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은 어떻게 이동하는가?
우리는 이러한 단순한 물리학을 가지고 씨름한 적이 없다. 우리는 가족적이었고, 우리는 그런 정당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고등학교로, 거의 우화등선하듯이 이동하였다. 거의 대통령 당선되듯이 이동하였다. 옛날 사람 가득 태우고, 안내양이 있고, 등교 시간에, 사람들이 너무 많으면, 우리는 그런 태종대에서 안내양과 함께 떨어질 것 같았다. 그것이 슬픈 태종대의 현주소이다. 그러나, 나 즈음으로, 갑자기, 자동차 산업이 발전하고, 국토교통망이 확대되어서, 좀더 많은 버스가 운행된 관계로, 그런 과격한 등교 지옥 같은, 입시 지옥 같은 일이 사라지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기적만 같다.
우리가 혼자 지내는 것보다 결혼을 높이 쳐주고, 생산 활동을 하지 않는 것보다 직장 생활하는 것을, 적어도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을 높이 쳐주고, 혼자서 시시한 시를 적는 것보다, 객관적인 학문이나 철학, 그런 것을 하는 것을 높이 쳐주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그것은 유럽 연합. 혹은 이유식. 그렇다면 시시한 시를 적는, 국문학과의 어떤 영웅과 슬픈 여자 주인공은 억울하다 싶다. 그래서 혼자서 지내면서, 일도 별로 하지 않고, 시를 쓰면서, 이동하는, 전진하는, 홍성으로, 횡성으로, 홍천으로, 횡천으로, 그렇게 이동하는 여자가 있다면, 너무 슬픈 일이겠다 싶다.
우리는 철학을 만난다.
예도나, 애또를 만난다. 그것은 마지막 토스. 그러나 배구에서, 스파이크하는 사람이 없는 하늘을 만난다.
정신현상학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튀지니나, 튀르키에를 지나, 튀빙겐으로 가야 하는 것인가? 카트만두를 많이 먹고, 알제리, 모로코를 지나야 하는 것인가? 그와 같은 과도한, 매우 제한적인 상상은,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그러나 대학에서, 조금만 공부해도, 갑자기 그런 버스에 올라탈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별로 없는데, 어느 때는 한 명 없는데, 안내양과 함께, 태종대에서 떨어질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사람들은 정신현상학을 읽으면, 자기는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단계에 멈춰서 있거나, 헤겔도 말이 많지만, 헤겔이 말이 많은 관계로, 자기는 쓸데없이 말이 많은 것 같은 기분을 갖게 된다. 오대수는 요, 말이 너무 많아요. 그런 목소리가 어디에서 들리는 것 같다. 대학 교수가 말이 많은 것은, 강의하는 것이고, 내게 강 같은 평화, 한강 같은 것이고, 그것의 언저리 뉴스 같은, 대학의 작은 풀숲들, 피렌체들, 고개 숙이고, 얼굴을 보이지 않고, 수업하고, 과제를 제출하는, 그런 이들끼리 만나 수다를 떠는 것은 말이 너무 많은 것이다. 그래서 그들 중에는, 그런 어떤 시간에, 마치 교수처럼, 말을 많이, 그러니까 갑자기 중단하기도 한다. 묵언수행을 한다. 영화가 한다. 우리 어린 대학생들은, 명량, 한산, 노량, 영화의 왜구와 조선 수군의 대결에서처럼, 수많은 말들을 한다. 누구는 수군 같고, 누구는 왜구 같다. 수군수군 거리는 것 같고, 에고에고 하는 것 같다. 그리고 교수들. 그것들에게서 갑자기 긴 엿가락 하나가 뚝 하고 끊기는 것이다. 그것은 샤프심 같다. 우리는 그것을 파주의 어떤 모텔에서 만날 수 있다. 파주의 어떤 마을에도 갈 수 있고, 헤이리에도 갈 수 있다. 갑자기 생명의 엿이 뚝뚝 끊기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지역을 애타게 찾는 것일 수 있다. 그래서, 그런 것이 끊겨본 적이 없고, 늘 엿공장에서처럼, 전통엿을 만드는 사람들처럼, 그것을 늘이고, 걸고, 늘이고 걸고, 정다운 사람이 옆에 있는 사람인 경우에는, 그런 길을 갈 수가 없거나, 그런 도시를 경험할 수가 없는 것이다. 샤프심이 끊기더라도, 쓰기를 멈출 수 없는 것처럼, 노벨과 한강이, 어느 때는 엿이 있고, 어느 때는 끊기더라도, 사람들이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 것처럼, 따로 자연재해가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항상. 아주 항상, 정신현상학이 그런 위치를 점유하고 있었다. 한국 학생들은 정신현상학을 잘 읽을 것 같은 환상. 김일성 종합대학. 동경대. 북경대. 서울대. 한신대 학생들은 정신현상학을 아주 줄줄, 오줌 싸는 소년의 동상처럼, 그렇게 줄기차게 잘 읽을 것 같은 환상을 주었던 것이다. 우리는 끊기고 만다. 그것은 타스만. 모카 김한용이 말한 것처럼, 타스만은 옛날 트럭이나 버스, 그런 것들의 헤드램프의 위치를 따와서, 연속하는 느낌이 있고, 캥거루 범퍼를 달면, 마치 그것을 위해 준비된 상태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타스만은, 캥거루 범퍼를 달아도 멋지고, 달지 않아도, 그것은 바위나, 아주 강한 엿이 우리에게 돌진하는 느낌을 준다. 강한 엿은, 한강이나 강한나처럼, 끊길 것 같은 걱정이 없다. 왜냐하면 아주 강한 엿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글은 그렇지 않아서, 언제든, 흐름이 끊길 수 있다. 인간의 철학은, 끊기지 않는 것 같은 환상을 준다. 왜냐하면 거의가 일반이나 추상 관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주 가끔 감각적 표현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감각적 표현은 타스만, 밥을 계속 먹을 수 없고, 손을 계속 만질 수 없는 것처럼, 끊기게 되어 있다. 하지만 정신현상학은 계속될 수 있다. 그런데 항상 정신현상학은, 몇 페이지를 읽다가 접게 한다. 내가 끊는다. 어째서일까? 그것은 철학적 감각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시크릿 가든. 원스 인 어 레드문......
*
과연 구한말, 그리고 식민지 시절의 한국인들은 정신현상학을 읽을 수 있었을까?
그것은 타스만의, 캥거루 범퍼 이전의 모습처럼, 단면을 본 것일 수 있고, 단면만을 본 것일 수 있다.
그리고 끊겼을 것이다......
얼마나 마음이 애절했겠는가......
나의 조국은 붉은 산.....
하지만 타스만이 기아 자동차인 것처럼, 그것은 매우 한국적인 문학 경험이었던 것이다.....
헤겔철학은 비틀즈를 낳았고
숱한 팝의 명곡들은
한국 가요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래서 한국 학생들이나 한국 음악가들이, 직접 임석진역의 정신현상학을 읽었을 때는, 서대문 형무소에서의 가슴이 찢기는 아픔을, 공동체적인 어떤, 그런 것을 느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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