프로젝트 에이’ 비슷한 무수한 홍콩 영화와 대립한다. ‘양들의 침묵’을 수원 중앙극장에서 보았을 때 얼마나 깊은 충격을 받았는지 모른다.
우리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 한국 청소년들에게 설문조사하면, 조디포스터 같은 에프비아이 수사관이 되고 싶다고 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노골적인 티비 뉴스 같은 게 아니라, 자기 아는 형이나 누나가 에프비아이 수사관이 되었다 한다면, 그 사람의 소소한 인생 역전이 한 편의 드라마처럼 연상될 것이다. 영화 한편의 주관에 입회해서, 수상한 것을 따진다면, 바로 그런 것이 수상한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직업에는 귀천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그 이상을 생각할 수 없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꽉 짜인 객관성 안에서, 순전히 주관적이고 즉흥적인 생각의 나열들로, 파고다 공원에서 새 점 보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인지 모른다. 나는 조디포스터를 사랑하였다. 나의 죄라면, 그것이 나의 죄이다. 영화는 개인의 수학적 비쥬를 순전히 함께 본다는 이유에서 객관적으로 여기기 쉬우나, 그래서 배우들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것보다 용모가 빼어난 것인지 모른다. 동방불패를 보라. 영화를 보고 나서, 객관적인 능력, 다시 말해서 정신의 지식성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매력적이긴 하나 상대로부터 자기 정신이나 감성의 고양에 아무런 보탬을 얻지 못하는 것을 거듭하지 않는가? 그 이유는, 영화가 본시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제작기법에 로케이션이라고 있다. 우리가 대학 때 엠티간 곳을 잊진 않지만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이유는, 대학에 가기까지가 너무나 엄청난 정신성이어서, 용주사라던지 원천유원지는 상대적으로 묻고 답할 만한 것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강원도의 힘’에서 여대생이,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울지 않은가? 왜 울었던 것 같은가? 젊은 경찰과 하지 못해서였을까? 물론, 했다면 울지 않았을 수 있다. 피곤해서 잤을 것이다. 그 많은 체세포가 일일이 저녁에 오징어를 한 다섯 개 먹고 잔 사람처럼 뭔지 모르게 고소한 시간으로 변화하였을 것이다. 펑펑 울었던 이유는, 하지 못해서인 것이 가장 크다. 다른 하나가 중요한데, 자기를 보는 관객들이 이제는 자기가 여대생이라는 것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처음으로 돌려보라. 성난 얼굴로 돌려보라. 작고, 아무런 꾸밈이 없지만, 춘천역에 처음 내린 모습은 영락없이 국문학과나 국사학과 여대생의 것이었다. 둘일 확률이 높은 것은, 그네들 학과가 그나마 엠티나 답사를 많이 하고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자 혼자서도 백제 대낮에 처음 가본 도시의 역전을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새로 만난 사람과 시시껄렁 헤게모니 논쟁이나 하면서, 대상의 기호에 대한 기호적 관심의 알리야적 연속, 지나가는 차들의 시퀀스, 세상 모든 박제적 인생들을 대신하는 듯한 웜홀 연기, 그렇게 다하고 나니까, 영화가 끝날 무렵에는 싱그럽고 마른 빛이 그만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사람은 젓게 되어 있다.
지금의 영화들을 보면, 뭐가 딱히 되고 싶은 것이 없는 세상 같다. 기가 막히게도, 미국 에프비아이가 그런 어린아이들을 부르는 것 같은 느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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