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반민중문화이야기

미국 영화와 정신현상학

by 마음대로다 2024. 10. 20.

미국 영화와 정신현상학

 

 

 

 

 

 

 

 

딱딱하고 따뜻한 엿은 바로크 미학의 본질과 같다. 사람들은 정신현상학이 어렵다고 말한다. 그것은, 아직 그것의 딱딱하고 따뜻한 엿의 친숙함, 얼리버드, 얼른 그것을 집는, 그래서 주변에 그것을 나눠주는, 그와 같은 행태가 아직 자리잡혀 있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그리고 자리 잡힌다고 해서, 그렇게 집안 살림이 나아지는 것 같지는 않다. 딱딱하고 따뜻한 엿은 그와 같은 우리의 기억과, 혹은 개그맨을 뜻하는 것일 수 있다. 우리는 그런 것은 잘 기억하는 편이다. 예를 들면 보성에서, 여자가 광주로 공부하러 간다고 하면, 혹은 광주에서 남자가 서울로 공부하러 간다면, 평소에, 그냥 드문드문 친한 인사나, 사랑의 인사나 나누는 사이였다가, 얼마나 마음이 서럽겠는가? 우리들 눈에는 그와 같은 달콤한 눈물이 흐르고, 상대에게 그것을 먹여주고 싶은, 간절함 같은 것이 생긴다. 인간은 법 앞에 평등하고, 모든 인간은 같은 교육을 받을 자격이 있다. 남자의 자격. 하지만, 여자는 남자의 자격이 없지 않는가? 아내의 맛. 남자는 아내의 맛이 없지 않는가? 그와 같은, 설 대목 같고, 밀가루가 뿌려진 엿 한가락 같은 것이, 우리들의 생각의 진척인 것이다. 생강엿.

 

자유의 여신상. 그것을 향해서, 얼마나 원스어폰어타임 팀들이, 생각의 엿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는지 모른다. 우리는 그것을 자면서 보고, 대학 생활 하면서 보고, 교회 다녀와서, 빈 일요일 오후에 보고, 티비에서 보고, 비디오 테이프로, 사람들이 한 삼 십 번을 본 것 같은 것을, 보고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것을 집을 수 있었고, 그들과 그 비좁은 뉴욕을 함께 걸을 수 있었다. 사랑의 뉴욕. 노래도 있지 않은가? 뉴욕 뉴욕. 크리스마스. 사람들 노래 부르는. 누군가 씨팔 것을, 스파클이라고 하듯이, 뉴요커를 뉴엿커 그러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들의 대입 시험 중에, 바깥에서 어머니들이 붙여놓은 엿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고, 주라기, 재래식, 최첨단이 아니라, 그냥 있었던 공원과도 그렇게 다르지 않았다.

 

이제는 만들 수 없다. 그와 같은 엿은, 한 열 사람의 엘리트들의 뇌와 같았기 때문이다. 프레데터만 보더라도, 그것은 주관과 객관의 진정한 합일이었다. 그래서 상트 페테르부르크, 그러니까 일종의 장르와 포맷으로, 외계인, 습격, 고전적인 고어물로, 프레데터 이탄은 나아갔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는 다시는 만날 수 없다. 아놀드 슈바제네거와, 그의 흑인 친구의 조우 같은 것은, 우리가 비엔남으로 여행을 갔다가, 우연히 한국 사람들이 또한 마동석물을 거기서 찍는 것을 볼 수 있는 확률 같은 것이다. 우연히, 계속되는 우연히, 구경하고 있다가, 짐도 잠깐 날라주고, 저녁 뒷풀이에 함께 가자고 하고, 그들 식구와 술자리도 함께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내게, 광주에서, 누나들과 함께 보았던 프레데터의 현주소였다. 그러니, 다시는 그와 같은 주소로 편지가 날아들 수 없는 것이다.

 

얼마나 바로크 뮤직에 침잠하고, 가스등, 혹은 애수, 혹은 버티고, 그리고 히치콕의 새는, 미국 영화를 상징하는지. 로마의 휴일. 그러다가 갑자기, 로키가 로키 시리즈를 데리고 왔고, 나머지는 다만 시리즈였대도, 그리고 람보를 가지고 왔다.

 

그리고 엑스파일......

 

한국 청년들도, 바깥에서 반독재 시위, 대통령 직선제 시위를 하더라도, 저녁에는 돌아와, 엑스파일을 보았다. 멀더. 그리고 스컬리. 계속해서 예쁜 스컬리를 찾는. 그것은 비록 축소지향의 일본 미술을 상징한다고 해도, 처음 듣는 말이다 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그러니까 스컬리 이외에, 예쁨 이외에 다른 섹스 상징 같은 것은 없었다고 해도, 엑스파일, 먹거리 엑스파일, 우리는 저마다 미래를 기약할 수 있었다.

 

이제는 헤어지는 것이다.

 

한국에서 마누라 죽이기, 결혼 이야기, 투캅스, 은행나무 침대 같은, 이상한 장르물을 히트 시키기 시작하니까, 미국은 엑스파일과, 일본은 트릭 시리즈로 달아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영화와 문학이 상호작용을, 일종의 대학 제도와도, 상호 관련을 맺고 있었지만, 한국은 늘 정치적 권력적 학생 시위적 시위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장르 영화는 다만, 미국 문화의 아류 정도로 치부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와 같은 공통적 관심으로, 북한의 문화적 입장들과, 사회적, 철학적 입장들이, 암암리에 맴돌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한국 정부의 입장과 같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의 도식을 따와서, 내가 일본 영화라고 하는 짧은 소설을 친구의 인터넷 사이트에 발표하였던 것이다. 미국의 유아이피, 그것의 직배, 어떤 미국의 정치적이며, 문화적 지배는 실제하였고, 우리는 겨우 영화를 꽃피우면서, 그것이 다시 소멸할까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영화배우나, 제작사, 감독은 믿을 수 있어도, 한국에는, 로라, 내로라하는 영화평론가 한 명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김윤식은 뭐하고 있었는지, 지금 보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작가가 여자관계가 복잡하다는 것이, 영화 비평과 문학 비평의 시작이다. 지고지순한다는 것은, 아직 창작가라는 좌표를 갖는다. 그만큼, 우리는 영화 속의 안성기를 제외하면, 성공적인 여자들을 만나고 다니지 못했다. 여자들을 성공적으로, 영국, 만나고 다니지를 못했다. 자칫하면, 호메이니가 호미곳, 호미를 들고 쫓아오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나의 글은, 문학도 대표하고, 비평도, 여자관계도, 그리고 정부의 입장도 대변하였다. 그러니 사람들은 마음껏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미국은 프렌즈와 빅뱅을 끝으로, 모든 비쥬얼 문학이 사라지고 말았다. 일본도 트릭을 이제는, 자기들 힘으로 이겨낼 수가 없다.

 

후까시 까면서, 뭔가 맞는 말 하는 것 같은 젊은 직장인들이라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비사실인 것이다.

 

우리가 정신현상학을 끝까지 읽을 수 있다면,

 

서울에서,

 

열두 척의 배와 함께

 

어느 영화의 대사처럼, 이미 승리한 전쟁이 되는 것이다. 미국이 사탄을 향해 돌진했던 때가 있었다. 지금도 사탄 영화는 한국이 그렇게 잘 만들지는 못한다.

 

문학을 하고......

 

사탄 영화를 찍는 사탄이 되는 것이

어쩌면 마지막 베트맨이었을 것이다.....

 

그것의 워

 

대공 라이트로

저녁 하늘에

 

위대한 문학을 그리워하는......

 

보잘 것 없는 미국......

 

베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