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선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어려서, 어째 너는 조심선이 없느냐는 말을 자주 들었다. 뭘 자주 흘리고, 깨뜨리고, 부수고, 어린아이가 집에서 그렇게 연산군처럼 돌아다니는 것을 두고 말하는 것은, 조심성이다. 조심성이 없다 하는 것이다. 조심선은 조금 다르다. 조심선은, 물론 조심성과 같은 것이긴 하나, 발음이, 거의, 그러나 조금 다른 것이다. 천의무봉 같은 것도 조심선이다. 조심선에 너무 골몰하고, 덜덜 떨고, 그렇게 되면 좋지 않으니까, 아예 재봉선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말인 것이다. 분명 둘은 같은 말이긴 하나, 조심성은 분명하고 구체적인 세상으로 나아가고, 조심선은, 일종의 유불선 삼교나, 점선면, 혹은 간화선 같은 그런 관념의 세계로 나아간다. 결과적으로 보면, 전혀 상관이 없는 말이겠지만, 그러나 우리가 낯선 곳을 걷다가, 다만 얼굴만이라도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얼마나 뛸 듯이 기쁜가? 그것과 같은 것이다. 너무 그런 것도 없으면 그래서, 구슬프고 외로운 피아노 음악처럼, 결코 좋은 것이 아닌 것이다.
우리가 중학교 때에, 그 아름다운 국어 시간에, 어떤 수필 시인의 세월이라는 수필을 읽고, 그렇게 아름다운 조심선이 생겼던 것을 기억한다. 남녀의 만남이란, 그런 조심선의 연속인 것이다. 우리가 선을 보는 것을, 선을 본다, 선본다, 그렇게 말하지 않은가? 그것이 바로 조심선인 것이다. 어딘가에 투디 디자인으로 카페 내부를, 그렇게 백색과 만화 그림 같은 기초 선으로, 꾸민 곳이 있다고 하는데, 그런 것도 넓은 의미에는, 광역시나, 버스의 어떤 광역 노선 같은 차원에서는, 조심선인 것이다. 우리가 그런 카페에 반드시 들르고,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것은, 우리가 아무리 많은 드라마를 보고, 영화를 보고, 넷플릭스, 튀빙엔, 그런 것을 본다고 해도, 우리 마음속에는 살아 숨 쉬는, 하나님을 향한 조심선이 있다는, 간화선이 있다는, 일종의 증거 같은 것인 것이다. 그것은 손가락이 닮았고, 발가락도 닮았고, 어떤 이태리 사람의 간절한 소망 같은 것이기도 하다. 이태리는 기독교의 나라인가? 아니면, 페닌슐라, 그러니까 한반도인 것인가? 이태리는 기독교의 나라인 것이다. 그래서 아름답고 맛있는 피자를 먹는다. 그것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일 것이다.
조심선을 갖게 된 다음에는, 우리는 낙원에서 추방을 당하게 된다. 그러니까 아무런 영화나, 티비 드라마나 볼 수 없고, 집에서 책도 안 보고, 글씨도 쓰지 않은 채, 지낼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아무리 부잡한 사춘기 시절을 지낸 청년도, 군대에 가면, 조심선이 억지로 생기게 되는데, 별로 친하지 않았던 부모님을 보고 우는 것은, 다만 생활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그랬었어가 아니라, 어떤 인지적인 측면에서 그런 것이 생겨서 그런 것일 수 있는 것이다. 성인이다 하는 것은, 두루두루 조심선이 생겼다는 것으로부터 측정이 된다. 우리가 사도 바울을 성인으로, 세인트 폴로 여기는 것은, 어렸을 때는 그것이 정확하지가 않다 할 것이다.
그리고 조심선은 그렇게, 작품들과 함께 한다.
그것은 저주이기도 하고, 방법이기도 하다.
우리가 요요마의 슬픈 첼로 음악을 들으면서, 배를 타고, 그렇게 계림을 가고, 하롱베이에 가면, 그와 같은 조심선을 또한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축복이고, 그것은 다이어트이며, 그것은 많이 먹는 것이기도 하고, 그것은 그 모든 것을 그만두고 싶은 절박한 마음이기도 하다. 철학이라는 것은 아예 그런 조심선이 없는 것과 같다. 누군가 철학을 잘 가르치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는 조심선의 칼잡이 같은 이가 될 것이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은, 그럴 사람이 있을 수가 없다는 이유에서 일 것이다. 누가 그런 조심선의 황제인 것인가? 철학이라는 너무 조심선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가 호텔을 조식이 있어서 선택하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딱 한 번 저렴한 호텔에서, 부산에서 묵은 적이 있었는데, 백색의 어떤, 단정한, 그리고 아침에 조식을 먹고, 보다 웅장한 호텔들에 가려진 해운대 백사장으로 나가려고 하니까, 조식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조심선인 것이다. 우리는 아무리 정신이 없기로서니, 아침 식사가 없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다. 대충 시간을 보내다 보면, 점심이지 않은가? 그런 생각은 맞는 말이지만, 왠지 모르게, 인간에 대한 조심선이 없는 것 같고, 아침을 준비하고, 자기가 먼저 생각하고, 그런 것은 정말 인간에 대한 조심선이 있는 것 같은 것이다. 에스엔엘이 지금, 몇 년 전의 타 방송국 선을 넘는 녀석들이라는 말이, 그 말 뜻을 우리가 잘 알면서도, 그 내용에 대해서는 아리송했던 적이 있었는데, 매우 정확하게 그 말의 내용을 시연하고 있는 것을 두고, 우리는 좋아하기 보다는, 뜬금없이 조심선을 갖게 되는 것만 같다. 그것은 매우 강력한 보케이고, 보케리니, 혹은 보카스쥬니어 같은 것이다. 확실히 조심선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대상에게 있지 않은 것이다. 아무리 조심선이 없다고 해도, 우리가 가지면, 갖추면 되는 것이고, 아무리 그런 것이 넘친다고 해도, 우리가 당장에 훌륭한 조심선을 가지지 않으면, 그런 객관적이고, 사회적이며, 과학적인 것들은, 역사적인 것들은, 무의미한 것인 것이다. 신동엽과 선을 넘는 녀석들이, 때로는 우울하고, 때로는 피식하고, 때로는 피직스, 때로는 우리에게 위로를 주는 것은, 드디어 그런 우리에게 조심선이 기본적으로 제시되는, 제시 잭슨, 문학을 주는 것 같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뜻밖에도, 매우 정치적이고, 사변적이며, 현상적이고, 동시에 그 모든 것이 아닌 것으로다가, 지독한 우울, 혹은 글루미 선데이가 되는 것일 것이다.
정염귀가 되는 것도 그렇다.
우리가 정말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귀에 꼽고,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을 듣다 보면, 버스에서, 잠이 들다 일어나면, 때로는 더 이상 사랑을 할 수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여자가, 머릿결도 실크, 신라, 옷 입은 것도 환하고, 실크 빛깔의, 그러니까 실크라는 말이 아니라, 그것의 어떤 느낌 적인 느낌을 갖고, 쉬퐁, 내가 좋아하는 정염귀로서의, 그런 머플러를 하고, 말하는 것도 그렇게 시인의, 시적인, 그리고 요한 세바스찬 바하의 어떤 이중 집합 논쟁적인 진행 같은 것을 말하고, 그런 것은 못하더라도, 나름 정염귀가 있어서, 듣는 귀가 있어서, 재즈의 선율을 진심과 내심, 좋아할 줄 아는, 그런 마음의 태도가 있는 것이다. 빌 에반스가, 다만 잘생긴 얼굴이 아니라, 음악이 좋은 것과 같은 효과로서, 다만 윤상이, 성시경이, 다들 비슷한 정염귀 같지만, 카프카, 정말 그 안에 담긴 콘텐츠가 좋아서, 좋아하는데, 얼굴도 그렇게 단정한 것을 좋아하는 것으로, 그 기초적인 도시인의 교양에 있다고 한다면, 남자가 얼마나 좋아하고, 사랑스러워하겠는가? 그러나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햇빛에 깨지고, 스스로 넘어지고, 연속하지 않고, 냉장고 문이 열린 것과 같고, 같은 원리로서, 냉장고 문이 열리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것의 모든 회전하는 참이슬은, 소주와 같고, 다만 비린내만 잡아줄 뿐, 아침에는 머리가 많이 아픈 것이다. 우리는 그런 정염귀에 빠졌다가, 그렇다고 보면 얼마나 아일랜드가 귀가 막힌 지, 다만 정염귀에서 빠져나오는 것으로 사는 것일 수 있다. 신학 공부를 한다는 것은, 문학 공부를 먼발치에서 보고 있다가, 가끔 발을 한 번 담가보고, 그렇게 나오는 것일 수 있다. 가장 강력한 정염귀가, 최고 등급의 설교는 하지 못하더라도, 기초 등급, 또는 평범한 등급의 설교를 더 이상 듣지 못하는 마음이 아닐까 한다. 누구도 그런 정염귀는 될 수 없다. 우리는 박노식도 될 수 없고, 이진영도 될 수 없다. 우리가 도시의 시골에서 살 때, 그런 가로수들을 볼 수 있지 않은가? 친구가 나타나도 반가운 것이고, 나타나지 않아도 정염귀인 것이다. 너무 아는 것도 없이, 귀엽기만 한다면, 우리는 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에 겨우 도달하기는 하지만, 둘이 서로 어쩔 수 없이 정염귀인 것이다. 우리의 얼굴은 처음에는 하늘 아래 있었지만, 갈수록 낮아지고, 몸매를 본다는 것이, 한복을 입어도 아름답다는 것이, 그 뜻이 갈수록 정염귀만 되는 것 같다. 정염귀는 그래서, 한복을 차라리 입지 말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것이 무서워서, 한복을 입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다 하는 것이다. 우리는 신설중이 될 수도 있고, 징비록이 될 수도 있다. 정한용이 될 수도 있고, 정말 정염귀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횃불을 들고,
그것들을 휘휘 저으면서 전진하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런 작품이나, 아일랜드, 더글라스, 보다 보면 조심선이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아무런 지능이 없는 정염귀가 된다.
처음에는 뭔가 지능이 잡히고, 재미도 선사하고, 서로 주고받고, 그런 약속 같은 것이 있는 것 같으나, 다만 주자만 괴롭힐 뿐,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을 수 있는 것이다.
*
차라리 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우리 모두 정염귀가 되자 할 수도 있다. 클래스 콘셔스니스를 가질 것이 아니라, 모두가 클래스 메이트가 되면, 세상은 편할 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을 살기도 어렵지만, 정염귀가 되기도 어려운 것이다. 사람들이 대장금을 보고, 그렇게 살고도 싶지만, 분명 다른 작품들도 굉장히 많고, 즐겁고, 홀가분하고, 아름답고, 선율 같고, 아무런 피해망상이 없는 콘서트에도 다녀오고,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것이다. 정염귀 때문에, 너무 고통스럽고, 눈물까지 흘렸다는 사실을, 그런 가혹한 문예비평적인 정상이나, 극치에 이르지 않고, 그런 것이 우리 삶에 전혀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비로소, 그제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최백호가 그쟈
또는 라자냐를 먹고......
그리고 조심선끼리 서로 붙는 것도 발견할 수 있다.
태양을 피해, 태양을 피하고 싶어서, 정염귀끼리 결혼하는 것도 우리는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조심선이 있다면
아무래도 조심선끼리 서로 관심을 갖게 되고
육체가 허락하지 않는다면, 살아서도,
영혼 결혼식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어느 맑은 날에는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항상 모든 드라마는
피아노 음악의 장조와 단조처럼
정염귀에서 조심선으로
흔들리고, 회전하곤 한다.......
아일랜드가 총대를 매고
모든 정염귀들을 끌고 간다면
다른 드라마들은 독특한 한계상황 속에서
드디어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애를 낳았다는 것을
다른 가족들에게 말할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의 상상이
우리는 정염귀처럼 웃고
그것을 축하해 줄 수 있는 것이다......
남자가 정염귀가 아닌데
예쁜 여자들이 유난히 많을 수도 있다......
'일반민중문화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슬픔이란 무엇인가? (1) | 2023.02.04 |
---|---|
예수와 예지, 그리고 세븐(1993) (0) | 2023.01.26 |
쓸쓸한 점착으로서의 이성, 두 영화, 외계+인, 높....... (0) | 2022.09.02 |
우리는 영어를 못할 권리가 있는가? (0) | 2022.05.24 |
죽림칠현 애가 (0) | 2022.05.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