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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민중문화이야기

자식들이 공부하지 않는 보편적인 문제에 관하여

by 마음대로다 2024. 10. 19.

자식들이 공부하지 않는 보편적인 문제에 관하여

 

 

 

 

 

 

 

 

 

 

 

 

 

이제는 입시, 그런 수포자, 수포자와 수포자를 바라보는 길상사, 길항관계, 이항관계, 이합집산은 이야기하지 않기로 하자. 하다 보면 되는 것이고, 문제는 그런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러니 서울대 입시에서도, 수학 문제는, 몇 개의 전문 과목을 제외하면, 명예 항목으로 놓을 필요가 있다. 물론 그런 것이 정히 어려우니, 박정희, 대학원이라는 제도가 있는 것 같다. 아무튼 서울대 영문과생들과 대학원 입시 공부를 함께하다가, 내가 시험에 이번에도 낙방했다니까, 한 명 합격했다고, 자기들도 그렇게 들었다고, 그리고 고대생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 귀여운 동참자들을 잊지 못한다. 나는. 그것은 북한군이 내 편이 되는 의리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는 어떻게 되었는가? 나름의 지능적인 성징이 있었던, 미디움 템포의,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댄스곡이 있었던, 그런 강렬했던 가을날의 추억, 가요는,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는 자식들이 공부하지 않는다는, 보편적인 문제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과거에도 공부한 적이 없다는, 보편적인 문제를 우리에게 적시하는 것이다. 지시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외국 사람 이름,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달콤한 인절미 팥떡을, 매우 작은 것으로 소분되어 있는 것을, 원래 크기가 작아서, 뭔가 지구의 축소판이 온 것 같은 것을, 커피포트에 끓인 모카커피와 함께, 우리 가슴에 적시울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공부했다는 것인가? 수포자와 수포자를 바라보는, 입시는, 이제는 생각하지 않기로 하자. 다만 관찰자 시점만 수준이 높아진 것인가? 관찰자 시점만 수준이 높아졌는데, 중국이 초현대화된 것 같은, 울지도, 그렇다고 웃지도, 못하는 지경에 우리가 다다른 것 같다. 광양 진상에서, 하동으로 넘어가는 곳의 언덕에, 언덕 높은 곳에, 경희라는 어떤 회사가 있다. 그와 같은 지경에 다다르게 된 것이다. 거기서는 하동이 한눈에 보인다. 잘 보인다는 것이 아니라, 대충, 어림으로, 그리고 드문드문, 그것의 풍경이 보이는 것이다. 자식들은 공부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교수나 선생이면, 얼마나 기깔나게 공부하겠는가? 그렇다면 다른 부모들은 부모가 아니라는 소리인가? 쏘리. 그렇다는 말이다. 초등학교 선생을 자살로 내몰았던 부모의 사자후가, 서태후가, 태사자가, 그것을 웅변으로 대변하는 것일 것이다. 그들은 자기가 선생이고, 아이들의 부모인 줄 착각하는 것이다. 아이는 세상에, 개불로 태어나서, 우연히 전파를 주고받는 것뿐이다. 쇼츠. 그리고 학교에서 지내면서, 처음에는 개불 장아찌처럼 되어 있다가, 드문드문, 학교 괴담처럼, 인간이 되는 기적을, 변화산의 기적을, 우리에게 선사할 뿐이다. 그러니 부모와 자식 간에, 인생의 선후임으로서의 의리는 있을지언정, 다른 특별한 헤겔적인 인륜은 없다고 봐야 한다. 내가 가스통을 굴릴 때, 연습할 때, 아무튼 그런 것이 있었다. 아줌마틱한, 그런 역할의 남자가, 한낮의 백일몽처럼, 자각몽처럼, 내게 더 공부하라는 말을 하는 것이, 무슨 이런 정신 나간 대사가 있겠는가 싶었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흥미로웠다. 내 앞에 있던 사람은, 그렇다면 드라마의 아버지 역할을 하는 사람이었는데, 그는 내가 헤겔인 줄을 알고, 별말을, 필요한 말 이외에, 덧붙이는 것이 없었다. 우리는 눈앞의 현상학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성철 스님,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타타타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일 것이다. 아이들은 부모님의 사랑과, 그와 같은 공부하지 않는 늪을 지나, 티비 보고, 자고, 자기들끼리 섹스하고, 학문적인 여래장을 향해 공부하다가, 대학에서, 흥분하고, 자기들끼리 섹스하던 무리를 몰아내고, 그러나 취직 공부하면서, 토익, 다시금 공부하지 않는 늪을 향해, 어느 순장자와 함께 빠지는 것이다. 목포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어쩌면 스토아학파, 그와 같은 대불이 두려운 것일 것이다. 우리는 그런 영화나 드라마는 본 적도 없다 할 것이다. 안쏘니 홉킨슨의 길을 보라. 안쏘니 퀸. 그런 우리들의 안쏘니. 우리는 그런 영화를 볼 때, 깊은 감동을 받았었다. 그들의 길이, 우리 사는 전라도, 영남 알프스, 영덕 대게, 그런 길과 그렇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종의 과메기 탑 같은 것. 제철에는, 과메기를 직접 걸어놓는다는 기가 막힌 발상. 모든 발상의 중심지. 대한민국의 중심. 양구. 아문젠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그런 길들에 깊은 감동을 받는 것은, 어린아이가 타타타의 세계로 나아가는 막대한, 그리고 위대한 유산을, 한 몸에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막대한 인생의 무게 때문에, 영화처럼 감동의 한 길을 얻지 못하는 것 때문에, 그와 같은 형식적인 대결, 서부장 영화의 한 대목 같은 내용 때문에, 터미널, 우리는 총에 맞고, 풀숲에 쓰러지면서, 감동의 어떤 것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과에서 이과의 세계로 나아가는 사람들은, 그런 것이 있을 수 없다. 약간은 있을 수 있다. 그것이, 이제니 보니, 겨울과 공포의 나그네에 잘 묘사된 것 같다. 사람들은 말할 수 없다. 스콧이 남극에 말을 데려갔다는 정보를 어제 알 수 있었다. 우리는 그들 쓰러진 말들처럼,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개불 공단에서 태어나, 알 수 없는 인과와 계시로서, 학교에서 괴담처럼 사람이 되었다가, 다시금 자기들끼리 섹스하고, 공부하지 않고, 영화나 찍는 늪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모든 말들을 줄이면 어떻게 되겠는가? 헤겔의 정신현상학이 되겠는가? 그러니까, 사람들이 늘 그렇게 섬진강의 하류 인생이 되면서, 반대급부로다가 그것을 달성하게 되는 것이다. 영산강 하구언과 섬진강 하류 인생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화성이 갑자기 지구에 접근해서, 인력에 문제가 생기면, 일종의 문폴 현상처럼, 둘이 하나가 되는 일도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들의 산문과, 우리들의 소설, 우리들의 천국과, 우리들의 잠깐의 연애 영화가, 실은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위해 존재했을 수도 있다. 아이들이 공부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나마 우리는 공부했었다는, 배고픈 옛날 부엌의 선반을, 그것의 풍경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렇다면 아이들도 공부하지 않겠는가? 또한 반대급부로다가, 일종의 앙드레 가뇽 현상처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정말 공부했었다. 우리들이 대학에서, 변유사유 공부를 어렵지 않게 했던 것은, 그 이전에, 무엇이 단단히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나는 그것을 신작로라 부르고 싶다. 우리에게는 신작로가 있었고, 그것을 걸으면, 버스를 몇 번 타고, 하늘을 날 듯이, 대학에서, 강의실에, 남녀가 서로 앉아 있는 것이 제일 행복했어요 하면서, 변유와 사유의 원리를, 헤겔의 역사철학 강의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박정희도 그렇다.

 

처음에 경제발전을 할 때는, 정치적 적대세력을 향해, 절대적으로 경제발전을 일으켰으나, 그 이상은 공부하지 않는 젊은이들의 현상학을 보고, 주변에서 벌써 그런 것들이 권력을 장악한 것을 보고, 캄보디아 폴포트, 부마항쟁의 시위에, 내가 졸업한 다음에 지금까지 살아온 시기보다, 집권 시기가 짧았음에도 불구하고, 급격하게 생의 의지가 꺾였던 것일 수 있다. 어린아이들이 공부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리고 사실, 공부할 수가 없다. 그것은 바늘구멍과 같고, 낙타는 상봉터미널과 같다. 상봉터미널이, 다른 터미널보다는 작지만, 바늘구멍보다는, 천만 배, 단위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그와 같은 바늘구멍만 살아남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개불공단의 개불들이 된다. 이과뿐 아니라, 문과도 그렇고, 그와 같은 종말의 시기에, 오직 신학과만 개불이 되었다가, 그것이 아니 되었다가 하는 명예를 얻는다. 영국의 무혈혁명, 마그나카르타, 명예혁명이라는 것도, 실은 정신현상학을 의미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모두가 개불이 되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학교 문을 열었더니, 강의실, 그것의 압도적인 기쁨, 그것은 내가 너무나 모범생이었다는 증거, 연애실도 아니고, 연애소도 아닌데, 예쁜 애인이 옆에서 알 수 없는 물을 흘리면서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러나 모두가 개불이 되어 있다면,

 

어떤 개그맨의 말대로,

 

북한군은 누가 키울 것인가......

북한군은

 

나는 이번 광양 지떠블유씨티와 노벨상이 북한군을 저렇게 만들었다고도 생각한다.......

 

 

존만

 

 

*

 

 

 

한 줌의 도덕이듯이

이와 같은 한글 에세이처럼

 

이제는 문명도 하나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