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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민중문화이야기

투수의 투구는 가을인가? 아니면 태풍인가?

by 마음대로다 2024. 9. 17.

투수의 투구는 가을인가? 아니면 태풍인가?

 

 

 

 

 

 

지금은 생각도 할 수 없는 북한과 남한의 전쟁이지만, 그리고 생각도 할 수 없는 일본과 한국의 전쟁이지만,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사물의 힘이 아니겠는가 싶다. 사물의 힘은 파고파고, 지구의 핵에까지 이르렀고, 세계를 정복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인구가 많았을 수도 있고, 인구가 없이, 다만, 옛날 부여나, 말갈, 대가야, 그 정도의 인구만을 가지고, 자주자주 사람들을 죽이러 오는 사물들의 행진을 보았을 수 있다. 그것은 퍼뮤테이션. 그러니까 행열을 보았을 수 있다. 문제는, 격정은, 슬픔은, 그만 그 오합지졸 같았던, 영화적인 작품성도 엿보이지 않았던 명량이, 성공기, 그러니까 한산을 가로질러, 노량까지 갈 수 있었다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사물이라는 확신이, 번민과 토론, 하의와 추측, 그런 것으로 이뤄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정말 사물들이 나타났기 때문에, 사물이라고 확신을 어쩔 수 없이 가졌을 수 있다. 우리는 대게, 거기서 멈추고, 거기서 죽는다. 티비를 보아도 그렇다. 숱한 인구들을 희롱하는 내용일지라도, 사람들은 저항하지 못한다. 투수가, 김서현 투수가 요즘에, 문동주와 함께, 중국의 칭하이성 청해호에서처럼, 그곳의 구름처럼, 투구를 한다고 했을 때, 그러니까 우리들의 물리학은 포수의 포구지점 밖에 볼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마포종점 같다. 우리 옛날에, 우연히, 실수로, 버스 종점까지 가면, 정말 종점 같았다. 황량했고, 아저씨들은 뛰어다녔다. 겨울에는 바람이 지평선 끝에서부터 불어왔고, 버스의 종점에서, 전유진이 노래를 부르듯이, 춤추고, 그랬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지금은 우리나라 어디를 가더라도, 김서현 투수가 전력투구를 하는 너머의, 포수 너머의, 그때 그 시절의 풍경, 햇빛과 가을이 오지 않는 지금의, 구월 중순의 한여름 날씨 같은 것을 맛볼 수가 없다. 그것에 예민해진 만큼, 우리는 유튜브까지도 재미없는 사태를, 사단을 맞이하고 만 것이다. 우리가 어느 종점에 다다랐는데, 우연히 거기까지 오는 손님들이, 뜨내기, 혹은 도화살이 넘치는 청년들이 있어서, 국밥을 한다고 했을 때, 그런 식당이 두 개, 그리고 세 개, 네 개까지 있다고 하는데도, 손님들이 없지 않다고 하면, 우리는 여기가 축제인가 싶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은 농가월령가일 수도 있고, 제망매가 같은 것일 수 있고, 혹은 고대의 제천의식 영고 같은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옛날의 국문학이, 티비 문학관이, 그런 문을 열고 들어가서, 존재를 퍼셉션하는, 그런 국밥집 같은 것이었다면, 지금은 내가 어떻게든지, 산문시를 쓰고 있으니, 계속해서 도로공사가 길을 놓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가스공사도 그렇고, 제이스칼텍스도 그렇다. 여천공단도 그렇다. 우리들의 죽음의 감각은, 잘 모르는 것을 모르는 것으로 스스로 돌아나가는 담양에 있는 것이다. 얼마나 광주에서 담양이 가깝고, 전주 대전 천안 그렇게 있다고 해도, 우리는 소년 같고, 담양 같고, 예쁜 아주머니 같고 그럴 수 있는 것이다. 우리들의 투수들이 그랬다. 최동원이나, 선동열이, 그것의 국문학적 소설의 도로공사 같은 능력, 그런 것 같은 것이었는 것이다. 그노시엔느.

 

어느 종말의 날에, 내게 우연히 버스 한 대가 주어지고, 사람이 죽어있어서, 그것을 타고, 안내양이 복장도, 전유진이, 복장도, 그렇게 갖춰 입고는, 괴물들을 향해 돌진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버스만 지났다 하면, 함께 뛰었던, 육십년대 소년들도, 칠십년대도 있었는데, 어떤 신령한 영혼처럼 버스와 함께 뛸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광주에서 찬란하게 공부하고, 금세 담양을 맞이할 수 있다. 장성 보성 벌교를 지나면서, 다만 상추만 많이 먹을 수 있다. 그리고 누군가는 아버지가 일본인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저마다의 방법이다. 일본에서 빠친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그렇게 광주에서 공부했던 찬란한 것을 겨우 한 번 이어갈 수도 있는 것이다.

 

가을이 되면, 우리는 공부의 딱히 어떤 특별한 과제가 없는, 젊은 시절의 대학으로 돌아갈 수가 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의 팔 할이, 과제를 기억하는 한 청년을 위해 죽어 나가는 전쟁을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부처님은 영어로 남들을 부처리즘, 그런 것이 아니라, 공부방에서 공부하고 있는 한 사람을 위해 죽을 수도 있는 고대의 전쟁을 뜻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탱크의 바닥으로, 개들이 폭탄을 달고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계단의 처음에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물들이 자기들을 침략한 것을, 확신이 필요도 없이, 눈으로 보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조의 모습처럼, 자리를 비우고, 마을 사람들이, 서울 사람들이 모두 죽은 것처럼 꾸민 것일 수 있다. 그러니 우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용맹하며, 사물들이 침략할 때는, 그것의 힘을 우리가 전유할 수 있는 영혼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도 천국을 희망하면서, 속은 것이겠지만, 우리는 그들을 보면서, 동시에 천국을 희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가을이다.

 

한국의 가을은 무섭고, 다만 사람들이 죽는 단풍 같은 것이기도 하고, 우리가 서울의 판잣집에서, 서울의 판잣집은 듬성듬성 나무들이 있는 것이 유명한데, 공부한 것이 하나도 없이, 분명 똑똑해지는 것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가을을 많이 맞이한 사람들을 우리가 존경하고, 높임말을 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처음 학생의 튀밥, 뻥이요 자루에, 가장 많이 가을이 들어간다. 여름의, 같은 가을의 연속들이, 방역차를 아이들이 뛰어가는 것도, 실은 지식이 있어서인 것이다. 아이들이 가을에, 드디어 더 재밌게 놀기 시작할 때에, 동시에 놀라는 것은, 누군가는 공부를 하고 있다는 엄정행 같은 것 때문이었다. 누나 두 명이 엄정행과 오현명을 그렇게 좋아했던 것이, 그렇게 기억이 난다. 나는 그들의 취향에 동의했고, 동의보감, 그러나 동의를 하지 않기도 했다. 노래는 분명 정신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엄정행도, 오현명도, 둘 다 개구리는 아니었지만, 아무리 영화 아마데우스에서의 밤의 여왕의 지원사격, 히로시마 핵폭격 같은 지원, 도지원, 박지원 같은 것이 있었어도, 나는 그들이 동시에 개구리가 되는, 개구리 왕눈이가 되는 것이, 나에 대한 지나친 염려의 세력에서처럼, 보였던 것이다. 너무 막 좋아하기도 했는데, 내 작은 누나가 엄정행을 그렇게 좋아했는데, 나는 평생을, 지금으로 보면 우리나라 산 같고, 흙 같은 누나를, 지금은 사랑하고 좋아할 수 있지만, 그때도, 그리고 지금까지 평생을 좋아한 적이 없었다. 나는 가을이 좋았다. 가을은 도서관과 같았다. 원래 모든 책은, 고급스러운, 고흥의 꽃과 같은 책은, 모르는 말들 사이로, 아는, 좋은, 훌륭한, 내가 알고 있는 문장들이 있는 법이다. 논리는, 내가 우선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긴밀함이 있다. 그 긴밀함이 없으면, 제아무리 엄정행이라도, 봄 처녀라도, 슬프고, 안타까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티비 광주 사태가 발발한 것일 수 있다. 사람들은 원하는 것을 볼 수 없다. 그것은 차단되어 있고, 있는 힘껏 차단되어 있다. 어쩌면 사탄에 친숙한, 공포에 절여질 수도 있다. 아포리즘 하나 말할 수 없는 세상에서, 김서현의 공은, 가장 내 아포리즘들과 닮은 데가 있다. 그것은 살인적인 태풍도 아니고, 살인적인 열대야도 아니다. 얼마나 보통 사람들의 지식까지 차단하려고 하면, 방송, 경제, 정치, 김경제, 종교, 원불교, 그런 것이면, 그것이 마침내 마땅한 가을도 오지 않는 것으로, 있을 수 없는 상해 태풍으로 드러나겠는가?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마야 가야 사람들이 스페인의 몇 명에게 죽고, 그제야 신대륙의 백인들에게 과학이 전해진 것일 수 있다. 철학은 미국 철학이나 미국 문학처럼, 전해지지 않아도 좋았다. 주자학은 먹자학이기도 하고, 묵경, 동시에 유물론이기도 하다. 여행 중에 어쩔 수 없이 단식을 하면, 학생 때에, 가장 많이 가을이 들어가게 되어 있다. 사람들은 지금, 태풍이 불어도, 옛날 미국 영화 허리케인 같은 바람이 불어도, 사람들은 주자학을, 그러니까 네오네오, 더블 네오 콘퓨시어니즘을 놓치지 않을 수도 있다. 사람들이 여름이 이토록 오래되어도, 때로는 가을이 이미 완연한 것처럼 여길 수 있다. 알 수 없는 귀한 생각이 부처님의 수레바퀴처럼, 높은 지리산과 무등산에서 흘러내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