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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민중문화이야기

미국이라는 신흥사대부

by 마음대로다 2024. 5. 29.

미국이라는 신흥사대부

 

 

 

 

 

 

 

 

어제 잠깐 채널을 돌리는데, 돌리고 돌리고, 아기양 돌리, 아기 공룡 둘리, 어느 한국 똑똑한 사람들이, 자기들이 지금껏 의자왕을 몰랐다고, 이렇게 몰랐을 수 있느냐고 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와 같은 내 편 드는 쓰나미가 반갑고, 서울 시청의 어느 부분을 사진 찍으면, 그렇게 멋있게 나온다는데, 그것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적잖이 클래시컬 뮤직해졌었다. 하지만 그것은 미국도 마찬가지이다.

 

미국 사람들과 아랍 사람들, 남미 사람들이, 얼마나 병만족을 좋아하는지 모른다. 우리도 좋아하지만, 그들은, 더더, 모또모또, 좋아한다. 그들은 열대 사람들 같고, 일본 사람들이 산을 다 놔두고, 어촌 사람들이 많듯이, 그들은 늘 태평양의 버림받은 사람들 같기 때문이다. 인도양. 지중해. 홍해. 오아시스. 기본이 해군이고, 육군은 어쩌면 대한민국 육군, 알오케이에이 밖에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그들은 무엇으로, 청소년들이 되고, 신흥사대부가 되는 것인가? 영원히 그런 것은 없는 것이 되는 것인가? 영문학이래봤자, 우리가 이제는, 이제니 말할 수 있다,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목적적으로 영문학이 있어봤자, 신흥사대부가 되지 못한 다음에는, 무엇이 있을 수 있겠는가 싶은 것이다.

 

대만 사람들도 병만족을 좋아한다. 그러나, 넌지시, 반도체, 나를 좋아하는 기색이 있다.

 

병만족과 나는 대척점을 이룬다.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이, 병만족으로 가는 경우가 자주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희한한 시소로스이며, 소로스이다. 병만족도, 심리학적으로, 그런 것을 싫어하는 느낌이 있다.

 

미국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드라마를 두려워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가 드라마를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수미상응하는, 그런 전적인, 하늘 같은, 구름 같은, 융단 폭격 같은 것이 있어서가 아닌가? 영문학자는, 어떻게 하면, 좀더 많은 관념과, 좀더 많은 신념과, 좀더 많은 믿음과, 좀더 많은 기쁨과, 좀더 많은 색깔을 줄 수 있을까 꿈꾸지만, 처음인 경우에는, 다들 아담하여서, 피신하고, 도피하고, 이중 창문 같은, 도망할 구멍 같은, 그런 캐쓸을 꿈꾸는 것이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것은 당연하지.

 

하지만, 그것은 무한한 쓰리쿠션 컴피티션처럼, 같은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탈출하여서, 광주리를 타고 탈출하여서, 결국, 좀더 많은 기쁨과, 좀더 많은 색깔을 향유하고자 하는 것이다. 둘은 그래서 다르지 않다 말할 수 있다. 결국 내가 지금 만나고 있는 숫자를, 나중에, 시간이 많이 흘러, 만나게 된다면, 그것이 어떻게 되겠는가 하는, 비철학적 문학적 형이상학의 문제가 초미의 관심인 것이다.

 

미국 영화는, 수많은 에스에프 영화 때문에, 기억이 모두 사라진 상태이다. 그것의 인간 기본적인, 인간 생명과 기쁨으로서의 예수를 상실한 지 오래이다. 그것은 엘에이의 거리와 같다.

 

배움은 연쇄살인처럼 표면적이다.

 

그것은 니쿠보쿠 피디 같다.

 

다져스.

 

 

*

 

도대체 이블데드나, 헬레이져는 누가 만든 것일까? 미국 문학 청년들은, 그들의 시카고 대학 도미토리에서, 그것을 능가하고, 지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끔찍하다. 영화가 끔찍한 것도 있지만, 정말 끔찍하지만, 그 끔찍한 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더 끔찍한 영화를 요구하지만, 이런저런 명문대학 문학과 철학과 학생도, 그 하찮은 비급 영화의 시간을, 존재와 시간을, 극복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영원히.

 

사탄은 젊은 피를 요구한다.

 

미국은 젊은 피를 준다.

 

미국 사람들은 그들의 케네디를 하나도 몰랐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의자왕을 몰랐던 것과 비슷한 것이다.

 

미국은 젊은 피를 계속해서 준다.

 

영원한 나이지리아.

 

나이팅케일 같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서,

 

미국 사람들이 잠깐 똑똑해졌을 수 있다.

 

그것은 모더나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