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란
대체 어디서부터 꿈인 것일까? 우리가 좀비 영화 나오고, 좀비 나오고, 가옥들은 파괴되고, 도시는 마비되며, 좀비들이 어슬렁거리고, 뛰어다니고, 그리고 익룡, 날아다니고, 그러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면, 눈앞에서, 교통질서 지키고 운전하는 것은 꿈이 아니라고 하는 반면교사가, 반대급부가, 선사되어 진다. 그러나 조금만, 내가 일하는 충전소에서, 계산을 위해 신용 카드, 그리고 보너스 카드를 주는데, 자기 명함까지 주는 경우, 그런 것을 내가 서둘러 돌려주는 때에는, 이 모든 것이 꿈이 아닌가? 자각몽 같은 것. 자몽 같은 것. 그런 에티켓이나, 티켓의 조금 작은 형태, 사람들은 에티켓이 있어야 한다고 할 때의 그 티켓, 길소뜸, 때로는 미국 팝송 원웨이티켓, 그렇게 몇 번을 주장하고는, 뚜루뚜루루, 그러면, 사람들이 알아서 그와 같은 세계관을 이해하는. 나뚜루. 우리는 모든 것이 꿈인 줄을 안다. 그것은 그렇게 정확하거나, 훈련받은 문학생으로서 갖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일종의 항공과나, 항공대학, 그런 활주로, 공황장애? 그런 것과 비슷하다. 장애는 갖지 않는다. 다만, 약간 떨리는 것이다. 우리가 지나는데, 산을 오르는데, 다들 나긋나긋 조용히 있거나, 적당히 흔들리는데, 유독 태풍이 부는 것처럼 흔들리는 풀이나, 나뭇 가지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런 것을 인터넷에 올리면, 금세 파라노말이라고 전세계에 퍼지고 만다. 그만큼 드물지만, 또한,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지 않았을 뿐, 한 번쯤은 경험했던 귀신 체험 같은 것일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꿈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일종의 싸인 일레븐 같은 것이다. 세븐. 에스티 세븐. 나는 그와 같은 메시지를 매우 무겁게 받아들인다. 모닝과 스파크 중에서, 스파크가 약간 무거운 특징이 있다고 하는데, 타보지는 않았으나, 충분히 인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데이스타와 에스티 세븐은, 무게가 많이 차이가 난다. 데이스타는 정말 팔방미인이다. 그리고 에스티 세븐은 미스코리아이다.
도대체 무엇이 기적이고, 무엇이 꿈인 것일까? 내가 언젠가 주장하고 말한 적이 있는, 복음서 자체가 기적이고, 문장이 바로 놀라움의 원천인 것이다. 문체반정인 것이다. 우리의 답답함은 대게, 우리들이 나누는 말들의 답답함에서 기인할 때가 많다. 중국 사람들이, 한 달에 두 번도 쉰다는, 쉬쉬하는 그런 소문은, 우리의 마음을 더욱 답답하게 하고, 사람들을 조용하고 슬픈 전쟁분위기로 만드는 것 같다. 말은 기적이 아닌 것도 같다. 말은 그와 같은 슬픈 조건에서도, 얼마든지, 친구들을 웃기고, 친구가 외국 호텔과 중국 호텔의 비교 같은 것을 말하면서, 친구가 대파농사를 어떻게 할 것인지, 폼을 잡고 스티로폼 의자에 앉으려다가, 논두렁에 빠져서, 지금 십 년이 넘도록, 차원변경선을 오가는 것으로다가, 많은 사람을 웃기듯이, 웃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말은 꿈이고, 현실이 기적을 판단하는 대상이나, 기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오해이고, 오류이며, 오류동, 그리고 그 유명한 경기도 오산이다. 마침내 모든 웃기는 말들이 끊기는 때가 오는 것이다. 우리가 과거, 학생 운동은 앞으로도 늘 있고, 학생들은 변유 사유 쯤은 얼마든지 문제 제기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심리학과라고 하면, 다만 심리 통계학 같은 것이나 배운다는 소식처럼, 철학과는, 로스쿨을 가는, 그런 철학로만 있다고 하는 것처럼, 뿌리가 없고, 계단이 없는 것들은, 다만 연기처럼, 안개처럼, 사라질 뿐인 것이다. 복음서가 사라지지 않은 것은, 세 개의 유사한 것이 존재를 지지해 주어서가 아니라, 우리들의 영혼이 그처럼, 피라미드보다 확고해져서 그런 것인 것이다. 그러니 복음서가 어느 때는 매우 모순적이고, 부조리하며, 다만 기적만을 이야기한 것 같아도, 세상의 모든 말들이 울리는 징과 같을 때, 사랑이 없으면, 사랑이 있어도 울리는 징과 같을 때, 지리도, 니고데모도, 안드레도, 가버나움도, 지중해도 없는, 그런 백향목도, 다만 사람들이 그것이 너무 좋아서, 자기가 죽는 지도 모르고 맛있게 먹는다는 울릉도 호박엿처럼, 그것이 너무 좋아서, 인간에게 영원히 사는 기적을 보였던 것이다.
복음서의 상대자는 그리스 철학일 수 없고, 그리스 신화 같은 것은 더욱 없고, 오직 피라미드 뿐이다. 쿠푸왕의 피라미드 뿐인 것이다. 피라미드 중에서도, 오직 쿠푸왕의 피라미드만을 상대한다는 것도, 중국 쿵푸가 막대한 적을 갖고 있다는, 또한 매우 힘겨운 사실이 된다.
내가 오토바이를 타고, 지리산의 한 대목을 멋지게 돌고 오면, 숱한 문명의 아틀라스들이 매우 신기하게 여긴다. 자기들은 더 큰 차, 비싼 차, 붓싼 차, 그런 것들을 타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죽은 적이 없고, 그들은 바벨 3세, 죽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자기는 날마다 죽는다 하였다. 그것은 거의 아무런 책임감도 없는, 완전 폐급의 말인 것이다. 하지만, 힘겨운 도시인들을 사로잡는 마성을 갖는다. 날마다 죽어서, 몇 번 죽은 지도 셈할 수 없는 사람들이, 겨우 익히게 된 초거대 자동차요, 비행기들이기에, 내가 원투쓰리포 에스티 세븐, 그런 에스티 세븐을 타면, 기적이라고, 살아있는 기적을 보고 있다고, 내가 망포항에서 광영동으로 넘어오는 다리를 건너다 보면, 그러는 것이다. 그곳은 짧다면 짧고, 제법 된다고 하면, 제법 된다. 하지만 그곳의 아름다운 허리를, 강수연보다 훨씬 아름다운 클라라 주미강처럼, 만지고 속도를 내서, 차들이 없을 때는, 차두리, 그렇게 휘여져 오를 때는, 뒤에 경차 한 대가 그런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은 환상에 사로잡히는데, 어떤 추측이 생기는데, 그것이 그렇게 틀린 것이 아닌 것이, 그렇게 한바퀴 돌고 오는 미들급의 오토바이가, 광영동에는 한 대도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다들, 몸이 차가워졌고, 죽은 이의 피라미드의 높이를 유지하는, 등급을 유지하는, 차가운 사무실, 차가운 중소기업, 차가운 공장들, 거기서 자기 몸을 유지하는, 그런 자동차 안에 있기 때문이다. 내가 죽은 것일까? 아니면 인류가 죽은 것일까? 내가 안일까? 아니면 사람들이 한명회처럼, 임진왜란 때에 대단한 공을 세웠다고 최근에 들었는데, 사람들이 안일권, 안일까? 김일권이라는 프로야구 선수가 있었다. 가득염이라는 이도 있었다. 차영화도. 아무도 그 말들을 믿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나마저도, 피라미드와 같은 등급의 가득염이라는 이름을, 밀란 쿤데라의 농담 삼아 말할 수가 없다.
나는 추측한다.
고로쇠 존재한다.
그들은 지독한 문과처럼 공부하다가, 집에서 너무 굶고 있어서, 배고픈 중에도 의식의 흐름처럼 섹스만 하다가, 아이만 낳다가, 지금은 그런 사람들도 챙겨주는 민원센타가 있지만, 옛날에는 없었는데, 일하러 바깥에 나갔더니, 그 날로 죽고 말았다. 그 원인은 하나도 신기한 것이 없고, 모든 것이 당연하고, 모든 것이 자연스러운 것일 것이다. 그리고 죽어서, 다른 도시에서, 다른 사람으로, 이유도 없이 살다가, 이제는 일만 하고 살다가, 그나마 가장 문과에 대한 홈시크니스가, 홈씨어터가, 발발하게 되는 것이다. 광산구가 정말 그렇다. 처음에는 광산이나, 광산 김씨나 사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는 공장들과, 아파트들이 들어차게 되었다. 그렇다고, 동구나 서구, 북구가, 문과라는 것이 아니다. 문흥동. 계림동. 산수동. 어쩌다 광산구를 지나다 보면, 나는 조금 놀랐다. 그곳은, 정말 버려진 곳 같았다. 누구도 책을 읽지 않는. 티비나 보는. 죽음을 뚫고, 책의 향기를 맡는. 그러면 어떠한가? 그런 강력한, 슬픈, 비인간적으로 단단한, 그와 같은 피라미드의 주름만이 이마에 가득 있는, 클래식 연주자와 같은, 폐급이라고 한다면. 폐급이라는 말이, 나는 잘 모르는데, 맛이 너무 좋아서 짱나, 그 말은 좋은 뜻이 있고, 폐급이라는 말은, 진정 나쁜 것이 분명할 것인데, 그런 폐급이라고 한다면, 진정 몸에서부터 민중신학이 터져 나오지 않겠는가, 나는 조심히, 그와 같은 고로쇠 수액을 연상해본다. 생각도 하고, 존재도 해본다. 그래서 그리스에서, 숱한 반라의 여인들과 공부하다가, 그 엄청난 숫자의 어린아이들이 바다를 건너, 강제, 어떤 거제, 부산 무슨, 그런 것 같은 곳에서, 피라미드를 지어야 했었는데, 우리는 늘 그런 것을 보면서, 어째서 탈영도 하는데, 전쟁터에서, 강제, 어떤 거제, 부산 무슨, 그런 곳에서 탈출하지 않았는지 궁금하게 되는 것이다. 대충 내용은 지금보다 복지가 훌륭했다는, 경상북도, 홍준표, 카더라 통신이 있다. 그것은 맞지 않고, 그것은 징기스칸의 몽고가 아니다. 쿠빌라이가 아니다. 프랑스 칸 영화제가 아니다. 그들은 저녁에, 오징어 게임처럼, 파병을 제안받게 되는 것이다. 전쟁이 아니라고 하고, 반라의 여인들과 공부했던 기억처럼, 엘도라도라고도 하고, 때로는 전라의 여인이 있는 곳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마치 휠오브 포춘처럼, 잘하면, 공부하는 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공사장에서 죽은 사람들을 알고 있어서, 선뜻 그처럼 백만 명의 사람들이 움직일 수도 있다고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진정 꿈이다.
꿈이 확실하다.
우정의 무대에서, 자기 어머니가 확실하다고 외쳤던 병사처럼, 우리가 이런 소식을 접하게 되면, 그것은 진정, 솔로몬을 찾아온 아프리카 여왕의 거대한 군대처럼, 꿈이 분명하다고 외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꿈이 아니면 어떻게 되는가?
인생은.
어떻게 우리는, 어렸을 때, 늑대소년처럼, 늑대들과 있지 않고, 그나마 학교에서, 조금은 가난한 집안이었대도, 공부할 수 있었을까? 학교에서 돌아오면, 우리는 닐 어떤 가수처럼, 아임 세일링, 노래를 듣고, 비너스, 노래를 듣고, 더스트 인더 윈드, 노래를 듣고, 눕고, 공부해야 하는데, 눕고, 해가 지고, 예쁜 누나가 대학에서 돌아오고, 그랬던 것일까? 그러니까, 필요충분조건으로 따지면, 부자와 가난한 자가 그다지 다름이 없었던 것이다. 부잣집, 자기 집에 갔는데, 가족 중에 누군가 투자를 한다고, 사업을 한다고, 집안에서 떵떵거리고, 온갖 사물들이 블링블링하고, 차크락차크락 소리를 내고, 이상한 사람들이 굽신굽신하고, 때로는 어느 개그 프로그램처럼, 그 중에 한 명 살인자가 있다는 메시지를 받는 경우, 맘 편히 누워서 팝송 감상 시간이나 가질 수 있었겠는가.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기적은 그것과 같다. 공부를 많이 하고, 머리에 라디오 채널이 많은 것 같은 눈빛에, 저녁에, 주변에 불이 꺼지면, 중국 여행을 하는 사람으로서, 다만 라면만 맛있게 끓이고, 밥을 추가해서, 김치에다 먹으면, 인간의 재산에 대한 욕망의 팔 할은 회복할 수 있는 것인 셈이다. 티비를 보고, 저장하고, 그리고 반드시 그와 같은 경제권을 획득하려면, 어린아이처럼, 지저스 투에이 차일드, 반드시 혼자만의 생각을 많이 갖고,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러나 그와 같은 히말라야 같은 에베소에서, 지능이 떨어지고, 등급이 떨어지게 된다.
그리고 숱한 다시 사는 사람들이, 또다시 그와 같은 문과와 이과의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새로운 요소로써 죽음을 당하면, 임을 당하면, 그와 같은 케이스를 문명 전체가 나누어 갖게 되는 것이다.
누구도.
굴원처럼 정신이 나갈 것 같은 완벽한 보이저호에서는
오토바이를 탈 수 없다.
오토바이는
피라미드 노동자의
꿈란 같은 것......
그래서 아름다운 것......
*
프랑스 대혁명은, 파리미드 노동자들이 바스티유를 탈출해서, 일으킨 것이라는 이야기를, 무슨 뒤마, 그리고 작가들이 써주기를 바랐는데,
사탄이 그렇게 바랐지만
누군가 그렇게 장대한 서사시나 소설을 쓰면, 멍청한 민중들은 반드시 빠질 것이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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