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림칠현 애가
내가 옛날 초등학교 화려한 생활의 마지막에서, 그것의 실천신학적인 육 학년 야구 대회를 하는 찰나에, 내가 받은 글러브는 약간 이상하게 생긴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지나간 드라마, 애인있어요 같았다. 그러니 정식 스포츠맨쉽이라든지, 그것의 출고, 생산, 유통, 정식 네임 벨류와는 다르게 생긴, 어느 생활 물품 가게의 윈도우를 장식하는 글러브처럼 생겼던 것이다. 드라마를 갖고, 스포츠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남들은 다들, 야구 선수처럼 생긴 글러브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관념은, 그것을 불평하고, 동시에 넘어가고 했던 것으로, 제법 강했던 것이다. 공이 오면, 그 윈도우를 장식하는 글러브가 잡고, 내가 꺼내고, 충분히 그럴 수 있었던 것이다. 포수가 던지면, 그 애인있어요 처럼 생긴 것이, 잡고 그랬던 것이다. 가수가 다소 영어적으로는 호색적이더라도, 우리나라 유학적으로는, 버들류를 갖고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수묵담채의 한 장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것은 그때 가질 수 없는 생각들이다. 그러나, 내가 그때 그런 활동을 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여행지의 상품 같은, 전쟁의 전리품 같은 것을 가질 수 있는 것일 것이다. 공이 오면 잡았다. 그 광대 같은. 그 김완선의 삐에로는 날 보며 웃지......
어떻게 나는 중고등학교 때 죽림칠현이라고 배우면서, 전통 형이상학, 광주 기독교의 총본산의 자녀로서, 웃고, 그래도 열심히 공부하는 남방 불교, 혹은 어떤 철학, 그런 동지들이 있는 줄 알았다. 그 이상으로 설명하지 않았고, 그것의 연애 같은 것은, 영화 올드보이에서처럼, 가르쳐주지 않는 것이니까,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죽림칠현에 가고 싶었다. 그것의 요약이 그렇게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내가 주희를 사랑하는 것도 그렇다. 그것의 효에 관한 것도 있지만, 대학도 그렇지만, 그렇게 그 모든 부분이, 성리학적으로 아름답고, 정확하고, 그것이 없으면 동양이 없고, 더 나아가 지구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학에서, 운동을 하다가, 학생운동을 하다가, 학생 야구 운동을 하다가, 이은미 우리 두 사람, 공부를 정말 하다가, 학생이 대학에서 공부를 한다는 것, 그것은 정말 주희의 천년을 넘은 사랑, 천년을 가로지르는 사랑이 아닐까 한다. 한강 건너 편에서, 배를 타고, 나름으로는 고속정으로, 맞은편으로 도착한다면, 그것은 천년을 가로지르는 것이 될 것이다. 뭔가 중요한 일이 있을 것인 것이다. 드라마는 그것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리고 드라마는 그것을 드러낼 수 있다. 그리고 진리를 흉내 내는 것을, 그것을 드라마적으로 흉내 낼 수 있고, 세계가 존재의 현상이고, 드라마가 그와 같은 현상의 현상이니까, 그와 같은 공중의 버스와 택시, 하늘을 나는 지하철을 타고, 우리는 지날 수 있는 것이다. 드라마에 막히고, 드라마에, 거짓된 눈에 잠이 들곤 하지만, 거짓된 눈을 갖고, 그것을 공즉시색 하면, 거짓된 눈이 참 눈은 되지 않아도, 거짓된 눈은 아니 될 수 있으니까, 우리는 그렇게 평생을 비평에 목말라하는지 모른다. 우리가 독재를 미워하면서도, 정작 그것의 형식이 무엇인지 몰랐다가, 지금처럼 비평을 기다리는 시간을 살다 보니까, 북한의 가난한 사람들도, 나의 서먹서먹한, 아름답고 담백한 글들을 기다리는 시간을 살다 보니까, 반독재 투쟁이란, 아름답고 진실한 비평을 누군가 쓰고, 그것을 너도 읽으라, 읽는 시간이 아닐까 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사탄을 무찌르니까, 사도 바울도 사탄이 아직 살아있는 줄 알고, 또 무찌르는 장관을, 우리는 나가사키, 혹은 이제는 슬프지 않은 히로시마 사람들처럼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애국가 삼장의 가을 하늘 공활한데, 그 말이 그 뜻인 줄 우리는, 이처럼 비평에 목말라하는 시간을 살지 않았다면, 나도 그 말을 저 깊은 무에서부터 꺼낼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높은 공으로도 승부한다는 그들끼리의 분석이 아니었다면, 높은 공으로 타자의 감각을 속이고, 낮은 공으로 승부한다는, 그런 그들의 알 수 없는, 집단과 짚단의, 분석이 아니었다면, 짚단은 아이들의 천국, 인형은, 아이들의 친구, 그들의 진실한 측정이 아니었다면, 나는 육 학년 반 대항 대회에서 그만 우승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렇지 못했었다. 우리는 이상하게 슬펐고, 장 자끄 루쏘의 일반의지가 나의 어깨에 스며든 것처럼, 우리들은 알 수 없는 이유로 그렇게 슬펐었다. 인간은 인간을 사랑한다. 비인간이 죽림처럼 생겼어도, 혹은 젖은 낙엽처럼 생겼어도, 우리가 인간을 사랑하게 되면,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남는 것이고, 그것은 시적 연장이며, 문학적 세계인 것이다. 정말 뭘 못 먹어서 죽림처럼 생겼을 수도 있고, 먹는 것은 부족함이 없으나, 결국은 정신적인 수직 밖에 그들 개인과 집단의 지식이 없어서, 그런 모습일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또한, 그렇게 아름다운 동신중학교, 희고 거대한 건물에서 배우다 보니까, 그렇게 죽림칠현에 가고도 싶었다. 우리는 인간이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내가 나중에, 아주 만필이 가득한 시간을 지낼 때, 뭘 공부하지도 않고, 읽지도 않고, 그들을 언급하기 좋아했던 것은, 담양에 정말 죽림이 아주 우거졌기 때문이었다. 뭘 아는 것도 없고, 그중에 한 명 이름이 혜강이라는 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그래도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장난처럼, 그들을 부르기 좋아했던 것은, 죽림으로는 정말 뭘 만들고, 집도 만들고, 책도 만들고, 갑옷도 만들고, 창도 만들고, 물고기도 잡고, 침대도 만들고, 책상도 만들고, 피리도 만들고, 그것들이 계속계속 자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그리고 내가 서울에서, 그렇게 노력하였으나, 마침내 예술가로 실패하면, 그런 뗏목을 타고, 붓글씨를 쓰는, 붓글씨는 영원히 아름다운, 그런 죽림칠현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나는, 어떻게 하다 보니, 신학도 공부를 잘하게 되었고, 원래가 소재는 과거의 시간에 대한 증거이다 보니까, 그러니까 관념이란 없고, 모든 관념이란 것이 에테르 정도에 이르기까지 물질이겠지만, 영어를 잘해야지만,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아무런 잡소설 같은 것을 선택해서 읽을 수 있는 것처럼, 시간의 증거를 타고 온 것이기 때문에, 그 물질이 과거 정신의 증거가 되는 것이다. 신학을 대충 선택할 수는 있지만, 계속해서 과목을, 계속해서 책들을, 계속해서 혼자 공부를, 혼자 공부? 혼자 공부라는 것이 대체 무엇인가? 그것을, 계속해서 여자 친구를, 때로는 만들어준 도서관을, 너무나도 선용하고, 만들어준 채플실을 아름답게 사랑하고, 기숙사의 햇빛과, 소음과, 누군가의 음악 듣는 소리를, 아무튼 그 모든 것이 그렇게 되기가 어려운 것이다. 나는 늘 그날 저녁 여의도에서, 아름다운 탤런트와 연예를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갑자기 친해지고, 피디들은 몰랐다가, 자세히 보면 친구 같기도 하고, 그럴 준비가 되어 있었다. 서울대는 내가 간 것이 아니라, 양산리 기숙사에서 그렇게 공부를 했더니, 선녀들이 목욕하러 내려온 것일 수 있는 것이다. 이 모든 표현들이, 우리를 버티고, 그러니까 현기증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높은 프놈펜, 지금까지 캄보디아 내전을 경험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혜강의 시를 읽으니, 우습고, 그의 전기를 듣자니, 나는 적잖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건물은 우뚝하고, 아름답고, 초현대식 서울을 우리가 살면서, 항상 문장은 평범하고, 알 수 없는 동양 같은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지만, 그것이 똑같이 반복되는 것이었다. 내가 중국을 우습게 여기는 것은, 매월당 김시습의 시를 우습게 여기는 것처럼, 그것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삼국지가 거대한가? 아니면 죽림칠현이 거대한가? 사람들은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삼국지와 삼국사기가 황해의 좁은 바다를 나가, 어디 남지나해에서 붙어서, 사람들이 많이 죽을 때까지 전쟁을 한다면, 삼국지는 그들의 백만 대군이, 불이, 배에 불이 가득히 붙어서, 모두 죽고, 군인들의 시체가, 바다에 둥둥 뜨기까지, 전쟁이 시작되어서, 그것이 사라질 때까지, 끝이 없을 것이다. 대만은 원래 없던 섬일 수 있다. 수호지도 있고. 서유기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전쟁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무슨 마땅한 이유가 있어서인가? 아니면 박쥐 상현의 기도처럼, 사탄의 조종 때문인가? 사탄의 조종 때문이 아닌가? 우리들의 지식이 죽림칠현을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러니 그의 전기를 듣고, 내가 일레트릭 쇼크를 받은 것이다.
......
중국은 그렇게 사탄과 인간에게 매우 조심스러운 죽림칠현과, 주희와, 진영을 알 수 없는 사마천의 사기를 갖고 있다.
그들의 지식이, 수천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으니,
평범한 혜강이 나온 것일 수 있는 것이다.......
작가의 잘못은, 세상이 그처럼 작가 지상주의처럼 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나, 실은 작가를 보고, 사탄을 동시에 보는 사람들의 강과 바다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사탄의 긴밀함이나, 긴장, 서스펜스, 그런 것을 좋아하기 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이 마침내 삼대에 걸쳐, 공을 쌓고, 그중에 제법 나은, 아름다운, 공부자가 나올 수 있는 것을 선망해야 하는 것이다. 하물며 작가가 사탄의 서스펜스 같은 것을 좋아하고, 누구는 고문을 당해 겨우 인지하는, 그 저 멀리 있는 것들을, 자기 돈을 들여 찾아가고, 거기서도 사람들이 만류를 하는데, 기어코 그것을 발견해서 좋아하고,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다. 겨우 그런 삶을 살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사람들도, 평범한 보통학교, 의무 교육을 이수하고 나서는, 오직 사탄을 무서워하고, 걱정하고, 도리어 사랑하다가 죽을 수 있는 것이다.
혜강은
우리들 소녀 가수의
일레트릭 쇼크만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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