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점착으로서의 이성, 두 영화, 외계+인, 높.......
눈 앞에서 살인을 하고 있다고 해도, 그 상대가 반인반수이거나, 살인자이거나, 지금 살인을 저지르고 있는 반인반수라고 하면, 우리는 그것을 지켜보게 된다. 이런 식의 극단적인 조건 엑스는 굉장히 많다. 갈수록 액션 영화 보기가 망설여지는 것은, 우리가 어린 시절의 학교 생활로부터 많이 벗어나 있어서일 것이다. 우리는 문왕으로서, 광대들의 잔치를 구경하기 위해 영화관에 갔다. 그러나, 지금은 문왕의 시기로부터 너무 많이 벗어나 있고, 우리는 광주라든지, 광양이라든지, 광영이라든지, 광명 같은, 광자 돌림의 광주 사태에 직면해 있다. 우리가 단체 관람을 할 때, 얼마나 하늘의 지식 사회가, 교육의 집단이, 영화라고 하는, 끝없는 옹관석실묘의 흐름에, 그나마 보탬이 되는, 하나의 집단적인 장관처럼 여겼던가? 그것을 보러 가기 전이 그렇게, 길고, 아름답고, 광주상고의 남학생 같고, 여학생 같고, 그리고 보러 나오는 길이, 그렇게 길고, 역사에 남고, 지나간 역사들은 가라고 하고, 우리들의 영원한 추억에 남고 그렇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교육과 지식은 답보 상태, 혹은 후퇴를 하였고, 영화는, 지금까지 한국 영화는 진보하여 왔다. 열린 진보당처럼. 진보 우리 국민의 힘처럼. 우리는 사탄이 어째서 한국 케이 드라마와 영화의 전 세계의 파급을 용인하는지, 사실 납득이 되지 않았다. 다만 나를 괴롭히는 케이 쿠폰을 모아, 영화를 만든다고는 생각했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하나는 미국 영화이다. 미국 영화는 아무 이유 없이, 듄이라는 영화를 다시 제작을 했었다. 그것은 내게 포착이 되었고, 세상에는 없는 세미나에서, 어떤 학생이 그것을 거론하기까지 하였다. 세상에 그와 같은 파격이 없을 것이다. 나는 어쩌면, 천공의 성 라퓨타보다 강력한, 세미나의 성, 혹은 넓은 강의실을 창조하였는지 모른다. 영화 듄은 숱한 꼬봉 기자들과 평론가들을 대동하고 있다. 그것이 영화제작자들과 영화인들이 영화 속에서 고생하는 이유이다. 우리는 그것의 단차를 이제 감지하였으나, 정확하게 어떻게 듄이 되는지 알지 못한다. 사람이 태어나, 다소 교육을 받는 것 같아도, 항상 영화적인 스펙타클에 살면서, 꼬붕 평론가들을 대동하는 형세를, 금마장상, 황금종료상, 황금곰상, 그렇게 만들고 사는지 모른다. 우리는 학교에서, 철저히 클래스 당하고, 영화는 그나마 사람들을 일거에 흥분시키기 때문이다. 그렇게 학교에서 클래스 당한 것이 서러운 것이면, 애초에 학교를 다니지 않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 할 것인데, 정말 학교를 졸업하면 그와 같은 느낌으로 사는 것이다. 우리는 깡패 영화의 분위기를, 그런 공중전적인 영향을, 우리는 다른 영화에서나 실제 생활에서도 간혹 실감할 수 있다. 그러나 학교에서의 영향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가 없다. 나의 이런 단호한 말투를 흉내내는 학원 강사들은,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는 것 같다. 그것을 이순신 장군의 편에 놓을 것인가? 아니면, 히데요시 편에 놓을 것인가? 우리는 사뭇 헷갈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들 편에 있는 것 같지 않다. 그것의 단차. 평론 없이 영화만 질주할 수 있는, 대지. 박찬욱 감독이 영화사에서 과대 평가된 영화들이라고 언급한 것들의 면면을 보면, 박찬욱 감독이 약간 당구 선수 이미래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우리가 그런 말을 듣는 것은, 우리가 당장에 영화감독이 아니라는 사실의 폭력적 사실, 그런 폭력, 그런 입장이 있어서인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 같은 사람들은, 그런 폭력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논리와 이성이라는 것은, 그것들의 공동체를 전제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대전제가 없이, 이성을 전개하는 이는 없는 것이다. 나도 고통당하고, 사람들은 진실로 고통을 당하는 것이다. 박찬욱도, 이미래처럼, 바로 그와 같은 쓰리쿠션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별반 차이가 없는, 평론가들을 두고, 영화가 제작되는 공포영화적 조건. 영화는 그리고 다른 영화들에 밀리고, 우리는 순전히 그와 같은 다른 영화에 밀리는 단차에 의해서, 가치가 승격이 되는 것이다. 영화와 평론이라고 하는 태극의 전진이 아니라, 영화와 영화라고 하는, 우영우적인 어떤, 말의 느낌 같은, 거꾸로 해도, 우영우인 서울 대도시의 젊은이들의. 정말이지 대단하지 않은가? 거꾸로 해도 옹관석실묘이고, 그것을 다시 거꾸로 해도, 옹관석실묘인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까마득한 신석기 시대에 그것을 알 수 있었던 것일까? 공부하는 책상이 세상에서 가장 크다는 진단 또한 그러하다.
민주주의적 영화제작자들도 있다. 그들도 공산주의나 파시즘, 나치즘, 군사정권, 동원력만 강력한, 아무런 문건이 없는, 허울뿐인 민주화 운동을 싫어한다. 나도 평론을 하나 쓸 때, 겨우 이런 것마저도, 매우 거대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러나 그런 마음으로 멈추지 않고, 아름다운 우리들의 태극기를, 산행하여 사진 찍는 젊은이들처럼, 거기에서 멋지게 날리고 싶은 것이다. 영화를 보고, 사람들이 보고, 기자들이 보고, 자기들도 노트북이 있고, 똑같이 글쓰기의 욕망을 느끼지만, 일단 쓰고 기다리고 있다 보면, 나는 마치 외계인의 모선처럼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고, 십년 가까이 공고히 되면, 이제는 금강산도 변할 때가 된 것이다. 점착은 점착되고 싶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어떤 미술평론가 중에 점선면이라고 있는데, 그렇게 애타게 이름을 지은 것이, 그것이 담고 있는 뜻에 비해, 자기의 능력이 미치지 못해서 그랬을 수도 있다. 우리가 강의를 좋아하는 것은, 강의 전후에 또한 숱한 야부리를 깔 수 있어서 그렇다. 여름날 구름을 보다 보면, 새의 부리처럼 드러난 것이 있기도 한데, 누군가는 그런 야부리에서부터, 진지한 논문의 세계로 들어갈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강의는 없고, 폐교수스 내에서, 야부리나 까고 있는 그림자 에이와, 작동이 되고, 안에 내용물이 있는 것이 신기한 자판기가, 일본 어느 유명한 지역처럼, 국물 요리까지 되는 것이 있는 것까지, 그리고 다른 그림자 에이가, 자기가 읽었던 논문을 말하는 것 같은 것이다. 말했다는 것이 아니라, 말하는 것 같은, 바로 그와 같은 단차. 그리고 단차의 중첩과 계속이 만들어내는 표현주의라는 것은, 가을날의 표창과도 같은 것이다. 조선의 국모가, 닌자가 던지는 단풍의 표창에 맞아, 불타올랐다는 표현주의적, 구조주의적, 상징주의적 결말을 감당할 만한 인간이 세상에 그렇게 많지 않다. 우리나라는 이미, 가장 세계적이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점착은 미세하고, 우리들의 공부뿐인 의식의 프로세스 중에서, 재미있는 상상의, 추상의, 반추상이 공간을 제시한다. 하지만 사물과 욕정, 취직과 연애, 연예, 유재석이 나의 늙은 그림자인 것처럼, 허구한 날, 여자들을 데리고 놀러다니는 분을 푸는 것처럼, 하지만 그와 같은 총체적으로 값싼 점착은 살인적인 수준인 것이다.
시는 점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저항한다. 하지만, 소설은 점착이 될 수 없다고 여긴다.
그러나 내가 글 중에 몇 가지 제시한 것만 보아도, 우리는 면으로, 선으로 넓은 것들도, 쉽게 점착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얼마나 많은 노트북들이 있는가? 그들은 끝없이 작게 되고, 결국에는 소멸하는 마지막 시간까지 도달해서, 누군가에게 점착된다. 다른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자기들의 독립적인 점과 선과 면을 즐기는 것이다.
*
점착 방송국 연구실의 끝에서
어떤 여자는 침팬지가 될 수도 있다.
자기가 오랑우탄이 되겠다고 자처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 순간에는 아무런 생각이 있을 수 없고, 다만 옹관석실묘의 권력만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본적으로 유다이긴 하나, 향기나는 기름으로 예수님의 발을 씻은 여자의 입장도, 그렇다고 보면 이해가 되는 것이다.
*
외계+인이 그렇게 슬펐다.
나와 같은 비상한 작가마저도,
가을의 깊은 점착에서
한동안 빠져나올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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