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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민중문화이야기

평론의 우위에 관한 천년의 비밀

by 마음대로다 2024. 5. 26.

평론의 우위에 관한 천년의 비밀

 

 

 

 

 

 

 

우리가 지리산이나 내장산, 계룡산에서, 천년사 천년사하고, 그것을 찾고, 웃찾사, 놀라는 것은, 그것이 그만 하루 같기 때문이다. 하루는 짧고, 이틀이나, 일주일, 한 달이나 일 년에 비해, 터무니없이 짧다. 우리가 무턱 무턱하고, 무턱대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없다. 우리의 하루는 천년 같기 때문이다. 그것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만 산 위로 솟아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그 앞뒤 양옆의 맥락을 모르기 때문에, 금세, 아주 잠깐, 영쩜 오초, 우리가 예쁜 여자를 만나면, 어쩜 이렇게 예쁠까? 오썸, 하는 것처럼, 그렇게 사라지고 말았다. 그것은 송광사나, 화엄사, 그리고 천은사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리듬을 치면, 김완선, 우리가 제법 놀랍고, 놀라고, 놀람 교향곡, 지식과 교양이 있는 줄 안다. 우리는 교양 있는 여자를 만나고 싶어 한다. 그것은 모든 신현균 티비 문학관의 꿈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못했고, 내가 공부를 좋아한 나머지, 여자들을 그렇게 카페에 놓고, 사진 찍고, 그림 그리고, 그렇지를 못했다. 혼자 되고 나니, 그것이 천금 같은, 천은 같은 나날이었는지 다시 알게 되는 듯하다.

 

우리가 그때, 그와 같은 스타 익스프레스, 한신대학교 앞을 지나는 퇴근길의 차량을 보면서, 하루해가 질 때, 다들 공부에 지치고 바쁘지만, 반도체의 숨결을 찾아, 비집고 들어가고, 책을 한 책이라도, 한 페이지라도, 가수 페이지, 넘기려고 애를 썼었다. 내가 친구 광수를 생각할 때마다 놀라는 것은, 광수는 책을 읽었다는 것이다. 내게는 자주 있는 일이었으나, 나는 남을, 나남출판사, 늘 무시했기 때문에, 그것은 의도가 아니라, 물리로써, 그랬었는데, 남이 책을 읽는 것을 볼 때 조금 의아해하는 것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다른 대학교 학생들도 마찬가지이다. 당장에 가족들 중에 책을 읽는 이를 만나지 못했다. 전남대학교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존테스, 고등학교 시절에 자유에서의 도피와, 소유냐 존재냐를 읽을 때, 대학생이 되어서도 그것을 읽지 않는 이가, 서울대학교 철학대학원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러니, 내가 황무지에 입학하고자 애를 쓴 것도, 일종의 거짓된 잘못의 확진 판정 같은 일이 되었던 것일 수 있다. 나는 자유에서의 도피를 읽을 때, 신재효의 판소리를 듣는 것처럼 그렇게 슬플 수 없었다. 그것은 슬픔이었고, 그것은 기차 한량의 슬픔이었으며, 그것들을 계속해서 이어 붙이는 것 같았다. 그와 같은 개인의, 독서의, 하늘은, 아름답고, 삼복서점 같았고, 충장서림 같았다. 그렇게 내게, 아름다운 오토바이 한 대 구입하게 하고 사라지는.......

 

전격 제트 작전.......

 

사람들은 비평까지 가지 못한다. 그래서 철학이 있다는 것은, 해왕성과 같은 일이 되는 것이다.

 

국문학을 한다는 것은, 인문학은, 김인문처럼, 비밀과 같다. 신비와 같다. 박이문처럼 없는 것과 같다.

 

이미 작품으로, 개구리 왕눈이 되기 때문에, 플란다스의 개, 그것의 유명한 올드보이의 대사, 내가 내가 플란다스의 개가 될게!  했던......

 

이문식.

최태영.

신봉선.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데

최고봉.

 

그래서 우리가 비평을 읽는다는 것은 부요함을 자랑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 청자를, 럭셔리를, 호텔을, 그렇게 비싸게 다니는 것은, 일종의 베터리 충전과 같은 것이다. 우리는 정신을 놓고, 라스베가스를 놔두고, 리빙더 라스베가스, 나머지 시간을 사는 것과 같다. 내가 에스천알을 중고로 사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중국 서북부의 풍경 같은 것이다. 중국 서북부는 우리들 오십 년대, 육칠십 년대의 모습과 비슷하다. 한번 기생수를 보고 놀란 가슴,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남는가 했을 때, 이와 같은 비평의 행진, 산 사람은 한 사람인데, 그것이 만으로 분열을 해서, 시가지 행진을 하는, 정신 박력 같은, 기상 천외 같은, 상주 참외 같은, 우리 인류 국문학사의 전무후무한 사건이 없는 것이다. 기생수가 토네이도, 혹은 트위스터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휩쓸고 지나가면, 남는 것은, 그와 같은 폐허 속의, 한자밖에 없는 것이다. 표면적인 문자는 연쇄 살인과 같다. 사람은 물 붓으로 아름답게 쓴, 한자의 생명과 같다.

 

비평이 부요함을 자랑하는, 부르조아의 철학에 국한될 수도 있다. 단칼에, 그와 같은 시간을 빠져나오기란 어려운 일이다. 처음에는 그와 같은 명품진품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작품이라는 허황된, 요물스러운, 강원랜드 같은 시간을 살다가, 함께 죽는 이와 같다. 우리가 걸그룹을 좋아하고, 예쁜 여배우들을 좋아하는 것은, 다각도에 걸쳐, 우리가, 삶이, 그런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돈이 있다면, 집을 보러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우리가 타자 연습을, 때로는 재밌게, 날이 새도록 하는 것도 비슷한 태백산맥이다. 한맥 같은 것이다. 우리는 중고등학교 때에 내내, 비평을 실은 배웠으면서도, 한번 써먹지 못하고, 입으로만 껌으로 오물거리다가, 낫뱉, 다만 뱉지 않고, 배트맨, 지내는 것은, 우리가 못나서가 아니라, 천은사의 비밀이 거기에는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비평하는 순간,

 

성경에서 금했던

 

그 순간

 

갑자기 가을하늘에

 

십자가가 그어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거대한

 

민국

 

 

 

 

*

 

한국 비평가들에게 소머리 국밥 냄새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운명 같은 것이다.

 

그것은 사평역과 같다......

 

 

 

우리가 비평을 하는 순간

 

하늘이 열리고

 

아담과 하와가 섹스하고

 

낙원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