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을 피우고, 향항, 해남 대흥사를 보다 생각할 필요가 있다. 플로티누스......
며칠 고시원에서 지내는데, 아침 풍경이 조금 다른 것이,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울면 안돼, 캔디 만화를 울면서 다 보고 난 뒤, 재산은 다른 어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있을 재 있을 산이라는 뜻인가보다 싶다. 그것은 무직. 하지만 택시가 경적을 울리면서 지나가도, 사자성어로 하면 택시경적, 나의 생산성과 관계는 나실인과 같은 것이다. 몸이 보다 민중적이고 전투적으로 성경을, 그것도 핏빛, 끌어안을 수도 있고, 나처럼 심미적인 양복에다, 정장, 정장양복, 정장은 묵경에 나온 말인데, 그 단어, 고통스러운 고대, 앤션트 코리안 유니버시티, 성경을 은폐엄폐 시키고, 그냥 책상에 놓고, 다른 책들을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학생들이 아름답고, 몇 원씩 할인 행사가 그치지 않는 편의점 음식도 맛이 있다. 오늘은 나가사끼 짬뽕을 삼백원 할인 된 것으로 먹어보았다. 삼백원 할인이 된 것이 아니면 안 먹었을 것인가? 그것은 중요치 않다. 안 먹었을 것이다. 삼각김밥과 함께 먹었는데, 만족스러웠다. 대흥사. 대만족 대흥사......
해남이 먼저인가? 대흥사가 먼저인가? 그것은 대흥사 때문에 촉발된 것이다. 그것의 지형. 월출산은 능히 그럴 수 있다. 월출산은 잘 닦인 도로 때문에 더더욱 장관이 되었다. 우리는 삼번 국도에서 한 대 맞은 뒤, 무등산에서 그때 안 맞았나 싶게 한 대 더 맞고, 월출산에서는 원래 전라도에서는 자주 맞는가보다 하면서 맞는다. 세상에 달이 뜨는 산이라니. 하늘에 달이 없을 수도 없지 않은가? 해남에 가서는, 풍경과 천사들에게 맞는 것이 아니라, 꼬랑내 나는 스님들에게 맞는다. 대흥사는, 대흥사는 대체 뭔가? 뭐 하자는 제스츄어인가? 삼국사기는 우리의 지명으로부터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오직 상상에 맡길 뿐이다. 어떠한 역사학자도, 역사학 연구 동아리로만 다니다보면 절대 알 수 없는 세계이다. 역사는 산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것이 월출산이 아닐런지. 월출산은 삼국사기 이후에 보다 깎인 것이 아닌가 싶다. 벌판인데, 돌들을 날라다가 만든 것일 수는 없지 않은가? 지명은 어째서 있었을까? 나중에 삼국사기가 나타날 것을 기다렸던 것일까? 다시 또 한 번 그 이야기가 떠오른다. 가족들끼리 사이가 좋진 않지만, 제대하고 집에 가니, 연락처도 남기지 않고 이사를 갔더라는..... 그 아버지가 어느 날은 마음이 따뜻해져, 어째서 자기 아들이 제대를 아직도 안했느냐 묻는 것이다. 좀 있으면 하겠죠 하는 대답적인 클리쉐...... 여동생은 자기 친구의 오빠가 입대를 하고 제대를 하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자기 오빠가 제대를 하지 않는 것을 조금도 궁금하지 않는 꽃나비 호모 사피엔스...... 프랑스의 네안데르탈인의 벽화는 그래서 그린 것이 아닐까? 플로티누스의 그림이, 보다 극적으로 압착하자면, 저먼 아이디얼러지가, 해남 대흥사를 보고 폭격을 받아서, 프랑스 화가가 고향에 돌아가 굴 속에서 자기들의 연장을 가필한 것으로...... 너무나 그림이 보면 플로티누스 같고, 대흥사의 신체적인 지하 암벽적인 투사 같다. 프로젝션. 내내 했던 말이지만. 대흥사는 아 해남 대흥사 할 수 있는 우리 자신에게도 충격이다. 튱격이다. 내가 혀가 짧아서 바담 풍 해도, 너희들은 바담 풍 해라 하는 이야기의 연원도 거기가 아닌가 한다. 플로티누스의 하나와 행복이라는 저작도, 어제 처음 읽었지만, 행복 이전의 것으로, 그것의 효과와 비극적인 충격이 너무 깊고 어지럽다 싶다. 대흥사 대격돌에서 쉽게 끝나지 않는 승부를 보이는 듯 하다. 그러나 한 사람은 주지이고, 한 사람은 젊은 유능한 학승인데, 결국은 차원이 다른 것이 아닌가 할 수 있다. 플로티누스의 글은 행복으로 가득차 있다. 줄여서 대흥. 그렇다. 내가 쓴 것 같다. 내가 전생에.... 아. 그런 말..... 행복으로 가득 차서, 비극을 내다보는 무시무시함....... 그래서 창세기의 성경에도 합치가 된다. 아벨이 가인에게 죽었다는 말이 아니라, 아벨은 연꽃이 날리는? 행복한 교정에서 사람들의 축하와 계속되는 연찬과, 주고 받는 대화와, 퀴즈, 그것은 얼마나 단단한 여래장인가? 묻고 답하는 스폿 라이트, 가인은 저먼 아이디얼러지처럼 남을 비난하는 것인지, 자기가 결국에는 양명하는 것인지 모르는 말로다, 시험을 치르는 중에 소리를 지르고, 그렇게도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세계관이나 찌르면서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규합한다. 그것은 조개껍질 통신 같은 것이기 때문에. 성경에 가인이 이마에 낙인을 받고 나갔다는 대목은, 이렇게도 지금의 조선대 한 정문 같은지........ 계속되는 무시무시함은, 독특한 불교 미술은, 미용실에 다녀온 것처럼 머리 모양이, 플로티누스는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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