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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야기

대만 인간의 언어

by 마음대로다 2024. 11. 26.

대만 인간의 언어

 

 

 

 

 

 

 

 

우리는 대만, 이번 월드 프리미어 투웰브를 보면서, 이것이 진정한 팔월의 크리스마스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것은 감추어졌던 것인데, 우리는 잘 모르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감추어진 것인 줄 알아야 한다. 우리가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돈이 우리에게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대만은 우리에게 감추어져 있었다. 어떠한 한국 현대사에서도, 일본이나 중국, 북한이나 몽고만큼, 대만이 우리에게 영향을 주었던 적이 별로 없다. 내가 제안했던 북한 형식론처럼, 우리나라에도 북한이 있고, 중국도, 일본도, 베트남도 저마다의 북한이 있는 것처럼, 일본에는 숱한 한국이 있는 것처럼, 그것은 마치 성조기 같은, 영광 굴비 같은, 그러나 대만에 한국이 있는 것 같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엄격히 말하면, 홍콩도 마찬가지이다. 베트남에도, 그리고 마닐라에도, 미얀마에도 한국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북한은 어디에도 있으나, 미얀마 북한, 방글라데시 북한, 그렇게 있는 것 같으나, 한국은 그만, 어려운 대학 입시처럼, 어딘가에서 컷을 당하는 것이다. 허균은 조선에도 조선이 없는 판에 어째서, 저 머나먼 남지나해, 거기다 대만을 세우려고 했던 것일까?

 

임진왜란이 끝난 후, 일본에도 일본이 사라졌다. 그렇다고, 우리나라가 일본을 점령한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임진왜란이 그것의 의미를, 형식을, 그것의 사실을 우리에게 전해준 것일 것이다. 이전에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속국으로 일본이 우리에게 있었으나, 때로는 장남처럼, 때로는 누르하치처럼, 때로는 무사시처럼 있었으나, 일순간에, 속국이기에 점령당해서, 조종당했던 것이다. 죽음은 투수와 타자, 그리고 포수와 심판의 거리만 하다. 갑자기 그와 같은 죽음의 거리가 하늘로 치솟는 것을, 아무도 막지 못한 것일 수 있다. 임진왜란이 있기 전 일본은, 허균만 했던 것일 수 있다. 그러나 국가는 한 사람의 힘으로 장악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대충 눈에 보이는 여럿이 장악하는 것도 아니다. 얼마나 대단한가? 사탄은? 사탄은 전도를 그렇게 쉽게 한다. 우리는, 허균이 율도국을 써도, 그것이 전해질 수가 없었다. 권문세족들이, 누르하치들이, 안동 김씨 세력들이, 그것을 모두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탄은 가볍게 일본에게 알 수 없는 것을 전도하여, 그들은 모두 조선에서 죽고자 하였다. 당시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지니고 있던 조선도, 당해낼 수가 없었다. 허균이 율도국을 쓰고, 그러나 내용이 마땅치 않고, 원하는 내용이 되지 않고, 다만 만화만 같고, 사람들의 반응이 시원치 않자, 이미 한화인이었던 그가, 소들을 불러다가 능지를 당하고자 하였더니, 사람들이 놀라서 그것은 막았던 것일 수 있다.

 

사탄은 전도의 왕자이다.

 

그것과 싸워서 이긴 나라가 없다.

 

.....

 

이번의 야구 전쟁이, 그와 같은 리얼리즘을 향한, 부단한 노력이었을 수 있다. 한국이 전쟁에서 지는 것. 그것은 세계에 잔잔한 충격을 주었다. 설마 대만이 우승하겠어, 하는 것이 사람들의 예상이었다. 일본이 또 우승하겠구만 했었다. 그러나 일본도, 그와 같은 리얼리즘을 향한, 부단한 노력에 편승하고 말았다. 우승. 우승. 우승. 그런 것은 소를 타는 것 같아서, 어린아이가 거기서 피리를 불면, 그와 같은 우승은 모두 무너질 수가 있는 것이다. 한국 야구도 마찬가지이다. 프로야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프로야구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이유가, 삐끼삐끼 춤을 추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프로야구가 망할 것 같아서가 아닌가? 김용옥은 망하고 말았고, 틈만 나면 누군가 전해주는 주제만 다루었기 때문에, 다루가치가 되고 말았고, 그 잘나가던 이상준도, 어느 때는 매우 싫은 사람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기적과 같이, 제한된 야구장의 틀 안에서, 그나마 가장 살아 있는 것 같은 이가, 김창옥일 것이다. 해태 타이거즈는 우리들에게 전설로만 남게 되었다. 그리고 우승 우승 우승 그렇게 하다 보니, 어린아이가 소의 등에 올라타서 피리를 불고, 그런 것으로 그치게 되었다. 일본은 그와 같은 해태 명가의 몰락을 두고, 우리와는 상관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었겠는가? 인제는 반드시 그와 같이 원통으로 생기게 되어 있다. 만일 소박한 소원이 없었다면, 그냥 이번에도 우승했을 수 있다. 그러나 생각보다 일본 사람들은 소박하고, 그들도 리얼리즘을 소망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전쟁에서 지게 되면, 또다시 원자 폭탄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지는 것 같고, 구회말에 조종당하지 않는 정신으로, 분투하고자 하였으나, 그때문에 대만이 드디어 세상에 자기의 모습을 완벽하게 드러내게 되었다. 그 강력한 타구가 그만, 투아웃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면 어떠한가? 그들도, 리얼리즘으로 사라지지 않겠는가? 처음 한 번, 소의 등에 타는 것이기 때문에, 우승은 아닌 것이지 않겠는가? 그것은 우승이 아니라, 한 줄기의 강력한 섬광, 대단한 빛이 아니겠는가? 일본은 요즘 도쿄돔에서 진 적이 없고, 대만은 일본을 이긴 적이, 그것의 기억이 거의 없다. 그러니 이와 같은 역사를 위해서 얼마나, 서로가 많은 준비를 해왔는지 알 수가 있다.

 

타자는 무릎으로 가까이 오는 공이 보이지 않는다. 남의 공으로는 보이나, 내가 팔을 움직여서, 스윙하려고 하면, 이미 남의 옷처럼, 날개처럼, 누군가 채가는 것이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얼마나 어려서부터 그것만 연습하는지 모른다. 투수도 마찬가지이다. 오직 그것만을 연습한다. 절대적으로 연습하고, 절대 타자가 있는 것처럼, 그것은 어쩌면 절대 투수가 되기 위한 열 가지의 항목 중에 하나인 것이다. 결승에서의 대만 투수도, 어쩌면 최동원이나, 선동열보다, 윤석민처럼, 가장 나의 공에 가깝다고 여겨진다. 투수는 모름지기, 칠 것 같은 공을 던져야 하는 것이다. 타자가 못 칠 것 같은 공을 던진다는 생각은, 대학생 선수가,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선수들에게 가질 수 있는 마음가짐이다. 타자는 늘 나와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타자의 컨디션은 늘 날마다 바뀌며, 어느 때는 강점이었던 데가, 갑자기 약점으로 바뀌는 경우도 있고, 그것을 감추려고 노력하는 것도 있고, 굉장히 경우의 수가 많은 것이다. 타자가 칠 것 같은 공을 던진다는 것은, 그래서, 매우 공의 스피드가 유희관처럼, 자기 자신에게 먼저 다양하게 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느리고 높지만, 타자들이 칠 수 없는 공도 있다. 이미 집에서 나온 사람이, 핸드폰을 가지러 가기 위해서, 돌아가는 길이 얼마나 어려운가? 그렇게 집에서 너무 이것저것을 보게끔 만든 다음에, 나는 기다리지 않는 경기도 버스 운전사처럼, 강력하게 지나치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일상이고, 신해철의 노래 같고, 우리나라 조선의 참다운 시작 같고 그렇다. 늘 칠 것 같은 일상의 공을 던지다가, 몇 개의 예술구를 던지면, 나는 가을날의 단감나무 단감처럼, 쉽게 삼진을 얻을 수 있었다.

 

색도 변하지 않고

그것이 한국인 것이다.....

 

도미노 피자.....

 

 

 

타자의 무릎으로 파고드는 공을 던지기 위해서, 얼마나 어렸을 때부터 연습을 했겠는가?

 

그런데 중국의 고사성어 모순처럼

 

어느 대만 타자가 만루 홈런 같은 쓰리런을 날리고 말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