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의 한계와 유에프오 같은 독일철학
그것의 길항관계
학생은 모름지기 한계의 맛이 있다. 어느 티비 제목이 아내의 맛이었듯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는, 마치 기아타이거즈처럼, 한계가 없는 것 같은 디진다 돈까스를 선사한다. 그것은 실비 김치, 최고 매운 라면도 비슷하다. 누가 실비아 크리스탈을 싫어할 것인가? 그 모든 것은 정리되지 않고, 다만 존재할 뿐이다. 우리가 독일 여행을 가서, 이런저런 성을 여행하면 어떻게 되는가? 끝이 나는 것이다. 그것은 가보지 않았을 때, 다만 아름다운 독일 성이 되는 것이고, 쾰른 성당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머리 감지 않은 채로, 야마하 엠티를 타면, 그와 같은 무안 벌판이, 혹은 벌교가, 우리의 것이 되듯이, 최고의 것이 되듯이, 우리가 이성이나 문법, 벌거벗은 한국사와 같은 언어적 재능은 없는 채로, 의식만 의식만, 야마하 엠티, 그 어떤 슈프리머시를 발견하게 되면, 크게 낙담하게 되고, 마음이 적잖게 슬프게 되는 것이다. 우리 옛날 학생 운동은, 슈프리머시였다.......
시험에 들지 않는......
독일 철학이나, 존재론 시험을 치르지 않는.......
걸그룹, 소나무 같은.....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되겠는가? 아폴로 어떻게 되겠는가? 앞으로 어떻게, 디테, 도대체, 롯데, 어떻게 되겠는가?
어린아이가 있는데, 소나무 같지 않은 것이다.......
만화를 좋아하는데, 정리되지 않고, 다만 학교 공부만, 기아 타스만처럼 잘하는 것이다.....
기아 타이거즈가 있는 것처럼, 뭔가 이상한 협성 신학대학교처럼, 우승을 하려면 할 수 있는 팀처럼, 그런 것이 있고, 슬픔의 타이거즈도 있는데, 그것을 줄여서 스라소니라고, 시라소니라고 한다. 채시라. 소니. 그렇게 되어 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자녀가 공부하고 자는지, 아니면 재밌게 친구들과 놀고 자는지, 아니면 벌써 자는, 그런 피렌체의 간계를 눈 뜬 것인지, 그런 것은 아니고, 자녀들이 공부하고, 그렇게 힘있게 놀고 자는 것인지, 그런 것들을 분간하여, 아이들을 키우고, 사람들을 만들 수 있겠는가?
우리가 배트맨 투와, 터미네이터 투를 볼 때, 대체 어느 누가 이와 같이 공부하고 있는가? 흥분하였었다.
진정 영화는, 특정한 한 사람의 생명을 갖고, 마치 김도영이 사이클링 히트를 치듯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가 의구심을 갖게 된다.
우리가 대학 리포트를 작성할 때, 우리는 처음 그 백색의 대지를 발견하였고, 누구나 이론가, 누구나 학자, 누구나 교수가 되는 전백제의 길을 발견하였었다. 그러나 후백제. 후백제에서, 사람들이 전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대학생 백 사람의 비밀로 하는 것 같다. 어째서 그러한가? 우리는 어째서, 고등학생 때에는, 유인원 특수 훈련처럼, 사지선다만 하다가, 수학 주관식 문제도, 영. 일. 그리고 오로 찍어서, 한 문제는 저마다 맞힐 수 있다가, 대학에서 갑자기 베를린 리포트를 작성해야 하는 것인가? 그리고 누구는, 학과 공부를 포기하고,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가? 학과 공부를 잘하고, 모국어의 문법에 충실하고, 굉장히 반듯하고, 미국 영화들을 물리치는 것 같고, 그러한 사람에게, 사도 바울의 푸념처럼, 아내가 없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고, 여자 친구가 없는 것이, 진정 없는 것인 것이다. 사라 코너는, 그와 같은 남자의 대학교 여자 친구였던 것이다. 독일 철학은 분명, 히틀러가 될 수 있다. 그것을 미국 학자들이 그렇게 연구를 많이 했다. 프랑크. 그리고 독일 철학을 할래야 할 수가 없다. 그러니, 히틀러가 된다는 것은, 뭔가 국지적이고, 한국 사람이 한국 음식을 아주 잘 먹고 있는 것을, 한국을 좋아하는, 남아공의 선생들이 소식을 접하는 것과 비슷한 것인 것이다. 독일 철학은 분명 인사이트가 있다. 인싸가 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같은 인사이트가 분명 있다. 누구나 독일 철학자가 될 수 있다. 그것은 스페이스로 되어 있고, 그것은 동일시로 되어 있으며, 그것은 분명 앤타이 풍속 연구 같은 것인 것이다.
처음 학생은 분명 스페이스와 같다.
그것은 하늘 천과 같다.
그리고 숱한 역사의 주인공들과, 그것이 슬퍼도, 혹은 영화로워도, 동일시가 된다. 현대적으로도 동일시되고, 영화배우도 되고, 아름다운 가수도 되고, 훌륭한 농업 연구가도 된다. 그러나 갑자기 일본은, 전후 일본은, 부강한 과학 국가가 되었지만, 급격하게, 풍속 연구의 붐을 맞이하게 되었다. 미야자키의 영화에 그와 같은 상징이, 묘사되어 있는데, 그와 같은 스라소니 코요태를 어떻게 묘사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미국 영화와 대항해서도, 싸워 이길 것 같은, 모국어의 영웅이, 여자 친구 없이 지내고, 그와 같은 이유 때문에, 대학에서 여자들은 모두, 레오파드 무늬의 자켓이나, 바지를 입는 것이다. 고소영을 보면, 유독 외로워 보이는 것은, 그와 같은 남자 친구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은행나무 침대에서, 진희경이, 한석규와 다리 위에서 뛰어내려, 피신한 것도, 따지고 보면, 진희경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팔월의 크리스마스도 그렇고, 접촉도 그렇다. 일본식의 풍속 연구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지푸라기라도 잡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정작 서울대 최천택 교수는, 그런 역사의 흐름을, 도저한 구조주의적 임진왜란의 발생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도리어 일본 편을 드는 쏘우를 범하고 말았다.
자기는 진정 모르는 것이고, 나도 그런 것은 잘 보지 않는, 같은 의미의 쏘우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풍속 연구라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대도시의 밀집 지역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한 방에서 지내면서, 결국 부부끼리, 다른 가족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섹스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것을 연구하는 것이다. 우리는 가난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르지만, 풍속이라는 것은 결국, 항상, 그런 것을 지향하고, 그와 같은 초강력 지남철을 가지고 있다. 부자고, 집이 아주 커도, 반드시 인간은 풍속의 측면에서, 그와 같은 마지막을 맞이하고 만다. 드넓은 미국에서도, 항상 캔디 케인처럼, 트럭이 쫓아온다.
독일 철학은 무엇인가? 독일 사람들의 철학인가? 내가 며칠 전에 한 말이지만, 독일 사람들은 진정 헤겔을 사랑하는가? 누군지도 모르지 않겠는가?
......
조선은 그렇지 않은가?
이순신은, 장군은, 애드머럴 리, 그는 풍속이거나, 풍속 연구가가 아닌 것인가? 우리는 물을 수 있다.
명량, 한산, 그리고 노량은 도저히 배트맨, 터미네이터, 그것들을 누를 수 없다.
두류산의 아름다운 모습처럼
해남
한국 학생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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